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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이미지와 시적 연계성(連繫性)
-김동명과 심연수의 시의미의 비교
엄창섭(관동대명예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고문)
1. 글머리 : 물의 상징성과 이미지
논제의 모두(冒頭)에서 생명의 본원으로 물성(水性)의 대의(大義)에 의해 합일된 바다(海)와 연관성을 지닌 우리의 해양문학(Sea Literature)은, 피상적 이해에 머무르고 있을 뿐, 체계적인 이론은 열악한 현상이다. 우리의 지정학적 여건과 해양환경은 바다·해산물․섬․어촌․해변․어부 등 다양한 소재와 결부되어 있기에,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해양문학의 역할을 ‘씌어 짐에서 읽혀짐, 그리고 생활의 합일과 생산성’으로 활용케 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신작업에 해당한다. 본고에서 물의 총합인 바다와 인간의 감성이 투영된 해양문학에 있어 바다 자체의 관조(觀照)는 하나의 요건이다. 생명의 원천으로 상생과 끌어안음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일체의 대상물은, 바다라는 무대에 내포된다. 일차적으로나마 <물의 이미지와 시적 연계성>이라는 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 몸담았던 동향(同鄕) 출신인 김동명과 심연수의 시의미를 분할·통합하여 검토하는 것은 실로 유의미한 연구에 해당할 것이다.
국문학사에서 최고(最古)의 시가로 죽음에 관한 비장감 넘친 노래는 <公無渡河歌>이다. 이처럼 한국시문학의 장은 물과 깊은 연관성을 지닐 뿐더러, 한자의 바다(海)처럼 불어(佛語)의 어원도 어머니(mère)와 연계한다. 원천적으로 인간의 삶은 물의 흐름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 까닭에, 물의 예술적 미감은 종교적 신비성이나 유유히 흘러 바다로 이르는 ‘大義’라는 도덕적 교훈성은, 마침내 무위자연을 주장한 노자(老子)가『道德經』(제8장)에서 ‘물의 칠덕(七德)을 “겸손, 지혜, 포용력, 융통성, 인내와 끈기, 용기, 대의”로 ‘물의 도(道)’를 천명한 것과 결코 무관치는 아니할 것이다. 일찍이 2세기 후반에 쓰여 진 고조선의 <公無渡河歌>의 “임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다/물에 휘말려 돌아가셨으니/임은 어쩌란 말이오.”라는 배경설화는 진나라 최표의『古今注』에 기술되어 있다. 신화의 원형적 관점에서 물의 상징성은 탄생이나 새로운 생명의 본질로 해석되며, 죽어가는 대상에게는 생명을, 살아있는 것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위의 노래에서도 예외 없이 물의 이미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논리’로 점철(點綴)되고 있다.
비록 본고에서 농암의 <漁夫歌>나 고산의 <漁父四時詞> 같이 빛나는 시문을 논하지 않더라도, 한국현대시사에서 신체시의 형식을 통해 바다를 형상화한 육당의 <海에게서 少年에게>(1908년)는 문학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또한 우리시조문학의 변천사를 포괄적으로 기술할 수 없지만, 1927년의 국민문학과 프로문학의 대립 관계의 속에서 시조부흥운동에 대한 위당의 논의는 시기적절하다. 특히 새 형식의 양장시조로 국민문학파의 일인자로서 그 역할을 담당한 노산의 <가고파>는, 미적주권의 확립 차원에서 망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정한을 주제로 하여 전통적인 시조형식을 현대적으로 변용시킨 작품의 보기이다.
옛 동무 노젖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꺼이나/맛 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이은상의 <가고파>에서
아울러 한국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 정지용의 ‘바다’를 제목으로 한 9편과 바다를 제재로 하여 이미지를 형상화한 20편의 시편도 유념하여야 하지만, "파초와 호수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 1900-1968)과 민족 시인으로 새롭게 조명되는 청송(靑松) 심연수(沈連洙, 1918-1945)의 시편을 중점적으로 “묵시적으로 말하면 물은 한 인간의 체내를 혈액이 순환하듯 우주의 체내를 순환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확인시키는 정신작업의 일례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체류한 김동명과 북간도에 몸담았던 심연수가 시적 질료로 즐겨 다룬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의미의 분할·통합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새삼스럽게 ‘시의 기원’에 관해 언급할 필요는 없으나, 원시종합예술(Ballad-Dance)에서 분화·발전되어 오늘에 이른 현대시는 ‘①감정 작용의 상극(모순과 갈등), ②모순성과 갈등성(심리 특성의 반영), ③학문성내지 박학성(복잡성), ④인식의 즉물성과 참신성(감정과 관념 배제)’을 그 특성으로 하고 있다. 근간에 민족 시인으로 새롭게 조명되는 심연수의 시편에서 확인되어지는 것은, 시적 대상과 소재가 중국의 간도지방과 유학시절 몸담았던 일본이 외형적 공간으로 다루어졌으나, 시의식의 실체는 한국적인 자연으로 응축된다. 특정한 시인의 시 의식에 수용된 시간과 공간은, 그 시를 가능하게 한 근본인자(因子)이기에, 모든 외적 직관작용의 근저(根底)에 결부되는 필연적 표징이 공간이라는 점은 결코 간과치 말아야 한다.
2. 물의 이미지와 시인의 시적양상
1) ‘호수와 파초의 시인’ 초허(超虛)
원형상징으로서의 ‘물’은 정화기능과 생명을 지속시키는 복합적 속성에서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는 까닭에, 물은 순결과 새 생명을 상징하며, 기독교의 세례의식에서는 원죄를 정화시키는 행위와 영적으로의 재생인 부활을 뜻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이미지와 상징』제5장 '상징체계와 역사'에서 물의 상징성을 원천으로 모든 가능성의 저장소이고, 모든 형태에 선행하며 창조를 받쳐주는 재생의 함축 의미‘로 해석하였으나, 물의 속성은 형태를 해체, 소멸시키고, 정화와 재생의 기능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뿐더러 속죄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호수와 파초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초허(超虛)는 1923년「개벽」(통권40호)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으로 데뷔했다. 그 이후 6권의 시집을 간행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중의 일인으로 시적정조와 간결한 언어미가 담긴 일련의 시작품으로 우리 현대시사를 장식했다. 불편부당한 권력이 지식사회를 억압하던 시간대에 지사적 풍모로 대처하며, 강직한 필설로 한국 정치평론의 지평을 열었다. 그의 시집은「나의 거문고」(1930)를 포함해서,「파초」(1938),「38선」(1947),「하늘」(1948)이 있으며, 다행스럽게도 광복 전후의 시간대에 시적형상화에 몰두하였다. 안타깝게도 1920년대에서 1960년대 초기까지 이 땅의 어느 시인보다 폭넓고 다양하게 활약하였음에도 그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흡하게 된 연유는 그간의 평자들이 자연적, 목가적, 전원적인 시인으로 속단함으로써 더 이상의 논의를 확대시킬 여지를 왜곡한 까닭이다. 이 장에서 그의 담백한 시격과 시 의식을 포괄적으로나마 조망하기 위해 시의 전반에 수용된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초허의 시세계를 검증하기로 한다.
수필 <掬雛記>에서 “내 記憶은 물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방안에 앉아서도 그윽히 들려오는 물소리! 외할머니에게 다리를 주물리우며 듣기에 더욱 즐거웁던 물소리! 이건 내가 裟婆에 와서 처음 들어본 자연의 音樂이었을지도 모른다.”며 그 자신의 삶을 회고하였듯 시의식의 발아(發芽)는 이처럼 물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초기시편 경우도 예외 없이 비유적 기법과 주제, 의식면에서의 한계성을 외면할 수는 없으나 이 시기의 여타 시인들의 시적수준에 견주어 그가 의도한 다양한 시편들은 차별적인 비유법과 시 의식을 심화시킨 일련의 공과는 반드시 재평가되어 입증되어야 한다. 그는 초기의 시작활동부터 다양한 비유를 시적기법으로 적용하였으며, 병렬구성에 의한 확장 메타, 의인법을 비교적 다양하게 구사하며 시 창작에 원형적인 방법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시로 형상화한 행위는 높이 평가하여도 결코 지나치지 아니하다. 초허의 중기 시에서 확인되는 비유적 기법의 세련미는 주제의식의 심화와 함께 시적 질료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시의식의 심화가 상상력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킨 놀라운 정신적 산물이다. 이 같은 시적변주(詩的變奏)는 시작업의 초창기부터 그 자신이 불멸의 노래로 주의 집중한 비유구성 방법에 의식적으로 열정을 쏟아온 결과물이다. 이처럼 그는 시력(詩歷)을 달리할 때마다 시의 주제 변천을 꾀하면서도 민족의 정한(情恨)을 시의 바탕에 유지하여 왔다. 격랑(激浪)의 한 생애를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기질적으로 문단이라는 울타리 속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문단중심으로 기록되고 평가받는 우리의 문학풍토에서 안타깝게도 ‘문단 밖의 浪人’으로 취급되어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우리 시문학사에 있어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 민족적 울분을 역사의 정체성으로 정화(淨化)시킨 존재감 있는 민족시인, 오로지 순결하고 맑은 영혼으로 기독교 신앙을 올곧게 종교 시인으로 명증되어야 한다. <芭蕉>가 발표된 1930년대, 초허 시의 주제는 '절망적인 시대상황과 인생의 무상함, 그리고 역사적 고뇌를 극복하려는 인생관'으로 제시된다.『芭蕉』는 그의 시력(詩歷)에 있어 전성기를 대변하는 시집에 해당하며, 그의 시정(詩情)은 <내 마음은>에서 '호수요, 촛불이며 나그네요, 또 낙엽이라'고 상기시킴으로 하여 당시 상황을 은유로 처리하고 있다. '바람이 불면 나그네 같이 떠나리라'고 결심하는 마음은 바로 조국의 슬픈 운명에 대한 시인의 체념이다. 비교적 그의 초기시편은 떠남의 미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랑(流浪)과 죽음은 불행했던 유년의 기억에서 연유한 암담한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뜻하기에, 그에게 있어 세계와 사물은 일정한 패턴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전 곧 이름 지을 수 없는 불확실성, 그 자체 양식으로의 표징이다.
보편적으로 초허의 등단 시편으로 보들레르에게 바친 헌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에서 “나는 님의 바다 같은 한숨에/물고기같이 잠겨 버리겠나이다.”에서와 같이 생명의 ‘바다’는 물고기가 서식하는 공간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너는 동산같이 그윽하다./너는 대양(大洋)같이 뛰논다./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린다.(우리말)”에서나 “내 낮은 천정으로 하여금 족히 한 작은 하늘이 되게 하고 또 흐르는 물결의 유유한 음률이 있어 내 하염없는 번뇌의 지푸라기를 띄워 주데 그려.(손님)”에서, 또 “물결이 꼬이거던, 그러나 그대 싫거던/우리는 저 호수(湖水)가에 앉어 발끝만 잠급시다 그려.(湖水)”, “나의 가슴을 조그마한 항만(港灣)에 비길 수 있다면/굽이굽이 들이닫는 물결은//이국(異國)의 꿈을 싣고 오는 나의 나그네,/나의 마음은 너의 품속에서 해초(海草)같이 일렁거린다.(바다)” 등의 여러 시편에서 유념할 바지만, 초허 시에 수용된 물의 특성은 ‘동산같이 그윽하거나 미풍같이 소곤거리거나 지푸라기를 띄워주는 유유한 흐름, 또는 해초같이 일렁거리’는 유연함으로 곁들여질 뿐더러 상생의 공간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아득히 감람(紺藍) 물결 위에 뜬/한 포기 수련화(睡蓮花)//...생략.../저 푸른 물결 위엔 어느새 찬란한 불길이 오른다./비빈 눈으로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황홀한 광경이냐!(진주만)”에서 확인되어지듯이 ‘한 포기 수련화’에 견주어진 진주만은 1951년 12월 8일 일본제국주의가 국제 법을 거슬린 무차별 침공으로 ‘폭음, 불기둥에 엉키는 분노’로 이행되어 ‘황홀한 광경이냐!’는 역설은 푸른 물결마저 끝내 광란의 격랑으로 격변케 하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적 시편인 <芭蕉>에서 보여주는 간결성과 다양한 이미지는 초허의 시세계에 관한 내면의식의 복합성을 의미한다.
소낙비를 그리는 너의 情熱의 女人/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芭蕉>에서
위의 시편에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견고한 묘사에 치우치지 않고 이미지와 관념의 연쇄적 흐름에 의존하는, 무의 존재론이라는 시인의 잠언적 시각의 중요성이다. 조국상실의 비애와 불행을 식물인 파초에 견주며 시인의 감정이입을 시도한 이 시는 표현상의 묘미로 시인이 바라는 조국이 남성적이며 절대적이지만, 파초를 여성으로 의인화하여 시인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기탁한 점은 공감이 간다. 이철범(李哲範)이 '소낙비를 그리는① 너는 정열의 여인② 나는 샘물을 길어① 네 발등에 붓는다②'의 구절 ① ② ① ②에 담긴 언어구사의 기교, 유익한 뉘앙스, 이미지 등에 관해 언급한 바 있지만, 초허는 <芭蕉>에서 ‘갈증을 해소시키는 소낙비, 샘물의 역할’을 통하여 어디까지나 한편의 시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닌 "영원한 진실 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라는 언어예술임을 이처럼 실증하고 있다. <내 마음은>(朝光, 1937년 6월호)은 시적 미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인범, 김천애에 의해 가곡으로 불리어지기도 한 이 시는 '내 마음'이라는 추상적, 정신적인 원관념이 '湖水/촛불/나그네/落葉'과 같은 구상적, 관념적인 보조관념으로 치환됨으로써 전혀 다른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湖水이기 때문에 노를 젓고, 그대의 뱃전에 부딪칠 수 있고, 촛불이기 때문에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를 수 있고, 나그네이기 때문에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날을 샐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보편적으로 다루어지고 발견되는 시적 매개물이지만, 물의 이미지는 바다와 산과 마찬가지로 시인에게 있어 영원한 향수의 모태로 변형되기에 그는 ‘바다, 강, 냇물, 호수, 샘, 비, 조수’ 등의 매개물을 다양하게 형상화하였다.
우리 현대시문학사에 있어 다소의 여지가 없는 바는 아니나, 그간에 자연친화적인 색채가 강한 초허에게 있어, 그 자신이 “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노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그대 뱃전에 부서지리다.(내 마음은)”에서 시적으로 발아시킨 물이라는 매개물과의 상호교감이다. 모름지기 대상과의 내밀한 합일을 전제로 한 그리움을 정조로 한 이별의 편린(片鱗)인 까닭에 혹자의 지적처럼 단순한 사랑의 호소가 아닌 시적 대상과의 만남을 지향한 절박한 열망이다. 그 자신은 <내 마음은>에서 물의 이미지를 호수와 결부지어 ‘①대상의 기다림 ②대상과의 합일 ③떠남의 미학’의 통로로 선명하게 이행시켜 보편적 경험으로 이해시키고 있다. 또 다른 그의 시편에서 “네 가슴 속에는 푸른 하늘이 깔려 있고(해양송가)”에서도 명증되는 것은 놀랍게도 물의 총합인 바다를 하늘(우주)조차 포용하는 거대한 실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2) 물의 층위와 심연수 시의 다양성
“작가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줄 모르지만 자기 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여야 한다.”라는 지적은 성숙된 작가의 정신적 표상에 결부된 것으로 의식할 타당성이 따른다. 일제강점기를 꽃다운 나이로 마감한 민족시인 심연수가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한 시점은 1940년이다. 당시 한국문학의 정황은 1925년부터 프로문학이 점차 그 세력으로 확장하게 되자, 계급주의에 대항하는 민족문학파는 문학 본래의 순수성을 지향하며 민족문학의 정통으로서 시조를 민족문학운동의 구체적인 수단으로 표방하였다. 시조부흥운동(론)은 시조혁신론으로 전개되었고 혁신시조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된 경향으로 형성되었다. 가람, 노산, 조운 등에 의하여 1930년대 말까지 전개되었으며, 심연수의 시조창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이은상이다. 1939년 조선어말살정책을 수립하여 창씨개명(1940), 『문장』폐간(1941), 정신대 근무령 공포(1944) 등의 강압정책은 친일문학을 양산하였다. 민족의 혼을 말살한 시간대(1940년-1945년)에 심연수 시인이 우리글로 전통적 민족시가인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사실은 결코 1940년대가 우리문학의 암흑기가 될 수 없음을 입증해준 것이다.
이 시기에 연시조 형식으로 씌어 진 64편에 이르는 그의 시조작품들은 자유시 194편의 비해 적지 않은 양으로 약 33%에 해당한다. 대부분이 여행시조에 속하지만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감정전달에 안성맞춤일 뿐더러, 특이하게도 물(호수, 강, 바다)과 연계된 시조들이어서 새삼 관심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심연수 시인의 심상의 경우로 단정 짓지 아니하더라도, “나의 고향 앞내에/외쪽 널다리/혼자서 건너기는/너무 외로워/님하고 달밤이면/건너려 하오(고향)”에서 언제가 이름 모를 항구에 닻을 내릴 ‘고향의 정취’로 물의 이미지가 확장되어 마침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정조(情操)로 변주되고 있음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일단, 그의 시조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물을 질료로 즐겨 다루고 있는 시적 양상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1) 초장에서
頭澫江 네 아니 몇 萬年 흘럿대니(國境의 하로밤)//푸른 물 뛰고 치는 東海岸 모래불에(東海)//絶壁에 그 웬 물이 저렇게 흘러나와(飛鳳瀑)//물이 되려면은 이 江山 물이 되고(萬瀑洞)//漢陽의 남쪽으로 안고서 흘럿으니(漢江)//못 속에 樓가 빛어 물속에 잠겻으니(慶會樓)//檀君의 오신 길에 물 흘러 이 江되니(大洞江)//松花江 흘러간다 오호쓰키 넓은 바다(松花江)//푸른 바다 물결 자지색 바닷빛(바닷가에서)//鏡湖에 잠겨진지 몇 十年 되엿던가(兄弟岩)//白波야 東海바다 힌 물결치는 바다(海邊一日)//
일반적으로 64편의 시조 중에 57편은, 3․4․3(4)․4의 시조의 기본유형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물이 되려면은 이 강산(江山) 물이 되고(만폭동)”, “푸른 바다 물결 자지색 바닷빛(바닷가에서)”에서 초장 1구를 두자로 사용하였다. “계곡(溪谷)의 맑은 언덕에 고히 선 이 절에(마하연)”처럼 초장 2구를 5자를 사용하거나 운율이 단조롭지 않고, 자수율에서 융통성 있는 표현으로 ‘물의 흐름과 연계성’을 지닌 이 정형 시편들에서, 물의 시적 형상화는 자연적이고도 객관적인 현상으로 ‘물의 빛깔, 흐르고 물결치며, 시내(川)와 강을 형성하다 바다에 이르는 양감(量感)의 느낌인 서정의 거리’로 치환되고 있다.
(2) 중장에서
물이 흘으는 것 구슬로 뵈여진다(玉流河)//나는 九龍淵에 나리는 물이 제일이오(九龍淵)//東海의 고래님이 뿜는 물 보옵거든(毘盧峰)//山 맑고 물 맑은데 五百年 누리섯지(松都)//물소리 들리는 건 孟子의 言聲이라(黃海)//검은 땅 간도의 품을 흐르는 生命水야(追憶의 海蘭江)//
중장에서 59편이 3․4․3(4)․4의 시조의 기본유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나는 구룡연(九龍淵)에 나리는 물이 제일이오(구룡연)”에서 중장 4구를 6자로 처리하였다. “물이 흘으는 것 구슬로 뵈여진다(옥류하)” 등 초장과 같이 운율이 다양하고 자수율의 사용에 있어 자유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江을 건너든이 울더냐 웃더냐 응(국경의 하로밤)”에서 끝자를 “응”으로 처리하여 시조가 종결되는 듯한 여운을 주면서도 종장으로 연결되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으나, 그 자신은 담백하게 ‘폭포와 파도의 자연적 현상’과 ‘낮은 곳으로 흐르고, 떨어지는 물의 소리와 경관, 때로는 격랑을 일으키는 물의 생리’를 이렇게 단순히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3) 종장에서
고운 산 맑은 물은 어서 오소 부르는 듯(東海 北部線 車안에서물 떨어 무지개 서니 이 아니 곱은가.(九龍淵)//네 마음 흐린 곧을 그 물에 찾어 던저라.(面鏡臺)//出帆의 汽笛은 어디 갈 배이련고(大連港市)//孔孟子 난 곧이 이 바다 옆이랫다오(黃海)//물새의 安息處가 된 돌무덕 새바위라(새바위)//
일제의 침탈로 불행하게도 조국 한반도에 몸담지 못하여 모국의 정체성을 상실한 환경에서 이국문화와 접한 심연수 시인의 정감은, 못내 국내의 토착적 시문학 전통과는 상이한 향수, 정한, 과거 회귀적 감수성을 표출하는 이질적 매개로 작용한다. 아울러 시창작의 변모과정 또한 ‘자유시→시조→자유시’로 이행되었다. 그나마 시조 혁신론의 영향으로 정형화된 시조에서 탈피하였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운명적으로 새로운 사회문화의 토양을 시적 대상물로 수용하였다. 물과 연계선상에서 창작되어진 심연수의 기행시초들은 1940년 우리문학 암흑기의 생산물임을 주목할 때, 그 자신이 체류한 공간이 간도지역이지만 그에 의해 시조문학의 맥이 이어져 왔음은 시사적의미가 크다.
한편, 강릉에서 출생하여 러시아, 중국, 일본 등지에서 27세의 생을 마감한 심연수 시인의 경우, ‘체험+형상’의 틀에서 이탈하지 않은 그의 시적 이미지는 선이 굵고 남성적, 대륙적인 까닭에, 다소 여성적 분위기인 윤동주보다 기질적으로 웅혼하여 이육사 의 성향과 견주어지는 점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비교적 일본유학기인 1943년경 창작된 시편에는 민족수난의 고발과 고난의 극복, 그리고 그의 시적 특성으로 작품의 스케일이 세계나 범우주적인 공간으로 확장되어 시적 유연성과 함께 감상적인 초기 시와는 상이하게 점차로 시적 공간이 거창(巨創)·변주(變奏)된 현상인 점이다. 이에 대한 시적 변명으로 범우주적 공간을 활용한 동경유학시절 당시 그 자신의 <인류의 노래, 1941>, <세기의 노래, 1942>, <우주의 노래, 1942>, <지구의 노래, 1943> 등은 거창한 스케일에 장중하고 호흡인 긴 시편들은 중국 용정에 몸담았던 시편들과는 양상이 상이하다.
거리엔 흰옷이 조선옷 흰빛이요/얼골은 조선 얼골 모습도 조선 모습/눈을 귀를 다 뜨고 듣고 보고 하엿쇠다.//
인용한 시편 <서울의 밤>에서 그 자신이 눈과 귀를 뜨고 열고 절박한 심정으로 확인한 것은 민족혼의 상징인 조선의 옷과 조선의 얼굴이다. 심연수 시인의 시편을 형성하는 그리움의 시적 대상으로서의 고향은 한국적인 자연으로 결부된다. 국문학 장르상 민족혼의 표징인 시조에 담아 고아한 서정을 <새바위>, <바닷가에서>, <鏡浦臺>, <옛터를 지내면서>, <東海> 등에서 꽃 피운 심연수 시인의 경우, 절제된 정감이 평상심을 상실하고 격분과 저항 심리로 표출시킨 일종의 양상들은, 단순한 피해망상이 아니라 감정의 구속을 원치 않는 강한 성품과 피가 뜨거운 감성의 소유자인 결과이다.
鏡湖에 비친 臺는 龍宮인 듯 어리우고/丹靑한 그 들보에 第一江山 누구 筆跡/낡어 진 額面에 다가 남긴 것은 누구의 말//
-<鏡浦臺>에서
어릴적 놀던 시내 방축이 놀어젓고/그많던 물조차 인제는 말러젓으니/옛터에 남긴 기억이 더 히미할세라.//
-<옛터를 지내면서>에서
<紀行詩抄篇>의 대다수 시편들은 우리 시조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뿐더러 내용면에서도 슬픔과 기쁨을 교차시켜 날줄과 씨줄로 섬세하게 얽어 짠 비단 천과 같은 특징이 나타나 있다. 그의 초기 시편들은 여성적 나약함이 유연성을 지니는 시적 특성으로 드러나지만, 대상의 지형지물(地形地物)은 한국적인 자연이 시적대상이며 공간으로 그리움의 총체적 드러남이다. 아울러 물을 질료로 하여 시적으로 형상화 시킨 심연수 시인의 <해협>, <선취>, <갈매기>, <고향>, <바다>, <추억의 해변>, <玄海灘을 건너며> 등에서도 확인되는 바이지만, “오! 바다여/귀에 익은 해조음을/다시 들려주면/맨발로 오리라(추억의 해변)”이나 “비 내리는 외로운 밤/님 사는 바다 저쪽 무한 그리워(기다림)” 또는 “안개 낀 새벽아침/이슬 내린 내기슭을 더듬으며(고독)” 등에서 어떤 수식이나 화려한 장식으로 채색되지 않은 진솔함에 뿌리내린 그의 시편은 짙은 고독과 그리움이 묻어 있다. 이 같은 그의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은 단순한 이성적인 연인이 아닌 절대아(絶對我)인 조국이며, 겨레이다. 긴장감이 완성미를 보이는 그의 후기 시편에서 새로운 질서의 추구·정체성의 확립이 강하게 수용되는 점 또한 유추하면 “부풀어 오른 수평선 너머/...생략.../그 님 가슴에 안기러 가리라.(수평선)”나 “이 하루 비나리는 외로운 봄/님 사는 바다 저쪽 무한 그립다(기다림)”에서 명증되듯 내면의식에는 본원적인 기대와 갈망, 그 세계로 복귀하려는 본향에 대한 회귀의식의 집착에 의해 수용된 ‘물’의 이미지는 ‘합일, 고향회귀’로 응축되어 더없이 빛나고 있다.
3. 마무리-문제의 여지
이상과 같이 선행연구의 일환으로 “물의 총합과 시문학의 연계성-김동명과 심연수의 시의미의 비교”를 고찰해 보았다. 문제의 여지로 초허는 우리시문학사에서 견고한 성채(城砦)와 같은 존재임에도 그에 관한 연구가 심층적으로 수행되지 않았다. 그 같은 상황에서 시세계의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 동시대, 동향이지만, 거처한 공간과 성장한 문화의 토양이 상이한 심연수 시인과 비교문학적 측면에서 "물'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 시 의식의 양상을 논의해 보았다. 초허에게 있어 시적 대상으로의 '물'은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며, 이 상상력은 다양한 이미지의 전개에 해당한다. 물은 시적자아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적 대상물로서, 그의 시편에 차용된 물의 이미지는 '힘의 집합, 교감의 공간, 시간의 매체, 그리움’ 등으로 폭넓게 수용되었으나, ‘떠남의 시학’과의 필연성은 거부할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 견주어 심연수의 다량의 시조와 시편에서 '물'의 이미지는 대조적으로 조국에 대한 그리움에 잇닿아 있는 미감 속에서 순수서정의 시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시편에서 한 사람의 충직한 독자로서의 충격이라면, 시대의 아픔을 상실하지 않고 굳건히 견디며 <소년아 봄은 오려니>에서 제시한 조국 광복의 꿈과 미래의 희망을 종교처럼 확신한 놀라움이다.
이와 같이 초허와 심연수가 그리워하며 즐겨 응시한 그 하늘과 바다라는 공간이 공습경보가 울리고 민족의 혼인 조선어가 말살된 암울한 시기였음은 감안할 바다. 차지에 시간대를 뛰어넘어, 전봉건에 의해 “바다 시의 탄생”으로 평가받으며 데뷔하였고, 생존 시에 본격적으로 “바다는 삶의 현장, 그 자체”로 주목받은 선장 출신인 김성식의 『김성식 시선집』(고요아침, 2007)은 해양문학의 장르 중 시에 관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이 합일하는 공간으로서의 바다는 본질적으로 변모해 가는 생명의 처소로 하나의 우주이며, 생명체이다. 여기서 우리의 해양문학은 양적으로 빈약하고 질적으로 수준이 낮으며, 그나마 기존의 작품은 고대사회로부터 어업생활과 관련하여 나타난 경험, 지식, 습관, 기원 등 현존하고 있는 민속 등을 활자화 한 것들로 상상력이 배제된 것이다. 그 같은 연고로 “물의 총합과 시문학의 연계성”을 마무리하면서 국가적으로 해양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중차대한 시간대와 접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름지기 우리현대시사에서 초허와 다소 생경한 존재인 심연수 시인의 시편에서 ‘물에 대한 이미지’를 연계시켜 논의한 의중은 선행연구의 일면임은 주지할 바다. 아울러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연구자의 지론처럼 노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심연수 시인이, 시조문학을 통해 우리 역사의 정체성(Identity)에 열정을 쏟은 그의 정신작업은 높이 평가하여도 결코 지나치지 아니하다. 결론적으로 초허와 심연수 시인이 한국적인 자연(호수, 강, 바다)을 시적대상으로 즐겨 다룬 점은 대륙의 심장에 한·일간의 치열한 정치적 이슈가 되는 현상에서 독도를 정복한 ᄒᆞ슬라 군주 이사부(異斯夫)의 피가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두 시인의 예시를 비교 분할하는 과정에서 시적 우월성이나 비중을 가늠하는 작업은 다소의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의 형상화와 시상의 관념화, 그리고 시적처리와 기법의 문제 등을 검토한 긍정적 시도는, 동시대에 몸담았던 존귀한 두 시인에게 있어 시적 경향과 색채, 그리고 시 의식의 고찰은 일제강점기의 문학사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검증을 거쳐야 할 막중한 조건에 해당하는 관심사이다. 따라서 문화의 지역구심주의의 시간대에 대륙의 심장을 지닌 정신작업의 종사자인 예감의 시인들은 시대소임을 재확인하고, 바다를 조망하는 새로운 인식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시문학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따뜻한 정신기후의 조성과 시적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도전정신을 지속적으로 천착(穿鑿)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엄창섭, 『김동명 문학연구』, (학문사, 1987)
2. ______, 『심연수의 시문학 탐색』, (제이앤씨, 2009)
3. 엄창섭·최종인, 『심연수 문학연구』, (푸른사상, 2006)
4. 황규수, 『심연수 원본대조 시선집』, (한국학술정보(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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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