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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면 초겨울이다
수능시험 감독 새벽출근을 위해 어머니 집에서 잤다. (老부모님은 서산에서 사시고 나는 대산읍에서 자취를 한다.) 내 집에 없는 TV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뉴스도 보았다. 리모콘을 누를 때마다 한반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영국에서 꽃마차 팡파레 장면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삭발단식 중인 스크린이 번갈아 나타났던가.
비바람 때문에 잠을 설쳤고 단숨에 새벽.
수험장 가는 늦가을, 노란 옷으로 번쩍이던 은행나무가 나목으로 변신한 건 간밤의 비바람 탓이다. 지금도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과 단풍, 오동잎이 뚝뚝 떨어진다.
‘봄은 기쁨의 계절이고 가을은 슬픔의 계절이다’
그 표현은 관념이지만 - 기쁨의 단순 표정보다는 슬픔의 섬세한 표정이 훨씬 복잡다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저 은행잎도 가을비 한 차례로 죄다 쏟아졌으니 천상 늦가을의 풍광을 훔쳐가는 ‘도둑비’리라.
제 53지구 수험장 입구.
각자 학교 수험생을 기다리는 후배들 인파로 술렁인다. 인솔교사로 나온 대산고 김영곤 선생이나 사립 전교조 이준환 선생도 만나면.
‘그 나이에 왜 고생을 사서 해요?’
그런 문장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새벽 커피를 마신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라고 했던가. 그저 시험장 최고령 등장인물임을 보람 있게 해석하는 중이다. 여기저기 플랜카드엔.
‘합격 느낌 오잖아. 대박이어요. 감사하쟈냐’
‘아싸- 수능 ★거 아니라구’
생경하던 문장도 지금은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 학교는 참으로 깨끗하다. 건물과 잔디밭이 쾌적한 조화를 이루는 게 마치 대학 캠퍼스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리요원 모두가 생글생글 친절해서 좋다. 수험장 본부팀이 괜히 인상이나 구기면 피차간에 기분이 잡치는 것인데.
某공립학교 수능감독관 예비소집 때였으니 15년 전의 일이다.
문어 이마 번뜩이는 교감님은 감독관들에게 조목조목 쑤셔대며 인상을 쓰셨다. 입실이 3분 늦었다는 둥 신발 정리가 산만하다는 둥 두렁을 파더니, 끄떡끄떡 조는 스승 하나를 딱 겨누어.
‘전투에서 패배한 지휘관은 용서하지만 경계를 놓치는 지휘관은 사형인 거를 모르시횻!’
완장 티로 제압하려기에 초장부터 기분이 잡쳤지만, ‘참다, 참다, 끝까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교단에는 천태만상의 스승이 있는데, 그중 괜찮은 동료가 있어서.
‘저니와 함께 근무하고 싶다.’
함께 가는 분필밥 동지로 싸-하게 규정하다 보면 느닷없이 명퇴를 신청해서 나를 허탈하게 했고, 더러는.
‘저런 사람이 왜 교직을 택했을까?’
한심하게 혀나 차주던 사람 중 일부는 홀연히 관료가 되면서 카리스마 통솔자로 변신해 착한 스승들을 놀라게 했고, 오래도록 부글부글 끓게 했다.
나중 얘기지만, 그해 다른 시험장보다 점심값 5,000원이 덜 나왔다. 몇몇 감독관 벗들에게 항의하자고 했으나 우물쭈물 발을 빼기에 내가 즉각 전화를 했다.
‘모든 교사에게 즉각 돌려주시오. 여차하면.’
나름대로 별렀었는데, 다음 날 ‘사무 착오였다’는 절절한 사과 편지와 함께 돌려받았다.
10여 년 전 연구부장 시절에 나는.
수능업무 기획 담당자였다. 감독관 명단과 매뉴얼을 작성하고 공문발송, 교실 책상 배치, 각종 도구 점검, 그리고 신새벽 어둠을 뚫고 시험지를 인수하러 교육청까지 택시 질주를 했다. 경찰차를 앞세우고 숙직실에서 새벽밥을 먹던 그때까지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다.
‘수험생들이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한다.’
8시 10분에 시작하나 아주 쬐끔 늦는 것은 봐줄 수밖에 없다. 30분 이후는 완전히 출입금지니, 경찰차나 오토바이로 퀵서비스 상품처럼 배달되던 장면도 삼삼하다. 날씨가 따뜻하면 석유 값도 절약하면서 정신없이 일하는 게 때로는 재미도 있었지만.
듣기평가 직전 스피커 고장이 나서 꼭지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교실마다 라디오를 들여놓긴 했지만 만약 누군가가 라디오 작동을 못하거나(꼭 나 같은) 에러가 생기면 당장 회복 불능의 사태가 터질 수도 있다. 다행히 딱 30초 전에 고쳐졌던 것 같다.
먼저 수험생들에게 핸드폰 제출을 요구한다.
시험장 반입 금지물품은 그 외에도 디카, MP3, 전자사진, 카메라펜, 전자계산기, 라디오 등인데 그중 핸드폰이 가장 위험하다. 휴대가능 물품은 신분증, 수험표, 연필, 흑색 지우개, 수정테이프, 연필심이며, 나머지 모든 물품은 시험 시작 전에 가방에 넣어 시험장 앞으로 제출한다.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면 그럭저럭 진행 중인가 보다. 그래도 조마조마하다.
OMR카드 아랫부분에는 필적확인란이 있다.
‘문제지 표지의 안내 필적 문구를 아래‘필적 확인란’에 정자로 반드시 기재해야 합니다.’라고 쓰는 이유는 혹시 시험이 끝나고 오답 여부 이의제기하는 수험생의 시험지 본인 여부를 감정하기 위함이다. 이번 문장은.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그 아름다운 문장이 순전히 필적 확인용이다. 대학 동기 최인경 선생의 시화전 첫 문단이 ‘저마다/ 산등성이 너머/외등을 타고/ 오는 손님’이란 문장이었던 걸 떠올리며 나 혼자 센티멘탈에 젖어본다. 꽃초롱 위로 외등이 오버랩되면서 첫눈 덮이는 밤풍경이 알싸하게 펼쳐진다. 모든 게 등불 같다. 늦가을 은행잎도 알전구로 반짝이고 비탈길 억새꽃도 네온싸인 군무(群舞)다. 그러니까 촛불 시위가 몸을 당기는 마력이 존재하는 것은 어둠과 불빛의 대비 때문이다.
감독관은 수험생 유의사항 몇 가지를 읽어준다.
·답란의 수정을 원할 경우에는 수정테이프를 사용하여 완전하게 수정하여야 합니다. 불완전한 수정처리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은 수험생에게 있습니다.
·수정테이프는 감독관이 소지하고 있으며 답란 수정 후 수정테이프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눌러주십시오.
·답안지 교체를 원할 경우 교체 가능합니다.
세 번째 ‘답안지 교체’ 운운의 속뜻은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다. 수험생이 종료 직전 답안지 교체를 요구할 때 감독관이 먼저 ‘시간이 부족하므로 바꿔줄 수 없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답안지의 완성 유무는 수험생 책임이니까 일단 교체해주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위험한 소리다. 마킹 도중 종료 벨이 울리면 엄청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솔직히 감독관으로서는 답안지 개수가 중요하지만 수험생에겐 인생이 걸린 문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5분전에.
‘여러분 마킹 다시 확인하세요.’
이 말을 덧붙인다. 종료 2분 전. 누군가 손을 번쩍 들기에 깜짝 놀라 다가갔더니 오히려 어리둥절 쳐다본다, 하품 한 거란다.
웅진중에서 수험생 관리실 요원으로 일할 때이니 이십 년 전 일이다.
종료 벨이 울렸는데 웬 여학생이 감독관을 따라와 울며불며 항의하는 것이다.
‘쓰고 있는 답안지를 빼앗아갈 수 있어욧?’
‘종이 났잖앗.’
멸치 감독관의 안경 속으로 시베리아 찬 바람이 쌩- 몰아친다.
‘어떻게 빼앗아 가느냐구요. 쓰고 있는데.’
‘종이 울리면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일체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어.’
시험장 본부장인 학교장 역시 어쩔 수 없다며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 돌린다. 옆에 있던 유지남 선생이.
‘교장님 입회 하에 쓰게 해주시죠. 어차피 답안지에 빨간 볼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으니 커닝은 아닙니다. 시험장 본부 합의 하에 결단을 내리면 이상이 없습니다.’
교장님의 마음이 유선생의 판단 쪽으로 갸웃갸웃 돌아서려는 순간, 40대 팬더교사님이.
‘저는 반대입니다. 저 학생이 답안지를 쓰게 되면 그 때문에 이 나라의 다른 수험생 하나가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길을 막는 것이다. 1초가 급한 ‘발등의 불’앞에서 공평의 원칙을 들먹이며 찬반토론을 벌이게 될 판이다. 그때 50대 해마교사가.
‘얘야, 이리 와라. 너는 나하고 얘기하자.’
생머리 수험생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구원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표정으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결론은.
‘남은 시간 열심히 임해서 실수를 최대한 만회하라’
400점 만점에 100점이 날아갔는데 나머지 점수를 잘 채우라는 얘기만 간곡하게 되풀이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미는 그렇게 한 시간짜리 답안지를 통째로 버렸다.
내 피붙이 수험생은 딱 한 문제 실수로 절망의 나락에 빠지기도 했는데.
‘x’위 3배를 구하라‘인데 ‘x의 값을 구하라’인 줄 알고 단박에 마킹했다나. 그 한 문제가 빗나가는 바람에 대학 레벨을 한 단계 낮췄으니, 그게 운명이다. 그러니까 ‘400점 중에서 100점을 잘라내고 나머지 시험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논리는 관념적 착각이거나 거짓이다.
내용의 차이가 있겠지만, 某수험장 남학생의 경우, 완성을 못했는데 답안지를 걷어가자 옥신각신 하다가 울컥 자기의 답안지를 구겨버렸다. 파손된 OMR 카드는 사유서를 받아야 하는데 그가 절대 응할 턱이 없으므로 아주 난처해지는 것이다. 상부기관으로의 보고 자체가 점입가경으로 골치 아파지니까 어쩔 수 없이 답안지가 교체되었다나, 어쨌다나, 이건 순전히 목로주점에서 들은 얘기다.
또 있다. 종이 울리면 손을 머리에 얹으라는 규칙이 못마땅하다.
그냥 책상 위에서 손만 떼라고 하는 이유는 ‘머리에 손 올려’가 오랏줄 체벌 자세이기 때문이다. 전쟁 포로 소환방법이 그렇고 교도소 죄수들이나 범인 체포현장도 바로 그 자세다.
중2때 수학님은 교단으로 부른 아이에게 손을 올리라고 한 다음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그게 ‘토메이토와 포테이토’에 나오는 ‘선생님의 나쁜 손’)이다. 나도 걸렸다.
“손 올렷.”
나는 몸을 비틀었지만 사타구니로 침범하는 ‘선생님의 나쁜 손’을 피하진 못했다. 그의 손이 문어 흡발로 더듬을 때 이웃 학교 수송공고 담벼락으로 금빛 꾀꼬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 탄성을 지르자, 선생님이.
“재밌냐?”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자지러지는 순간 나는 자살의 충동을 느꼈었다.
1교시 부감독은 내 딸처럼 젊고 푸릇푸릇한 교사다.
나도 팔팔올림픽 이전에는 숭어처럼 팔팔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나, 쇠한 몸피를 익숙하게 달고 다닌다. 어쨌든 보리이삭 초임교사와의 동행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다. 교실의 수험생들도 새싹처럼 조심조심 움직인다. 한 배를 탄 동반자를 낱낱이 사랑해야 한다.
80년대 필리핀 마르코스 군부정권 때였던가. 민주화 운동가이자 대통령 유망주였던 니노이 아키노(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남편,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의 아버지) 암살 직후다. 마르코스 21년 독재와 싸우기 위해 혁명가들이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들던 중, 그가 암살을 당했다. 그 후 시민들이 더욱 뜨겁게 광장에 모였고, 그 자리로 진압 탱크가 굉음을 터치며 돌진하는 것이다. 대학생과 노동자, 승려와 수녀, 시민과 짚시풍들이 탱크 정면에 엎드린다.
크르르르르르.
절을 하듯 납작 엎드려서 탱크소리에 맞서는 것이다. 저 쇠붙이 괴물이 몸을 덮는 순간 모두 죽는다. 아, 탱크가 멈추니 일단은 살았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던 탱크가 철컹철컹 돌진하니 저항하는 시민들 두 다시 오징어포가 될 것이다. 수녀는 옆자리 스크럼 팔짱 사내가 잘 생긴 총각이길 바라면서 죽음을 기다린다.
그 순간 최루탄이 터진다. 인간 사슬이 풀린 수녀는 문득 자기만의 팔짱 사내가 ‘미남이었을까’를 설레설레 지우며 대열 속으로 흩어진다. 진한 인연이 그렇게 잊혀지듯.
그렇듯 우리도 필연의 스크린들을 놓치곤 한다.
87년 6월 항쟁 서울역 광장 시위 때, 경찰들에게 ‘최루탄 쏘지 마’ 절규하며 웃통 벗고 달려오던 장발의 사내 필름도 떠오른다. 베트남 전쟁 때 포탄을 피해 울부짖으며 도망치던 알몸의 소녀 사진도 그렇다. 그 망각 속에서 아픔을 잊고 사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답안지에 낙서를 하건 불필요한 표기를 하였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답안지를 깨끗한 상태로 제출해야 합니다.’
이건 옛날 수기 채점 시절에 수험생과 채점관 사이의 면식 암호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 문장을 보며 가슴 아팠던 기억도 이제 까마득하다.
엄지고 입시 때니 40여년 전.
내 점수는 커트라인에서 20점 가량 높았으므로 불합격을 예상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아슬아슬한 경쟁을 피하려고 일찌감치 몸을 낮췄고 또 장학생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답안지에 낙서를 한 것이다. 먼저 본 시험점수를 계산했고 얼떨결에 고바우 그림도 하나 그렸고 ……답안지를 자석에 끌리듯 어물어물 제출했다.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고 오래도록 절망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나는 답안지 낙서 여부를 더욱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도장을 찍는다.
2교시 수학은 100분이다. 예전엔 네 과목짜리 사회·과학은 120분도 했으므로 그까이꺼는 문제가 안 된다. 나는 80분과 100분짜리로 비교적 긴 시간에 걸렸으나 노교사답게 불평 없이 받아들일 줄 안다. 1교시 감독을 끝낸 다른 스승들이
‘부럽습니다. 3교시를 쉬잖아요. 난 겨우 60분짜리를 쉬는데.’
즈이끼리 수런대지만 나는 ‘엎어치나 메치나 세월이 가게 되어있다’며 초탈한 척한다.
나의 학창 시절은 수학과의 전쟁이었다.
산수 문제까지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곱하고 나누는 게 복잡해진 질풍노도 이후 풍비박산 났다. 예전 4지선다형 시절에, 25%는 그냥 먹는 거였는데 나는 수학시험 25문항 중 아홉 개만 맞췄다. 기껏 두세 문제를 더 맞히기 위해서 3년 내내 학원과 도서관에 다니고 ‘결의와 자학’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갔다. 당연히 물리와 화학도 젬병이므로 오로지 사회, 국사, 생물과목만 좔좔 외우고 다녔다.
3교시 영어 듣기 평가 직후 앗, 방귀를 뀌었다.
소리 나지 않게 엉덩이를 오므렸더니 냄새가 더 지독하다. 이 냄새가 물수제비처럼 퍼져 방귀 최루탄으로 변신한다면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터질 것이다. 여교사들의 화장품 냄새까지 인터넷에 오르는 판인데 감히 구린내를 풍기다니…… 다행히 게시판 옆 자리 두 수험생은 시험지를 받자마자 숙면에 들어가는 바람에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머지라도 차단하기 위해서 입술 쫘악 벌려 흡흡 빨아 마시니 목구멍이 바싹 마르면서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애를 태우는 나 혼자만 바늘방석일 뿐 아무도 반응이 없다.
어려운 문제가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일까? 수험생의 절반 이상이 초탈 도인처럼 가부좌 수면에 빠지니 감독관의 부담이 대폭 죽어든다. 기실 감독관 역시 3교시 때부터 맛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이크에서 ‘타종 없이 시작합니다.’가 ‘사정없이 시작합니다.’로 들리는 바람에 나 혼자 ‘인정사정없이’로 바꿨다가 ‘피도 눈물도 없이’로 변신시키는 언어유희에 빠지기도 했다. 저물녘에는 ‘감독관님’이란 호칭이 ‘목욕관님’으로 들려서 나 혼자 키득대었다. 지치니까 맛이 간다.
다섯 시 조금 넘었는데 날이 저무니 그게 동절기가 오는 신호다.
‘여러분, 답안지 확인 방송이 끝난 후에야 귀가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모두 양떼처럼 다소곳이 길들여진 모습이다. 그러나 게임아웃 직후 봇물처럼 빠져나가며 왁자지껄 당장 비늘 털기로 변신하니 아, 틈실한 젊음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오늘 밤 끼리끼리 일탈을 꿈꾸거나 끼리끼리 답안지 맞추면서 희비를 연출하리라.
이제 나는 감독관 일당을 받아서 두부부침에 겉저리 김치를 찢어서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다. 신새벽 부뚜막에 엎드려 동치미 국물로 시린 속 달래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다. 배추뿌리 뽑아낸 자리로 억새풀 하얗게 흩날리며 초겨울로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