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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1. 아가의 문제점
여덟 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책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안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아가가 구약 성경 안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이 사랑의 시(또는, 연애시집)는 도대체 구약 성격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무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 아가는 매우 관능적인 표현들을 쓰고 있다. 하느님이나 어떤 신앙 조목, 또는 사랑의 윤리적 의미라든가 사랑의 결과로서 출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오로지 육체적인 아름다움에만 전념한다. 그 안에는 다른 민족들의 연애시에 가까운 내용과 형태뿐만이 아니라, 이교(異敎)와 신화의 잔재들도 들어 있다. 게다가 그 의미를 해석해 주는 명백한 열쇠는 하나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 책은 누가 언제 썼는가? 독립적인 노래들의 모음인가, 아니면 하나의 노래인가? 민속 노래인가 아니면 서정시인가? 또 무엇 때문에 쓰였는가? 아가가 단순한 실수로 성경 속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후대에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일 전례 때 불리었을 정도로 경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는가? 아가는 기원후 시대에 유다인들의 주요 축제 때 봉헌되었던 다섯 개의 ‘축제 두루마리’ 곧 축제 오경 가운데 하나이다.
2. 구조
이 책은 시구(詩句)와 주제, 이미지와 상황이 되풀이되고 그 연결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어, 현대적 의미의 문학적 구조를 규명해 내기가 어렵다. 어떤 이들은 혼인 잔치 때 쓰이는 시가들의 모음일 따름이고, 거기에다 혼인 노래만도 아닌 사랑의 노래들을 단순하게 배열한 것이라 본다. 또 어떤 이들은 몇 개의 긴 개별 시가들 사이의 일정한 순서와 질서를 구별해 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아가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연계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줄거리, 예컨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행동의 전개라든가, 아니면 남녀 사이에 전개되는 사랑의 과정을 구성해 내는 것은 본문의 내용과 순서에 대한 과감한 수정과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아가의 많은 노래들이 전부 단일한 주제 곧 관능적 사랑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3. 저자와 저작 시기
아가의 저작 시기를 솔로몬 시대 또는 그 조금 뒤인 고대 왕정 시대까지 올리려는 시도가 없지 않지만, 여기에 쓰인 언어와 문체는 매우 후대의 것으로 보여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세기) 또는 헬레니즘 시대까지도(기원전 3세기)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의 발전 과정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서, 어휘와 표현의 선택에서 자주 드러나는 의고주의(擬古主義)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설사 후대에 저술되었다 하더라도 아가는 고대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서 전원과 도시,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에 속하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으로 잠언, 코헬렛, 그리고 지혜서와 같이 아가도 1열왕 5,12와 아가 자체의 1,1; 3,7.9.11; 8,11.12에 솔로몬의 이름이 나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저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솔로몬이 저자가 아님은 분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아가 1장에서 솔로몬은 일반적인 총칭으로 쓰였거나, 아니면 잠언과 코헬렛과 지혜서에서처럼 문학 양식의 일종인 픽션으로 쓰였을 뿐이고, 3장의 경우는 옛날의 혼인 축가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가 있으며, 8장은 이상적인 임금은 역사의 솔로몬이 아니라는 아가의 근본 의도를 드러내려는 목적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아가는 부분적으로는 유배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노래들, 그러나 최소한 그 주제에 따라 크게 ‘한 작품’을 이루는 노래들을 유배 시대 이후에 다듬어 편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4. 경전화와 해석
선입관 없이 읽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세속적이고 관능적으로 여겨지는 아가가 어떠한 근거와 까닭으로 경전에 속하게 되었는지를 현재로서는 확실하게 알 길이 없다. 외적으로는 당시 오래된 솔로몬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내용상으로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전거가 없기 때문에, 아가가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였다고 우의적(寓意的)으로 해석된 때문이 아닌가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여하간 이제는 이 책의 원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시가가 본디 혼인 잔치 때 불렸을까? 연회장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관습이 있기는 하였지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기원후 1세기 말에 아키바 라삐가 그러한 관습에 반대한 바 있다. 더욱이 유다인들의 파스카 전례 때의 사용은 기원후 5세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원뜻이야 어떠했든 간에, 과연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아가는 거룩한 노래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노래인가? 달리 표현해서, 이 책은 구약의 경전으로서 제자리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 들어온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아가에 대한 해석은 구약 성경의 그 어떠한 책에 대한 해석보다도 변화가 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설명들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를 다시 우의적 해석이냐 사실적 해석이냐에 따라 둘씩 묶을 수 있다.
가. ‘우의적 해석’은 경우에 따라서는 적어도 기원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서,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던 이 관능적 연가(戀歌)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해석은 아가에 나오는 젊은 남녀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또는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한다. 역사적 이해의 경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제시된다. 첫 번째 가능성은 역사상 일정 기간에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과 다른 민족 사이의 만남이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중 유배에서 귀환했을 때와 같이 특정한 시대나 전체 구원 역사를 통한 주 하느님과 그분의 선택된 백성 사이의 관계, 또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대변되어 온)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사이의 관계이다.
신비주의적 이해 역시 두 가지 길을 제공한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그리스도와 인류 사이의 집단적 관계와(이것이 신비주의 이해를 앞의 역사적 해석 방법과 연결시키는 구실을 한다.),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와 인간의 영혼, 더 나아가서는 성령과 마리아, 그리스도와 마리아, 또는 솔로몬과 지혜를 결부시키는 개별적 관계이다.
나. ‘제의적(祭儀的)-신학적 해석’은 우의(알레고리)의 또 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아가를 수메르-아카드의 종교적 신화의 배경에서 이해한다. 이 종교에서는 겨울에 모든 자연이 죽은 듯이 보였다가 봄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종교-신화적으로 이해하였다. 겨울은 탐무즈라는 신이 죽어 감을 뜻한다. 죽어 사라진 이 신을 그의 애인인 이쉬타르라는 여신이 찾아 나선다. 온갖 난관을 거치면서 저승까지 가서 애인을 찾고 결국 둘은 혼인하게 된다(신들 사이의 이 특별한 혼인을 그리스 말 전문 용어로 히에로스 가모스라 하는데, 성혼〔聖婚〕이라고 옮길 수 있겠다). 이 결합의 결과가 봄 곧 자연의 소생이다. 이는 비단 메소포타미아만이 아니라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중동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신화로서, 지방에 따라 두 신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신화는 제의를 통하여 재현된다. 곧 임금과 여자 대제관 또는 남녀 제관에게서 구현되는데, 이들의 ‘성혼’은 신들의 결합을 상징하고 새해에 자연의 풍요 다산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성적(性的) 결합이 더 이상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니지 않고,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일이 되어 아가의 관능성이 지니는 걸림돌이 제거된다고 하겠다. 가나안에서는 이쉬타르와 탐무즈 대신 아세라 여신과 바알 신 사이의 관계로 변형되는데, 이 제의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반대에도, 아마 므나쎄 임금 시대 유다가 아시리아에 예속되던 8세기에 예루살렘에 정식으로 도입되었다고 추측된다(2열왕 21 참조). 이러한 이교의 풍요 다산을 비는 제의가 후대에 와서, 마치 농경 사회의 축제였던 누룩 없는 빵의 축제가 파스카의 역사적 신앙을 표현하기 위하여 재해석되었듯이, 다소간의 수정을 거쳐 이스라엘의 신앙에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다. ‘극적 해석’은 장면과 상황의 변화 그리고 제삼자들을 포함한 연인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창(對唱)을 근거로 해서 이 책을 일종의 연애극으로 이해하고, 예컨대 솔로몬과 수넴 출신 처녀 아비삭(7,1과 각주 참조) 또는 여타의 가상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이 해석은 아가의 성적(性的)인 실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배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걸림돌로 여겨지는 바를 피해 간다. 외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성적 묘사를 피하려고 이 책을 구태여 신비주의적이나 우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가가 성(性) 그 자체보다는 사랑에 대한 충실과 성실성에 더 관심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을 솔직 담백한 사랑의 묘사로 이해한다. 더 나아가 둘이 아니라 세 인물을 등장시켜, 곧 자신을 강탈하려는 솔로몬이 아니라 남자 애인에게 충실한 여인의 드라마를 보여 줌으로써, 관능적 욕구에 대하여 일정한 불신의 눈길이 던져지게 한다. 이렇게 일종의 대표적 유형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유형론적(類型論的) 형태 아래, 이 해석은 우의(알레고리)의 요소들을 취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리스도교적-우의적 해석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오리게네스는(253/254년 사망) 아가를,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하느님 말씀 사이의 사랑의 종교적 신비로 이해하는데, 구체적으로 아가를 배역에 따라 할당하고 연극 감독과 같은 지시 사항을 덧붙이기도 한다.
라. ‘자의적(字義的) 해석’ 역시, 위에서 언급한 대로 기원후 1세기 말에 연회장에서 아가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노래하였다는 에피소드가 말해 주듯, 적어도 민속적인 형태 아래 부분적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이에 반대한 아키바 라삐는 이 책을 우의적으로 이해하였다). 현대적 방법으로서의 ‘자의적 해석’은 현재 아랍인들의 연애 또는 혼인 노래에서 출발하여, 아가를 쓰인 그대로 현실적인 사랑 노래들의 모음으로 이해한다. 또 아가를 이와 유사한 점들을 드러내는 이집트의 세속적 연가 또는 아랍의 민속가 모음처럼 사람들이 보존해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지난 세기 말까지도 요르단 동부 지방과 레바논에서 볼 수 있었던 시리아인들의 혼인 잔치 예식(혼인식이 끝난 후 일주일 동안 신랑 신부는 임금과 왕비처럼 행세하고 축하객들과 동네 사람들도 그들을 그렇게 대해 준다.) 순서에 따라 배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예컨대 솔로몬과 파라오 딸의 혼인을 정당화하려는 세속적 작품일 뿐이라고 여기고(이 견해의 창시자는 이미 ‘안티오키아 학파’의 지도적 학자였던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주교〔350-428년〕라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외설적 노래가 잘못해서 경전에 속하게 되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아가를 순진무구한 민간 시가로 받아들이고, 솔직한 사랑의 윤리적 의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유형론 또는 예형론(豫型論)이나 극적 해석을 통하여 위에서 언급한 입장들을 자유롭게 보태기도 한다.
마. 어느 한 가지만 정당하고 다른 것들은 틀리다고 배제해 버릴 수 없는 이상의 여러 요소들이 달리 결합되어서 다섯 번째 해석 방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네 번째 설을 이어받아, 아가는 인간적 연가인데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혼인으로 서술하는 예언자들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예언자들의 언어 대신 ‘성혼’의 묘사에 쓰이는 언어의 영향을 강조한다.
이상의 네 가지 주요 학설들의 두 그룹은 아래와 같이 접목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째와 둘째 학설에서 아가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종교적이고 우의적인데, 이는 이 책이 단순하게 성적(性的)이고 세속적인 의미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셋째와 넷째 학설에서 아가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성적이고 세속적인데, 이는 우의(알레고리)의 도움을 피하고자 하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그러나 종교와 세속의 영역을 분리시켜 종교적 연가와 세속적 연가가 서로 독립적으로 생성 발전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둘 다 하나의 공통된 시가 전통에서 유래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된 것이다.
구약 성경 전체를 볼 때, 아가의 중심을 이루는 ‘신부(新婦)의 주제(모티프)’는 크게 두 개의 영역에서 익히 사용되는 것이다. 첫째, 예언자들은 주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혼인으로 묘사한다(예컨대 이사 54,4-10; 62,4-5; 예레 2,2 에제 16,8; 호세 2 등). 둘째, 지혜 문학서에서 ‘지혜’는 여인-신부로 서술된다(잠언 4,6-8; 7,4-5; 집회 15,1-8 등 참조).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아가를 우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작업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가가 말하고 있는 모든 사항들을 우의적으로 만족할 만큼 설명할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자의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예컨대 아가에서는 여자가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이는 고대 사회의 현실 또는 당시의 세속적 연가의 관점에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점이다. 또한 아가를 종교와는 무관한 극(劇) 중 노래로 이해하는 ‘극적 해석’에서도, 결과론적으로 볼 때, 자의적-세속적 이해의 열쇠로 충분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이 해석 방법에 따라 아가를 극으로 꾸미려면 본문의 많은 부분들의 순서를 바꾸어야 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의적-신화적 해석’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아가에 제의적-신화적 요소들이 상당히 들어 있고 또 이 해석 방법이 많은 부분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 사실이라 하더라고,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정통 신앙과 부합할 수 없던 이교의 우상 숭배적 풍요 다산의 제의에서 유래하는 노래 모음을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아가 안에 들어 있는 노래들을 구체적으로 누가 불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또한 이 노래들을 구분하는 데서도 의견의 일치를 이룰 수 없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우리말 번역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두 주인공을 “남자”, “여자”로 구분해 보았다. 아울러서 제삼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누구인지는 더욱 불분명하다. 그리고 누가 불렀는지를 전혀 모른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있다.
5. 아가의 의미
아가의 사랑은 인간적인 것으로서 성적(性的)이며 동시에 거룩한 것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면 중에서 하나를 인식하지 못할 때, 한편으로는 세속적 의미에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의적 의미에만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아가는-창세 2,23-24에 대한 일종의 주석으로서-인간적인 사랑을 하느님의 선한 창조 사업 안에서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서술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을 묘사하려고 이 책은 다소간 의식적으로 이집트의 연가라든가 당시 중동 지방에 두루 퍼져있던 이교적 ‘성혼’ 의식의 요소들을 채택한다. 그러나 아가는, 사랑의 진실한 기능은 하늘과 땅이 또는 두 신이 종교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상호보완적으로 창조하신 두 창조물이 결합하는 것임을 보여 주고자, 자연의 풍요 다산을 비는 제의(祭儀)를 철저하게 탈신화화한다.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민족과 문화들은 대부분 성(性)을 신성시하였다. 이들은 성을 신성한 신비이고 신적인 현상으로 여겨 성전을 중심으로 이를 재현하였다. 이에 반하여 아가는 완전히 탈신성화한 사랑 곧 극히 인간적인 현상으로서 성과 사랑을 노래한다. 이는 성의 신성화, 또는 신을 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구약 성경의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이 갈구하던 자연의 풍요 역시 인간들이 대행한 신적인 성의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과 사랑의 계약을 맺으신 주 하느님, 그분 홀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데(잠언 2,16-17; 말라 2,14),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마치 에페 5,25에서 바오로가 다시 말하는 것처럼-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아가의 영성적 의미는 이 책의 자의적 의미 안에 내포되어 있다.
잠언
우리말에서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짧은 말’로 사전적 정의를 내리는 ‘잠언’은 히브리 말로 마샬이라고 한다. 이 명사는 ‘비슷하다’ 또는 ‘지배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어원과 뜻은 확실하지 않다. 히브리 말에서 운문으로 된 잠언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문학 방식으로 표현된다. 첫째는, 다음과 같이 어떤 생각이나 표상을 다른 생각이나 표상에 대비시킴으로써 뚜렷하게 드러내는 ‘비교’이다. “악한 마음에 매끄러운 입술은 / 겉만 매끈하게 칠한 질그릇 같다”(26,23). 그래서 칠십인역은 히브리 말의 ‘잠언’을 그리스 말의 ‘비교’라는 낱말로 옮긴다. 둘째는, 두 개의 생각이나 표상을 두 줄로 병행시켜 표현하는 것이다(물론 같은 생각이 둘 이상의 줄로 전개되는 수도 종종 있다). 여기에는 서로 반대되는 경우와(10,3; “주님께서는 의인의 갈망은 채워 주시고 / 악인의 욕망은 물리치신다.”), 서로 보완하는 경우가 있는데(1,8; “내 아들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 /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마라.”), 앞의 것을 ‘반의적 병행법’, 뒤의 것을 ‘동의적 병행법’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한 생각이 점진적으로 전개되거나, 둘째 줄이 첫째 줄의 생각을 설명하는 ‘점층적(또는, 종합적) 병행법’이 있다. “현인의 가르침은 생명의 샘이라 /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13,14의 말씀을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시편 ‘입문’ 3도 참조). 잠언의 모든 말씀을 이 세 가지 형식 안에 넣어 묶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잠언은 이런 방식으로 현인들의 생각을 두 줄로 나타낸다.
구약 성경의 잠언은 여러 시대와 여러 장소에서 유래하는 잠언들을 모은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작은 묶음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잠언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두 곳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이 둘을 잇는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오래전부터 발달해 온 문학 유형인 ‘지혜 문학’ 또는 ‘격언 문학’에 속한다. 이스라엘에도 이 ‘동방의 아들들’(1열왕 5,10)의 지혜가 잘 알려져 있었다(특히 에돔의 지혜에 대해서는 예레 49,7; 바룩 3,22-23; 오바 8 참조). 그래서 성경의 잠언과, 그밖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잠언과 아시리아-바빌론의 잠언(이사 47,10; 예레 50,35; 51,57; 다니 1,20; 2,24), 이집트 잠언(창세 41,8; 1열왕 5,10; 이사 19,11.12; 지혜 17,7; 사도 7,22), 가나안 원주민들의 잠언, 그리고 시리아-팔레스티나 북부의 히타이트 잠언 사이에는 단순한 유사점 이상의 것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같은 주제를 동일한 표현 정식으로 나타내는가 하면, 때로는 다른 나라의 잠언을 직접 빌려 온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들도 있다. 잠언 안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모음이(30,1-14와 31,1-9) 외국 현인들의 작품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당시에 국제적인 문학 교류가 활발하였고, 이스라엘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1. 표제 - 잠언 이해의 열쇠
상호 유사성과 직간접적인 영향에도 성경의 잠언을 단순히 국제 문학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지혜 문학과 마찬가지로, 잠언 역시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이스라엘의 고유한 산물임이 분명하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이라는 표제로 시작한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두 가지 칭호로 불리는데, “이스라엘 임금”과 “다윗의 아들”이다. 솔로몬은 잠언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이름으로, 잠언 전체가 그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을 꼽는가? 그가 통치자의 자질과 문학적 재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언을 지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1열왕 3,3-14.16-28; 5,9-14; 10,1-9.23; 집회 47,14-17 참조). 또한 잠언에 들어 있는 세 개의 작은 묶음에는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1,1; 10,1; 25,1).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을 잠언 전체는 물론이고 이 모음들의 실질적인 저자 또는 편집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솔로몬이 잠언의 핵심 부분을 직접 지었거나 일부를 수집하였을 개연성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은 솔로몬과 그의 궁전을 중심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고 여겨진다. 여기에서는 솔로몬의 국제 정치와 국제 무역 활동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그는 당시에 지혜 문학을 이미 활발히 전개하고 있던 이집트와 정식 외교 관계를 맺고, 파라오의 딸과 혼인을 하기도 하였다(1열왕 3,1-2). 그래서 모세가 율법 전체를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율법을 그의 권위와 전통 아래로 결집시키고, 또한 시편들을 다윗에게 귀속시키듯(시편 ‘입문’ 2 참조), 솔로몬 역시 지혜 문학의 대부로서 잠언의 일부 또는 전체의 저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성을 지니는 것이다.
잠언의 수집가는 이 작품을 내놓으면서,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임금”이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저자를 “이스라엘 임금”이라고 함으로써, 지혜가 임금에게서 유래한다는 당시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견해를 따른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각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였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금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느님 신탁의 전달자’로 여겨지기도 하였다(16,10-15. 바로 직전의 16,1-9에서는 주님에 대해서 말하는데, “신탁”으로 시작하는 임금에 대한 구절을 주님에 대한 이야기 바로 다음에 배치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하겠다. 2사무 14,18-20 참조).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자적’ 구실을 다하지 못한 불충한 임금들이 있었음이 사실이고, 잠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28,16; 29,4). 수집가는 또한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을 담은 잠언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한다. 다윗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약속을 상기시킨다. 잠언에서는 계약과 약속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의 권위 아래 선포되는 잠언의 지혜는 매우 종교적인 신학을 통하여, 특히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일신 사상을 통하여 이 계약과 약속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특히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이 근본 바탕을 이룸으로써, 구약 성경의 잠언은 다신론을 기조로 하는 고대 근동의 다른 잠언들과 구별된다. 이미 표제에서부터 독자는 잠언의 이러한 성격을 느끼게 되고, 이는 이 책의 대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은 31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 잠언 역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 계시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나타낸다. 물론 잠언들은 동시에 매우 ‘인간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라는 큰 임금의 권위와 전통 아래 수집되고 선포되었기 때문에, 하느님 계시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2. 구성
1) 잠언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설명하고 1장 1절의 표제를 정당화하는 짧은 머리글로(1,2-7) 시작한다. 잠언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을 가르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는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젊은 세대가 다양한 삶의 상황 속에서 올바르고 슬기롭게 처신하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이 경험은 과거와 현재의 스승들의 가르침 안에 들어 있으며, 이것이 말 그대로 일종의 교육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의 시초에 이미 주님께서 존재하심을 잠언은 강조한다.
2) 잠언은 1,2-7의 머리글 다음에, 다양한 길이와 내용을 지닌 아홉 개의 모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구분이 본디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잠언이 번역되어 오는 과정에서 이해를 돕고자 이루어졌고, 때로는 같은 목적으로 소제목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과 각 단락의 간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1,8-9,18. 나쁜 친구들과 낯선 여자를 삼가라는 아버지 또는 스승의 훈계가 나오고, 여기에 지혜에 대한 찬양과 지혜 자신의 말씀이 첨가된다(1,20-33; 8,22-35). 의인화한 ‘지혜’와 이에 맞서는 ‘우둔함’이 9,7-12를 가운데 두고 마치 균형을 이룬 두 개의 저울판같이 나란히 제시된다(9,1-6과 9,13-18).
나. 10,1-22,16. 376개에 이르는, 도덕적 삶에 관한 솔로몬의 잠언들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 두 번째 모음은 매우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주님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 잠언 안에서 가장 오래된 잠언들이 들어 있다는 데에 학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다. 22,17-24,22. 현인들의 잠언들을 묶어 놓은 첫 번째 모음이다. 이 모음에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이집트의 ‘아멘엠오페의 지혜’와 매우 흡사한 단락과(22,17-23,14) 술버릇에 대한 아주 인상적인 풍자가 들어 있다(23,29-35).
라. 24,23-34. 24,23이 말하는 바와 같이 현인들의 잠언들을 묶어 놓은 두 번째 모음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게으름뱅이의 초상화’라 할 수 있는, 게으른 자에 대한 묘사가 주목된다(24,30-34).
마. 25-29장. 127개의 잠언들을 묶은 것으로서, 10,1-22,16에 이어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 모음으로 불린다(25,1). 솔로몬의 첫 번째 잠언 모음에서처럼, 여기에서도 대부분의 잠언이 한 쌍을 이루는 두 줄로 되어 있다. 첫째 모음과 같지는 않지만, 이 25-29장의 잠언들도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바. 30,1-14. 마싸 사람 아구르의 잠언들인데, 아구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외국의 현인이다.
사. 30,15-33. ‘수(數) 잠언’이라 불리는 부분이다. ‘수 잠언’은 수의 점진적 나열, 곧 X+1의(예컨대, ‘이 셋은 ……, 이 넷은 ……’)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수사학적 방식은 아모스 예언서 첫째 장에서도 볼 수 있다.
아. 31,1-9. 마싸 임금 르무엘의 말로서, 외국 현인의 금언을 모은 묶음으로는 30,1-14에 이어 두 번째 것이다.
자. 31,10-31. 훌륭한 아내를 노래하는 유명한 알파벳 시이다(시편 ‘입문’ 참조). 이는 9장에 일종의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나오는 ‘지혜’에 대한 묘사와 한 쌍을 이룰 수 있는 단락이다.
3. 지혜와 지혜로운 이들(현인들)
잠언에서 주제가 되는 지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로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혜는 사람보다는 하느님과 더욱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이 드러난다. 곧, 지혜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도 동참한다(3,19-20; 8,22-31). 여기에 지혜가 생명의 탁월한 근원으로 제시되는 근거가 있다. 이로써 지혜는 인간을 악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을 경외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언에서 지혜는 육적인 것으로부터 유리된 순전히 영적인 존재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8장에서 지혜는 ‘하느님 앞에’ 있는 존재로 소개된 뒤, 9장에서는 집의 여주인 구실을 하는 인격체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지혜를 일종의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은 고대 근동, 특히 이집트에서와 같이 ‘지혜’를 하나의 신으로 여긴다거나, 또는 어떤 신적 존재를 ‘지혜의 신’으로 받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또한 모든 경우에 엄격하게 구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른바 실재 인격체와 시적 인격체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주님의 손(민수 11,23; 신명 2,15; 이사 59,1), 주님의 팔(시편 98,1; 이사 51,9; 59,16), 주님의 칼(이사 34,5; 예레 12,12; 즈카 13,7), 주님의 영(이사 32,15; 63,11.14) 등은 시적으로 마치 하나의 인격체와 같이 묘사된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바탕이 요구된다. 곧,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이다. 결국 잠언의 교육이 추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 존재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지 않는 성경의 사고방식에 따라, 정신과 육체, 종교적인 면과 세속적인 면을 동시에 포괄하는 전인적 인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지혜로운 이는 예술과 기술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하게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능숙한 뱃사람(에제 27,8), 조각가, 가구 제조인, 세공인(탈출 31,5; 이사 40,20; 예레 10,9), 방적공(탈출 35,25), 전문 곡(哭)꾼(예레 9,16) 등이다. 특히 임금의 서기, 보좌관, 고문 등 정치 전문가들을 ‘지혜로운 이’ 또는 ‘현인’이라 한다. 예레미야 예언서는 사제와 예언자와 함께 현인을 이스라엘의 정신적 권위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로 본다(예레 18,18). 비록 예레미야 자신은 이른바 현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판단하지만(예레 8,8-9; 9,11. 그리고 이사 29,14도 참조), 예레 18,18의 말은 당시의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다. 또한 이들 가운데에서,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25-29장에 들어 있는 이른바 “솔로몬의 잠언”을 수집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육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도 ‘현인’이라 불린다. 잠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경험을 토대로 한 이들의 가르침은 사실 ‘지혜’의 정수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술자나 예술가들의 자질 면에 비추어 볼 때, 잠언은 문장의 전문가들, 곧 ‘서기관’들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서기관’은 정부 관리들을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이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문학적 작업을 할 수 있는 많은 여유와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솔로몬의 둘째 잠언 모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으로서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또는, ‘필사’)한 것이다”(25,1). 이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바로 서기관들로서,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미 다른 이들이 말한 것을 수집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외국인들, 그리고 외국 문학과 접촉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외국 현자들의(아구르, 르무엘) 금언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모방하기도(‘아멘엠오페의 지혜’) 하였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하기 전에 이미 상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던 가나안의 지혜 문학의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임금과 제후의 직무, 그리고 임금의 고문들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잠언의 편자들이었던 바로 이 서기관들의 배려로 그 안에 들어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4. 잠언과 이스라엘의 믿음
지혜의 근본, 또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본은 다음과 같은 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님을 경외함”이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9,10. 그리고 1,7과 15,33 참조). 이로써 현인들은 비록 자기들과 방법을 달리하였지만, 같은 경외심을 지니고 살면서 같은 경외심을 가르쳤던 이들, 곧 레위기와 신명기의 설교가들, 예언자들, 시편 저자들, 일반적으로 말해서 ‘모세의 법’에 호소하고 그것을 가르치며 설명한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 몇 가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잠언 첫 부분의 정열적이고 이성적인 훈계는 이들의 공통점을 뚜렷이 보여 준다. 여기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신명기적 선택의 도식’(신명 11,26-28; 30,15-20)으로서, 생명과 거기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고, 죽음과 거기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피하라는 것이다.
또한 두 개의 강한 표상이 율법과 예언서에 나오는 전통과 잠언 사이의 깊은 일치를 드러낸다. 곧 생명의 나무와 생명의 샘이다(3,18; 10,11; 11,30; 13,12.14; 14,27; 15,4).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낙원이야기가 어떻게 이해되고, 또 어떻게 실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갔는지를 말해 주기도 한다.
‘지혜’가 설교하는 ‘성읍’은 예루살렘을 연상케 한다(1,21; 9,3). 그런데 예루살렘은 ‘땅’ 그 자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땅’은 올바른 이들에게는 주어지고, 악인들은 쫓겨나는 땅이다(2,21-22; 10,30. 그리고 신명 4,26 참조). 이렇게 해서 집회서 24,8-17에서 선언될, ‘지혜-율법’이 시온에 뿌리를 내린다는 표현이 마련되는 것이다.
시나이 산에서 일어난 원초적 사건(율법, 돌 판에 새신 십계명의 부여) 역시 예언 사상과의 연계 아래 현인-교육자들에게서 실생활 속에 동화되고 전승된다. 이들도 예언자들처럼 가르침을 “마음의 판에”(3,3 각주 참조) 새길 것을 촉구한다(3,3과 7,3을 예레 31,33과 비교).
이 밖에도 이스라엘의 믿음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 공통점을 더 언급할 수 있다. 첫째, 2,17에 따르면 혼인의 계약을 깨는 때에 하느님과의 계약 자체가 깨진다는 것이며, 둘째, 5,14에서는 “회중”과 “공동체”라는 특별한 용어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5. 저자와 저작 시기
간략한 입문에서는 서로 다른 여러 부분의 생성 시기와 저자 등에 관해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사항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언의 뿌리가 이스라엘 공동체 생활의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에는 학자들이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구약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글자로 쓰이기 전에 이미 구두로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관리 양성과 교양 교육을 담당하던 조정의 서기관 사회에서 잠언의 수집과 기록은 일찍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이 구약 성경의 잠언에서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이집트의 ‘교육’에서처럼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특별히 왕정 시대를 잠언 수집의 초기로 고려해야 하겠지만, 유배 이후 시대에야 이에 대한 중요한 작업이 수행되었고 주변 문화권으로부터 지혜 문학을 수용한 것이 틀림없다 하겠다. 잠언들 역시, 시편들처럼, 구약 성경의 거의 모든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전승되었다.
6. 우리말 번역의 문제
잠언은 일상생활과의 밀접한 관계 아래 형성되고 말해지고 전해졌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해당 민족의 총체적 문화 배경이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사실 잠언 본문의 배경과 번역문인 우리말의 배경이 달라, 구체적인 이해에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그 배경까지도 모두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잠언은 금언이나 격언 또는 속담처럼, 어떤 생각을 압축된 언어와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번역에서도 이러한 잠언의 특성을 종중해야 한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잠언을 이해하려면 그 내용을 되새겨야 한다는 사실, 비록 처음에는 그 뜻이 분명하지 않지만 곱씹을수록 제 맛이 난다는 데에 바로 잠언의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욥기
욥기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불의한 고통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것도,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1. 구조
욥기는 서로 다른 다섯 부분으로 명확히 나누어진다.
1) 산문으로 된 머리말(1-2장). 경건하고 부유한 주인공 욥은 한순간에 설명할 길 없는 재난에 휩싸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님에 대한 신뢰심을 잃지 않는다(1,1-2,13).
2) 운문으로 된 대화(3-31장). 여기에서는 자부심이 강하고 반항적인 인간인 욥과, 고대 근동의 전형적 현인들인 그의 세 친구들이(테만 사람 엘리파즈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초파르) 대결한다. 주인공의 독백이 앞과 뒤에서 일종의 테두리 구실을 하는데, 이 틀 안에서 주인공과 친구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저마다 세 차례에 걸친 담론을 펼친다(셋째 차례에서는 초파르와 욥의 담론이 빠져 있다). 아래 세부 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대화 부분은 완만하고 장엄한 행보로 진행된다.
3) 운문으로 된 엘리후의 일련의 담론(32-37장. 도입 부분 32,1-5는 산문). 예기치 않은 제4의 친구인, 부즈 사람 바라크엘의 아들 엘리후가 나서서 자기 의견을 내놓는다.
4) 운문으로 된 주님과 욥의 대화(38,1-42,6).
5) 산문으로 된 맺음말(42,7-17). 욥은 자기의 건강과 재산과 명예, 그리고 자식들을 다시 얻는다. 그는 성조들처럼(창세 25,7; 35,29) 수를 다하고 죽는다.
2. 통일성과 저작 시기
욥기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어휘와 문체, 문화적 배경과 종교적 개념의 다양성은 이 작품이 단 한 번에 지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정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이 밖에도 다양한 가설들이 주장된다. 상대적으로 정설이라고 할 수 있는 확실한 가설이 없음은 욥기 안팎의 증거가 불충분하고, 있는 증거조차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의 가설도 피할 수 없는 약점들을 지니고 있음을 시인하면서, 조심스럽게 이를 제시한다.
산문으로 된 머리말과 맺음말은 본디 어떤 민속설화를 이루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1,1-2,13; 42,7-17). 이 설화는 “동방인들”(1,3) 가운데에서 큰 명성을 떨쳤던, 우츠 지방(1,1과 각주 참조) 출신으로 욥이라 불렸던 한 인물의 모범적인 인내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비길 데 없는 신앙심을 지닌 이 욥에(1,8; 야고 5,11) 관한 설화는, 이미 기원전 2천 년대 말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구두로 퍼져 있다가, 사무엘-다윗-솔로몬 시대에(기원전 11-10세기) 히브리 말로 옮겨졌으리라 추측된다.
그런데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대환난 이후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인들은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만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 때문에, 그들 가운데 일부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파기하고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믿음을 문제 삼게 된다. 이러한 때에 유배(기원전 575년경) 제2세대의 어떤 시인이 그의 선임자 에제키엘과(기원전 592-580년경) 비슷하게 사목적, 그리고 예언적 목적 아래, 당시 잘 알려져 있던 수난하는 욥 이야기를(에제 14,14.20) 바탕으로, 욥기 대화 부분의 시를(3,1-31,40; 38,1-42,6) 짓는다(욥기의 저작 연대는 대체적으로 기원전 6-4세기로 잡는다. 그러나 욥기에는 이스라엘의 역사나 유배, 또는 유배 상황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시인해야 한다). 그는 인간 존재의 가치, 그리고 인간적 정의와 신적 정의의 관계 아래에서 인간이 지니는 권리를(31,35-37) 시적으로 토론하려고, 까닭 없이 고통당하는 주인공과 그의 세 친구를 등장시킨다. 주님께서도 주인공 욥에게 자신을 변론하고 당신의 처사를 단죄하는 기회를 주신다(40,8-14). 그러나 욥은 다시 도전하는 것을 사양하면서 자기의 자만에 대하여 참회한다(42,1-6).
이 시는 하느님의 신성, 곧 인간의 상상력은 물론 하느님의 섭리와 그분의 선성(善性)에 대한 관념까지도 한없이 넘어서는 그 신성을 수긍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또한 이 작품은 선과 악 사이의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 덕성스러운 인간의 자기중심적 야망이 드러나는 그러한 선과 악의 구분을 초월하는 죄의 개념을 시사한다.
산문으로 된 맺음말은(42,7-17) 개인적 보상에 대한 대중적 신조를 주장하기 때문에, 대화 부분에서 욥을 통해 드러나는 저자 시인의 신학과는 상반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도 이 맺음말은 고대 근동의 일반 지혜 문학에서 오래된 유산의 일부인 전통적 설화에 속하기 때문에 존속할 수가 있었다. 더 나아가서 대화부분의 시를 후대에 전승시킨, 페르시아 시대 유다교의 도덕적 전승가들에게는 이 보상에 대한 교의가 훌륭하게 들어맞았을 가능성도 있다.
엘리후의 담론들은 욥기의 전통을 잇는 후대의 한 제자가 아마도 호교론적인 목적 아래 첨가하였을 것이다(32,1-37,24). 사실 이 부분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대화와는 매우 다른 어법과 문체와 수사학적 방법들이 눈에 띈다. 엘리후는 고통의 교육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전통적인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엘리파즈와 빌닷과 초파르가 충분히 전개하지 못하였다 하며 유감스럽게 보아 왔을 몇 가지 논증을 덧붙인다.
욥과 세 친구 사이에 벌어지는 시적 대화의 셋째 마당의 본문은(특히 25,1-27,3) 구두 전승이나 필사 과정에서 훼손을 입은 듯하다. 초파르의 세 번째 담론이 없고, 욥의 말로 된 어떤 구절들은 오히려 친구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24,18-25; 26,5-14). 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은, 시 부분의 편집자들이 욥의 대담성을 완화시키려는 의도 아래 본디 초파르가 한 말을 욥의 말로 옮겼다고 설명한다. 많은 이들은 지혜 찬가도(28,1-28)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찬가의 문체는 주님 말씀의(38,1 이하) 문체와 매우 가까워서, 대화로 된 토론 부분과 욥기의 결론 부분을 분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본디부터 쓰였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3. 문학 유형
이미 오래전부터 욥기가 성경에서 유일한 문학 형식을 이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비록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전통은 욥기를 지혜 문학 작품들 사이에 배열하고, 지혜 문학에서 유래하는 문장들이 욥기 안에 많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는 욥기를 유형별로 분류하려는 어떤 노력도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 인정된다.
플라톤에게서 유명해진 대화 형식은, 이미 상고 시대에 메소포타미아와 나일 강 계곡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생성 시기가 기원전 3천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여겨지는 설형 문자로 된 어떤 문헌은 대담한 말투로 악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오늘날 ‘수메르의 욥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바빌론 말로 쓰인 다른 설형 문자 문헌은 고통 받는 의인을 다루는데, 흔히 ‘바빌론의 욥기’라는 제목이 붙는다. 이 밖에도 ‘바빌론의 신정론(神正論)’, ‘바빌론의 코헬렛’, ‘인간의 비참함에 관한 대화’ 등으로 불리는 또 다른 문헌이 있는데, 각 행의 첫 글자를 모으면 하나의 문장이 되는 특별한 시 형태로 이루어진, 변신론(辯神論)에 대한 이 대화의 사본 연대는 기원전 9세기 중엽까지, 생성 연대는 아마도 기원전 1400-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리라 본다. 각각 11줄로 된 28개의 연이 전개되면서 병자와 그의 친구는 신의 정의를 논하는데, 이 친구는 욥기에 나오는 테만 사람 엘리파즈의 담론에 나오는 논조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집트의 어떤 문헌은 삶에 싫증이 난 사람이 자기 영혼과 대화하는 전개 형식을 취하는데, 비참한 병자인 이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쫓겨나서, 자살에 대하여 시를 쓰듯 서정적으로 논한다. 욥이 히브리 문학에서 눈앞에 다가온 자신의 죽음에 대한 매력을 이야기한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더 나아가서, 욥기에 나타난 어휘들과 수많은 암시들은 이 시 작품이 이집트 문명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욥기의 시인이 국제적인 지혜 문학 세계에 속해 있고 대화의 문학 형식을 알고 있었으리라는 사실은 상당한 개연성을 지닌다. 이러한 문학 유형은 체제 비판적 의견들이나, 또는 적어도 인습에 젖은 사회의 교조주의적 사상을 거스르는 생각들을 공적으로 탈 없이 드러내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욥기의 시인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시인의 국적
욥기의 ‘운문으로 된 대화’ 부분에는 이스라엘의 선택과 소명, 모세의 계약과 다윗의 계약, 거룩한 시온 산, 성전, 제물봉헌 의식, 메시아 희망 등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이 밖에도 주인공 욥에 대한 민속적이고 고풍스러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특색이 전혀 없는 이국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히브리 말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낱말들과 어법은 욥기의 예외적인 성격을 확인해 준다.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고찰에서 출발하여, 욥기의 저자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근동의 어떤 현인이었다고 결론짓기도 하였다. 또는 현존하는 히브리 말 본문이 아람 말이나 아랍 말로 된 원본을 번역한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은 근거가 없다. 예루살렘에서 쓰였던 히브리 말과는 다른 방언의 채택과 시인이 취한 언어적 자유로써, 욥기의 문학적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 운문으로 된 대화의 저자는 유다인이었다. 이는 그가 대예언자들의 신탁, 특히 예레미야의 고백록을(예레 11,18-20; 12,1-4; 15,10-21; 17,12-18; 18,18-23; 20,7-18. 특히 예레 20,14-18과 욥 3장 비교)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렀던 시편들과 유다 임금들의 궁궐에서 전해지던 잠언들을 암기하고 있었다.
성전은 약탈당하고 예루살렘 도성은 불탔으며, 백성은 살육을 당하고 생존자들은 흩어지거나 바빌론으로 끌려가던 때인 기원전 587년의 동란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욥기의 시인은 (예전의 이스라엘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최초의 ‘유다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에제키엘 예언자와는 매우 다른 자기만의 방법으로 유다교의 탄생에 공헌하였다. 예언자도, 사제도, 시편 저자도 아니었지만, 보편적 지혜 문학의 상속자인 그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예언적, 사목적 직무를 수행하였다. 종교 의식을 박탈당하고 삶의 터전에서 뿌리가 뽑힌 공동체에게 극적인 형태로 일종의 문학적 ‘즐거움’을 주려고, 시인은 여러 다양한 유형들, 곧 탄원 시편, 찬미가, 금언, 풍자, 법적 논쟁, 저주, 예언적 독설, 그리고 신의 현현에 대한 고대의 이야기 등을 결합시켜 새로운 문학을 창조해 낸 것이다.
5. 저작 동기
이미 말한 대로 욥기의 저자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명확한 단서가 없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작 동기에 대해서도 추측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래에 전개되는 내용 역시 여러 가설 가운데 하나가 되겠다. 전통적으로는 글로 쓰였다고 여겨졌으나 처음에는 구전을 통해 전승된, 구약 성경에 담긴 다른 시가들과 시적 산문들처럼, 욥기의 대화 부분도 의심의 여지 없이 먼저 구두로 ‘발표’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들의 생성단계에는 사람들이 들고 읽었던 필사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암송되거나 음악 반주로 높낮이를 붙인 시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판소리 참조). 욥기의 탄식은 유배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전도 제단도 없는 ‘더러운’ 이국땅에 살기에, 축제일인데도 제대로 축제를 지낼 수 없었던(시편 137 참조) ‘축제의 아픔 속에서’ 불렸으리라 생각된다. 뿌리가 뽑힌 동족 또는 같은 종교를 신봉하는 집단은 흔히 자기들만의 전례력 준수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법이다. 그러나 바빌론으로 유배 간 사람들은 성전은 물론 제단도 없었기에 틀림없이 아무런 전례 의식도 거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혼돈과 불확실성의 이 시대에 유다인들은 새해 축일과 초막절 전의 대속죄일을(레위 16 참조) 지내기 시작한다. 욥기의 시인은 이러한 기회에 대중의 기분을 전환시키고, 그들에게 ‘준전례’의 형태로 참믿음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바빌론의 새해 축제는 자연과 동식물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풍요 다산의 갱신이라는 틀 안에서, 임금의 상징적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강조한다. 이 영향으로 욥기의 저자가 주인공의 고난과 긍지를 묘사하려고, 왕권 이념의 수많은 특징적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자기의 작품 여러 곳에서 세상의 창조를 시사한다. 그리고 오랜 건기 끝에 가을비가 내리는 시기를 정점으로 하여(38,37) 일 년 절기의 변화에 따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엘리후의 담론을 지은 저자도 그렇게 한다(36,26-37,24). 아무튼 시인의 의도는 전례력을 존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비유로써 경고와 희망의 예언적 신탁을 선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극심한 곤경을 겪는 민족(애가 3,15),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시인은 우츠 지방에 살던 어떤 흠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욥이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1,9)하고 묻는데, 이것은 바로 유배자들에게 그들의 패배주의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세기 동안 온갖 부패를 일삼았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전례적 정결과 사회적 의무를 어느 정도 성실히 지켜 나갔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아무런 소용도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정복자들이나 억압자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면서, 이스라엘은 지금 겪고 있는 운명을 스스로 불러들일 만큼 잘못을 하지는 않았다고 쉽사리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그들의 창조주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일정한 권리를 지닌다고 믿었던 것이다. 욥기의 시인은 모든 자연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환상을 거슬러 자기의 목소리를 높인다. 대예언자들과 시편 저자들처럼, 그는 참된 믿음에 타산적 사고방식은 끼어들 자리가 없으며, 드높은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뿐임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6. 욥기의 신학
오늘날 우리는 이 시가 탄생한 역사적 맥락과 그 복합적인 구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욥기의 신학도 이러한 면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1) 산문으로 된 이야기
이 민속설화의 어떤 면들은 대화 부분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생각에 상응하지 않는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제자라 할 수 있는 이 유다 현인은, 겸손한 이들의 불운과 악인들의 번영이라는 걸림돌에 대하여 숙고하였다. 그는 아마도 ‘까닭 없는’ 고통을 어수룩한 하느님과, 천상 어전의 신하들 가운데 가장 냉소적인 존재 사이에 벌어진 내기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을(1,6-12; 2,1-6)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또한 이 신화적인 ‘적대자 사탄’(1,6과 각주 참조)에 대한 언급을 가능한 대로 피한다. 오히려 그의 시적 천재성을 이끌어 내고 그의 엄정한 신학적 탐구열을 자극한 것은 이상적인 신심, 곧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까닭 없는’(1,9) 신심이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산문으로 된 설화의 모든 세부 사항들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대화 부분을 내세우려고, 이 산문을 일종의 발판으로 삼았을 따름이다. 신심 깊은 욥의 이야기가 이미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켰기 때문에, 시인은 그들이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말하게 한다. 그는 인간의 속성, 예배의 ‘주고받음’(2,4와 각주 참조), 그리고 하느님께 셈을 요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려고 민속설화를 사용한다.
욥의 공언과 주님의 발언 내용과는 달리, 산문으로 된 맺음말은 보상에 관한 전통 교리를 재확인한다. 이것은 시인의 생각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고대 이스라엘 문학에서는 유례없이, 그가 욥을 통하여 맹렬하게 공격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지난 몇 세기 동안 성경 주석가들을 괴롭혀 온 문제가 발생한다. 욥기의 대단원은 어떤 방식으로 시인의 신학과 일치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시의 구두 암송과, 이보다 훨씬 후대에 이루어진 성문화한 글 사이의 구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욥기의 머리말과 맺음말의 바탕을 이루는 ‘민속 설화’는 민족 유산에 속하기 때문에, 민족 문학의 보배를 보존하려는 이들이 페르시아 시대의(기원전 5-4세기) 유다 후손들에게 물려준 수사본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운문으로 된 부분도 제자리를 찾게 되는데, 이 역시 전통 설화를 통하여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 설화는 욥의 반항이 품고 있는 대담성과 하느님의 대답이 풍기는 냉소성이 하느님의 정의를 문제시하거나 적어도 하느님의 정의를 인간의 정의 밖으로 자리매김하는 운문 부분을 쉽게 전승하도록 해주는데, 이것이 바로 산문으로 된 설화의 경건한 종결 기능이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2) 운문으로 된 대화
대화 부분의 저자는 수수께끼 같은 고통의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인간의 정신을 휘어잡는 격정을 거침없이 토로해낸다. 그는 유다교가 역사 안에 생겨난 이래, 줄곧 혼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며 지성적, 윤리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문제에서 결코 눈을 떼지 않는다. 욥기의 시인은 모든 시대의 인류에게 말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걸림돌에 맞설 뿐만 아니라, 거의 신성 모독에 이를 정도로 고뇌하면서도 동시에 자기가 사랑하는 하느님의 현존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에게는 재산을 약탈당하고,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아내와 친구들의 몰이해 속에 사회에서 추방되고, 또 치명적인 질병으로 단말마의 아픔을 겪는 것보다, 하느님의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고통이다.
여기에 또 다른 주제가 덧붙여진다. 욥은 자기의 무고함이 공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자기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불행에서 구원해 주십사고 여러 모습으로 탄원하는 시편집의 탄원 시편에 나오는 기도자들과는 달리, 욥은 하느님께서 자기의 무죄를 인정해 주시기만을 요구한다.
욥은 덕뿐만 아니라 긍지의 전형이기도 하다. 질병과 윤리적 고통의 교활한 공격아래, 그의 격화된 긍지는 점점 초인적 오만으로 변해 간다. 그는, 아카드의 신화에 따르면 질서의 신이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땅의 경계를 보호하려고 사슬로 묶어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바다와 용에 자신을 비유한다(7,12). 엘리파즈는, 도덕적 인간이 시련의 격정 속에서 자신을 반신(半神)으로 착각하도록 몰고 가는 신적인 교만의 새로운 차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초적 인간에 관한 신화를 분명히 암시하면서 욥에게 묻는다.
자네가 첫째로 태어난 사람이기라도 하며
언덕보다 먼저 생겨나기라도 하였단 말인가?(15,7과 각주 참조)
주인공은 결코 굴복하지 않고, 질병에서 낫기보다, 자기에게 씌워진 비난과 고소로부터 무죄 선고 받기를 고집한다. 이는 그 역시 항상 찬동해 왔던,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죽음의 절대적 성격에 대한 전통적 믿음이(7,21; 14,10) 한순간에 깨어지도록 그를 이끈 완강한 갈망이기도 하다. 그는 하느님을 거스르면서까지 자기를 변론해 줄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고 선언한 다음(16,18-21), 마지막 숨 너머, 무덤의 경계에서 그가 산 채로 하느님을 뵙게 해 주시려고, 그를 구해 주실 분이 일어서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부르짖는다(19,25-27).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거나, 또는 그가 일종의 추방을 당하였기 때문에(19,13-22), 그가 죽은 다음에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상속자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자기의 상속자가 되어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확신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이 ‘상속자-구원자’는 구약 성경에서 잘 알려진 ‘구원자’와 맥을 같이한다. 고대의 관습법에 따르면, ‘구원자’는 죽은 이의 친척으로서, 흘린 피에 대한 복수를 하거나(여기에서 ‘피의 구원자/복수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는 조상의 땅이 훼손되지 않도록 그것을 법적으로 대신 사들여 보존하는 의무를 지닌다(2사무 14,11; 롯 2,20 등).
이제 우리는 널리 알려진 19,26의 몇몇 낱말이 히브리 말 수사본에서 잘 보존되어 있지 않고 고대 번역본들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 둘째 줄의 히브리 말 본문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로 옮겨 볼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 구절에서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서곡과 죽음을 이기실 ‘구원자’의 예시를 읽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내 몸으로”라는 표현은, 기원전 6세기에 아마도 온전한 정체성을 갖고 존재하는 인간을 뜻하였을 것이다. 이 해석은 이 말 다음에 따라오는 문장이 구체적으로 되풀이됨으로써 한층 더 명확해지기도 한다(27절). 더구나 이는 유다인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후세의 삶에 대한 믿음과,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헬레니즘적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 안에서 일어나는 실제적 체험을 전제하며, 이는 불멸의 영혼에 대한 비히브리적 사고의 실체가 없는 관념적 방식과는 대조를 이룬다. 더 나아가서 육신 부활의 이 믿음은, 불멸성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제하고,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창조의 지고한 행동을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 괄목할 만한 ‘신앙 고백’(19,23-27)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그렇지만 욥기의 시인이 유다교의 여명기에서부터, 멀리 계시면서 적대적으로 보이시는 하느님과 세상에 버려진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신학을 준비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희망을 그의 주인공을 통하여 토로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 희망을 세 단계에 걸쳐 성공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 하느님과 인간 위에 손을 얹고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화해자의 직무를 수행할 심판자에 대한 이룰 수 없는 꿈(9,33), 둘째, 욥이 살해당한 뒤에 최고 법정에서 그의 증인에게서 사후 변론을 얻게 되리라는 확신(16,18-22), 끝으로, 그의 명예를 되찾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보게 해 주실 구원자의 지고한 현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이다(19,25-27).
주인공은 자기의 긴 변론이 끝날 때까지, 어떠한 죄의식도 없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한다. 그는 다만 젊은 날의 사소한 잘못들만 기억한다. 그는 왕적인 모든 위엄을 갖추고 하느님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후처럼” 전능하신 분께 마주 나아가리라는 것이다(19,27; 31,37).
3) 폭풍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현현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대한 욥의 대답은 놀라우리만치 갑작스럽게 그 어조를 바꾼다. 여기에서 시인의 깊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인간적 도덕에 맞추어 하느님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너무나 인간적인 형태를 취한 모든 도덕주의를 순화하고, 신앙의 실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하며, 흠 없고 경건한 인간을 위협하는 죄의 교활한 성격을 지적하는 것이다.
욥기 운문 부분의 첫째 목적은, 하느님의 절대성을 정의에 관한 인간적 관념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탈출 19장의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의 현현과 1열왕 19장의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의 현현을 암시하면서) 폭풍 한가운데에서 욥에게 ‘대답하실’ 때, 주님께서는 사실 고통 받는 인간의 질문들에는 어떠한 대답도 주지 않으신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시는 분은 오히려 하느님이시다. 질문들이 계속되면서 결국 인간에게 가장 당혹스러운 물음에까지 이른다.
불평꾼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40,2).
욥이 이 도전에 응할 것을 사양하자(40,3-5), 주님께서는 싸움을 원하는 이 투사를 다시 한 번 다그치시면서, 조금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최종 결판에 나서라고 촉구하신다.
사내답게 네 허리를 동여매어라.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네가 나의 공의마저 깨뜨리려느냐?
너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나를 단죄하려느냐?(40,7-8)
이러한 이중 질문은 토론의 핵심을 꿰뚫으면서, 욥기 전체에 대한 이해의 열쇠를 제공한다. 시인은 하느님의 신비를 탐구하려고 고통의 신비를 이용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기의 무죄를 선언하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불행이 하느님의 정의를 부정(否定)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한다. 사실, 그는 하느님께서 자기의 무죄를 분명히 인정하시리라 여기고, 은연중에 전능하신 분께 자기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친구들은, 자기들이 ‘변신론’(辯神論), 또는 하느님의 정당화하는 정신적 과업에 투신하였음을 내보이면서, 하느님의 보상과 회개의 가치를 꾸준히 대변한다. 반면에 욥은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통하여 얻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변인론’(辯人論), 또는 인간의 정당화를 추구하는 데에 몰두한다. 시인은 이제 인간의 정당화가 하느님을 단죄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욥 40,2에 드러나는 예언적 논쟁은 8절에 다시 나타나는데, 여기의 ‘깨뜨리다’ 라는 낱말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옛 계약의 파기를 말할 때에도 쓰이는 동사이다(예레 31,32). 이러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시인은, 욥이 사실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상호 의무적인 계약 사상과 연관된 응보에 관한 옛 신조를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욥은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지는(1,9) 않았다. 욥도 친구들처럼 함축적으로는 사고파는 상업적 사고방식에 바탕을 둔 정의의 인간적 의미를 하느님께 부과하였던 것이다.
인간의 완전한 도덕성이 자신의 행복과 직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하느님을 마치 고객들과 상대하는 상인처럼 이해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주고받음’(2,4와 각주 참조)이란 산문으로 된 설화에 나오는 신화적 ‘적대자’의 사고방식일 뿐만 아니라, 운문으로 된 대화 부분에 나오는 인물들에게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특성이다. 이는 또한 폭풍 한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욥에게 계시하시는 내용이기도 하다. 시인은 계약상의 의무에 대한 교의가 변질되어 하느님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믿게 될 때마다 드러나는 계약 신학의 위험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처럼 욥도 근동의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한 자기의 무결성이 하느님에 대한 권리를 갖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자기 입장의 미묘한 과오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하느님을 단죄하지 않고서는(40,8ㄴ) 자기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자기도 결국 세 친구와 같은 길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을 변호하는 것은 곧 인간을 변호하는 것이다. 변신론은 사실 일종의 ‘변인론’인 셈이다. 세상 창조주의 무한한 성성(聖性) 앞에서, 욥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경건함이 곧 행복과 안녕의 수단이라는 환상을 그는 버려야 한다. 그가 하느님을 진정 “까닭 없이”(1,9) 경외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 현존의 은총만으로 그는 만족하게 된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시인의 두 번째 의도는 신앙의 실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사실 ‘오래된’ 전승이 이미,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두 인격체 사이의 단순한 신뢰 관계로 표현하였다(창세 15,6). 그리고 대예언자들, 특히 이사야는 진정한 신앙에 내재해 있는 항구한 인내의 비결을 밝혀내었다. 그것은 ‘아멘’의 삶을 살고(“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이사 7,9와 각주 참조), 정의롭고 공정한 삶을 사는 능력이다(하바 2,4). 욥기의 시인은 이러한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놀라우신 현존이 고통에 대한 승리의 원천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모세와 엘리야의 현현을 상기시키면서, 그리고 가을 축제의 찬미가에서 노래하는 최후의 현현을 선취하면서, 이 시인은 같이 유배 간 동료들에게(곧 성전도 왕정도 조국도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줄곧 그들 가운데에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폭풍도 암흑은 가면 뒤에 가려진 듯한 하느님 현존에 대한 옛 상징이다. 신화적 괴물들은(레비아탄과 브헤못) 우주 차원에서 언제나 악의 수수께끼를 내놓지만, 우주를 지으신 하느님은 욥이라는 한 개인에게 놀라우신 신적 자유를 드러내 보이신다. 인간적 실용주의는, 인간이 살지 않는 광야에도 비를 내리는(38,26) 자연 질서 안에서 어떠한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자유로우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자유로우신 하느님은, 가끔 달리 보이시기도 하지만, 당신의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의 나약함과 몰락 또는 그 긍지에 마음이 끌리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주제들을 극적 진행의 효과를 빌려 우회적 방법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시인은 죄에 대한 옛 관념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세심하게 찾고자 시도한다. 이것이 주님의 발언과 욥의 최종적 대답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세 번째 목적이다. 자기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성성(聖性) 앞에서 투사 욥은 결국 포기를 하고 만다. 그의 눈을 뜨게 해 준 것은 바로 하느님의 현존이다. 지금까지 그는 풍문으로만 들어서 알던 하느님을, 이제 자기 눈으로 직접 뵙게 된다(42,5). ‘성성’을 봄으로써 그는 자기에 대한 죄의식을 갖게 된다. 비록 친구들이 비난하는 범죄 행위들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을 완전하다고 여기는 도덕적 인간의 죄악 그 자체를 범한 것이다. 그는 ‘심판자-하느님’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42,6).
욥은 자기의 명예를 지키고 변호하려고 하느님께 알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의 도덕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인의 자질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되어 있었다. 이는 신적 권리라는 허식으로 치장한 고대 임금들과 유사하다(40,10-14).
욥의 유죄성은 도덕적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가 제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판단을 내려 자신을 무의식중에 신적인 존재로 들어 올리는 그러한 인간의 유죄성이다. 주님의 말씀과 욥의 대답은 인간 사고의 규범에 따라 하느님을 규정짓는 인본주의적 주관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욥기의 시는 하느님의 실존을 인간적 이성이나 도덕성의 제한에서 벗어나게 한다. 시인은 바오로 사도를 예고한다. 그는 주님을 ‘뵈옴’으로써, 자기 정당화의 원천인 율법이라는 우상을 타파하였기 때문이다.
7. 본문과 번역
1952년 사해 부근의 한 동굴에서 히브리 말의 옛 글씨체로 된 욥기 수사본의 단편들이 발견되었다. 이 옛 글씨체는 그때까지 모세 오경의 책들에만 제한되어 있던 것으로 여겨졌었다. 이로써 이미 그리스도 탄생 이전부터 특정 계층의 유다인들이 욥기에 중요성을 부여하였음을 보게 된다. 욥기의 히브리 말 본문은 난감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미 고대 그리스 말 번역자(칠십인역) 역시 이런 어려움에 맞닥뜨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 번역자는 때로는 매우 느슨한 의역으로 어려움을 비껴가고, 때로는 여러 절들을 번역하지 않고 뛰어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욥의 고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오리게네스의 비평 작업과 뛰어난 번역자 예로니모의 손길을 거쳐야만 하였다. 가끔 욥기의 히브리 말 본문의 특수성은, 우리가 성경의 다른 책들에서 알고 있는 고대 히브리 말과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래서 지난 한 세기 이래 많은 번역자들은, 으레 욥기의 많은 구절들이 훼손되어 변형되었다고 판단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추측에 따라 수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주석학은 이제 문화적 흐름 안에서 욥기를 격리시키지 않는 동시에, 이러한 ‘추측들’의 취약성에 대하여 좀 더 사실적인 통찰력을 키워 왔다. 이 번역은 비록 때로는 미해결의 문제와 이해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본문 수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히브리 말 본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코헬렛
1. 저자와 저작 시기
코헬렛이라고 이름 붙인 이 책은,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로 전해진다(1,1). 그런데 코헬렛은, 앞으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인명이 아니라 직책 또는 직무의 명칭이다. 이 1,1의 말은 의도적으로 임금의 이름을 직접 대지 않고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청중이나 독자는 그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곧 솔로몬 임금을 가리키는 것이다(1-2장과 1열왕 3장 이하 비교). 그래서 전통적으로 코헬렛의 저자는 솔로몬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쓰인 히브리 말은 언어적으로 구약 성경에서 가장 후대의 저술들이 지니는 특색을 띠고 있다. 곧 구약 성경에서는 이 책에 단 한 번만 나오지만 성경 후대의 히브리 말에서는 자주 쓰이는 어휘들이 많다는 점과 여기 쓰인 히브리 말이 어휘에서뿐만 아니라 형태론과 구문론에서도 아람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코헬렛에서는 더 나아가서 드물기는 하지만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벌로 시작된 지중해 동쪽의 언어들이 그리스화한 흔적들도 보인다. 또한 전통적인 지혜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특히 이 가르침의 중심 사상인 현세적 응보론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을 쏟아 붓는 내용 등은 이 책을 기원전 6세기의 유배 귀환 훨씬 후대에 자리 잡게 한다. 집회서의 저자는 코헬렛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쿰란(제4동굴)에서는 기원전 2세기 중엽에 필사된 코헬렛의 몇 줄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코헬렛 저자의 활동 시기는 마카베오 시대 이전, 곧 기원전 3세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활동 장소로 이집트 등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제반 생활 양식, 성전과 제사에 대한 언급(4,17; 9,2) 등은 팔레스티나(예루살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코헬렛은 전 시대의 임금을 저자로 내세워 문학 양식의 일종인 픽션의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기법은 잠언에서도 마찬가지다(잠언 1,1 참조). 이스라엘 지혜의 정점이며 대부이고 지혜와 부의 전형인 솔로몬의 입을 통하여, 그의 권위 아래 지혜의 가르침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일곱 번(1,1.2.12; 7,27; 12,8.9.10) 언급되는 코헬렛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가 임금이었다는 말은 1-2장으로 끝나고 3장부터는 더 이상 그의 왕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왕실과도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코헬렛의 제자였을 사람이 붙인 발문에 따르면 그는 직업적인 현인으로서 백성에게 지혜를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잠언들을 수집, 정리, 기록하였고 스스로 새로운 잠언들을 지어내기도 하였다(12,9-10). 이는 코헬렛의 저자에게만 한정된 특수성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모두 이러한 활동을 하였다(잠언 25,1과 집회서 “머리글” 참조). 다만 12,9가 암시하는 것처럼,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보다는 성인들에게 자기의 인생관을 설파하는 일종의 ‘철학자’를 연상하는 것이 적합하리라 본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 코헬렛이 말한다. /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는 말로 시작하고,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12,8). 첫머리에 이미 결론을 내세우고, 책 전체를 통하여 설파한 내용을 끝머리에서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론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논리적인 사고의 전개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코헬렛은 예컨대 인생의 허무성과 사물의 불가해성에 대한 논문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현대적 의미의 논문에서 볼 수 있는 어떠한 논리적 구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의 바탕에 깔린 사상과 거기에 쓰이는 언어는 전체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통일성을 드러낸다. 한 가지 사상을 동일한 문체로 표현하면서, 논리를 직선적으로 펼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일관성과 통일성은 저자가 오직 한 사람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책을 저자가 직접 펴냈는지 또는 스승의 사후 제자가 펴냈는지는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12,9이하의 “발문”은 제자가 덧붙인 것이 확실하다. 반면에 이 편집자의 손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또 코헬렛의 말 중에서 이스라엘의 전통적 신앙과 지혜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사항들에 대한 수정이 있었는지, 있다면 그러한 수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구절들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가설로 머물 수밖에 없다.
2. 책 이름
본 ‘성경’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하던 “전도서”(傳道書)라는 이 책의 이름은 1,1의 코헬렛이라는 히브리 말에서 기인한다. 유다교에서 시작하여 예로니모를 거쳐 루터에 이르는 전통 가운데 하나는 이 낱말을 ‘전도자’, ‘전도사’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전통을 동양권에서도 받아들여 이 책을 ‘전도서’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바르다고 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 ‘전도자서’ 또는 ‘전도사서’라 해야 했을 이 책을 그냥 ‘전도서’라 이름 지음으로써, 이 책이 이를테면 종교의 도리를 전파하고자 집필된 책으로 오해될 여지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코헬렛의 뜻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 낱말은 ‘집회, 회중, 백성 공동체’ 등을 뜻하는 히브리 말 카할의 동사형 ‘모이다’의 여성 단수 분사이다. 그래서 이 낱말은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의 어떤 직책이나 직무, 더 나아가서 이 직책/직무를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칠십인역은 에클레시아스테스(이대로 책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곧 ‘회중’, ‘교회의 구성원’으로, 히브리 말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한 예로니모는 ‘연사’(concionator),(演士)로 옮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코헬렛은 ‘집회의 의장’ 또는 ‘집회의 연사’라는 뜻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밖에도 ‘수집가’, ‘수집 책임자’, 또는 ‘대변인’으로 옮기는 학자들도 있다. 원뜻이 어떠하였든 코헬렛은 일반 명사에서 출발하여, 이 명칭을 지닌 이의 가명 또는 제자들이 부르던 호칭이 되고, 그럼으로써 이 현인의 이름처럼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뜻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근래에 와서는 코헬렛을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옳은 추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도 책 이름이자, 동시에 본문에도 나오는 이 명칭을 일관되게 코헬렛으로 옮긴다.
3. 책의 내용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코헬렛은 논리적인 순서와 구조에 따라 주제들을 전개해 나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 수 있겠다.
우선 사물의 순환 운동에 관한 “머리말”(1,3-11)이 나오고 이어서 세 부분이 뒤따른다. 첫째 부분에서 코헬렛은 일종의 자기반성을 하는데(1,12-2,26), 인간이 설사 그 누구보다도 많은 소원을 채웠다 하더라도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려는 그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는 확인으로 끝을 맺는다. 즐기는 것밖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결국 쓰디쓴 맛을 볼 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허무라고 코헬렛은 말한다.
둘째 부분에서(3,1-6,12) 코헬렛은, 시간의 영속성과 일시적 순간 사이의 대립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모든 현실이 부정적인 면과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이것들의 상대성을 인식하면서 이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운명의 신비 앞에서 철학적 번민을 토로하게 된다(3,22; 6,12; 7,14; 8,7; 9,12; 10,14). 인생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1,3; 2,22; 3,9; 5,15) 누가 인생과 세상사를 알 수 있는가? 인간은 자기 실존의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완전한 진퇴양난 속에 자포자기만이, 또는 (현대의 어떤 실존 철학자와 관련지어) 구토만이 남는 게 아닌가? 자살과 향락의 욕구 사이에서 코헬렛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자세를 발견하고자 시도한다.
셋째 부분은(7,1-12,7), 두 번째 부분이 열네 번에 걸쳐 히브리 말 에트(‘-할 때’ 또는, ‘-하기 위한 때’)라는 말로 시작했듯이, 비교의 형태를 갖는 일련의 일곱 가지 생각들과 함께 출발한다. 이어서 저자는 지혜, 지혜와 정의의 관계, 여자 문제, 권력 행사, 운명의 비밀, 현세적 정의에 대한 전통적 주제들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전도되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이들이 취하는 명백히 비정상적인 형태 등을 다룬다. 이전의 욥처럼(욥 9,22; 21,7 등. 또한 시편 37; 49; 73; 예레 12,1; 말라 3,14-15도 참조) 코헬렛은 사람들을 실존에 투신하도록 격려하는 현인들의 언행을 타협주의이며 공허한 수사학(修辭學)에 불과하다고 반발한다. 말을 많이 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며,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10,14). 역설적인 코헬렛은 비효율성으로 귀결되는 극단적인 입장들을 고발한다(일례로 7,16-17 참조: “너는 너무 의롭게 되지 말고 / 지나치게 지혜로이 행동하지 마라. …… 너는 너무 악하게 되지 말고 / 바보가 되지 마라”). 그러나 그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동시에 그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비관론자나 낙관론자라 부르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그는 현실적이고 냉철한 정신과 이성의 소유자이다. 그는 진실과 사실에 대한 열정을 지녔다. 결국 삶은 그에게 좋은 것이다. 그것은 천사나 금수처럼 굴려는 시도 없이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하느님의 선물이다(3,13; 5,17; 8,15; 9,9 참조).
코헬렛은 학파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혜’라는 큰 흐름의 가장자리에 서서 정통 신앙과 전통적 지혜의 가르침에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몇몇 시편들을(39; 62; 88; 90편) 코헬렛에 근접시킬 수는 있겠다. 그리고 코헬렛이 나온 다음 몇 십 년 후에 등장하여 코헬렛의 사상을 잘 알고 있던 집회서는(특히 집회 14 참조) 전통사상으로 돌아가는 복귀를 드러낸다. 또한 하느님과의 미래 생활에 대한 새로운 전망 속에 코헬렛과는 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지혜 2,1-10은 역으로 코헬렛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4. 성경 밖의 유사한 전승
코헬렛은 헬레니즘이 중동 지방 전역을 풍미하던 시대에 편찬되었다. 자연히 그리스 철학 사상들과 접촉이 있었으리라 추측되지만, 그것은 막연하고 불명확하다. 코헬렛의 사상과 에피큐리즘과 스토아 철학과 시니시즘〔犬儒哲學〕사이에 공통된 분위기가 상존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코헬렛의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때 곧 기원전 3세기에 살았다. 그는 아마도 헬레니즘의 사상가들과 함께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헬렛과 그리스 철학자들 사이에는 유사점보다는 상이점이 더 많으며,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그리스적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중동적, 더 정확하게는 이스라엘-유다적이다. 코헬렛에 대한 그리스 철학의 직접적 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 지혜 문학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오래전부터 정치 ‧ 문화적으로 팔레스티나에 영향을 끼쳐 온 이집트이다. 예컨대 잠언 22,17-23,14는 이집트의 ‘아멘엠오페의 지혜’와 매우 흡사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 책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코헬렛과 관련해서는 ‘절망에 빠진 자와 그 영혼의 대화’, ‘하프 연주자의 노래’ 등이 비교된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전승들과도 접촉한 것이 분명한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코헬렛의 주제들이나 표현 방법들은 ‘바빌론의 코헬렛’으로 불리는 문헌과, 특히 고대 중동 전역에 공동의 정신문화 유산으로 전해 오던 ‘길가메시 서사시’와 큰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일례로 9,9ㄷ 각주 참조). 그러나 코헬렛이 이러한 성경 외 전승들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저술되었거나, 또는 그것들이 코헬렛에게 코헬렛을 집필하도록 자극을 준 것은 아니다. 코헬렛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제기하는 문제는 이스라엘 사상의 맥락 안에서, 특히 전통적 지혜의 가르침과의 상관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5. 문학 양식
코헬렛 역시 지혜 문학서로서 전통적인 지혜 문학의 양식들을 사용하며, 다른 지혜 문학서들처럼 운문으로 되어 있는 ‘잠언 양식’이 기본을 이룬다. 이 밖에 스승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투인 ‘너’라는 호칭을 자주 쓰고, 또 자신의 직접적 또는 가상적 경험을 독백 형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유다인 성경 전승가들은 코헬렛을 운문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시편, 욥기, 잠언의 악센트 체계와는 다른 일반 체계를 이 책에 적용하였다. 그러나 코헬렛의 문장은 대구법을 비롯한 히브리 시의 특성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12,1-7에 나오는 인간의 말년에 대한 묘사는 성경 시 문학의 최고 절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코헬렛은 어떤 일정한 운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자유롭게 운율을 구사한다. 어쩌면 그의 사상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듯, 코헬렛은 문장의 형식도 일정한 틀에 묶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거의 ‘호칭 기도’와 같은 단조로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러한 반복 형식 또한 저자가 역설하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코헬렛이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주제들이 구약 성경이나 고대 중동의 문헌들과 비교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주제들을 더욱 강력한 형태로 새롭게 전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번역 성경들은 코헬렛을 운문과 산문 형식으로 나누어서 옮긴다. 그러나 그 구분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 책의 문장 가운데 명백히 산문인 것들도 있지만, 우리는 일괄적으로 운문 형태로 옮긴다. 코헬렛의 산문도 일정한 운율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운문으로 옮겨 놓는 것이 우리말로 읽고 이해하는데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6. 코헬렛과 이스라엘의 신앙
코헬렛은 정통 신앙이나 전통적인 지혜와 거리를 두고 거기에 따른 선입견 없이 자기만의 냉철한 시각과 냉엄한 판단력으로 인생과 세상사를 관찰한다. 그 결과 전통적 지혜가 가르치는 세계의 윤리적 질서가 그에게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세상의 윤리적 바탕이 무너진 것이다. 윤리 ‧ 도덕적 행동에 상응하는 응보 없이,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야 마땅한 바를 겪는 의인들이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야 마땅한 바를 누리는 악인들이 있다(8,14). 인간이라면 모두에게 어떠한 구분이나 차이도 없는 동일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9,2). 지혜를 추구하는 이나 어리석음으로 일관하는 자나 모두 같은 종말을 겪게 되고(2,15), 인간이나 짐승이나 같은 운명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도 없다(3,19). 인간들은 이를 알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악과 어리석음만이 자리한다(9,3). 인생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세상사의 불가해성으로 이어진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일정한 질서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불가해한 세상에 사는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결국 허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선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추구해 왔던 지혜 역시 소용이 없다. 물론 빛이 어둠보다 낫듯이 지혜가 우매함보다는 낫지만, 지혜를 찾음은 근본적으로 헛수고이다(2,15). 윤리와 세계관의 바탕이 되었던 전통적 지혜가 그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허무성과 사물의 불가해성은 결국 코헬렛의 신관(神觀)과 하느님에 대한 생각에 기인한다. 그는 야훼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께서 선택하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의 이름을 채택하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 또는 더 정확히 말해서 “신”(정관사가 붙은 엘로힘)만을 사용한다. 그에게 하느님은 하늘 위에 계시는 존재이다(5,1).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인간과 대화를 나누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주재하시면서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으신다(8,16-17). 코헬렛에게 하느님은 인격적 신이 아니다.
코헬렛의 근본적인 딜레마는 하느님에 대한 문제를 신앙의 입장이나 신학적 견지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것들을 배제한 채 오직 인간적 지혜와 이성으로만 해결하려고 한 데에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스라엘의 인격적-실존적 신앙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알지 못한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인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신뢰의 상실을 의미한다. 결국 결론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코헬렛은 삶 자체를 싫어하게 된다(2,17). 살아 있는 사람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고인들이 더 행복하고, 더더욱 낫기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허무한 일들을 보지 않는 인간이라고 말한다(4,2-3).
그렇다고 코헬렛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 자체를 상실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자기 민족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그에게도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다(11,5; 또한 8,17도 참조). 그분께서는 창조주로서(12,1) 세상을 아름답게(3,11), 그리고 사람을 올곧게 만드셨다(7,29). 사람들은 그분을 경외해야 하고(3,14; 5,6; 7,18; 또한 8,12도 참조) 그분께 영성적 경신례를 드려야 한다(4,17). 그분께서는 모두를 각자의 행실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3,17; 11,9; 또한 9,7; 12,14도 참조). 이러한 최종적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 인간에게는 제한적이기는 하나 실제적인 행복이 하느님에게서 부여된다(8,15; 9,7; 11,9). 인간은 너무 집착하지는 말고 이러한 행복을 누려야 한다. 코헬렛은 또한 선인들처럼 현인으로서 이러한 내용을 지혜 문학적 언어로 백성들에게 가르친다.
전통적 지혜의 몰락, 존재에 대한 환멸, 모든 선의 무상함 앞에서 인간은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코헬렛은 절대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품는다. 그는 우주 안에서의 자기 존재에 대한 계시와 자기 운명의 의미에 대한 계시를 갈망한다. 코헬렛은 자신의 전 존재를 투신하면서, 전통적 신앙이 거의 ‘학문적으로만’ 열어 둔 채 방치해 놓은 심연을 드러낸다. 오직 그리스도의 오심만이 그것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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