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느낌을 체험하는 동안 인식의 길을 위한 힘이 생겨난다(인간 자아인식으로 가는 하나의 길, 2018, 94)."
누구라도 삶에서 자신의 정신(인식)의 힘을 사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럴려면 위 문장에서 보듯이 먼저 어떤 느낌을 체험해야 한다. 어떤 느낌인지가 질문이다.
여담이다. 어느 날 바닥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둥둥 떠다니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마치 뭐가 둥둥 떠다니는 거'란 생각이 들면서 몹시 궁금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슈타이너의 책을 읽는데, 필자의 느낌과 똑 같은 느낌을 발견한 것이다. 순간 무릎을 탁 쳤고, '아! 이것이 인식의 길을 위한 체험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다음은 그 문장이다.
" 초감각적 인식의 길에서 하는 체험이 인간 영혼에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예를 들어서 극히 고조된 고독감이나 바닥이 사라져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 등이 인간 영혼에 의미하는 바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체험하는 동안 인식의 길을 위한 힘이 생겨난다(위 책, 94)."
알게 된 점은 첫째, 정신은 보이지 않아서 표현할 수도 없고 단지 느낌으로만 느끼기 때문에 작은 느낌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필자가 그나마 집중했기 때문에 '바닥이 없는 상태에서 둥둥 떠 다니는 느낌'을 파악한 것이다. 둘째, 정신의 느낌은 순간 깜빡하고 지나기 때문에 놓치기가 쉽다. 필자가 놓치지 않은 것 역시 내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셋째 정신은 반드시 체험해야 받아들인다. 이 책(인간 자아인식으로 가는 하나의 길)을 여러 번 읽었지만 비로소 그 단계에 와서야 깨닫게 된 것처럼. 그래서 정신은 그 단계에 있지 않으면 논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그래서 스승이 필요하다. 이런 느낌을 느낄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슈타이너가 주장하기를 수행에서 스승이 필요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수행의 단계에 따라서 저술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이 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여러 번 읽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역시 슈타이너의 주장이 맞았다.
그래서 과연 인식의 힘이 길러졌는지 궁금해서 실험을 해 보았다. 영혼의 활동을 알아볼려면, 새로운 곳이나 새로운 생각, 영혼이 새로운 활동을 할 수있는 상황이라야 한다. 통상 우리가 하는 생각(의식) 중에는 영혼의 작업도 있지만 기억도 있기 때문에 영혼이 작업을 할려면 기억을 하지 않는 상황,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이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곳, 늘 하던 생각(활동)이면 영혼이 굳이 작업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식의 길에서 영혼이 하는 체험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새로운 장소에 갔다면, 영혼이 그런 상태(느낌)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영혼의 인식이 이루어지는 상태가 마치 둥둥 떠다니는 느낌, 극히 고조된 고독감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간 교대 동창 모임에서 이러한 영혼의 인식작업을 체험하게 되었다. 동창들의 모습에서 분명 평소와는 다른 체험을 하였다. 어떤 동창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동창에게서 굉장히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 동창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따라야 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필자의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아마 그 동창은 평소에도 이런 에너지를 뿜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여러 모임들에서 대표를 한 듯하다. 두 번째 어떤 동창에게서는 미래와 과거가 겸비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 동창은 현장에 있을 때 경상북도 교육정책의 대부분을 입안하였고, 지금도 예절 교육 교과서를 집필, 예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와 과거를 통(융)합할 수있는 에너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하는 '특이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세 번째로 모든 동창에게서 창조의 에너지, 지혜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런 에너지는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데, 그 이유가 아마도 모두가 오랜 시간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에너지를 간직한 듯하다. 마지막 여기에서 나아가 선비의 고장인 안동 출신에게서 선비정신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선비정신이란, -원래 정신이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굳이 표현하면, 예를 갖추면서 그렇지만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우면서도 품위가 있는, 그리고 따뜻한 정도 있는 고귀한 정신이다. 물론 당파싸움으로 자신들의 이념을 고집한 면도 있지만, 친구들의 선비정신은 좋은 긍정적인 면이었다. 이는 평소와는 다른 신기한 경험이었다. 추측하기에 이것이 영혼의 인식작업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계속 영혼의 인식작업이 이루어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정신에 있어서 같이 적용이 되는, 정신이 앞으로 나아갈려면, 그 상태에서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냥 안주하면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예컨대 매일 달리기를 할 때, 힘이 드는 날 쉬면은 점점 더 하기가 힘들어지듯이, 힘이 들어도 꾸준히 계속 해야 정신이 나아간다. 죽을 만큼 힘들 때 그때 정신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힘은 자신의 영혼에게서 나오므로, 스스로가 자신의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닌, 인류를 위한 마음으로 집중과 명상을 꾸준히 하면 저절로 주어진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
두 번째로 인간의 정신과학적인 요소인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를 발달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각각 따로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에테르체는 에테르체만의 방법이 있고, 아스트랄체, 자아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는 아스트랄체를 발달시키는 방법을 알아볼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생명을 잃음과 동시에 정신(영혼)과 분리된다. 그러면 영혼에게서 남는 것이 무엇일까. 지구에서 산 것 중에서 무엇인가는 영혼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가 질문이다. 내가 어떤 일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영혼에게까지 전달이 된다. 그리고 그 일을 영혼이 한다. 결과 영혼에게 남은 그 사랑이, 영혼에게 남아서 그것을 영혼이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물론 사랑, 열망, 존경, 경외심과 같은 감정도 가지고 간다. 육체가 분리되어서도 영혼에게 남아있는 것은 이와 같은 감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무의식(정신세계)에서의 감정으로 물질세계에서의 감정과는 다르다는 데에 있다. 정신세계의 감정은 모든 존재가 하나, 모든 존재가 나와 같은 존재인데, 이런 감정은 잠을 잘 때만 가능한 의식이다. -무의식이 잠자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물질세계에서는 이런 감정을 다만 준비만 할 수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영혼이 정신세계에서 인식작업을 하도록 할려면, 이런 감정을 지니도록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감정이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으로서 예컨대 영혼이 어떤 작업을 하는데 그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이 발달했다면, 아스트랄체가 발달했다는 의미이다. 그런 감정을 나의 아스트랄체가 지니고 있고, 결과 영혼은 정신세계에서의 인식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이런 감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감정들은 더 순수하고 명확하며 강렬해질 뿐 그 질적 특성은 항상 유지됩니다. 두려움, 사랑 헌신의 본질은 늘 같습니다(발도르프 치유교육, 2021, 108)."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감정(정신세계의 감정)을 더 순수하고 명확하게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이를 간직해서 인식작업이 이루어질 것이고, 나아가 죽은 이후에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영혼이 인식작업을 할려면 나의 아스트랄체를 얼마나 변화시켜야 하는지 짐작이 되기도 하지만, 물론 그것은 짐작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도 없다. 그만큼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지닌 현재의 감정이 자신의 영혼이 인식작업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필자는 유튜브에 올라온 법상스님의 법문을 자주 듣는데, 법상 스님의 법문은 그대로 필자의 가슴으로 쑤욱 들어온다. 예를 들어 '우주 모든 존재가 바로 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보시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것이지, 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법문을 하시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문제는 법상스님의 말씀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이유가 법상스님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법상스님의 말씀이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는 나도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이 갭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누구나 그렇게 될려면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와 하나인 마음, 여기서는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가 그렇게 진화해야 영혼이 인식을 위한 힘이 자란다. 고조된 고독감이나 바닥이 사라져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 이 느낌이 아스트랄체가 우주에서 떠다니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우주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법상스님의 아스트랄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은 누구라도 정신(인식)의 힘을 쓰고 싶다면,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확장시켜서 우주와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물질세계에서 할 수있는 방법은 그 준비, 간절하게 사랑을 열망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