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난골족 -백석(1912~96)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멫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가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도 정주 ‘여우난골’이다. 명절 하면 고향, 고향 하면 거침없는 사투리, 사투리는 말맛으로 뜻이 선다. 또 설날 하면 음식과 아이들과 오랜만의 피붙이들, 아이들은 깔깔 즐겁고 어른들은 에헴 의젓하시다. 어린 막냇삼촌과 또래 큰조카가 토닥거린다. 하나가 울면 할배·할매는 손주 편, 엄매는 자꾸 부엌으로 끌고 간다. 할매를 잡고 버텨야 한다. 끌려갔다가는 엉덩이에 먼지가 나게 맞는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여우난골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