씨앗중에는 껍질이 너무 딱딱해서 싹이 틔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얼마나 두껍게 쌓였는지 스스로는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이건 그냥 두면 정말 속까지 말라 싹은 영원히 틔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맙니다. 근데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산불이 나서 그 불이 지나가다
껍질이 그을리고 타는 바람에 싹이 난다고 합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사순절 새벽에 일찍와서 예배당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묘한 생각이
듭니다. "너 이렇게 한다고 뭐 달라지는 것 있니?" 라고 질문하는
자아의 비꼬임입니다. 나를 잘 아는 자아(自我)는 항상 나를 고발하기를
천직으로 알고 있는 놈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내가 새벽에 앞자리에
와서 예배를 인도하고 교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남보다는 조금
더 마음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새벽은 그냥 에덴동산의 그 때처럼 새벽이고 애굽에서 탈출하던 때와
같은 새벽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시간도 새벽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벽이라는 시간자체에 어떤 신비한 시간의 능력이나
오묘한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벽을 만나는
사람의 태도이고 마음입니다.
딱딱한 껍질에 쌓여 있는 내 자신이 새벽에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듣는 시간앞에서 정직하게 나를 발견하고 나의 진실을 맞대하는 것이
새벽의 진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고 만물이
아직 잠자는 시간이지요. 그리고 새벽은 하루 중에 시간의 경건이
도도히 흐르는 때여서 기도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고 찬송하기에 너무
황홀한 시간입니다. 게다가 요즘 설교자의 짧은 메시지이만 나는 말씀
을 듣고 단에 서는 교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평생 가장 아름답고
기쁘고 감동어린 설교시간으로 정했기에 나는 그 시간에 딱딱한 내
두까운 껍질이 깨지고 부숴지는 행복한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누가 잘하고 잘 못하고
는 없습니다. 준비된 원고(책)를 가지고 읽어내려가는 것이지만 그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에 새롭게 부딪히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설교자가 그 말씀의 진실에 부딪히고 함께 참여하는 교우들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참된 신앙의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이길 기도합니다.
새벽은 그냥 새벽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새벽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서 그리고 정신이 속사람을 일깨워 줍니다.
그 딱딱한 껍질을 깨뜨려서 싹을 틔우는 사순절 새벽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