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서 좋다고 했는데 이번에 한 며칠 갈까 착각에 차차 감상하기로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고 있던 바람과 비에 눈 오듯 꽃잎이 날립니다. 행복한 시간은 뇌진탕 같이 왔다 가고 죽지 못해 사는 시간은 두드린 금처럼 늘어나니,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라일락도 피고 철쭉도 피고 민들레도 피고 뭐 온갖 꽃들로 온통 정신없을 호시절을 다만 꽃답게 누리고 싶은데 끝나지 않은 업보들로 또 한바탕 야단이 나고 있습니다. 하도 당하다 보니 당신의 섭리라고 익힌 것들의 내막이 무언지 한편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가 죽을까? 누구를 원망하는 것이 맞을까, 무얼 탓하는 것이 타당할까. 좋든 싫든 아니거나 말거나 당신의 거대한 섭리에 포괄된다고 시원하게 믿어주는 것이 맞을까 또는 그래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나 또 저기서나 공책에 써가며 익혔던 바르고 선하고 옳고 공평한 일들은 웃기는 짜장이 되고 가끔 득템하는 희토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로 오래 살고 싶습니다. 인류라는 종의 진화는 어떻게 흘러갈지, 지능을 택한 유인원이 주변의 평화를 이룰 수 있을지, 예수는 자연을 거스른 개체였는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까 막연한 추측을 해봅니다. 자칭 언론이라는 뻥쟁이들이 온 세상을 주무르고 좀비처럼 홀려다니는 근친이웃들, 나 자식 가족 연인 뭐 이런 몇 개 안 되는 것들을 위해 수 곱절의 남을 몰살 할 계획을 할 때, 그리고 나중에 밝혀주는 또 정의로운 역사가 등장해도 신원할 수 없는 맥없는 영혼들에 대한 섭리의 입장은 뭔지, 머 이런 것들은 얼마나 오래 살면 알 수 있을지 요즘 아주 아주 궁금합니다.
꽃 이름만 써놔도 좋은데 연타석 홈런처럼 개나리부터 피기 시작합니다. 꽃을 볼 때 그냥 좋은 기쁨이 하루를 가득 채울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줄이고 줄여 잠깐이라도 누려보면 좋겠습니다.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았을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화가’ 뭐라 뭐라 했던 예수의 평화가 내 속의 모든 걸 밀어내고 빈틈없이 독재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가락을 잘라내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감의 저주를, 딴 나라의 고통으로 자신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지도자를 세우는 인종주의자들에게 구원의 소외를, 그들과 손잡고 자국민을 전쟁터로 몰아세우는 더러운 코메디언들에게 송사하는 천사를 선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꿈에서도 가능하지 않겠지요. 한 번도 현실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으니.
봄비에 떨어진 꽃잎 같은 아이들 또 그 아이들과 함께한 어른들 모두 좋은 곳에 깃들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계절 제일 좋은 때를 맘껏 누리지 못한 아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 몸서리치는 무서움과 억울함들을 당신께서 모두 들어주시고 달래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힘에 부치는 일이니까요. 덤으로 그 위로가 우리들 속에서도 부활해서 억장이 무너지는 시절을 잘 견디게 하는 밥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깨어나신 님의 소식으로 우리 친구도 깨워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동안 충분히 겪었을 아픔에서 걸어 나오게 하시고 자전거를 동해로 향하는 꿈도 꿀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피로 영원히 요동치는 심장을 갖게 해주세요. 우리의 친구를 위하여, 우리의 친구이신 당신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다시 사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