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71) 기억력과 상상력 - ③ 시적 리얼리티와 상상력/ 시인, 순천대 명예교수 송수권

[하지연 (하현식)]

시창작강의 - (71) 기억력과 상상력 - ③ 시적 리얼리티와 상상력/ 시인, 순천대 명예교수 송수권

기억력과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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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시적 리얼리티와 상상력

천마산 눈썹 아래 

초장동 산비탈이 있고

천마산 코딱지 같은 우리 집이 있고 

충무동 푸른 바다가 있고

새벽 별을 보며 생선도가로 내려가는

이모 집이 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소리치는 

외삼촌 집이 있다

이른 새벽부터 우리 집에 와서 

해장술에 취한 천마산은 

어머니에게 술국을 더 달라 한다

아버지와 형은 말없이 

절구에 떡을 치고 

누나와 나는 맷돌을 돌린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는 아우가 

손을 놓을 때쯤

누더기 같은 우리의 희망이 

빨랫줏에 펄럭일 때쯤

천마산은 바람과 안개를 거느리고 

넌지시 산을 오른다. 

―김종해, 〈가족〉 전문

시에서 보듯 부산 서구 초장동의 옛집을 기억력에 의존해 그려내고 있다. 즉 “천마산―산비탈―우리집―충무동”이라는 하강곡선에 의한 공간적 배경에 이어 “새벽 별―생선도가―이모 집―외삼촌 집”이 소개되고, “해장술―어머니―술국―아버지―형―누나―나―동생―콩나물시루―빨래줄”이라는 서사구조가 얽혀 한 가족사를 드러내고 있으며,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것이 “누더기 같은 우리의 희망”이었다고 진술되어 있다. 더구나 일상적인 어두운 삶 속에서 “천마산”이 버팀목처럼 바람과 안개를 거느리고 내려왔다 올라가는 배경 묘사가 산뜻하게 처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상상력보다는 기억력에 의한 묘사와 진술이 “천마산”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으로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건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세계는 그 자체가 역설 혹은 아이러니로서의 진실이다. 시의 상상력 전개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사물을 장악할 수 있는 물질적 상상력, 우주의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는 우주적 상상력, 신화의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신화적 상상력 등을 끊임없이 계발해가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에 의해 통찰력을 기르고, 동서양의 고전이나 미래세계에 대한 여행과 도전을 하고, 자연을 누비면서 시의 원천인 감수성을 연마하는 수밖에 없다. 이 감수성을 토대로 상상력을 끌어내고 상상력의 확장과 제한으로 얼개를 짜서 시적 구조를 분석하는 힘을 길러야 비로소 상상력은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고, 환상이나 백일몽 또는 유추단계를 벗어나 완전한 상징의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상력(imagination)이란 무엇인가? 이제 그 정의를 내릴 때가 왔다. 상상력이란 과거에 경험했던 사물의 이미지를 재생하고 확대하고 제한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에 따라붙는 정서와 의미체계를 감수성의 통일로 이끌어 완전하게 한 편의 시로 형상화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그 전개 양상은 제3강 〈상상력 개발을 위한 유형학습〉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 상상력 확장의 제한

㉮ 상상력 공간의 폭은 크면 클수록 좋다. (윤동주, 〈서시〉)

㉯ 상상력은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체험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 상상력의 이미지는 쓰는 사람의 정신(사상)을 표출해야 한다. 

㉱ 상상력은 소비적이거나 감상적 또는 소모성의 에너지 운동이 아니라, 가치로운 감정의 정조(情操, 진·선·미=도덕성)로 분출되어야 한다. 

㉲ 상상력은 엘리엇이 말한 대로 문명 비판이든 정서적 충격이든 간에 객관적 상관물을 타고 감수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 지적 충격(반전통적인 시)과 정서적 충격(전통 시)이 동시다발적으로 통일성을 이루는 것이 좋다. 

㉴ 상상력의 이미지는 천체성이든 광물성이든, 식물성이든 동물성이든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결합하는 힘이 커진다.(우주적 상상력―윤동주의 〈서시〉 참조)

㉵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대립 갈등 구조가 성립되면 시는 견고해지고 상상의 폭은 무한 증대한다. (직선/곡선·느낌/빠름·물/불,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을 분석해 볼 것)

㉶ ‘아니마’로 구성되면 여성적인 정서로 부드러워진다. (윤동주의 〈서시〉 중 하늘/별/바람, 잎새/시)

< ‘상상력 개발을 위한 유형학습, 시 창작 실기론(송수권, 문학사상, 2017)’에서 옮겨 적음. (2020.09.2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71) 기억력과 상상력 - ③ 시적 리얼리티와 상상력/ 시인, 순천대 명예교수 송수권|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