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
'화수분 줄거리 (전영택)
나'는 어느 초겨울 추운 밤 행랑아범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그 해 가을에 아범(화수분)은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행랑채에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극도의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다. 바로 어제 아홉 살 난 큰애를 어멈이 어느 연줄로 강화로 보내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아범이 슬피 우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화수분은 발을 다쳤다는 형의 소식을 듣고 양평으로 간다. 어멈은 쌀말이라도 해 가지고 올 것을 기다렸으나, 아범은 추운 겨울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어멈은 어린 것을 업고 남편에게로 떠났다.
그 후 어느 날, '나'는 출가한 여동생 S로부터 그들의 뒷얘기를 전해 듣는다.
화수분은 어멈의 편지를 받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화수분이 어떤 높은 고개에 이르렀을 때 희끄무레한 물체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어멈과 그의 딸 옥분이었던 것이다. 어멈은 눈을 떴으나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무장수가 지나가다가 젊은 남녀의 껴안고 죽은 시체와 이제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빛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차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린 것만을 소에 싣고 갔다는 것이다. (1925년, 조선문단)
핵심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일제 강점기의 추운 겨울 도시 및 시골길
- 시점 : 혼합 시점(1인칭 관찰자 시점 - 1,2,4,5장. 1인칭 서술자 시점 - 3장. 전지적 작가 시점 - 6장)
- 성격 : 인도주의(휴머니즘)
- 경향 : 자연주의/ 문체 : 사실적이고 간결한 문체
- 제재 : 행랑 식구들의 극한적 빈곤
주제 : 가난한 부부의 사랑과 그 부활의 의미. 일제하 하층민 일가의 궁핍상
등장 인물
- 주인공 : 화수분(나의 집에 세들어 사는 행랑아범). 한때는 부유한 집안 출신. 결혼 후 지금까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선한 인품에 우애가 돈독하고 부부애가 강한 인물
- 어멈 : 가난하지만 착한 행랑아범의 아내
- 귀동이, 옥분이 : 화수분의 딸들
- 나 : 서술자로서 집주인. 화수분네 가족에게 연민을 지니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함. 냉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무덤덤한 관찰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행랑아범과 그 가족의 비극을 자연주의수법으로 그린 전영택의 대표작이다.
[화수분]이란 의미는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인 동시에 재물이 자꾸 새끼를 쳐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아니한다는 보통 명사이기도 하다. '화수분'은 형이 둘 있는데 맏형은 장자(長者)요, 둘째형은 巨富로서 이 역시 보통 명사로 쓰일 때는 각각 백만장자란 뜻과 아주 큰 부자로 통용될 수 있는 이름이다. 따라서 아들 삼 형제가 모 두 잘살 수 있도록 지어진 이름이다.
1920년대 일제의 수탈이 날로 가속화되어 궁핍화된 식민지적 경제구조에서 서울과 양평을 배경으로 ,화자인 '나'를 통하여 주인공과 그 일가에 일어난 사건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어서 제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끝 부분에 전지적 작가시점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화수분'은 부모가 잘 살라고 지어준 이름과는 달리 못 배우고 가난하지만, 마음씨는 순박한 사람이다.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피동적 인물이며, 작가가 보는 화수분의 삶에는 아이러니(反語)가 들어 있다.
어느 추운 겨울 밤,'나'는 잠결에 행랑채에서 슬픈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 울음소리는 행랑아범이 내는 것이었다. 그는 극도의 가난으로 거지와 다름없는 살림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두 명 있었는데 가난으로 인하여 굶어 죽일 지경에 이르게 되자. 큰 딸을 낯모르는 어떤 부인에게 주고 만 것이다. 밖에서 돌아온 화수분은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고, 어린 딸자식을 생각하여 우는 것이다.
이 작품 서두에 제시된 '깊어 가는 추운 밤, 사람을 위협하는 바람소리'등은 비극적인 전개를 암시하고 있다. 그의 울음소리 또한 경이적인 모멘트로서 화수분 일가의 불행한 운명에 대한 복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수분 일가의 궁핍상은 자식을 남에게 주는 행위에 집약되어 있는데, 큰딸을 남에게 준 사건은 그가 소리 내어 울었다는 부분과 인과 관계를 갖는다. 이 사건은 다음에 나오는 화수분의 귀향과 발병, 그리고 어멈의 귀향과 눈 속에서 죽어 가는 어버이의 고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런 일이 있는 다음, 화수분은 시골에서 농사 짓는 형(巨富)이 발을 다쳐 거동이 불편하다는 기별을 받고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떠난다. 겨울 나기 전에 곧 다녀오겠다던 아범이 입동이 지나고 매서운 추위가 닥쳐와도 소식이 없자, 남아 있던 어멈과 둘째 아이 는 아범을 찾아 시골로 향했다.
한편, 시골에 도착한 화수분은 형 대신 일을 너무 심하게 하다가 자신도 과로가 겹쳐 몸져눕게 된다. 열에 떠서 큰딸을 부르며 울다가, 서울에서 어멈이 보낸 편지를 받고 벌떡 일어나 집안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로 떠난다. 백 리쯤 온 그는 해질 무렵, 어느 고개 나무 밑에서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내와 어린 딸을 발견하고는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는다. 이튿날 아침, 해가 솟아올랐을 때 그 자리에는 아주 끔찍한 광경이 나타났다. 화수분과 그의 아내는 서로 껴안은 채 동사체가 된 것이다. 다만 어린것 하나만이 죽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은 두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어린 것을 감싸준 덕분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정적 배경이나 기후적 조건을 주관이 배제된 체 차갑게 묘사함으로 자연주의적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반면 그 당시 신경학파 작가들이 즐겨 다루던 비극적 결말의 소재였음에도 소설 곳곳에서 주인공 내외가 가지는 딸에 대한 애정이 인도주의 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살기가 어려워 어린것을 남에게 준다'든지 끝내'부부가 추위 속에서 얼어 죽으면서 대신 어린 생명을 구하는'온정'등이 바로 그런 표현이다.
늘봄 전영택은 목사로서의 신앙 생활과 소설가로서 창작을 병행했다. 그래서 인지 그의 작품은 대부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돈독한 박애주의(세계동포주의)정신에 바탕을 둔 자연주의 계열로 볼 수 있다. [화수분] 역시 끝부분에서 다분히 인도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작품으로는 [생명의 봄](1920),[흰닭](1924),[크리스마스 새벽](1948),[소](1950)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