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화수분'이라는 보물단지가 있다. 화수분(貨水盆)은 안에다 어떤 물건이든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끝없이 나오는 보물단지라는 뜻으로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 속담에서 ‘화수분을 얻었다’는 돈이나 곡식 같은 재물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중국 진시황 때에 있었다는 하수분(河水盆)이 그 어원이라 한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 10만 명을 시켜 황하수(黃河水)를 길어다 큰 구리로 만든 동이를 채우게 했는데, 그 물동이가 얼마나 컸던지 한 번 채우면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항아리’(widow’s cruse)'와 비슷한 전설이다. 주1)
'화수분'을 중국인의 시각으로 본 왜곡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동이'(盆)는 그렇게 큰 그릇을 나타내는 글도 아닐 뿐더러, 설화 자체가 그렇게 큰 그릇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설화는 원하는 것을 담을 수 있는 동이 같은 그릇이면, 충분하다. 어느 것이라도 넣으면 끊임없이 나오는 보물단지라는 것이다.
화수분설화의 의도는 기본 구성에 분명히 나타난다. 첫째로 곤경에 처한 사람이 절실하게 보물을 필요로 하는 갈급한 상태에 있어야 하며, 둘째는 그 궁핍한 사람이 응분의 대가, 곧 남에게 선행을 베풀고 호의로 대하든가, 대단한 공력을 들인다든지 하는 투자나 자격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원 화수분의 주인이 이 보배를 알고 있든지 모르고 있든지 간에 아낌없이 선사하여 화수분의 이동이 순조로우며, 넷째는 화수분을 가진 새 주인이 불로소득이나 아무런 투자 없이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공력을 들여야 하고, 끝으로 이 화수분에서 나오는 재산으로는 좋은 일을 해야지 나쁜 일을 하거나 악행을 저질러서는 무효가 된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주2)
‘화수분’을 우리말로 풀면 어떤 뜻일까? 분(盆)은 질그릇의 일종인 동이를 이르는 '분(分)'이라는 음을 가진 글자이다. 구성 요소에 발음이 있으므로 형성자이다. 일반적인 특징인 그릇(皿)에 '분'이라는 그릇을 분명히 나타내고자 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그릇 중에서 '동이'를 나타내는 '분' 그릇이라는 뜻이다. 동이는 질그릇의 한 가지로 양 옆에 손잡이가 있고, 모양이 둥글며 아가리가 넓은 흔히 물 긷는 데에 쓰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말 '분'은 '(물을) 부어 담는(부운)'의 축약형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분(分)은 구성 요소에 발음이 없으므로 회의자임을 알 수 있다. '칼(刀)로 벌리다(八)'는 글자 그림만으로 대충 '나누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분'은 우리말 '겉을 싸고 있는 것을 벗기거나 헤치거나 하여 속에 든 알맹이를 집어내다'는 뜻인 '바른(바르다)'의 축약형[반(아래 아) > 분]임을 알 수 있다. 하여 '칼로 벌려 벗기다'는 뜻을 보다 분명히 하는 것이다.
화(火)는 불길이 위로 솟으며 타오르는 모습을 상형한 글이다. 발음 '화'는 무엇인가? '화끈(거리다), 화냥(년), 화드득, 화들짝, 화랑이, 화하다' 등에서 불의 실체가 엿보인다. 불은 '화'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 '화'는 '얼,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화랑이는 박수무당을 뜻한다. 무당은 '얼, 넋'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신라시대의 화랑(花郞)이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의 이두식 표현으로도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화냥년'의 유래를 환향녀(還鄕女)로 치욕적인 역사에서 유추하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말이 한자어에서 유래된 것으로만 보는 시각일 뿐이다. Sex의 우리말은 '얼우기, 얼잇기'로 볼 수 있다. 서로 '얼'을 잇는다 또는 아우르다는 뜻이다. 마찬가지 얼개로 보면, '화냥'은 '화(얼)를 서로 나누는 양상(냥)'을 뜻한다. ‘냥’은 ‘나누는 모양의 축양형’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얼우다'의 명사형이었을 수도 있다.
갑골문의 火는 山과 매우 흡사하다. 山도 솟아 오른 모습을 상형했기 때문이다. 단지 발음만 현격한 차이가 날 뿐이다. '산'은 '솟아 나온'의 축약형으로 山이 고정된 상태임을 분명히 하였고, 火는 그 근본인 '화(얼)'이 솟아오르는 진행형임을 그 발음으로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하여 '화'는 '얼, 넋, 마음'을 나타내는 또 다른 순수 우리말임이 분명하다.
'화' 발음의 다른 한자를 보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화(花)는 화(化) 발음인 형성자이다. 이는 '초(艸)의 화(얼)'로 꽃을 풀의 얼로 보는 것이다. 우리말 꽃의 먼저 말은 '곳'이다. 이는 '골(가[태음]알[태양]/ 신)이 솟은'의 축약형으로 볼 수 있다면, 화(花)와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꽃에서 '신(神)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주로 불과 더불어 '불꽃'으로 상징화한다.
화(和)는 화(禾)가 발음인 형성자이다. 화(禾)는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모양으로 벼의 줄기와 뿌리를 상형한 것이다. 벼를 상형하고 발음을 '화'로 하였음은 벼가 곧 '화'의 결정체임을 나타낸다. '벼'는 '빛(얼)이 여물다'의 축약형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벼는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머금어 가을에 영근 것으로 빛의 결정체이다. 하여 벼의 열매가 '화(얼)'가 여문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화(和)는 '화(얼)로 말한다(口)'는 뜻으로 '화(얼)로서 서로 말해야 화목할 수 있고, 서로 합쳐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름길임을 나타내며 또한 응답하고 답하는 것 역시 마땅히 '화(얼)'로 대꾸(응대)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신(信)과 같은 구조임을 알 수 있다.
화(貨)도 화(化) 발음의 형성자이다. 재화와 돈이란 화(얼)과 같은 가치가 있는 패물(貝) 또는 貝의 화(얼)이라는 뜻이고, 물품 역시 화(얼)가 깃든 것이란 뜻이다. 이는 샤머니즘의 정령신앙으로 보는 시각이다. 형성자는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 발음 부분에 무게 중심이 있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재화란 '화(얼)'에 있음을 나타낸다. 재화란 단지 화(얼)을 감싸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요즘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靴)역시 화(化) 발음의 형성자이다. 우리말 '신(얼을 감싼, 씨운)'과 그대로 같은 구조이다. 즉 화(얼)을 감싼 가죽(革)이 신(구두)이라는 얼개다. 결국 神이란 신발과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많은 '화음의 한자 역시 같은 얼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화수분 설화와 같은 구성요소로 보는 우리말 화수분은 '화(얼, 마음)가 솟아나는(수) 그릇(단지, 동이, 분)'이다. 설화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보물은 '마음(화)'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에 무엇을 담든지 담는 대로 끝없이 샘물처럼 솟아나지 않는가? 미움을 담으면 미움이, 사랑을 담으면 사랑이 끊임없이 샘솟는다.
악행을 행하면 무효가 된다는 것은 악행을 담으면 끝없이 솟아나는 악행으로 말미암아 자멸한다는 경계(警戒)를 암시한다. 따라서 화수분은 내 마음이고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누구나 자신 안에 하나님이 있음이다. 내 안에 담긴 하나님을 끝없이 갈고 닦아 샘솟게 하면, 온 세상이 나와 하나 되어 모두가 나가 되는 보물이라는 뜻이다.
다시 우리말 '분'은 사람의 수를 세는 말이고,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바로 선'의 축약형 '반 > 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화수분'은 '얼(화)가 끝없이 샘솟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 자신을 화수분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보물을 얻는 것이고 그것이 하늘나라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한 '분'은 '부아난'의 축약형이다. 우리말 부아는 허파, 폐장을 뜻한다. 하여 '분(憤, 忿)하다'는 '부아(가) 난다'는 순수 우리말이다. 분(憤)은 '분(賁)'이 발음이므로 형성자이다. 즉 부아난 마음을 뜻한다. 하여 '분할, 성낼/ 분'과 유추되어 '떨쳐 일어날/ 분'의 의미를 지닌다. 성낼/ 분(忿) 또한 똑같은 맥락이다.
다시 한 번 '화수분'을 보면, '화가 솟구치고 부아도 치미는 상태'를 뜻한다. 불(얼)은 우리에게 보물도 되지만,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일순간에 불태워 버리는 화마(火魔), 즉 재앙이 된다. '화(얼)'와 '분(얼)'은 마음속에서 익혀 영글어야 하는 것이다. 익으면서 달콤한 향기를 은은히 풍겨야 하고, 샘물처럼 자연스레 솟아 흘러야 한다는 암시가 숨어 있다. 마음을 제대로 갈고 닦지 못하면 재앙, 즉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농부들은 속담으로 말한다. "농사가 화수분이다" 농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씨 뿌리고 가꾸는 대로 거둔다. 절기에 따라 부지런히 가꾼 대로 거둔다. 마음대로, 마음 밭을 가꾼 대로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말 '화수분'은 '마음'이라는 하늘나라의 보물을 보여주고, 그 보물은 나 자신이며 내 안에 실재하는 것임을 알려 주며 마지막으로 그 마음을 제대로 갈고 닦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 석가 그리고 노자, 공자의 궁극적 가르침이 우리말 화수분 안에 이미 다 들어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화수분'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당신의 화수분은 벌써 녹슬어 있진 않겠지요 ^*^
주1) 출처 ; [기타] 우리말 유래 사전, NAVER 지식 iN 참조
주2)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