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68) 시 창작 레시피 ③~⑤/ 시인 양애경
시 창작 레시피 ③~⑤
네이버 블로그 - 침향의 명가, 능인향당/ 파초 - 김동명 (芭蕉 - 金東鳴 )
③ 주제의 선정(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과 그 배치
주제는 시의 내용이며,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고, 시 자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입니다. 시인은 주제를 시 속에 확실하게 써 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분명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시가 주제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는 말에는 반대하는 이도 있을 법 합니다. 시는 고도의 언어 기법이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주제가 읽혀질 수 있는데, 이를 ‘시의 복합성’이라고 합니다. 일상의 말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한 내용을 시는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분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선생님은 시 창작을 가르치면서 ‘시에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야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말로 난해한 시를 쓰도록 부추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틀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돋보이고 신비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본인도 모르는 시를 쓰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좋은 요령 한 가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앞서, 거미에 관해 시를 썼던 학생들을 예로 들었는데요. 거미에 대해 쓰든, 고층 빌딩에 대해 쓰든, 결국 주제는 ‘인간’의 문제를, 그 중에서도 시 쓰는 사람 자신의 문제를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찍을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빨리 될 것입니다. 원거리의 배경에서부터 잡던 카메라가 점점 가까워져서 마침내는 주인공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듯이, 시 또한 소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시 쓴 사람 자신의 인생 이야기, 그 의미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학생은 ‘거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빌딩 유리창 밖에 매달려 일하는 ‘빌딩 청소부’의 이야기로 왔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가장(家長)들 이야기로, 그리고 마침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겨운 삶을 계속해 온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그의 딸인 자신의 관계를 주제로 놓는 것이죠. 원거리 → 중거리 → 근거리 → 자기 자신으로 초점을 맞춰 오는 구조인데, 시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구성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순서는 역으로 자신 → 중거리 → 원거리의 구성으로 할 수도 있고, 왔다 갔다 교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④ 표현 기법
시는 언어 예술인 문학 중에서도 가장 고도의 언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표현의 기법도 다양합니다. 은유, 직유, 의인, 활유, 의성 등 다양한 비유법 외에도, 이미지의 사용과 아이러니, 풍자, 역설, 상징, 페러디, 반복, 언어유희 등등 시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습작을 열심히 하려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훈련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시론 책을 한 권 사서, 표현 기법을 소개하는 항목들을 읽으면서 위의 각 항목의 기법들을 연습해 보는 겁니다. 자기 나름의 표현 훈련이 되겠지요. 조금 더 쉬운 방법도 있습니다. 시창작론 책에는 친절하게 연습 문제까지 내준 것들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연습도 하고 작품 양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른 공부할 것도 많고 해서 어렵다면 아주 기초적인 연습만 해봅시다. 제일 기본인 ‘비유’의 경우, 원관념의 이미지와 의미를 풍부히 하기 위하여, 보조관념을 결합시킵니다. 서로 이질적인 대상이지만 어떤 유사성으로 두 관념이 묶일 수 있음이 비유 성립의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 · 내 마음(원관념) = 호수(보조관념)
그대 노 저어 오오 · 내 마음을 알아주오 = 노 저어 오오(보조관념)
마음과 마음의 만남을 원하는 김동명의 이 시구는, 마음과 호수의 유사성을 독자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유사성보다는 거의 유사성이 없는 대상들의 이른바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을 꾀하는 비유도 많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예술에 있어 참신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이러한 폭력적 결합 쪽이 더 인기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스러운 조합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연스럽게, 적절할 때 적당히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또한, 시는 비유 등의 표현 기교를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유효 적절히, 최소화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비유를 잘 사용하기 위한 요령은 없을까요? 여기서 습작을 위한 한 가지 좋은 요령을 알려 드립니다. 이것은 시론에서 ‘근본 비교’라고 부르는 기법입니다. 근본 비교한 한 가지의 사물과 대상이 중요한 비유로 묶이면, 그것에 준해서 자동으로 다른 소재들이 묶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시 전체를 짜임새 있고 통일성 있게 만드는 좋은 전략입니다.
김동명의 시 한 편을 더 예를 들어 근본 비교를 설명해 보기로 합시다.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기리우자.
― 김동명, 「파초」
이 시의 근본 비교는 ‘파초 = 남쪽 나라에서 온 여인’이라는 비유입니다. 일단 이 근본 비교가 성립되면 파조(바나나 나무)의 뿌리는 ‘발등’이 되고, 잎은 ‘드리운 치맛자락’이 됩니다. 여러 가지 비유들이 연속으로 성립할 것입니다. 근본 비교를 사용하여 시를 써 보기 바랍니다. 비교적 쉽게, 짜임새 있고 통일성 있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⑤ 솔직하고 금기에서 자유로워라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충고는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을 미화하려 한다든지, 말을 화려하게 쓰려고 한다면 작품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 속 금기(禁忌)가 아주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어’라든가 ‘이렇게 하찮은 것을 이야기해도 될까? 시는 좀 더 고상한 이야기라야 하잖아?’ 하는 여러 가지의 망설임 말입니다. 그런 것에서 놓여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창작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한 것이야말로 글 쓰는 사람의 무기이며, 솔직하게 쓸 때 문학의 최종 목표인 감동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유쾌한 시학 강의(강은교·이승하 외 지음,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09.2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68) 시 창작 레시피 ③~⑤/ 시인 양애경|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