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교역 상품으로서의 ‘인삼’의 위상을 정립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찾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라고 이해된다.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는 이 책은, 역사를 전공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무역의 역사에서 간과되었던 ‘인삼’이라는 품목이 지닌 의미를 부각하고자 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서양의 교류에서 인삼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도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주지하듯이 인삼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중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한 교역 품목으로 매우 중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의 무역과는 달리 각 나라에서 파견한 사신의 교류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무역이 행해졌다. 그 과정에서 ‘고려인삼’은 중국과 일본에서 가장 중시했던 품목이었다. 특히 인삼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나라의 홍삼은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상품으로 꼽힌다고 한다. 인삼을 통한 동아시아 각국의 교류 현황과 ‘고려인삼’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에 대해서는 이 책의 2부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인삼’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주요한 상품이었다는 점에 착목하여, 세계적인 교역 품목으로서의 인삼의 위상을 짚어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종 한국의 인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교역 품목으로서 대상이 되는 것은 중국과 미국의 인삼이라 할 것이다. ‘인삼, 서양과 만나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17세기 무렵 일본과 중국을 통해 서양에 소개된 인삼에 관한 각종 기록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인삼의 효능을 연구하고, 주요 약재로 취급하였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 ‘만병통치약’으로서의 인삼의 효용성을 주목한 유럽인들의 반응과 그것을 의학적으로 활용한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는 ‘인삼의 세계 체제’라는 제목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통해서 주로 중국의 인삼이 교류 품목의 하나로 서양에 전래되기 시작했던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싼 아시아의 인삼을 대신하여, 북미 대륙에서 발견된 ‘화기삼’이 무역 품목으로 자리를 잡은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미국이 독립한 후에 선박을 이용하여 중국에 ‘화기삼’을 팔기 시작했는데, 배에 달린 성조기의 별 모양이 꽃처럼 생겼다 하여 중국인들이 그것을 ‘화기(花旗)’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져온 인삼을 ‘화기삼’으로 부르고, 이후 북미 대륙으로부터 채취한 인삼을 부르는 명칭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특히 북미 대륙의 넓은 영역에서 채취할 수 있는 인삼이 미국 독립 이후 ‘최초의 수출품’으로 역할을 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유럽에서 18세기 후반 과학이 발달하면서, 여러 약재들의 유효성분을 기준으로 약재의 중요성을 판단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기술로서는 인삼의 유효 성분을 추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교육에 필요한 의약품의 성상·품질·농도의 규격과 기준을 고시하여 발행한 약전(藥典)에서 서서히 인삼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이를 ‘위기와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짚어보고 있다. 인삼의 유효 성분인 사포닌을 제대로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은 20세기에 들어서야 개발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분명한 효능이 있음에도, 당시의 기술로는 그 성분을 제대로 알 수 없었기에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인삼이 전세계적으로 무역 품목으로 널리 교류되고 있음에도, 저자는 서양을 중심으로 정리한 무역사에서 그 의미가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을 일컬어 4부에서 ‘인삼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4부의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동서양의 심마니’를 다룬 부분이었다. 기존 연구를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심마니들의 풍습을 소개하는 내용은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저자는 인삼을 캐는 심마니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운 태도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이러한 시선은 ‘심마니의 이미지와 내부 식민주의’가 발동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인삼’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내 생각에는 당연히 그 내용의 중심에는 우리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인삼을 가장 활발하게 수출했던 나라는 미국이었고, 그 주요 수입국은 중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혹 우리의 인삼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이 책의 서술 관점은 주로 서양의 시선에 입각해 있었다. 인삼을 다룬 서양의 방대한 기록들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지극히 당연한 방향이라고 여겨졌다. 생각보다 무역 품목에서 차지하는 인삼의 위상이 적지 않기에, 저자는 그것을 ‘서양이 은폐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인삼이 전세계적으로 고급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 무역 품목으로 그것이 차지하는 위상은 그리 크지 않은 현실은 안타깝게 생각되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