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69) 기억력과 상상력 - ① 기억된 정서와 기억되지 않은 정서/ 시인, 순천대 명예교수 송수권
기억력과 상상력 - ① 기억된 정서와 기억되지 않은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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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억된 정서와 기억되지 않은 정서
상상력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열어준다는 것을 제1강 ‘시적 표현과 진실에 이르는 길’에서 킬머의 〈나무〉, 뤼노의 《시인을 꿈꾸는 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산문의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데 반해 시의 언어는 의미를 구성하는 직설이 아니라 비유와 상징, 함축으로 시공을 통합하는 하나의 울림으로, 언어 그 자체가 존재이며 목적이다. 다시 말해 의미 전달 이전에 정서적 기능으로 시와 산문이 구별되며, 시란 정서반응의 언어로 은유의 체계를 완성하여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시 창작에 몰입하여 일가(一家)를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서 이 세계를 장악하고 우주와 질서, 또는 나와 사물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며 한 편의 시로 가치 있는 정서를 표현해서 저 높은 정신세계에 도달하고 자신의 영혼이 깃든 안주의 집을 지어야 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길이 곧 시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며 최후에 깃들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다시 뤼노의 《시인을 꿈꾸는 나무》를 따라가보자.
거기엔 이런 말도 보인다. “꿈을 간직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것은 흉하게 늙는 것을 막아준다.” 여기에서 ‘꿈’이란 곧 상상력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 상상력이 고갈되었을 때, 흉하게 늙는다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 말은 ‘상상력’ 없이는 시를 쓸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단편적인 기억만으로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 장 〈시적 표현과 진실에 이르는 길〉에서 시 언어의 내면적인 특징이 이미지, 은유, 상징, 신화, 아이러니, 역설 등으로 이루어져서 비과학적 진실만이 시적 진실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시의 어법임을 설명하였다. 시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떤 경전도 삶의 진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데 있어서 직설로 쓰인 것은 없다. 《성경》도 《코란》도 《논어》도 《맹자》도 《노자》도 《장자》도 모두가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비유적 언어로 씌어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킬머가 노래한 〈나무〉와 달리 자기 삶의 반성적 태도를 직접적이고도 주관적인 정서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곧 감성적 논리로서만 닿을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동주이 삶은 얼마나 겸허하고 부끄러워함을 아는 삶인가? 이는 곧 시대적 아픔이고 고뇌이면서 자기 삶의 아픔이다. 똑같은 ‘나무’를 두고도 이 세계나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능력은 이처럼 다르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개인이 가진 직관력이나 통찰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곧 상상력 없이는 도저히 시적 진실에 이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상상력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기억력’과는 다르다. 단편적인 기억을 더듬어서 쓴 시는 상상의 세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실은 빨리 무너져도 상상력은 영원하다.’는 시적 명제가 생겨났다. 기억력이란 과거 취향적이고 회고적이어서 비록 미래에 연결될 수 있다 하더라도 폭 넓은 경험의 세계를 단편적인 세계로밖에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초보자들은 대개 이 함정에 걸려서 추억 형식으로밖에 시를 쓸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여기에다 시적 언어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없다. 물론 ‘기억력’에 대한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조적 기억론(랭거)나 물질과 기억(베르그송) 같은 이론은 창작에 도움이 될 수 있긴 하나 상상력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억력은 상상력을 활동케 하고 ‘자료 보존의 창고’ 또는 가공되지 않는 소재를 제공할 뿐이라는 일반적 견해가 앞서고 있다. 이에 비해 상상력은 인간성의 법칙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심상(이미지)을 결합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는 흔히 사물을 인습적이고 고정된 시각으로 보게 되는데, 이것을 ‘지각(知覺)의 자동화(自動化)’라고 한다. 이런 자동화된 기억의 장치로써 기존 질서로 구성된 세계를 볼 뿐,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알지 못하는 세계,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어 새로운 세계의 안내자 역을 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뜻이다. 보들레르(C. Baudelaire)는 상상력에 대해 ‘인간이 가진 여러 능력의 여왕이며 세계가 또한 그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하나의 쉬운 예를 든다면, 지구의 5분의 1을 휘덮고 있는 아마존 밀림의 늪지대에서 길이 40미터의 ‘아나콘다’라는 뱀이 아마존 전사들에게 이미 잡힌 일이 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상상력에만 기대 그 존재를 그려볼 뿐이다. 그러나 아나콘다는 그 전사들에게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기억의 일부인 셈이다. ‘아나콘다’라는 뱀은 아마존 전사들의 식량이다. 그들은 이 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정서를 넘어서서 아주 친밀한 정서로 이 뱀을 길들이고 사육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기독인들에게는 ‘뱀’이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됨이 물론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기록한 역사의 대목에서 보면 ‘발견’이란 말이 진실이지만 신대륙 원주민들에겐 이 발견이란 진실이 하나의 오류에 불과하다. 시적 정서의 전달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때부터 나는 초록빛 창공을 삼키고 있는, 별들을 쏟아놓은, 젖빛으로 물든
‘바다의 시’ 속에서 헤엄쳤다.
거기에선 창백하게 넋을 잃은 부유물처럼 생각에 잠긴 익사체가 가끔씩 가라앉는다.
거기에선 또 푸르스름한 색깔들이 갑작스레 햇빛의 반짝임에
알코올보다 더 강하게, 칠현금보다
더 넓게 물들여져서 사랑의 쓰디쓴 다갈색 얼룩들을 술렁이게 한다.
나는 알았다. 번갯불로 찢기는 하늘, 그리고 물기둥을.
부서지는 해안파(海岸波)와 흐르는
물결을 나는 알았다. 저녁 비둘기 떼처럼 밝게 터오는 새벽녘을,
그리하여 나는 이따금 보았다. 사람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
나는 보았다. 하늘에 뿌려진 별들의 군도를!
그리고 열광에 찬 하늘이 항해자에게 보여주는 섬들을!
―수많은 황금의 새들이여, 오 미래의 ‘활력’이여.
그대들이 잠을 자며 숨어 있는 곳은 끝없는 밤 속인가?
하지만, 정말 나는 너무 울었다! 새벽은 가슴을 애는 듯했다.
달빛은 온통 잔인하고 햇빛은 온통 가혹했다.
쓰디쓴 사람을 열광케 하는 도취로 내 마음을 부풀게 했다.
오 나의 용골(龍骨)이여 부서져라, 오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라!
― 랭보, 〈취한 배〉 부분
〈취한 배〉는 24연으로 된, 비교적 긴 시다. 아메리카 토인들에 의해 선원이 학살당한 표류선의 이야기를 쓴 시라고 한다. 이 광상시(狂想詩)는 1세기가 지난 지금도 가장 위대한 ‘상상력의 기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랭보(A. Rimbaud)의 고향은 샤를 빌이다. 그는 여기에서 1869년(15세)부터 1875년(21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나이 불과 17세 때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뫼즈강에 연해 있는 마들렌 거리. 옛날에 여기서 조금 하류로 내려간 곳에서는 짐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왕래했다고 한다. 창가에서 그는 취한 듯이 이 풍경을 내려다보며 살았다. 그의 친구 에르네스트 들라의 증언에 의하면 랭보는 낡은 물방앗간 옆에 있는 조각배에 비스듬히 누워 얼굴을 수면에 바짝 대고 물밑을 향해 늘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증언 말고 이 작품의 창작 비밀은 밝혀진 것이 없다.
20세기 초현실주의 및 다다이즘(dadaism)이나 실존주의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랭보의 시 〈취한 배〉야말로 상상력의 결집이 아닐 수 없다. 한 천재의 언어가 세계를 바꾸어놓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광상시에 놀란 베를렌(P. Verlaine)이 ‘오게나 위대한 혼이여, 모두 그대를 부르고 있네. 기다리고 있네.’(1871년 9월 18일)라고 감탄의 편지를 보냄으로써 랭보는 파리에 입성을 하고, 베를렌이 막 신혼살림을 차린 몽마르뜨 니콜레 가 14번지에서 동성애로 빠져드는 등 기구한 인생을 살게 된다. 이후 그는 〈지옥에서의 한철〉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37세로 요절했다. 강물 속을 들여다보고 썼다는 〈취한 배〉야말로 ‘우주적 상상력’의 현란한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상상력 개발을 위한 유형학습, 시 창작 실기론(송수권, 문학사상, 2017)’에서 옮겨 적음. (2020.09.2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69) 기억력과 상상력 - ① 기억된 정서와 기억되지 않은 정서/ 시인, 순천대 명예교수 송수권|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