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레벨
<에피소드1>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보다 반발만 앞서 나가는 좋은 지도자'를 강조해 관심을 모았던 일이 있습니다.
“내가 여간해서 정치 이야기 안하려는데, 워낙 나라 걱정이 많이 되어서 전번에 간접적으로 한마디 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야 한다. 국민보다 반발만 앞서가라. 국민의 손을 놓고 혼자만 가면 실패한다. 국민이 이해를 못하면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
<에피소드2>
바바 하리다스의 이야기입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물동이를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걷고 있는데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군요.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하기를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등불은 나를 위함이 아니고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에피소드3>
몇 달 전 황우석 박사는 법정최후진술(2009.8.24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을 통하여 자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몇 피고인들의 선처를 구했습니다.
“먼저 장상식 피고인. 제가 오늘 맞고 있는 중압감과 고통보다도 장상식 피고인이 법정에 저렇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중략) 존경하는 재판장님. 만일 검찰의 구형을 받아들이시어 장상식 원장께 탓하실 것이 있으시다면 (그것을) 저에게 몰아주십시오. (당시) 장상식 원장님의 행위는 널리 알려지고 칭송받을 일이지 범법자 낙인찍힐 일이 아니니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강성근 교수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성실성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만일 그 때 제가 강 교수를 뽑지 않았더라면 강 교수는 (아마) 이 불행한 사태를 접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강 교수에게 법의 온정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윤현수 교수. 훌륭한 사람입니다.(중략) 만일 윤 교수도 저와의 이런 인연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미즈메디 연구소장으로 있었더라면 아마도 (저와 같이 피고인석에 서는) 이런 불행한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 분의 교수. 훌륭한 교수들. 이 분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선종 박사. 제가 매일 아침 5시50분에 연구실에 출근하면 꼭 10분 전에 그것도 1년 365일 김선종 박사가 먼저 출근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김선종 박사처럼 성실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런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실행에 옮겼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만일에 김 박사가 과거의 일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성실성을 더욱 배가시켜 참회의 여생을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저는 (그를) 제 연구팀에 합류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국민들이 꿈꿨던 그 과학의 열매를 김 박사와 함께 따고 싶습니다.“
<에피소드4>
정년을 하신 선생님들의 한 단면입니다.
한 평생 초등학교 교사이기를 고집했던 이 선생님. 승진 보다는 현장 교실을 중하게 여겼고 많은 선생님들이 선호하는 학년도 양보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정년을 하게 됩니다. 아직도 평교사를 면하지 못하여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위로합니다.
“당신이 지켜주셔서 우리 아이들이 이만큼 성장하지 않았어요?”
3남매를 둔 이 선생님의 큰 아들은 의사입니다. 둘째(딸)는 교사입니다. 막내아들은 세칭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그 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지 않았던 이 선생님은 어느 날 친구들과 만나는 동창회에 가게 됩니다. 친구들은 교직생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평교사로 퇴임한 이 선생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오늘,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배려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레벨(level 지위나 품질 따위의 일정한 표준이나 정도, 수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피소드1에서 김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잘 새겨 보면 지도자들의 약간 앞선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대부분 자신만이 최고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물론 남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너무 앞서가서 뒤에서 힘겹게 따라오는 부하를 나무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반발만 앞서 간다면 부하들은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지도자는 배려의 레벨이 어느 수준일까요.
에피소드2는 장애자가 오히려 정상인을 배려하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눈먼 봉사라 해도 자신을 보는 눈이 긍정적이면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는 배려하는 마음까지 키우게 됩니다.
눈 먼 장님의 배려 레벨은 어느 수준일까요.
에피소드3에서 보면 황우석 박사의 인간됨과 배려를 읽을 수 있습니다. 황 교수 자신을 돕다가 법정에 서게 된 세 분 교수는 모두가 자신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는 것을 적시하여,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지울망정 그 분들께는 선처를 해 달라는 진술. 우리는 황 박사의 높은 인격과 동료에 대한 배려를 읽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을 불리하게 했던 분에게도 참회의 기회를 주고 그 분을 용서하고 동료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보입니다.
황 박사의 배려 레벨은 어느 수준일까요.
에피소드4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만나면 교직생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 곳에는 행정직, 연구직, 전문직에 종사했던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평생 승진을 하지 않은 선생님들도 다수 모입니다. 이 때 화제가 모두 상위직을 역임했던 분 들 주변에 머문다면 평교사로 교직을 마감한 선생님들은 그 상황에서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잘 나간 선생님들의 배려 레벨은 어느 수준일까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덕입니다. 그런데 그 레벨을 체크해 본다면 더 나은 미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2009. 11. 1)
첫댓글 저를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글입니다. ^^
엄선생, 안녕. 너무 오랜만이야. 이젠 유치원 중견교사. 행복하기 빌며, 결혼도 생각해 보시길---
잔잔한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나의 레벨은 어느정도일까요---
저 자신을 되돌아 보는 의미의 글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님께 메일보냈는데...교수님 메일주소 moon12@dkc.ac.kr아닌가요?^^
엄선생의 메일 이제야 찾아 읽었어. 위 메일은 동강대학 메일이라 이젠 안 쓰고 있다네.지금은 dmoonkj@hanmail.net.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저의 글모음으로 담아가겠습니다. 너무나 와 닿는 글다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