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인(仁)사상(思想)으로 본 존엄사(尊嚴死)
1. 존엄사(尊嚴死)에 대한 문제(問題) 제기(提起) :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안에서
생명력(生命力)을 가지고 있든 또는 자연(自然)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든 이런 모든 것들이 시간(時間)의 흐름에서 빗겨나 있는 것들이 과연 있을까?
시간(時間)의 흐름은 분명 자연(自然)에 속해있는 모든 것들의 생성(生成),
성장(成長), 성숙(成熟), 사멸(死滅)되어 가는 과정(過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現代)의 풍요로운 물질세계(物質世界)와 더불어 더욱 복잡해진 세상살이, 상상(想像)을 초월(超越)하는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발전(發展) 등은 이전에 우리가 익히 알지 못하였던 많은
질병(疾病)들을 만들기도 하고 또한 치료(治療)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科學技術)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시간(時間)의 흐름 속에서 자연(自然) 발생(發生)되는 죽음이
아닐까.
이처럼 뛰어난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도움으로도 치료(治療)가 불가능(不可能)한 질병(疾病)의 고통(苦痛)을 끊기 위한 방안(方案)으로
존엄사(尊嚴死)에 대해 사회적(社會的) 여론(與論)이 찬반양론(贊反兩論)으로
분분(紛紛)하다.
2. 공자(孔子)의 인(仁)사상(思想)으로 본 인간(人間)의 존엄성(尊嚴性):
이러한 존엄사의 찬반양론(贊反兩論) 속에서 나는 먼저 인간(人間)의 존엄성(尊嚴性)이란
무엇인가?
사전적(辭典的) 의미(意味)의 거창한 존엄성의 의미(意味)는
제쳐두고 좀더 범위(範圍)를 좁혀서 “나 자신의 존엄성(尊嚴性)이라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나의 존엄성(尊嚴性)이란? 나 자신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며 가치있게 만들고 느끼는 것, 즉 인간으로서 가장 인간다운
면모(面貌)를 가질 수 있는 나의 고유(固有)한 권리(權利)라 생각한다”.
여기서 존엄성(尊嚴性)이 인간(人間)다운 삶을 영위(營爲)하는
것과 같은 맥락(脈絡)으로 통한다면 나는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께서 이야기하는 인(仁)을
존엄사(尊嚴死)의 찬반(贊反) 문제(問題)와 연계(連繫)시켜 보고자 한다.
공자(孔子)의 도(道)는 하나로 관통(貫通)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공자의 도(道)는 인(仁)을 말함이며 이 인(仁)의 실천 방법으로 충서(忠恕)를
이야기 한다. 즉 인(仁)이라
함은 충서(忠恕)로 대표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충(忠)은 진실된 마음이며 서(恕)는 입장(立場)을 바꾸어
남의 처지(處地)를 이해(理解)하는 것 즉 “배려(配慮)”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진실된 마음으로 배려(配慮)”를
한다는 뜻으로 이해(理解) 할 수 있는데 가장 진실되고 진정한
배려(配慮)란 나 자신을 배제(排除)하고는 존재(存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배려할 때 또한 남을
진정으로 배려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3. 존엄사에 대한 나의 주장:
때문에 자기자신의 인간적인
삶을 선택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로서 생의 마감이라는 죽음에 대한 결정 역시 자기자신의 문제인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연적(自然的)인 노화(老化)에 의한 생(生)의 마감이야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존엄사의 찬반(贊反)을 논(論) 할 필요가 없지만 존엄사(尊嚴死)의 찬반(贊反)논쟁(論爭)은 현대사회(現代社會)에서 최고(最高)의 과학적(科學的)인 방법(方法)으로도 치료가 전혀 불가능한 그런 질병에 의한 삶의 선택(選擇)시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존엄사(尊嚴死)를 인정(認定)해야 한다고 주장(主張)하며
단 최소한 두 가지 정도(程度)의 조건(條件)이 만족(滿足)되는 경우(境遇)에 한해
찬성(贊成)을 하고자 한다.
먼저 모든 동원(動員) 가능한 과학기술에 의해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며 또한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여 생명의 연장이 아닌 죽음의 연장일 경우가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두 번째로는 당사자 자신이
지키고 싶은 존엄성을 당사자가 정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의지(意志)로 결정(決定)하였을 때
라는 단서(端緖) 조건(條件)을 달아 존엄사 인정(認定)에
대해 찬성을 하고자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