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77) 일터 이야기 쓰기 - ② 윤동주, 신경림, 임효림/ 시인 공광규
일터 이야기 쓰기
네이버 블로그 - 정인희/ 해바라기의 얼굴
② 윤동주, 신경림, 임효림
윤동주는 1930년대 공장노동자인 여성이 출퇴근하는 모습을 해바라기에 비유하여 시를 쓰고 있습니다. “식민지 백성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을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조재도, 『선생님과 함께 읽는 윤동주』, 실천문학사, 2006)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
―윤동주, 「해바라기 얼굴」 (1939) 전문
신경림은 개발독재기에 피폐한 농촌의 정경을 시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시에서 지리적 공간 배경은 농촌이기도 하고, 이농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외딴 공사장이기도 합니다. 농촌에서 내몰린 다양한 사람들이 시에 등장합니다.
박서방은 구주에서 왔다 김형은 전라도
어느 바닷가에서 자란 사나이.
시월의 햇살은 아직도 등에서 따갑구나.
돌이 날고 남포가 터지고 크레인이 운다.
포장친 목로에 들어가
전표를 주고 막걸리를 마시자.
이제 우리에겐 맺힌 분노가 있을
뿐이다. 맹세가 있고 그리고 맨주먹이다.
느티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워놓은
면서기패들에게서 세상 얘기를 듣고.
아아 이곳은 너무 멀구나, 도시의
소음이 그리운 외딴 공사장.
오늘 밤 주막거리에 나가 섯다를
하자 목이 터지게 유행가라도 부르자.
사이렌이 울면 밥장수 아주머니의
그 살찐 엉덩이를 때리고 우리는
다시 구루마를 밀고 간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밀린 간조날을
꼽아보고, 건조실 앞에서는 개가
짖어댄다 고추 널린 마당가에서
동네 아이들이 제기를 찬다. 수건으로
볕을 가린 처녀애들은 킬킬대느라
삼태기 속의 돌이 무겁지 않고
십장은 고함을 질러대고. 이 멀고
외딴 공장에서는 가을해도 길다.
―신경림, 「원격지」 전문
단연 25행의 이 시는 7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구주에서 온 박서방, 전라도 바닷가에서 자란 김형, 느티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워놓은 면서기 패들, 살찐 엉덩이를 가지고 있는 밥장수 아주머니, 제기를 차는 동네 아이들, 수건으로 볕을 가리고 킬킬대는 처녀애들, 고함을 질러대는 십장이 그들인데, 모두 전형적인 민중들의 형상입니다. 외딴 공사장과 주변에 있는 이들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인물묘사와 함께 화자가 포함된 우리의 행위는 민중성을 강화합니다. 그런데 인물들 행위가 연결되면서 시간의 흐름이 감지됩니다.
이 시를 보면 복수화자인 우리가 행위를 계속하면서 다양한 인물의 행위가 서술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삽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술의 흐름 속에 시간이 개입되고 있습니다.
15행의 점심시간으로 상정되는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낮과 그 이후의 낮이 그것입니다. 이 시에서 시간은 “시월의 햇살은 아직은 뜨겁구나”와 “외딴 공사장에서는 가을해도 길다”는 진술을 통해 지루한 노동생활을 잘 드러내줍니다.
신경림의 대표작인 「농무」를 보겠습니다. 신경림의 대부분의 시가 그렇지만 이 시의 내용과 그 구조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시는 한 개의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신경림, 「농무」 전문
단연으로 된 20행인 이 시는 신경림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입니다. 개발독자와 고향상실의 1970년대에 발표되어 현대문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시의 제목이 ‘농무’인 것처럼 동적인 모습이 생동감 있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우리’로 농무를 추는 농민집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시의 특징은 사건 진행이 공연이 끝나면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시의 이야기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징이 울리고 막이 내림 → 분이 얼룩진 얼굴로 술을 마심 → 꽹과리를 앞세워 장거리로 나섬 → 쪼무래기들이 따라붙음 → 처녀애들이 킬킬댐 → 보름달이 밝음 → 울부짖고 해해댐 →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옴 → 점점 신명이 남
시에서 공간 이동을 살펴보면 텅 빈 운동장 → 학교 앞 소줏집 → 장거리 → 쇠전 → 도수장입니다. 노동을 소재로 한 것은 아니지만 농업노동에 의욕을 상실한 농민들의 놀이와 노동현장인 농촌을 배경으로 한 노동시임에 분명합니다. 자신이 어떤 형태로든 일하고 있는 현장을 이런 방법으로 써보기 바랍니다.
그런데 일을 잘하기보다 일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온종일 일한 사람에게는 유혹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 일이 없는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이 없으면 다른 궁리를 하거든요. 일은 세 가지의 악인 권태, 죄악, 빈곤을 추방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만 열심히 한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해도 밥먹기가 어려운 사회가 있습니다.
승려 시인 임효림의 제목이 없는 아래 시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뼈빠자게 일하지만
세끼 밥을 걱정한다
민중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 즉 생계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설문을 해보면 거의가 생계 때문에 직장에 다닌다고 대답을 합니다. 자본 중심의 생산체제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아실현보다 생계를 위해서 고역스런 노동을 합니다. 이러한 노동현장은 인간 위주가 아니라 잉여에 골몰하는 자본, 생산수단을 장악한 자본주의의 경쟁체제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극심한 차별도 존재합니다. 2009년 현재 전체 노동자 1,600만 중 850만 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합니다. 자본은 인건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입니다.
위 시는 간단하고 명료한 2행의 시입니다. 제목도 없습니다. 한국 전체노동자의 비극적 비동현실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정말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밥을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간략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미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어서 노동에서 보람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즐거움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 “뼈빠지”는 노동인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취약하여 국민기초생활이 보장되어 있지 않거나 국가가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부분 노동자는 이렇게 뼈빠지게 일해도 겨우 생계를 유지할 뿐입니다.
자본이 노동을 통제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물론 해고도 밥 먹듯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가여운 존재들이다
늦은 가을 도심의 가로수 아래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낙엽을 밟으며 걸어본 사람은 안다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저 바람의 의미를
오늘은 어느 곳에서는
한 사내의 목숨 줄이 끊어졌다
저 거대한 도시는
누구에게도 삶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임효림, 「해고통지서」 전문
화자는 해고통지서를 받은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는 언술을 통해 “삶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거대한 도시의 모순과 허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도시의 화려함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러한 도시가 노동자들에게는 해고통지서를 보내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4연에서는 노동자인 한 사내가 해고통지서를 받고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5연에서는 노동자의 죽음을 낳은 거대한 도시를 통해 상황적 반어(아이러니) 수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어적 수법은 모순과 대조를 통해 죽음의 비극성과 현실에 대한 비판성을 강화시킵니다.
<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공광규, 시인동네, 2018)’에서 옮겨 적음. (2020.10.0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77) 일터 이야기 쓰기 - ② 윤동주, 신경림, 임효림/ 시인 공광규|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