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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확, 박구경 시인의 시세계
과거를 환기하는 진정한 마음
-임동확 시집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중심으로
-박구경 시집 《국수를 닮은 이야기》중심으로
박철영
극히 사적(private)인 언표로 발화된 시가 공적(public) 의미로 전환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개별적 의미로는 소수라는 범주에서도 아예 제외된다. 그런 언어는 ‘우리’라는 사회에서 당연히 소모적인 배타적 언어에 불과하다. 설령 긴 사유의 시간을 거쳐 시적 의미를 담아낸다 해도 관심에서 이내 사라진다. 그러나 80년대라는 고통의 속살이 표피로 밀려 나와 나뭇등걸처럼 인지된다면, 만지고 싶은 충동은 강해진다. 약한 자에게 고통으로 남은 1980년대의 상처는 국가 권력이 저지른 전횡의 결과다. 그 영향은 198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소멸하지 않았고, 격절되지 않은 시간은 작금에 이르러 독특한 시 공간에서 구별 거듭 호명된다. 그 시간은 “어제이자, 오늘이며, 내일”이라고 말한 마샬 버만(marshall berman)의 모더니티(modernity>로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1980년’이라는 지시어는 특정한 시대만을 개념하는 것이 아닌 도래하는 미래의 시간까지를 함의한다. 출발은 과거였지만, 현재를 기반으로 되레 진정되지 않고 진폭은 강한 추동력을 갖고 있다. 적절하지 않을지라도 80년대라는 시적 출발지로 광주가 연고가 된 임동확 시인과 해직 기자였던 박구경 시인의 삶의 지표에서 체현(embodiment)된 시적 세계를 일별하고자 한다.
1. 상처가 욕망하는 시간들
먼저 임동확 시인의 시적 출발은 1980년대라 해도 무방하다. 그 맹아는 틈새를 빌어 기미를 갖는다고 보았을 때 시간이라는 잠복을 요한다. 임동확 시에서 보여주는 시간성은 첫 시집《매장시편》이후 엄숙과 정제된 언어로《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처럼 진실한 자기 고백은 전달성이 강한 사회의식으로 각성을 요구한다. 내면에 침전된 의식은 아주 명료하여 진정성이라는 언어로 시적인 화음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또한 80년대란 상처를 근원적 고독에 대해 존재로 소모하지 않고 문학적 시詩 의식으로 진화시켜온 열망은 대단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의 시적 관점은 병폐를 답습한 사회 구조의 권력 반대편에 놓인 약자의 암울한 삶에 뿌리를 두고 있어 사회과학적 관점과도 교호한다. 시의 발상과 상상력은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삶과 끊임없이 교통하려는 근원적 수단일 뿐, 여타 문학적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집은 관점 즉 사물로 다가온 대상에 근접할 때 편향되지 않고 중립적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노력과 시적 세계랄 수 있는 자의식을 긴장감에 따라 분리하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이룬 반성과 자책은 또 다른 시적 계기로 관성처럼 점화된다. 어떤 행위나 사건에 대한 후회는 잘못된 판단을 전제한 결과라지만, 최소한의 반성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보편적 인식마저 통용되지 않는 사회가 1980년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였고 일부 용인한 결과였다.
그래서 더 간곡하고 절실하게 노래는 절정을 향해 가지만
단 한 명의 아이도 빈 교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짐짓 게릴라를 자처하는 가수의 노랫소리만
찬 공기를 가르며 침묵의 광장으로 느리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객창을 도끼로 깨며 올 것 같은
막연한 예감에 한시라도 잠들지 못한 불면의 바다,
어디선가 잘려 나온 절규들이 맹골수도를 빠져나와
아파트 창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른다
-<솔베이지의 노래> 부분
네가 깊고 푸른 심연의 난간에 그나마 성한 영혼의 한
발을 걸친 채 그믐달처럼 매달려 있을 때
내가 사랑한 건 결국 너의 전부가 아닌, 행여 저조차 끝
없이 못 믿어 온 한낱 난파선 같은 나의 의지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부분
는 누구나 다 아는 펙트로 너무나 참혹했던 세월호 참사의 심경을 기록한 시다. 극히 사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국가 권력과 과감히 맞서 민중의식으로 전복해낸 세기의 국가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그 충격으로 일궈낸 국민적 반성의 시간과 파괴력은 대단하여 이내 광화문 촛불로 무혈 혁명까지 이루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약자였음을 쉽게 변명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인은 1980년대 폭압을 목도한 부채 의식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적 발화는 반성적이면서 매우 상세하게 진술된다. 언술은 격하지만, 이성적이어서 의미를 읽어내는 데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시간의 경과로 획득한 정당성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극히 개인적인 삶에 가해진 <솔베이지의 노래>는 민중으로 대칭되는 ‘우리’ 라는 인식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그 시기를 추론해 본다면 사람 사는 곳과 시대는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치열한 주체의식과 더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감상에 치우쳐 따라 불러서는 안 될 반성을 충동한다. 그 의식은 항상 깨어있는 생명으로 다가간 시간이며 비움이 아닌 자기 충만에서 가능하다. 그랬을 때에야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후회와 안타까움의 반복된 타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시인의 고언苦言이다.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마지막 지평일 <땅끝에서 부르는 노래>는 “넌 낱낱이면서 하나인, 하나이면서 낱낱인 외로움이 전부인 수평선”에서 지금껏 바라볼 수 없었던 바다를 본다. 그것은 자기 내면을 바라보려는 응시에서 비롯되고 참혹하게 죽어간 아이들을 떠올리며 “영원히 키가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아니면 갈두항에 묶여 있는 낡은 한 척의 어선처럼.” 시간에 묻혀서도 잊혀질 수 없는 80년대 과거 속 광주처럼 세월호 비극을 다시 떠올린다.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를 보며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고민은 고요나 침묵이 가득한 숲에서 해답을 찾아낸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 담장 곁 청매실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길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저 멀리 썩은 굴피나무 둥지에 돋아 난 노란 개암버섯들이 한낮 천년수 가는 길에 보았던 독사처럼 꼿꼿이 자루를 세우고 갓을 편 채 독을 뿜어내고 있다.
-<고요는 힘이 세다> 부분
한때 시인이 심신을 추스르려 찾아든 대흥사는 천년 세월을 담담히 견뎌온 고찰古刹이다. 그곳에는 뿌리 깊은 고요와 적막이 있다. 적막이나 고요는 소란스럽지 않다. 그 힘은 대흥사를 감싼 숲을 움직이고 두륜산을 이내 술렁케하는 웅혼한 힘을 과시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각각의 의지로 “끝내 미지로 남을 낱낱의 소리들이 밤의 계곡으로 멧돼지처럼 씩씩대며 속속 집결하고 있다.”며 자연의 일부인 정물적 풍경과 역동성을 자유라는 의식으로 환기한다. 그것은 절대적 자연을 빌어 자기의식을 정련하고 정돈된 자아를 정치 사회 현실 속에서 어떻게 투영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의지다. <용산역>은 스스로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노숙자와도 스스럼이 없다. 단순한 일상에 불과한 사건이지만, 평소 응시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가늠케 하는 시인의 의식을 엿보게 된다. 노상에서 남루한 노숙자와 최고 지식인이라는 대학교수가 초면에 한 개비의 담배를 나누는 모습마저 절묘하다. 작금의 자본주의와 권력의 사회에서 무 규범적 사회에서 사어死語로 몰가치해져 버린 ‘염치’가 상황을 반전시킨다. “대리석 냉기를 막아 줄 방석이자 시월 밤의 침구이기도 할 영주 사과 박스 골판지”를 건네는 노숙자의 ‘염치’를 보며 우리 사회의 잃어버린 양심을 충동한다.
어차피 ‘너와 나’가 아닌 ‘우리’라는 사회 공동체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양심이고 반성이다. 그래서 매번 시적 의미로 충격하여 일상적 행위에 소홀함이 없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상에서 의미 전환을 이루어 시적 의미를 충동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기 다른 대상에서도 심화된 사유를 통해 동일한 시적 세계를 구축해낸다. <이중섭展>에서도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흰 소’를 감상하며 보이지 않는 이면을 통찰해낸다. “기교마저 생략한 최소한의 면적과/상상을 가둔 최소한의 구도만이/간신히 허락된 너의 적빈(赤貧)이,/그래서 필시 비대칭의 화면이었을/너의 극빈(極貧)이 식솔들을 이끌고/결코 이별 없는 태초의 땅/더 이상 전쟁도, 가난도 없는” 곳을 향한 열망은 쉽게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고통스런 의미의 중첩으로 다가온 극빈과 적빈은 호구지책의 구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닌 인간적 삶의 근원을 앗아가 버린 절망을 일컫는다. “굶주려 쭈그러든 위장처럼 맑아서/아무런 색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은박지”속 ‘은지화(銀紙畵)’는 이중섭이 추구하는 예술성과 영혼이며 상징인 ‘극빈(極貧)'이어서 더는 언급이 불필요하다. 그것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이중섭의 예술지상주의와 교통한다. <김종삼 음악회>에서도 살아생전 김종삼이 유달리 좋아했다는 고전 음악 중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소나타를 듣는 내내,//끊일 듯 조여진 시간의 현(絃) 위에 고여 드는//영영 끝날 것 같지 않는 G 마이나의 어둠 속”의 응시는 더 깊어간다. 김종삼 시인이 열망했던 문학적 궁극을 헤아려 볼 때 그것마저 사회 전망에 대한 불일치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임은 자명하다. 회의와 허무 그리고 자괴감 속 상처 난 영혼을 어루만져줄 어머니처럼 안니로리와 라산스카는 현재적 삶과 생을 초월한 이상향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따라서 시인뿐만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의 지향임을 가늠케 한다. 그것은 현실적 세계와 화해할 수 없는 이중섭의 생애와 닮았고, 시대적 이념을 뛰어넘어 문학적 통찰로 일궈낸 위의를 향한 세계인식으로 동일시한다. 그런 인식은 임동확 시인이 추구하는 문학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반증으로 <김수영 문학관>에서는 “아무래도 조금 모자라거나 흘러넘치는 자유”를 위한 시대적 양심을 재차 충동한다. 그럴 때 “그는 여전히 거역하라”며 고질적 적폐인 대한민국의 ‘고정관념’과 맞서기를 마다치 않는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그의 사랑의 변주곡”은 김수영의 시대나 지금이나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혼란의 층위’에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과 불협한 긴장으로 진동을 끊임없이 추동해낼 때 공적인 의미로써 시학은 실존적 리얼리티로 환기된다. 그래야만 과거라는 자기 분열적 사고에서 임동확의 시는 더 자유로와 질 수 있으며 확연해질 수 있다. 이미 당 시대를 살아버렸지만, <몽탄역>에서 미래만큼은 ‘패배의 역사’와 ‘패자의 역사’를 민중의식으로 전복할 수 있다는 긍정의 여지를 남겼다.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작금의 정치적 현실을 시로써 변화시키려는 각성이 없다면, 시의 무용한 정치성은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야외수업>에서 “시는 말야. 영원히 같아질 수 없는 사물과/사물 사이를 연결시키려는 필사적인 의지”의 의미로 담지되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경고임을 알린다. 시의 미학은 역사적 관점과 동일시 될 때 더 완강한 전위를 형성한다는 시인의 격문은 시집 전반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도록 한다.
2. 상처의 시간 속에 부조浮彫된 의식
박구경 시인의 시집 《국수를 닮은 이야기》를 탐색하기 전 시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전적 시론은 이미 방언이 되어버린 작금 논의가 더 이상 불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시라는 에너지가 응집되어 한 권의 시집으로 나올 때마다 시인의 시적 진술의 필연과 진정성은 일상에서 추수된 주체의식의 결과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부 자아의 도취거나 몰입으로 나타난 자의식에 대한 동일성의 재확인이라는 것마저 부인하지 않는 박구경 시인의 <진부한 시>와 만나게 될 때 시적 세계의 추이는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언제나 다정한 동행 친구였던 둘 사이에 질투와 미움이 생기기 시작한 건/미순에게 멋진 시가 나타나고부터였다”는 순수한 고백은 잃어버린 자의식의 회복이다. 회복은 시간이 필요한 아픈 상처에서 비롯되고 치유된 흉터는 자의식의 외연을 심화시킨다. “ ‘엄마를 보내고 갑자기 낙태처럼 내게로 온’ 으로 시작하는 미순의 ‘내 친구’라는 시를 발견하곤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는 눈물은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절대적인 질료다. 박구경의 시에서 보여주는 시적 의미언은 구차스럽게 의도하지 않을뿐더러 과거와 단절되지 않는 연속선상에 있다. 서정시의 전형이나 참여시의 일말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사회 일반의 관계론적 사유와 침전물로 비롯된 위의 임을 밝히고 있다. 박구경 시에서 보여주는 시의 전형은 일 방향적이지 않으며 자연의 찬미를 통한 낭만에 유착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이해 가능한 박구경의 시적 세계는 사유를 통한 침투가 가능해서 공감과 위안으로 여운이 커 유통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대 시의 관점이 최소한의 이중구조를 지향한다고 볼 때 기호로 허락된 삶에서 천착한 시간은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짧은 시는 어렵다>는 언표에서 시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1.//멸치 몇 마리로 국물을 내/국수를 말아 먹는다//국수 속엔 국수를 닮은 이야기가 있고/그 사람들이 있고/그 사람들의 그 사람들이 거듭 얽혀 있다// 국수./ 짧고 긴 생명의 이야기”라며 얽혀 있어도 금방 풀어질 수밖에 없는 국수 가락을 발라내 시집의 고유한 명사가 된 행간 속《국수를 닮은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많은 시의 이중구조를 강화 해준다. 어차피 국수 가락처럼 끝이 보이는 생의 깊이라고 본다면 애써 회피해서는 안 될 시詩라는 것도 일상적인 언어에서 인용한 선택 일 뿐이다. 돌이켜본다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난마처럼 얽혀버린 시작은 현재처럼 그렇지가 않았다. 향수 같은 통금 시절의 긴장도 요즘처럼 인정머리 없이 집요하지 않아서 “동치미를 얻어다 먹는 재미가 있었지/그래도 그때 지서 순경들은 아주 야멸차지는 않”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며 다독여주던 따뜻한 말의 정이 살아 있었다며 회고한다. 그 시절의 것들이 사라지거나 잊혀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듯 이웃 집을 서로 지켜주던 동네 골목의 흔하던 <개가 사라졌다>에서 “길거리에 개가 없다/폭풍우도 없이 초가는 사라졌고/어느 날부터인가/먼지 이는 길도/아버지의 삼거리 다방도 사라졌다/닭 울음도 사라졌다/먼 데서 가까운 데서 짖어대던 개들도 없다/전봇대에 다리 든 개도 볼 수가 없고/처녀들 피해 가던 흘레도 이젠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 개의 이름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독구’라는 ‘개새끼!’였고 더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은 단절된 사회에 대한 무방비에 대한 삭막함과 호소다.
시인은 시로써 전부를 결코 말할 수 없다. 모순 같지만, 그 말의 의미는 내면화된 시적 세계인 존재와 본질을 언술로써 완벽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나머지는 행동이라는 행위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역설이라면 시적인 것과 일상이 다를 수 없다. 자의식이라는 내면은 시적 언술이 아닌 행위로써 꼭 호모 사피엔스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대상은 변화를 행위처럼 수반한다. 그 끝이 자기반성의 시간 열에 반드시 놓여 있다 하더라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던지는 의문은 자아라는 자기의식을 결코 민낯으로 드러낼 수 없다는 자책에 빠뜨린다. 어쩔 수 없이 80년대의 기억 속으로 자폐 되어버린 폭력의 언어들처럼 지난 계절을 또 잊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마음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적막>속 “발에 채인 바람이//등짐처럼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외국인 노동자 뒤로 고양이처럼 튀”어들 때 뒤끝은 당혹한 어둠을 더 예민하게 한다. 자막에 숨어버린 심야 프로의 영화관 속 스크린처럼 그 여운은 불편한 이미지여서 마치 판화처럼 뚜렷하게 각인된다. 고립된 풍경 속 적막은 잊혀진 과거의 섬뜩한 트라우마처럼 발목만 빠져나간 <군화>에서도 출몰한다.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군화는 특수한 사람만이 신는 신발이다. 그 신발은 편리성보다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익숙하고 그 끝은 영광보다는 파멸에 가까운 전쟁문화의 오랜 산물이다. 군화라는 타자는 우리의 잊힐 수 없는 한 시대의 고통으로 각인된 부당한 권력의 강압과 치욕의 거울로 추억된다. 그것은 너무 질기도록 막강하여 “망치로 쳐도/지뢰가 터져도” 끄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군화를 신는 아이가 “어미와 반대쪽에 있는” 바로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면 자괴스럽다. 자유보다는 폭력에 길들어지며 자유 의식의 와해와 분열을 상징하듯 “휴가 나와서도/발모가지를 향해 반듯하게 서 있는/저 군화!”는 자의식으로 주체가 되지 못한 채 차갑게 굳어버린 어두운 과거의 자화상인 청동거울이다. 청동 거울은 녹슬어서도 불멸의 권력을 세습하고, 권력이라는 절대성은 어느 순간 우리들을 고통스럽도록 긴장하게 하는 불온한 유물이다. <피노키오 각하는 죽었다>에서 처럼 “살아 살지 않고 죽어 죽지 못한//죄의 짐을 지고도 그는 알지 못한다//자기를 끊임없이 수정 개조하듯//역사수정주의”를 주장하며 당위성을 확보한다. 그런 암울한 시대의 유물로 남은 마지막 청동 거울을 깨부숴야 한다는 박구경 시인의 결연함은 그래서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처럼 “물론 난 알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아서/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런데 오늘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날 두고 하는 말을 들었다. “더 강한 자들이 살아남는다.” /그러자 내가 미웠다.”라며 역사라는 <단상>에 기꺼이 오른다.
마른 장작처럼 죽어가는 어머니∙∙∙
괜히 엄마가 불쌍해
-<단상> 부분
계절처럼 또 다른 부당한 권력이 몰려온다 해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뜨거운 때/내 애들이어서가 아니라/꼭 내 조국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처럼 사는 세상을 욕망하는 시인의 정신이 상실의 시대를 저지할 수 있는 인계 선임을 부르짖는다. 이러하듯 마음을 움직이는 시는 결코 시 본질의 적절성을 떠나 진정성이 스민 가슴으로 쓸 때 만 가능한 시대적인 기표라 해도 과하지 않다.
가을은 언제나 차가운 겨울을 호명하듯 자연의 순리 속에서 변화하는 사계절을 보며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반복되는 계절로 전이轉移되는 변화는 그래도 덜 혼란스럽다. 하지만 사람에 대하여 전부가 뒤바뀌어 버릴 때는 난감하다. 흔히들 80년대를 말하며 냉혹한 폭압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폭압에 마치 자신만이 저항했고 피해자인 양 분노하는 시인들을 종종 보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이 민주 투사 같기도 하였거니와 시대의 상처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국가 폭력에 짓밟힌 피해 당사자가 분명히 맞을 것이라고, 그 시인이 하는 말 한마디와 시 한 편도 소중히 여겨 묵시록처럼 가슴에 새겼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쓴 허언의 시들은 오래가지 않아 쉽게 잊혀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더 이상 아쉬움이 되지 못했다. 잊거나 기억하거나 모든 것의 판단은 그 사람이 아닌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점에서 바라본 박구경의 시는 80년대 억압의 시대에서 자행된 해직 언론인으로서 살아남은 투사의 몸부림이 아닌 인간적인 삶의 가치 회복을 위한 진정성과 결연히 닿아 있다. 그것은 시인이기 전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서 가능한 전언들이다. 시 몇 편을 써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과욕보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절망할 줄 아는 윤리적 행위가 곧 시를 쓰는 시인의 의식임을 보여주고 있다. 분노를 뛰어넘는 시인의 의식 속에서 발원하는 강은 우리가 여태껏 보아온 4대강 개발 이전의 강이어야 한다. 시인이 염원하는 그 강은 살아있는 민중의식으로 자유를 향한 항거의 강한 의지로써 <강물의 점심 식사>에서 분명해진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노래하는 소월의 강/멈추고 바라보는 수많은 염소들의 까만 눈//강물도 밥 먹으며 사신다면/그 기운차고 도도한 강물의 나이테로 감아/점심밥으로 맛있게 굴삭기 잡아 드시라/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려”라는 모성적 처방은 박구경 시가 보여주는 궁극의 의미는 서정적 자아와는 별개로써 건전한 사회 참여적 자아를 표명한다. 그것은 특정 이념의 하중이거나 편중의 지향이 아닌 부당한 권력이 자행한 상처에 부조浮彫한 시인 의식이다.
전선이 전선에 엉겨
번들번들 전깃줄에 뒤엉켜
밤비가 온다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말라며
-<제비> 부분
에서 보는 시선의 한낮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는 무한한 고립이며 자의식의 세계다. 그 허공 속 전깃줄이 끝없이 이어지며 내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공포감에서 흘린 비명이다. “홀로 까맣게 빛나던” 영혼에게 그마저도 쏟아지는 차가운 비가 그칠 기색이 없듯 고통스런 밤은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밤은 불온해진 시간을 심미적으로 담보해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어둠을 어둡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시인의 고유한 직능이다. 감탄부호나 남발하는 시인들을 허명이나 좇은 시인이라 치부해버릴 때 병적인 욕망의 나르시시즘은 시적 사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은 관행에 의혹을 제기하는 <그 집에는 베트남 며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시어머니가 있었다더라/베트남 며느리면 어떻고 연변에서 데려오면 어때/또 왔다 갈 건데/실한 일꾼 들인 셈 치고 되게 부려먹으면 되지!”라는 고발성 시다. 부끄럽게도 작금에 벌어진 부당한 행위도 근원이 베트남 파병이라는 국가 폭력으로부터 시작되어 뼈를 깎는 반성이 없었기에 반복되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이런 전쟁이 있었다더라/저희가 전쟁을 시작해 놓고 저 나라 젊은이들을 끌어다/기름진 시레이션과 각종 신무기로 무장시켜/정글로 마을로 논으로 내몰아/네째로 왔다 간 며느리의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갓난아이며 어린이와 처녀 노인들 할 것 없이/모조리 베트공이니 사살“하라는 명령을 가차 없이 수행한 나라 대한민국, 그것이 어두운 우리의 과거였고 역사였다는 것이다. 시인은 <제비>를 불러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비명에 가까운 자의식을 발설하고 만다. 타자적 자아의 전횡에 괴로워할 때 불러보는 어머니는 대답이 없지만, 실재를 회피하지 않더라도 시적 결핍을 수유해줄 사람은 오직 어머니 무한한 사랑으로 베풀어준 배려뿐이다.
언제나 그곳에서 시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느 때부턴가 <눈물바다>의 어머니는 그곳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황지우의 시 “아무도 사랑해본 적 없다는 거;/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내 뼈 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우리는 혈연관계를 필연적으로 맺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그래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연이라는 시간은 흘러갈수록 과거로 망각되지 않고 질기도록 기억을 재생시킨다. 박구경 시인의 가슴에도 아프도록 그리운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를 떠 올릴 때 더 슬픈 것은 죄다 흐릿하거나 느리게 다가왔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과거라는 시간에서만 가능하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던 것처럼 다가갈 기회마저 영영 놓치고 말았다. “삐뚤빼뚤 글자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힘겹게 부쳐왔던 어머니의 편지는 더 이상 받아볼 수가 없다. “해 좋은 날/바구미 먹은 팥 자루 밑에 숨겼던 찹쌀로 찰밥 해서 같이 먹고 싶다고 딸아”라며 간절히 소원했던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는 이제 박구경 시인이 흘리고 있는 <눈물의 바다>를 건너올 수 없다. 지난 시간의 흐릿한 기억 속 사진을 <응시>하다 보면 희미하게나마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치매에서 깨어 오똑 일어나 앉으니/마을 건너엔 꽃 한 송이//무얼 그리느라 환하고도 밝은 꽃” 같은 어머니를 이제는 꿈속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혹시나 모를 일이어서 날아드는 <새떼>마저 예사롭지 않다. “매서운 하늘 저편에서 점 하나가 점점이 다가오곤 하더니 아침나절 어깨 너머 담 너머로 느닷없는 목련”을 보며 어머니가 이승의 마지막을 건너며 놓고 간 꽃일지 모른다는 연기적 상상마저 애답다. 아련해질 때면 어김없이 <겨울일기> 장을 펼쳐 못다 한 긴 이야기를 써 내려 간다. “며칠째 사납게 춥고/바람도 인심도 나마저도/강 건너 가난한 나무들도 오래 춥다/흙 냄새 짙은 바람벽과/군불 지핀 방바닥서/은은히 피어나던 연기/물주전자 얹힌 따스한 난로/파르라니 머리 깍은 스님 친구/야음이 야음을 타고/도란도란도란/창문에 와 등불로 흔들린다”며 생의 지친 기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아보지만, <인간의 의리, 그 도저함>에는 한참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자유를 속박하는 굴레에서 탈주할 수 없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듯 영화 ‘워낭소리’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을 상기시킨다. “무릎으로 기며 꼴을 베고/소에게 좋은 것이라면 어떻게든 골라다 준다/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수의사의 말/우시장에 끌고 나갔지만 결국 팔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죽은 소의 봉분을 만들어 주는 ‘워낭소리’의 생애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를 통해 ‘나’와 ‘너’를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생존이라는 숙명으로 생명을 부여받은 가치의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박구경의 시는 부단한 자성을 통한 자기 단속과 집단적인 부조리에 분노할 줄 아는 고발정신을 시집 전반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대의 볼온을 빌미 삼아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대상과 끊임없는 불화를 조장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문학의 도구화를 철저히 부정하는 인간성 회복임과 동시에 장 폴 사르트르처럼 사회변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의 주장과 맞닿는 거라면, 지식인의 주류일 수밖에 없는 시인들에게 시대정신의 각성을 주문하는 것은 과하지 않다.
첫댓글 쓰느라 고생했네. 고생했어.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부분
는 누구나 다 아는 ......
(위 '는'이 좀 이상하네).
아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 생각하게 되었네
그거는 그냥 내 생각대로 그렇게 쓴거네~~^^
잘 읽었습니다.
석연경 시인
감사
부지런히 습작하는 과정인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