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 140주년 찬양제
글. 김수경 Esther 목사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는 일본을 떠나 1885년 4월 2일 부산에 도착했고, 3일 뒤인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 항을 통해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다. 어둠 속에 있던 조선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기 위해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제물포에 도착한지 어느덧 1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들이 한국 땅을 밟고 기도한 내용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도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청청하고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아 있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모르고, 묶여 있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를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장옷을 쓰고 다니거나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하게 될 일이 어떤 것인지 그 일이 어떻게 나타나게 될는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에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을 날이 있을 것을 믿을 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저의 믿음이 앞날의 조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의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배를 드릴 예배당도 없고 가르칠 장소,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박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옵소서.”
https://youtu.be/5NOW7RUDB_w?si=OV07zNh5kBiqZOYR
한국에서는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와 축하 행사가 올 2025년 한 해 동안 계속되었고, 미국에서는 지난 11월 2일(주일) 오후 5시에 뉴저지 참빛교회에서 6개 합창단이 모여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 140주년 기념 연합 찬양제>를 거행했다.
1부 예배는 사회 김동권목사, 기도 강원호목사(뉴저지남성목사합창단 단장), 설교 김영식목사(명예대회장), 봉헌기도 이정환목사(직전 뉴저지목사회장), 축도 이용걸목사(명예대회장)의 순서로 진행됐다.
2부 순서는 5백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뉴저지 장로성가단, 여성목회자합창단, 뉴저지 선교합창단, 뉴저지 찬양합창단, 뉴저지 사모회, 뉴저지 남성목사합창단 등 6개 합창단이 감사의 찬양을 올렸고, 뉴저지 남성목사합창단의 지휘를 맡고있는 김종윤 목사의 지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와 "할렐루야"를 모든 합창단이 함께 찬양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연합찬양제의 명예대회장을 맡은 이용걸 목사는 "선교 140주년을 맞이하여 뉴저지에 속한 모든 찬양 합창단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입니다. 이번 찬양 축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병을 보내시어 죄악의 세력이 무너지고, 복음이 증거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하나님의 도성이 이루어지기를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수고하신 모든 합창단원들에게 감사드리며 온 교회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공동 명예대회장 김영식 목사는 사도행전 1장 8~11절 말씀을 본문으로 "땅끝까지"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 140주년 기념 연합 합창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분열과 쟁투가 심한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서로 연합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름답고 귀하며 천국을 이 땅에 이루는 일입니다. 함께 뜻을 모아 큰 기적을 이루어 보십시다.
연합은 나의 희생과 충성 봉사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이번 연합 합창제를 통하여 새로운 복된 일들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선교는 예수의 복음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희생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내가 죽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부활의 새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라며 힘들고 지친 영혼들이 이 찬양제를 통해 치유되는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했다.
준비위원장을 맡은 유병우 목사는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 복음의 씨앗을 들고 찾아온 20대 젊은 청년 두 사람 아펜젤러, 언더우드 이 작은 형제들의 눈물, 헌신, 열정과 인내로 대한민국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 복음의 씨앗을 스스로 넓혀 오셨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저는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 복음의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고, 돌아보니 지난 35년의 목회의 발자취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들과 동일한 땀과 눈물, 열정과 은혜, 실패와 좌절, 성공과 행복이 제 삶의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걸었고, 저들이 걸어왔던 그 길을 누군가가 걸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일하시고, 스스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누군가를 부르고 계시고, 그에 순종하는 이들과 함께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걷게 될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찬양이 진행되는 동안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가 함께하길 기도하며, 성도들이 이 예배를 통해 회복과 치유의 새로움을 경험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특히 아펜젤러 선교사의 증손자인 로버트 게하르트(Rev. Robert Gerhart)목사(83세)가 참석해 아펜젤러 선교사에 대한 귀한 간증을 나누었다. 다음은 로버트 게하르트 목사의 간증이다.
🔺 Appenzeller with some of his students
"이제 저희 가문이 어떻게 여러 세대를 걸쳐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가 함께 속한 이 영적 가문과 함께 연결되었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400년 전에 저희 조상들 중에서 종교 개혁의 결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 종교 개혁이 일어난 곳은 스위스와 일부 프랑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사람의 가르침과 의견보다 높고 권위가 있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랜 고난과 신앙의 제약 끝에 그들 중 일부인 저희 가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새로운 땅에 가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윌리엄 펜이 세운 '펜실베니아'로 불리는 곳에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의 한 분인 피터 게하르트(Peter Gerhart)가 제 조상입니다. 그분이 1739년에 펜실베니아에 도착했을 때의 나이는 22세였습니다.
그들은 다 독일어를 사용했으며, 가정과 교회에서도 독일어로 예배했습니다. 현재 여기 뉴저지에서 약 80마일 정도 떨어진 펜실베니아 남동부 퀘이커 타운과 남쪽 슈더튼(Shoudenton) 사이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50년 후에 피터의 손자 좐 필립 게하르트(John Philip Gerhart)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메노나이트(Mennonites) 여성과 결혼을 했고,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저도 메노나이트 목사인데, 우리 모두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분들은 그렇게 살고 계시지만, 저와 같은 사람은 여기 계신 한국 감리교인들처럼 살고있습니다.
좐의 8명의 자녀 중 장녀의 이름은 마리아이고, 넷째는 아들인데 그분에 제 고조 할아버지입니다. 장녀인 마리아는 기드온 아펜젤러(Gideon Appenzeller)와 결혼했습니다. 기드온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에서 오셨는데, 그가 살던 지역 이름이 아펜젤러였습니다. 스위스에서 아펜젤러라는 치즈(Appenzeller Cheese)를 만드는데, 참 좋은 치즈입니다.
기드온 아펜젤러 가족은 심한 핍박을 피해 그곳으로 이주했습니다. 마리아와 기드온은 같은 동네에서 살게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어머니의 성을 자녀의 미들 네임으로 쓰는 것이 그 당시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의 성이 게하르트(Gerhart)였기 때문에 그들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라고 지었습니다. 제 고조 할아버지의 사촌이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님이십니다.
올해 여러분(한국)이 지키는 추석이 10월 6일이었지요? 1876년 10월 6일 17세의 아펜젤러가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고백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후 매년 10월 6일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기억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후 그는 펜실베니아 랭케스터에 있는 프랭크린 마샬대학(Franklin and Marshall College)에 입학했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대부분의 게하르트 가문은 독일 개혁주의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독일인은 예배를 상당히 진지하게 합니다. 아펜젤러가 랭케스터에 갔을 때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 공동체에서 그들과 함께 신앙을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아펜젤러는 그곳에서 "할렐루야, 아멘"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며 놀랐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기 전에 여성분들이 찬양하는 모습(뉴저지 사모회, 여성목회자 합창단)을 아펜젤러 선교사님께서 보셨으면, 이러한 찬양이 독일 교회에 필요한 찬양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는 구세군을 통해 기독교 신앙과 기쁨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com/watch?v=PLVSG7fou20&si=dqPQXv4Sz8FrQs4p
https://youtu.be/JfrPgi_fTZo?si=Juihy5a4SCk8bfvy
그는 랭케스터에서 감리교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후 여기에서 멀지않은 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했습니다. 이때 헨리 아펜젤러는 미국 바깥에 있는 다른 나라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싶어했고, 그는 일본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감리교회 선교부에서는 한국에 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헨리는 엘라 다지(Ella J. Dodge)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둘 다 하나님을 섬기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헨리와 함께 선교사가 되고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1884년 12월 24일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에 한국에 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헨리와 그의 신부 엘라는 1885년 미서부(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호르스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윌리엄 스크랜턴(Dr. Willam B. Scranton) 의학 박사가 함께 동행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헨리 아펜젤러는 비극적인 선박 충돌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1902년에 일러난 사건입니다. 헨리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17년간 선교하셨고, 하나님께서 일찍 부르셨습니다. 17년간 하나님께서는 아펜젤러 선교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오도록 사용하셨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신약을 한국어로 번역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1893년에 안식년으로 잠깐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시카고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1900년(42세)에 미국에 와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1901년에 선교사님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 사모님은 미국에 남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한국어로 구약을 번역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갔습니다. 그는 성경번역위원회에 있으셨기에 한국에 와서 그들과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는 육지로 다니지 않고 배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배 안에는 어린 한국 소녀가 함께 동승했습니다.
항해하는 도중 마주오는 배와 충돌하여 그 배가 침몰했습니다. 그때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그 소녀를 구하려고 했으나 배가 너무 빨리 침몰하는 바람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질 당시에 저는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는데, 그 소녀를 구하기 위해 44세의 헨리가 목숨을 잃었다는 그 소식을 교회로부터 들은 미국에 있는 저희 가족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이 지키는 추석이 풍성한 추수감사절이라고 들었습니다. 1885년에서 1887년 2년 동안 한국에서 그 복음이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볼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 교회가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교회를 개척하고 있고 또 교회가 성장하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열매가 여러분의 교회와 여러분의 교단 연합 가운데 계속해서 통상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우리 미국 교회에 가르쳐 주실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https://youtube.com/watch?v=_1mbYn209vw&si=4uDrl0M3qywgkryM
우리는 '한국 교회를 기도하는 교회'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이후로 저는 제 친구들한테 기도하는 교회 뿐만이 아니라, 찬양하는 교회, 노래하는 교회로 알리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을 저희 교회에 초대해서 어떻게 찬양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시길 축복합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https://youtu.be/TypwhDdR4ls?si=shA-LtN4xJXDR2YV
https://youtube.com/watch?v=Fu68AHkWyS4&si=FKcYufM9vuvTNWVr
필자가 아펜젤러 선교사의 증손인 로버트 게하르트 목사님과 인사를 나눌 때,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게하르트 목사님도 한국어를 좀 하시냐고 여쭈었더니, 그의 간증 마지막에 했던 그 말씀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제가 지금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지만, 천국에 가면 한국어를 모두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옳은 말이다. 천국에 가면 못 알아들을 말이 없을 것이고, 모든 이가 함께 즐겁게 찬양하고 사랑이신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며, 슬픔도 괴로움도 없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오늘도 하나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어떤 선교사가 조선에 와서 갓을 쓰고있는 한 선비에게 “조선 남자들이 머리에 쓰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하고 물으니, 그 선비는 “갓이요!”라고 대답했다.
선교사는 “갓(God)? 그럼 조선 사람들은 머리에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다닌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조선에는 이미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이 아닙니까?”하고 놀라움을 금치못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김수경 목사 Pastor Esther Soo-Gyung Kim
뉴 욕 퀸 즈 교 회
†he 2nd Life Foundation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