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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라깡은, 특히 프로이트에 대한 연구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거울단계이론을 수립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성장 단계에 적용하여 주체와 욕망의 문제에 대한 의미를 탐구한 것이라 고 평가되고 있다. 물론 구조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기에 지극히 추상적이고, 그의 이론이 이원화된 인식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서 프로이트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그와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구축한 라깡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신경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그동안 연구해 온 라깡 이론에 대한 탐구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라깡 이론을 정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인 정신분석’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이상과 이청준의 문학 작품을 분석하여 그 이론과 접맥시키고 있다. 아울러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의 심리에 대해서 추론하고 나아가 그가 남긴 의학 사상을 검토함으로써, 간략하게나마 라깡의 이론을 원용하여 논하고 있다. 특히 이상의 <거울>이나 이청준의 <이어도>라는 작품은 문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도 익숙하여, 저자의 분석에 따라 해당 작품들을 다시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우울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무의식의 시대’(1장)를 탐구할 필요를 제기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언어학적 토대에 기초한 라깡의 이론을 원용하여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L도식’이란 도표를 통해서 그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이드'와 '거시기' 등에 관한 개념과 의미를 설명하지만, 기호학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저자의 설명을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물론 상세한 부분까지는 숙지하지는 못했으나 , 라깡 이론에 대해 나름대로 친절한 소개를 하고 있는 저자의 분석에 대해 개략적인 이해는 했다.
2장에서부터는 구체적으로 프로이트의 임상 사례와 그 이론적 성과를 토대로 하여, 그러한 성과들에 대해 라깡의 독자적인 해석이 지닌 면모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한 3장의 내용은 충분히 유익한 정보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화’에 대한 프로이트와 라깡의 이론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정리한 내용들도 공감할 수가 있었다. 아울러 라깡의 이론에 힘입어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탄생한 ‘일상정신증’이란 표현이 지닌 유용성에 공감하는 바가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기호학을 토대로 형성되는 라깡 이론의 경우,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분석한다는 특징을 지적할 수가 있다. 물론 그러한 분석틀은 단지 라깡만의 이론적인 특징이라기보다 구조주의자들이 지닌 일반적인 인식 구조라 할 수 있다. 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이분법적 해석틀이 쉽게 공감되지 않기에, 이전부터 라깡을 비롯한 구조주의자들의 사유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동안 난해한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아왔던 이상의 시 <거울>이나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를 라깡의 이론에 의거해 분석한 것은 공감하는 바가 있었고 또한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의 접근법에 대해서 앞으로 적절히 소개하면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문득 이청준의 <구운몽>이란 작품이 라깡 이론을 적용할 수 잇는 텍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라깡의 이론이 머릿속에서 명쾌하게 정리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 책 한 권 읽은 것으로 명쾌하게 정리될 수 있다면, 오랜 기간을 통해 라깡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 자신이 프로이트 심리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지니고 있기에, 그에 기반한 라깡 이론도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번 기회에 라깡의 이론이 지닌 특징과 정신분석학에 적용되는 면모를 제대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또 다른 기회에 라깡의 이론을 만나면, 이제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친밀감을 느끼면서 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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