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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라고적10경 10수 (2017. 6. 16) 속명승보 2
제1경 석굴암
제2경 불국사
제3경 다보탑
제4경 첨성대
제5경 안압지
제6경 포석정
제7경 계림
제8경 무열왕릉
제9경 황룡사지
제10경 분황사
* 고도 경주(서라벌, 동경, 월성)에 남은 신라유적 중, 비교적 인지도와 역사성이 높은 경관 10개를 필자가 임의로 골랐다.
제1경. 석굴암(石窟庵)
동해를 응시하랴 묵상에 빠진 부처
속눈썹 끔벅하면 반안(半眼) 마저 열릴 터
연좌(蓮座) 위 근엄한 수인(手印) 사바 마귀 짓눌러
* 경북 경주시 토함산 중턱에 있는 국보 제24호다.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졸저 『名勝譜』 대한8경 중, 제2경 ‘석굴암의 아침 풍경’(9면) 시조 참조. 2017. 7. 7 도서출판 수서원.
제2경. 불국사(佛國寺)
연두 빛 불국 정토 업(業) 울린 범종소리
소쩍새 독경하다 살며시 눈물짓나
노송(老松)은 지팡이 집고 구름다리 건너오
* 토함산에 있다. 경내 면적은 38만 8,570㎡이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 국보급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재론이 필요 없는 대단히 아름다운 절로, 두 개의 멋진 다리가 있다. 아래쪽 18계단이 청운교(靑雲橋), 위쪽 16계단이 백운교(白雲橋)이다. 솔숲도 근사하다.
제3경. 다보탑(多寶塔)
화강암 깎고 잘라 성냥개비 놀이하듯
절묘한 사각불탑 다보여래(多寶如來) 현신(現身)일까
비구니 탑돌이 할 제 천년 때도 영롱타
* 불국사에 있으며, 국보 제20호다.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 두 개의 탑 중, 동쪽에 있다, 서쪽의 석가탑(국보 제21호)과 쌍벽을 이룬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탑은 조형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통일신라 석조미술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석가여래와, 다보여래의 만남을 현실공간에서 탑으로 주선했고, 소위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탑의 모습을 독창적인 시각에서 표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우리 10원 짜리 동전에도 잘 새겨져 있어, 시적으로 자주 인용된다. 유안진의 시 ‘다보탑을 줍다’. 고개 떨구고 가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중략)-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 다보여래; 동방의 보정세계(寶淨世界)에 있다는 부처.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할 때, 땅속에서 다보탑과 함께 솟아 소리를 질러 석가모니의 설법이 ‘참’이라고 증명하였다고 한다. 다보라 함.
제4경. 첨성대(瞻星臺)
하늘은 이십팔수(二十八宿) 땅에는 점성사(占星師)가
정교히 쌓은 돌탑 두루미 껴안고는
누워서 중천을 보매 수미산(須彌山)이 반짝여
* 국보 제31호로, 경주시 인왕동에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천문대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구조는 기단부·원주부·정자형두부로 나누어진다. 화강암으로 총 석재수는 365개 내외이고, 외벽은 잘 다듬어져 있으나, 내벽은 그렇지 않다. 쌓은 층은 27개로 두부를 합쳐 동양 별자리 28수(동서남북 각 7수)를 상징한다. 외관은 대체로 술병(두루미)을 닮았다. 이용범(李龍範)은 “천문관측과 관련이 없고,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須彌山)의 모양을 본떠 만든 제단”이라고 주장한다.(다음 백과)
제5경. 안압지(雁鴨池)
기러기 날아 앉자 유유히 노는 오리
연못은 진귀한 꽃 아롱진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
망새여 울지를 마오 옛적 향연 어른대
*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연못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안압지’라는 이름을 기록하고, “문무왕이 궁궐 안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으니,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을 본떴으며(이하 략)”라고 하여, 그 조성이 신선사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멋진 기와 망새(망와, 바래기와, 望斯)가 출토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정한 건물 임해전(臨海殿, 사적 제18호)은 궁중연회장으로 쓰였다.
* 무산십이봉; 중국 사천성 장강 삼협 무협(巫峽)에 있는 빼어난 12봉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신녀봉(神女峰)이다. 옥황상제의 23번째 딸인 선녀 요희가 양자강에 내려와 백성들을 위해 강을 다스리다가, 이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초나라 양왕(혹은 회왕)은 신녀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지만, 구름과 안개 때문에 결국 보지 못하고, 꿈에서만 사모했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한다.
제6경. 포석정(鮑石亭)
술 한잔 시 한수로 한시름 잊으랴만
시냇물 끌어들여 돌전복도 맛봤을까
나라는 망할지언정 유상곡수(流觴曲水) 질펀해
* 경주시 배동, 경주 남산의 서쪽에 있으며, 연회장소로 자주 이용되었다. 시냇물을 끌어들여 포어를 본떠 만든 석구(石溝)로, 사적 제1호이다.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에 헌강왕(875~885)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남산신이 나타났다고 기록된 걸로 봐,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927년 경애왕이 왕비·궁녀·신하들과 놀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이기도 하다.(다음 백과)
* 포어(鮑魚); 절인 생선 또는, 전복(全鰒)조개를 뜻한다. 포석정은 마른 굴비를 약간 닮았다.
* 유상곡수; 정원에서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읊던 연회로, 동양의 선비나 귀족들이 즐겼다. 곡수유상(曲水流觴)·곡수지유(曲水之遊)·곡수연(曲水宴)·곡강연(曲江宴)이라고도 한다. 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4세기경에 쓰인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로, 문인들을 모아 굽이진 물줄기에 줄서 앉아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문화는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었는데, 한국의 포석정은 현존하는 유상곡수 유적으로는 한중일 삼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위키백과)
* 일상일영(日觴一詠); 한잔 술에, 시 한수를 읊음.
제7경. 계림(鷄林)
닭 우는 신목(神木)에는 금궤가 걸렸으니
계림국 푸른 새벌 숲 향기 상큼한데
버섯 핀 남빛 기왓장 세월 좀이 슬었소
* 경주시 교동에 있는 경주 김씨 시조(김알지)의 발상지로, 사적 제19호이다. 원래 시림(始林)이라 하여, 신라 초부터 있었던 숲으로 경역(境域)은 약 7,300㎡이며. 느티나무·물푸레나무·싸리나무 등의 고목이 무성하다. 경내 사당이 고풍스럽다. <삼국유사> 신라 시조 혁거세왕조(條)에 보면, 왕은 계정에서 태어났고, 왕비 알영은 계룡에게서 태어난 까닭에, 계림국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림의 계(鷄)를 '새'로 읽어, 계림은 '새벌'의 다른 표기에 불과하다는 설이 유력하다.(다음 백과)
제8경. 무열왕릉(武烈王陵)
고분(古墳)은 웅장하고 잔디도 무성하랴
둘레돌에 앉은 황새 행진곡 들려줘도
명군이 오열(嗚咽)하시다 사분오열 산하여
*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의 능으로 사적 제20호다. 높이 약13m, 주위 둘레 약112m. 서악동 구릉 동쪽 사면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5기의 원형분 중,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봉분 주위는 큰 자연석으로 된 둘레돌을 세워놓았는데, 현재 일부만 노출되어 있다. 능의 전방 좌측에 귀부와 이수가 남아 있어 신라의 역대 왕릉 가운데, 피장자가 명확한 유일한 능으로 꼽힌다.(다음 백과)
* 지금 조국은 남북한, 게다가, 영남, 호남, 보수, 진보 등으로, 산산이 찢어져 있다. 지금도 ‘南男北女’는 유효하다. 옛날 영남은 ‘學文’으로, 호남은 ‘文學’으로 서로 장기를 앞세우곤 했다.
* 라데츠키 행진곡;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하여 요제프 라데츠키에게 헌정한 곡이다. 힘차게 전진하는 행진곡 풍의 리듬에, 반복되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다. 경쾌하면서도 박력 있는 진행 덕분으로 세계 각국의 여러 행사에서 자주 연주되며,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한다.
* 2018. 2. 18 시조 종장 앞 구 수정.
제9경. 황룡사지(皇龍寺址)
대가람 자취 없어 초승이 흘긴 주초
삼보(三寶)는 불에 타고 무영탑(無影塔)만 하늘거려
황룡이 재현한다면 만파식적(萬波息笛) 불겠지
*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적 제6호다. 삼국시대 가장 큰 절로 대표적 왕실사찰이었다. 신라3보인 장륙존상과, 9층목탑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머지 하나는 진평왕의 옥대(玉帶)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553년(진흥왕 14) 월성(月城)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고 할 때, 황룡이 나타나자 그곳에다 황룡사라는 절을 짓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584년(진평왕 6)에는 금당을 건립해 몇 차례 중건되면서, 고려시대까지 국가왕실의 보호 아래 호국사찰로 숭앙되었다. (다음 백과)
* 만파식적; 신라시대 전설상의 피리로, 원명은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다. 제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感恩寺)를 지은 후에,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든 피리라 한다. 이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이 들면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비가 개며, 바람이 불 때는 그치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그리하여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고, 역대 임금들이 보배로 삼았다고 전한다.(문화콘텐츠 용어사전)
제10경. 분황사(芬皇寺)
면면히 이은 법등 정묘(精妙)한 모전석탑(模塼石塔)
돌우물 감로수라 거위도 맘보춤을
살 깨진 수막새 입술 신라 미소 잔잔해
* 경주시 분황로 94-11 (구황동).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황룡사지와 잇닿아 있으면서, ‘모전석탑’으로 유명하다. 선덕여왕 3년(634)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 간 사찰로 명성이 높다.(다음 백과)
* 모전석탑; 국보 제 30호로, 높이 930cm이다. 분황사 창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바다 속의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이다. 원래는 9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뿐이다. 단층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높게 쌓았으며, 그 위에 화강암 받침을 마련하고, 탑신을 쌓았다.(대한민국 구석구석)
* 석정(石井, 돌우물); 당시의 우물 팔각석정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데, 이 우물 속에 호국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1965년 우물에서 14구의 목이 부러진 석불이 출토되었다. 학명은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다.
* 신라 수막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신라인의 미소'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한다. 두터운 얼음장마저 녹일 듯 따스한 미소를 띠면서도, 꼭 다문 입이 오뚝한 콧날과 함께, 외유내강한 신라여인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백과사전). 신라 때 만든 것이 아니라, 일제 시절 다른 지방에서 재현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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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문학》 제15호(2017년) 명승보 2. 시조 2수.
* 2017년 11월에 발생한 경주, 포항 일대의 지진으로 귀중한 유산이 손상될까 걱정이다.
* 졸저 「鶴鳴」 정격 단시조집(8) 산려소요 4-2(272~281면). 2019. 6. 20 도서출판 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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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 대한민국 등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