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正名爲治道之本
李 珥
客曰 當今急務는 只在安民作人而已乎아
손님이 말하기를 현재의 급선무(急先務)는 단지 백성을 편하게 하고 인재(人材)를 진작시키는 데 있는 것입니까?
主人曰 善哉라 問이여 安民作人은 固今世之急務也라 但國是未定하고 正名未盡하니 則雖欲安民作人이나 其道無由라
주인이 말하기를 좋은 질문입니다. 백성을 편하게 하고 인재를 진작시키는 것은 틀림없이 현재의 급선무이다. 그러나 나라의 방침이 정해지지 않고 명분(名分)을 바로잡는 일이 미진(未盡)하니, 비록 백성을 편하게 하고 인재를 진작시키려 해도 방법이 없다.
我朝自開國以來로 正邪消長이 固多反復이나 而至於殄殲士林하여 斬絶國脈은 則莫甚於乙巳之禍라 鄭順朋․尹元衡․李芑․林百齡․許磁 斯五姦者는 罪通于天하니 必殺無赦者也라
우리나라가 개국(開國)한 이래로 옳고 그른 것의 성하고 쇠하는 것이 허다하게 반복되었으나, 사림(士林)을 모조리 죽여 나라의 명맥을 끊어 놓은 것은 을사년의 화가 가장 심했다. 정순붕(鄭順朋)ㆍ윤원형(尹元衡)ㆍ이기(李芑)ㆍ임백령(林百齡)ㆍ허자(許磁) 이 오간(五姦)은 죄가 하늘에 통하였으니, 반드시 죽여 용서할 수 없는 자이다.
文定은 塞淵于深宮之裏하고 明宗은 宅憂(居喪)于幼沖之日하니 外閒是非를 何由灼見乎아 斯五姦者ㅣ 乘時謀利하여 欲以殺戮之酷으로 立其威하고 以籍沒之財로 富其家라 乃造飛語以罔聖聽하고 設嚴刑以取誣服하고 聚羣不逞之徒하여 以張其勢하고 擧一世之忠賢하여 悉陷于叛逆之深坑이라
문정왕후(文定王后)는 깊은 궁중에 계셨고, 명종(明宗)은 어린 나이에 거상(居喪)하셨으니 외간(外間)의 시비를 어찌 분명하게 알 수 있었겠는가? 이런 때에 오간(五姦)들이 기회를 타서 사리(私利)를 꾀하여 참혹한 살육으로 위세를 세우고 적몰한 재물로 그들의 집을 부유하게 하고자 하였다. 이에 유언비어를 만들어 성상의 이목을 속였고, 형벌을 엄하게 하여 억지로 자백을 받아 냈고, 불량배들을 모아서 저희들의 세력을 확장하고, 한 시대의 충현(忠賢)들을 모조리 몰아서 모두 반역의 깊은 함정에 빠뜨렸다.
又恐公議之不可終泯인 則乃作羅織之法하여 若有街談巷議稍分是非者면 則輒加以庇護逆臣之名하여 以參夷之典隨之하고 兇謀旣遂에 錄以衛社之功이라
또 공의(公議)가 끝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나직법(羅織法)을 만들어 항간에서 말을 하여 조금이라도 시비를 가리는 자가 있으면 곧 역적을 비호한다는 명목을 씌워 삼족(三族)을 멸하는 법으로 다스렸고 흉모(凶謀)가 이루어지자 위사 공신(衛社功臣)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嗟呼라 仁廟大漸에 遺敎丁寧하고 中宗嫡嗣ㅣ 只餘一人이니 兄亡弟紹는 允合天人이라 彼五姦者ㅣ 有何寸功가 當是之時하여 百僚戰懼하고 萬姓悲憤하니 宗社之不亡이 實是天幸也라 近來五姦已死하고 公議復發하여 上自公卿으로 下至氓隷히 莫不忼慨扼腕하여 欲食五姦之肉이로되 特主上獨未之知耳라
아, 인묘(仁廟)가 위독하실 때에 유훈(遺訓)이 간곡하셨고 중종의 승통(承統) 아드님은 단지 한 분이 남아 있을 뿐이니, 형이 죽으면 아우가 계승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에 맞는 일이다. 저 오간이란 자들이 거기에 무슨 작은 공로라도 있었단 말인가. 이때를 당하여 모든 관리가 전율(戰慄)하고 모든 백성이 비분(悲憤)하였으니, 종사(宗社)가 망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근래 와서 오간이 이미 죽었고 공의(公議)가 다시 일어나 위로는 공경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강개(慷慨)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오간의 살을 씹고자 하는데 오직 주상만 그것을 모르시는 것이다.
客曰 何以明其主上不知耶아
손님이 말하기를 주상이 모르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主人曰 昔者에 郭公은 善善而不能用하고 惡惡而不能去하여 卒以亡國이라 今我主上은 聰明睿智ㅣ 卓冠百王하시니 若知五姦之罪면 則必赫然一怒하여 誅于旣死온 而至今寂寥라 故로 以爲主上不知耳라
주인이 말하기를 옛날에 곽공(郭公)은 착한 사람을 좋아하였으나 등용하지 못하였고, 악한 자를 미워하였으나 버리지 못하여 결국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주상은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모든 왕보다 뛰어나시니 만약 오간의 죄를 아신다면 반드시 불끈 한 번 진노하여 이미 죽은 자일지라도 주벌(誅罰)을 내리실 것인데 지금까지 잠잠하므로 주상이 모르신다는 것이다.
嗚呼라 羣臣之事主上이 可謂非至誠矣라 當今第一義는 莫大於正名이온 而不告主上은 何耶아 孔子曰 名不正則言不順하고 言不順則事不成하고 事不成則禮樂不興하고 禮樂不興則刑罰不中하고 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이라한데 今者에 忠讜之臣이 斥爲叛逆하고 姦慝之魁가 錄爲功臣하니 名之不正이 莫甚於此라
아, 여러 신하가 임금을 지성으로 섬긴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제일 먼저 해야 할 의리는 정명(正名)보다 더 큰일이 없는데 주상에게 고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일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명분(名分)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진흥되지 못하고 예악이 진흥되지 않으면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고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면 백성이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다.’ 하였는데 지금 충성스러운 신하가 역적으로 배척되고, 간신(姦臣)의 괴수가 공신(功臣)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이 이보다 더 심할 수가 없다.
爲今之計로 莫若暴揚五姦之罪하여 奪其官爵하고 盡削衛社之勳하고 悉宥無罪之人하여 以此告于宗廟社稷하고 頒敎中外하여 與一國更始라 夫如是則上以慰祖宗陟降之靈하고 下以安朝野憤惋之懷하여 維新之政이 次第可擧矣라
지금을 위한 계책으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오간의 죄를 폭로하여 관작을 삭탈하고 사직을 보호했다는 공훈을 모두 없애고 죄 없는 사람은 모두 사면하여 종묘사직에 고(告)하고 중외(中外)에 널리 알림으로써 온 나라 사람들과 같이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조종(祖宗)의 영혼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조야(朝野)의 분개를 완화하여 유신(維新)의 정치가 차츰 이루어질 것이다.
客曰 子言은 固切於時務矣라 但先王已定之事를 後王安敢改革가
손님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참으로 시국에 적절하지만 다만 선왕(先王)이 이미 정해 놓은 일을 후왕(後王)이 어찌 감히 고치겠는가?
主人이 長吁數聲曰 流俗之見이 一至於此하니 至治는 終不可復也라 夫孝者는 善繼人之志하고 善述人之事者也라 好善嫉惡者는 明宗之志也요 勸善懲惡者는 明宗之事也온 彼憸邪之輩ㅣ 罔聖欺明하여 縱售姦術於一時나 難逃鈇鉞於萬世라
주인이 여러 번 길게 한숨짓고 말하기를 유속(流俗)의 소견들이 한결같이 이러하니 참다운 정치는 끝내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효(孝)라는 것은 선인(先人)의 뜻을 잘 계승하고 선인의 사업을 잘 발전시키는 것이다.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싫어함은 명종(明宗)의 뜻이고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함은 명종의 일인데, 저 간사한 무리들이 임금의 총명을 기만하여 한때 간사한 술책을 부릴 수는 있었지만 만세(萬世)에 그 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今我明宗은 於昭于天하며 其於姦狀을 已悉洞照하고 亦必震怒于冥漠之中하여 欲假手于我主上矣니 主上은 其將繼志述事하여 以副明宗在天之心耶아 抑將承訛踵謬하여 以悅姦兇地中之鬼耶아
우리 명종께서는 하늘에 계시면서 간사한 무리들의 죄상을 모두 통찰하시고 명막(冥漠)한 가운데서도 반드시 진노(震怒)하시어 우리 주상의 손을 빌리고 싶어 하실 것이니, 주상은 그 뜻을 계승하고 그 일을 발전시켜 하늘에 계신 명종의 뜻에 부응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그 잘못된 것을 그대로 이어 나가 지하에 있는 간흉들의 귀신을 즐겁게 해야 하겠는가?
嗚呼라 國是未定이면 則人心易搖하고 正名未盡이면 則善政難成이라 若不埽蕩姦宄之囊橐하여 扶護國家之元氣면 則君子는 無所恃而罔盡其忠하고 小人은 有所窺而欲紹其惡이니 國之爲國을 未可知也라
아, 국시가 정해지지 않으면 인심이 동요하기 쉽고, 명분을 바로 하지 않으면 선정(善政)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에 간신들의 소굴을 소탕하여 국가의 원기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군자(君子)는 믿을 곳이 없어 그 충성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소인(小人)은 엿볼 곳이 있어 그 악을 계속하려 할 것이니, 나라가 제대로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若如子言하여 諉以已定之事하고 必以無改爲孝면 則昔者에 文王事商而武王誅紂하니 此亦可謂畔父之道乎아
만일 그대 말대로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핑계하고 고치지 않는 것을 효도라고 한다면, 옛날에 문왕(文王)은 상(商)나라를 섬겼는데 아들 무왕(武王)은 주(紂)를 죽였으니 이것도 아버지의 도를 배반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客再拜曰 善乎라 吾子之說이여 子說若行이면 東方將見三五之至治矣라하니 主人이 退而記其說하다 <栗谷全書 卷之15>
손님이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훌륭하다 그대의 말이여, 그대의 말이 실행된다면 우리나라가 앞으로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지극한 정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니, 주인은 물러가서 그 말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