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氏之璧 (화씨지벽)(강유사)
단어 : 和 (화할 화), 氏 (성 씨), 之 (갈 지), 璧 (둥근옥 벽)
풀이 : 화씨가 발견한 구슬이라는 뜻으로, 천하 名玉(명옥)의 이름
출전 : 韓非子
중국 楚(초)나라 厲王(여왕) 때 卞和(변화)라는 사람이 산에서 玉의 원석을 발견하여 임금께 진상하였다.
원석을 감정한 玉人(옥인)들은 이 원석이 그냥 값어치 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 다고 하였고, 이에 변화는 한쪽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 후 厲王이 죽고 武王(무왕)이 등극하자 변화는 다시 그 원석을 무왕에게 진상하였어나, 옥인들은 역시 그것을 돌이라 하여 변화는 나머지 한쪽 발마저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변화는 두 발을 잃은 채 그 원석을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다시 武王이 죽고 文王(문왕)이 등극하였을 때, 산에서 돌덩이를 붙들고 서럽게 울고 있는 변화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변화를 불러 그 돌을 다시 옥인들에게 감정을 하였고, 그 돌이 玉石으로 판명디어 가공을 하자 세상에서 둘도 없는 훌륭한 옥이 되었다.
그래서 그 玉을 화씨지벽이라고 한다. 이 화씨지벽은 그 값어치가 連城之玉(연성지옥, 15개의 성과 바꿀 만큼의 값어치를 가지 귀중한 獄)으로 불렸고, 秦나라 昭王(소왕)이 그것을 탐을 내 趙, 秦간의 전쟁 위기가 생겨났고, 趙나라의 宰相(재상) 藺相如(인상여)가 직접 나서 뺏기지 않고 무사히 다시 가져왔다고 해서 "完璧(완벽)"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 후 화씨지벽은 진시황의 玉璽(옥새)로 쓰였다.
이 말은 玉人, 즉 간신들에 둘러싸여 충언을 듣지 않는 왕에 대한 비판이며 동시에 발이 잘라지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직언을 하지 않는 학자들에 비판인 것이다.
몇 년 전 종가집 사촌 형님께서 큰 公社의 서열 3번째 자리에 임명되었다며 점심을 산다고 하여 사무실에 가 본 적이 있다.
비서가 따로 있고 응접실까지 따로 있는 큰 사무실이였다. 함께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형님의 말씀이 "내가 이번에 앉은 이 자리에 많은 힘이 있다보니 매일 같이 밥먹자, 골프치자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 자리에 앉고 보니 임명권자인 공사의 사장님이 부장, 차장 시절보다 훨씬 무섭게 느껴진다" 고 하였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권력과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보니 그 자리를 임명할 수 있는 임명권자에게 한마디도 반대의 소리를 못하고 그저 이 자리를 오래 있게만 해 달라고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이 어디 회사만의 일이겠는가. 그 자리가 주는 작은 힘과 경제적 보상때문에 임명권자에게 한 마디의 반대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임명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자리가 가진 권력을 줄이면 될까?
아니면 그 자리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줄이면 될까?
선거도 끝나고 이제 곧 새로운 단체장들이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단체장들 밑의 많은 玉人들이 제대로 원석을 감정하여 찬란한 보석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쓰여질 수 있게 되고, 또 많은 이 시대의 卞和들이 새로운 원석들을 발견해 세상에 가져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