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밟으면 얼음 대비하라 (김동근)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봄에 싹을 틔웠다가 여름날의 폭염, 태풍에도 꿋꿋하게 견디었던 나뭇잎들도 자연스럽게 낙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사람들도 곧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겨울나기에 필요한 김장을 하거나 연탄 또는 겨울용품 등을 사들인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이다. 이상견빙지는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단단한 얼음이 어는 계절이 다가오니 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단한 얼음이 얼고 난 뒤에 겨울을 준비하려고 하면 이미 손쓸 때가 늦게 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서리 같은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는 중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의 FTA 협상, 무상보육?무상급식, 공무원연금개혁 등이, 국외에는 에볼라 바이러스, 이슬람국가(IS) 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한?중, 한?캐나다, 한?호주, 한?뉴질랜드 FTA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제 국회의 비준만 남아 있다. 정부는 동시다발적으로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속도전으로 일관하였고, 비준권을 가진 국회마저 소외시킨 채 협상을 하였다. FTA의 타결로 직접적 피해를 보는 농어민, 중소상공인,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 타결을 선언한 뒤에도 협상 결과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통상협상의 비밀주의가 어떠한 폐해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지 2008년 한?미 FTA 사태 때 목도한 바 있다.
정부의 설명처럼 국민소득 4만불을 달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FTA라면 정부는 비준동의안을 넘기기 전이라도 FTA 체결 전 과정에 대한 자료를 국회에 성실히 제출하여 국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FTA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던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과 피해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FTA 체결에 속도를 내는 것만큼 피해산업의 대책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상보육은 대선후보자들이 공통으로 내건 공약이었고, 박 대통령도 무상보육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하였다. 누리과정 재원을 2014년까지 국비?지방비?지방교육재정교부금서 분담하였고, 2015년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서 전액 부담키로 지난해 3월 시행령을 고쳤다. 그러나 올해 10월 전국의 시?도 교육청은 재원이 없다고 누리과정 관련 예산편성을 거부하고 나서 무상보육이 중단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무상보육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정치에 부정적인 젊은 엄마들에게 효과 있는 정책이었던 까닭에 국가 재정에 대한 대책 없이 너무 빨리, 너무 한꺼번에 늘린 것이 문제였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무상보육이 대선공약사업이니 정부가, 법정사업이니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하여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무상보육이 중단되지 않도록 누리과정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여야는 정파를 떠나 근본적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개혁 논의는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한 재정 지출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여당에서 만든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추진 방식과 절차 등에서 적잖은 문제를 드러냈다. 공무원 사회의 내부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친 안을 만든 게 아니라 법안부터 만들고 사후(事後) 설득에 나섰다.
이러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당사자인 공무원노조는 자신들을 배제한 채 밀실에서 진행되는 개혁 논의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 세대의 부담도 고려하고 현재 공무원들의 입장도 고려하는 서로 고통을 분담하는 타협안을 도출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치사율이 높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고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국민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볼라 바이러스 발생국인 시에라리온에 의료진을 파견할 계획이다. 파견될 의료진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국가에 의료봉사를 나갔던 미국인 의사들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려 미국 본토로 이송되어 오자 미국 본토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될 수 있다는 미국민들의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간호사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려 치료를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도 에볼라 감염환자 발생시 치료를 맡은 국립의료원 감염내과 소속 간호사 4명이 사표를 낸 것에 대해 에볼라 공포에 의한 사표가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 정작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와 치료약 개발 그리고 국민들의 우려를 잠재우는 것이다.
서리를 밟으면 얼음을 대비하라는 “이상견빙지”의 태도는 국가의 난제를 풀어 나가는 지혜이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가슴 깊이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대비할 때이다./김동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