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매운탕과 고추장
최의상
새싹들이 돋아나는 봄 어느 날이었다. 동구 밖에는 논두렁을 따라 도랑물이 맑게 흐르고 있었다. 지금부터 68년 전 경상남도 경산군 자인면 안촌동에서 피난살이 하던 시절 이야기다. 같이 피난 간 영돌이 형이 고기 잡으러 가자고 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가자고 하였다. 장화를 빌려 신고 둥근 체와 빈 그릇을 들고 동구 밖으로 갔다. 도랑물은 똘똘 소리를 내며 맑은 물이 흘렀다. 형은 체를 물속에 대고 나는 풀숲을 꼭꼭 밟으며 고기를 몰았다. 체를 번쩍 들자 펄떡거리며 붕어 몇 마리가 잡혔다. 퇴비 등으로 농사를 짓던 시절이라 농약의 피해가 없어 고기가 살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이 고기 잡아 끓여 먹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고기가 많았다. 붕어, 송사리, 미꾸라지 등을 잡았다. 고기의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따서 창자와 부레를 제거하고 깨끗이 하여 집으로 가지고 왔다.
형과 자전거포 아저씨는 매운탕을 끓이자고 하였다. 자전거포 아저씨는 피난 오기 전에 마을에서 자전거를 고치는 일을 하던 분이다. 아버지와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매운탕을 끓이려면 파, 마늘, 고추장, 고추, 간장, 호박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호박 나올 때가 아니라 생략하지만 고추장 구하기가 어려웠다.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은 고추장보다 된장을 많이 사용하고 고추장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특별한 때만 사용하는 것 같다. 경기도 사람들은 고추장을 좋아한다. 옛날에는 반찬도 시원치 않아 고추장에 보리밥 비벼 먹는 맛이 참 좋았다. 소풍 갈 때도 고추장을 반찬으로 가지고 갔다. 도시락에 고추장을 붓고 썩썩 비벼 먹으면 얼얼하면서도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 때는 그 고추장 반찬이 흉이 될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
‘아주머니 고추장 좀 주세요.’ ‘웬 고추장을 달라고 하지, 고추장 없어.’ 다음 집으로 가서 또 고추장을 구걸하였다. ‘아계나, 웬 고추장을 달래, 겡게도 사람들은 고추장밖에 몰라.’하시며 장독이 있는 뒤뜰로 가서 몇 숱 깔 떠 주며 ‘여기서는 약으로나 쓰고 별로 먹지 않아 자 어서 가지고 가.’ 하시며 주셨다. 해는 지고 굴뚝마다 연기가 오른다. 사랑방에 오시는 마을 어른들을 초청하여 정성을 다해 끓인 경기도 매운탕(천렵국)을 맛보게 하였다. 처음 먹어보는 탕이라 머뭇거리다 한 술씩 입에 대어 먹다가 매워서 도리질을 하면서도 다시 숟가락이 매운탕 그릇으로 들락날락하기 시작하며 얼얼한 맛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니 또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던 모양이다. 땀을 흘리며 처음 먹어 보는 맛있는 매운탕에 모든 사람들이 만족해하였다.
그 다음에 경기도 매운탕 또 먹고 싶다고 하여 몇 번 더 끓인 것 같고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부탁하면 ‘겡게도 사람은 고추장밖에 몰라’하시며 주셨다. 지금 생존해 계실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인사드리고 싶다. ‘고추장 밖에 모르는 겡게도 아이 그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