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어디로 할까요?”
“저는 사당역이오”
이사가 조심스럽게 먼저 말했다.
“잠실역까지 가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자기 사무실까지 가까운 조이사가 이야기했다.
엊그제 핫도그 수출이 가능한지 문의한 박대표를 사당역 근처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어제 오전에는 세 명이 그가 핫도그를 위탁하여 생산한다는 시흥 월곶의 공장을 함께 방문했다. 내가 차를 운전해서 사당역 근처에서 다시 만나 출발했다. 핫도그 박대표와 미팅을 끝내고 근처에 있는 포구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그냥 가기는 아까울 정도로 맑고 쾌청했다. 반면, 바로 앞에 있는 바다는 간조 때라 그런지 바닷물이 하나도 없고 갯벌만 보였다. 다소 생경했다.
황이사가 잠실역으로 가도 좋다고 양보했다. 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45km. 짧지 않은 거리다. 제2경인고속도로에 올라가고 잠시 후 내비게이션은 일산-판교 외곽순환도로를 타도록 안내했다. 그게 없을 때는 ‘복잡한 도로를 어떻게 알고 운전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셋이서 요즘 시국에 대해 한참 열을 내며 성토하다 보니 차는 청계 톨게이트를 지나 청계터널에 진입했다. 터널 안에서 줄였던 속도를 내기 위해 그곳을 벗어날 즘부터 가속페달을 밟았다. 왼쪽으로 약간 굽은 길이라 넓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으며, 당연히 차선 변경이 불가능한 실선 구간이었다. 나는 1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3차선에서 내 차보다 약 50m 정도 앞서 달리던 승용차 한 대가 2차선을 지나 바로 1차선으로 진입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왼쪽으로 들어가겠다는 깜박이 신호등도 없이 갑자기 훅 들어왔다. 차간 거리는 20m가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나는 막 가속을 하는 중이었고 그 차는 속도를 줄여 3차선에서 1차선으로 바로 진입했으니 두 차 간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는데……. 본능적으로 오른발을 가속페달에서 브레이크페달로 옮겼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안돼’ ‘안돼’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브레이크페달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밟았다. 하지만 앞에서 달리던 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으며, 마지막에는 50cm 정도나 겨우 남았던 것으로 보였다. 두 대의 차는 그 정도로 가깝게 만났다가 다행히 충돌 없이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내 차의 브레이크 성능이 좋은 덕분이었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자마자 앞 차에 하이빔을 몇 차례 쏴서 경고한 후에 옆자리에 앉은 황이사를 슬쩍 쳐다봤다. 아직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있던 그가 말했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올려 손잡이를 잡았어요”.
탈은 뒷좌석에 앉아 있던 조이사에게 발생했다. 내가 브레이크를 깊게 밟는 순간 몸이 앞으로 쏠렸고 균형을 잡으려고 왼손으로 앞 좌석을 힘껏 잡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치료 중인 왼쪽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고 했다. 차가 충돌하는 사고는 가까스로 막았으나 엉뚱하게 차에 탄 조이사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앞차 운전자의 몰상식한 행동에 대해 화가 났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운전하는지 궁금해서 앞 차를 살펴보니 1차선을 80km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여 추월하며 그 차 안을 쳐다봤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혼자 운전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놀랐는지 속도를 내지 못했다. 내가 2차선을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에도 빠르게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그 차 바로 뒤에서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왜 그렇게 운전했는지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차에 신경 쓰지 않고 ‘나 홀로’ 방식으로 운전하는 스타일의 김여사(?)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고속도로에 처음 올라온 초보 운전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나 홀로’ 운전하는 막무가내식의 운전자가 한, 둘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미리 알 수도 없으니 언제나 스스로가 방어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그 여자도 이번에 운전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게 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는지도 모르겠다. 99% 이상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는데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차후 어제의 경험을 교훈 삼아 기본적인 교통 규칙만이라도 꼭 지켰으면 좋겠다. 차선을 변경하려면 미리 깜박이 신호등을 켜서 다른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실선을 넘어서는 무모한 운전은 하지 말아야겠지. 특히 ‘두 개 차로를 대각선으로 바로 진입하는 몰상식한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겠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천만다행이다.
그나저나 어제 잠실역에 내려준 조이사의 허리가 걱정되고 찜찜하다.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기껏 좋은 일을 하고 뺨 맞은 듯하여 억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