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들’
고바다
서해로 떠나기로 한 여행이 장맛비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
우두커니 서있는 캐리어에
차곡차곡 챙겨 넣은 파도 소리만 귓가에 맴돈다
소답슈퍼 고여사
하나로슈퍼 최여사
서광슈퍼 백여사
신세계슈퍼 신여사
명절 아침 빼고 일 년 삼백육십오일 빠짐없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드르륵
드르륵
철문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며
동네 입구마다 떡 버티고 서서
골목 먹여 살렸던 슈퍼우먼들
대형 슈퍼맨들이 골목을 집어삼키고 싹쓸이할 때도
뚝심으로 버티며 파워를 보여줬던
위대한 우먼들
가까스로 서해에서 뭉쳐보자고 가방을 쌌는데
계산대 벗어 던지고
수없이 긁어대던 카드 속을 빠져나와
칸칸이 나눠진 돈 통 몽땅 털어
뽀얗게 분바르고
입술 위에 빨간 나비 앉힌 후
챙 넓은 모자 우아하게 쓰고
쉬폰 원피스 자락 기깔나게 펄럭이며
푸른 바다 서해로 여행 한번 가자는데
바닷바람 한 번 쐬자는데
장마 전선에 걸려 주저앉은 슈퍼우먼들
서해바다 푸른 물결은 머릿속에서만 출렁이고
다라락 땡! 금고 소리만
더운 골목을 열고 닫는다
◆ 시작노트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오래된 CF 문구가 떠오른다.
알지만 한번 나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아닌 사람들도 많다.
어느 누군가에겐 여행이란 빛 좋은 개살구
일 수도 있지만 힘나는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주렁주렁 불어나는
현실이었지만 이제는 이유보다는 선택한
대가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니
하루하루 버텨내는 기쁨이 생겼고
생활에서 찾는 나만의 방식입니다.
◆ 고바다 시인
- 2020년 「시와편견」 등단
- 시집 「바람 인형의 바람」
시사모, 한국디카시학회 운영위원
- 동인지 「시의 에스프레소」 공동 참여
출처 : 경남연합일보(http://www.gn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