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67) 시 창작 레시피 ①~②/ 시인 양애경
시 창작 레시피 ①~②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정보를 얻기가 쉽습니다. 요리를 못하는 저도 인터넷에서 요리 레시피를 퍼 와서 따라 하다 보면, 비교적 비슷하게 요리를 해냈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 그림 그리기에도 레시피 같은 강의가 있습니다. 붓질이나 색체 넣기 같은 그림 그리기 동영상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시 쓰기에도 레시피가 있어서 따라 하다 보면 그럴 듯하게 시를 써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시 쓰기를 레시피화 하기는 어렵지만, 오랫동안 시를 쓰고 시 쓰기를 가르치면서 몇 가지의 중요한 요령은 터득했습니다. 시를 빠르게 잘 쓸 수 있는 그 몇 가지의 요령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① 발상 – 새로운 눈을 가져라
시를 쓰려면 우선 아이디어를 찾아야 합니다. 시를 위한 발상 단계입니다. 무엇에 대해 시를 쓸까? 하고 궁리할 때 먼저 새로운 눈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게 안 되지요. 백일장에 가면 시제(詩題)를 내주고 그 제목으로 시를 지으라고 합니다. 그럴 때, 아직 시 쓰기의 초보인 사람은 자꾸만 전에 그 제목의 시를 보았던 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이라는 제목이 나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저절로 머릿속으로 ‘우산 셋이… 검정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하고 생각하다가 ‘아차, 이건 동요지?’ 한 적은 없나요? ‘봄’이라는 제목이 나오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하다가 ‘아차! 이것도 노래에 나왔던 거지?’ 하고 탄식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문장, 어디선가 본 듯한 비유법…. 이런 것들은 철저히 배제시켜야 합니다. 무릇, 예술의 제일 중요한 속성 중 하나가 참신함입니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것,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현대 예술에서는 ‘낯설게 하기’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낯설게 하기’의 뜻은, 무조건 처음 보는 새로움이 아니라(긴 인류의 역사 속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말도 있지요), ‘평범해 보이던 일상을 새롭게 보이게끔 하는 새로운 시각’을 준다는 의미가 됩니다. 쉬운 예를 들어봅시다.
‘소녀는 장미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네’라는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만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소녀들은 대부분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다음은 어떨까요?
‘칠순의 외할머니가 장미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네.’
칠순의 노인이 장미 꽃봉오리에 비견될 만한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아마, ‘어, 뭐지?’ 하고 시 속으로 끌려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새롭게 꾸며 맞추라는 뜻은 아닙니다. 독자에게 놀라움을 주려고 억지 표현을 자주 쓰다 보면, 독자는 더욱 시와 멀어지게 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일은 우리의 삶 속의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참신하고 진정한 시각을 갖는 일입니다. 그것이 ‘낯설게 하기’를 현대 예술의 중요한 특성으로 찾아낸 문학인들의 의도입니다.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좋은 시의 제재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표현 면에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예쁜 표현은 과감히 버리기 바랍니다. 평범하고 건조한 일상어가, 많이 보아 식상해진 화려한 문학적 수사(修辭)보다 참신합니다. 자, 이제 어떤 일을 시로 쓸 것인지 결정했습니까? 그러면 소재와 주제를 생각할 단계입니다.
② 소재 잡기
㉮ 구체적인 이름을 사용하라.
소재는 글감입니다. 시의 소재는 시에 들어갈 글감입니다. 시의 내용에 들어갈 다양하고 적합한 소재들을 선택해서 시를 풍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재는 구체적인 이름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럼 다음 시의 예를 봅시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는 산기슭으로 접어들자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왠지 마음에 들지 않지요?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고쳐 써 봅시다.
보랏빛 자운영이 우거진 산기슭으로 접어들자
머리가 붉은 박새가 울기 시작했다.
느낌이 풍부하고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습니까? 작가와 시인 중에는 나무 이름, 꽃 이름, 풀 이름, 새 이름, 물고기 이름 등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절로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글을 쓰기 위한 노력으로 공부를 한 것입니다. 식물도감, 곤충 도감 등을 곁에 두고 늘 읽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자연물만이 아니라 인공물이나 지명(地名) 등 모든 사물에 대해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가져 온 그러한 관찰과 탐구심이 시를 쓸 때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시를 심사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 「거미」였는데, 한 명의 학생만이 ‘무당거미’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사용해서 작품을 썼습니다. 거미의 생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더군요. 거미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쓴 시들 속에서 그 작품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점만 가지고 평가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관찰력이 뛰어나고 어휘를 풍부하게 사용할 줄 알았던 그 학생의 작품이 최우수작으로 뽑혔습니다. 구체적인 이름들은 독자에게 상상력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합니다. 구체적인 소재들을 사용합시다.
㉯ 작품에 맞는 풍부한 소재를 사용하라.
미술 작품에 풍부한 색감과 적절한 소재의 배치가 중요한 것처럼, 시 속에도 풍부한 소재들이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거미에 대한 시를 쓴다면, 거미줄에 걸린 매미, 하루살이, 잠자리, 파리 들이 등장하고, 거미줄이 위치한 장소의 풍경과 그러한 장소에 있음직한 여러 소재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문학작품의 기술에는 묘사와 서사가 많이 쓰이는데, 시에서는 특히 묘사가 주가 되는 작품이 많습니다. 그 묘사에 있어서 적절하고 풍부한 소재가 사용되는 것은 매우 좋은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잡다한 소재들을 많이 늘어놓기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요. 이미지 형성과 주제 부각에 도움이 될 만한 소재들의 선택이 필요한 것이죠.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가 시 쓰기에도 필요합니다.
< ‘유쾌한 시학 강의(강은교·이승하 외 지음,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09.2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67) 시 창작 레시피 ①~②/ 시인 양애경|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