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3때 진학 상담을 하러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가셨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조균연 선생님으로 아주 점잖으신 분이셨고, 또 성적이 오르지 않는 나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갖고 계셨다. 학교란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이 돋보이는 곳이고, 선생님들도 그런 등용반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하시는데, 그렇지 않는 나를 그 분은 왜 그리 좋게 보셨는지... 기억으로는 그 분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하루는 모의고사를 마치고 가체점을 했는데, 높은 점수가 나왔다.
고3 입시를 앞두고 친 모의고사 성적이 높게 나오니 나는 무척 흥분했다.(지금까지 노력한 결실을 이제서야 맺는구나! 이런 마음이 든 거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가체점한 성적을 칠판에 써 공개하는 것이 당연시 여기던 때였다.
앞에 나와서 칠판에 성적을 기재하는데, 담임이신 조균연 선생님이 그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감각적으로 그 분이 나를 주시한다는 것을 느꼈고, 좋은 점수를 적는 나를 보시고 흐믓해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학창시절 교회에서는 아주 활달하고 적극적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성적이라는 열등감으로 조용했고,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물론 기죽고 우울하게 지내지도 않았지만, 내 속에 있는 열정을 성적이라는 장애에 갇혀서 발산하지 못했다.
하나님께 기도도 많이 했다.
"하나님! 왜 이런 시련을 내게 주시나요! 왜 나를 부끄럽게 만드시나요?"
이런 기도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왜 성적이 오르지 않아야 했던 이유 말이다..
내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내가 그때 공부한 만큼, 원한만큼 성적의 결실을 보았다면, 결단코 나는 성직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따라 갔을 것이 분명하다.(물론 그 길이 나쁘거나 열등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은 내가 세상 길을 가는 것을 원치않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목회의 길에 스스로 결단하며, 인정하며, 자복하기까지... 수 많은 앙탈과 거부와 주저함을 나타낸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나는 절대 내 의지로 성직의 길로 갈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교회가 좋고, 하나님이 좋아도 난 그 길을 원치 않았다. 그때는 말이다.
모교회인 대구만민교회 양정석 장로님이 어린 시절부터 나를 늘 '미래의 김장로'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이 나의 종점이었다. 그 이상은 원치 않았다. '김 장로'는 몰라도 '김 목사'는 거부했다.
그럴 것도 그럴게.. 우리 풍산 김씨 집안에 예수 믿는 가정은 우리 가정 밖에 없었고, 또 친족들 중에 기독신자도 전무했다.
나는 목회자의 길과 삶이 뭔지? 본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다.
그런 나에게 성직이란, 별나라 이야기를 넘어 아예 내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세계였다.
아버지가 진학 상담을 하러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한번도 나와 상의를 해 본적도 없는 질문을 선생님께 대뜸 물었다.
"경근이가 신학대학에 가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신자도 아니셨던 담임 선생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경근이는 목사가 되면 대승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와서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미 대대로 준비된 자도 많은데, 하필 나를 그 분의 일꾼으로 택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분의 선택과 지혜는 신묘막측하다. 은혜 밖에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