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80) 언어의 집 찾기 - ② 언어지능/ 만해학회 회장, 문학박사 전기철
언어의 집 찾기
네이버 카페 - 지후맘/ [대표카페지후맘 언어지능무료체험단체험후기]아이의 숨은 지능 찾기
② 언어지능
인간이 언어를 창조하고 사용하면서 그 지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였다고 많은 언어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주장한다.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그 소통은 직접적 소통뿐만 아니라 간접적 소통 또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직접적 소통이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언어라면 간접적 소통은 예술적 언어이다. 직접적 소통이란 말로 지시하는 대상 사이에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관계가 성립되어 발신자와 수신자의 소통이 매개 없이 바로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일상어나 산문 언어에 의한 소통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언어는 관례적이고 사회적이어서 창조적이지 않아 쉽게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착화가 곧 소통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하나의 기호에 해당하는 의미가 하나여야지 둘 이상이면 뜻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언어는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상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하나의 언어를 알면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뜻에 고착되어 사용자는 언어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창의적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라캉의 말처럼, 인간이 언어를 공짜로 얻었지만 언어는 인간을 식민화한다. 그래서 창작에 뜻을 둔 시인은 그 언어를 끊임없이 새롭게 개발하고 확장하려고 한다. 시인은 언어의 현실적 의미 너머로까지 확장해서 새로운 의미의 언어를 만들려고 하며, 급기야는 그 언어를 아무 뜻도 없는 데로까지 끌고 가려한다.
시의 언어는 내재적 소통을 추구한다. 즉, 시에서 사용하는 말은 시 안에서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언어이다. 그것은 시인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언어이다. 시의 언어는 현실적으로는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더라도 미적·정서적으로는 풍성한 느낌이 나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 내적인 언어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일상이나 산문에서 사용하는 말을 시 내부에서 소통되는 내재적인 성질로 바꾼다.
따라서 시인은 자기만의 독자적인 언어 구사법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단어를 자유자재로 합성하고 바꾸고, 의미를 확장시키거나 무화시켜, 새로운 말의 조합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그 시인을 언어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다. 언어 디자이너는 언어를 재창조한다. 시에서는 말과 말이 만나 새로운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일상어를 비틀고 왜곡하며, 무작위로 합성하거나 실언을 감당해야 한다.
창의적인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의 범위를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사회적 뜻에서 무의미까지의 부챗살처럼 퍼질 수 있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않고는 창의적인 말을 개척할 수 없다. 그 한쪽 극단이 일상어인 사회적 언어라면 다른 극단이 언어의 기호성이다. 기호는 버스의 냄새로 될 수 있고, 휴대폰의 맛도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들은 몸의 기호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감각을 열어 맛본 세상은 모두 기호다. 기호는 의미에서 자유롭다. 기호는 사람에 따라 시대나 환경에 따라 그 의미가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모든 말은 번역이라고 했다. 이는 시에서는 더욱더 분명하다. 시에서 불행이나 절망, 고독이라는 말은 시인이나 독자에 따라 달리 다가온다. 자신의 욕망이나 이해 범위에 따라 말의 뜻은 달리 다가온다. ‘아담’이라는 말은 성경 속의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떤 대상 없이 부르는 이름이거나, 여자 이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 안에서 시인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회적 언어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그리고 그 역으로 건너다닐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창작자이면서 사회적인 존재이므로.
시는 우리의 감성적 욕망이나 꿈을 표현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리의 욕망이 꿈으로 바뀔 때 그것은 압축되거나 전이된다고 한다. 그 꿈의 언어는 시의 언어와 유사하다. 창의적인 언어 사용자는 자신의 욕망을 꿈으로 인식하여 그것을 새롭게 합성하고 왜곡한다. 이렇게 말을 합성하고 왜곡하며, 재배열하기 위해서 시인은 우선 많은 어휘를 알아야 하고 그 쓰임을 다양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 가운데 줄임 >
문학의 언어는 형상적이다. 형상이라는 뜻은 그 말이 구체적 현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말에서 울림이나 모양, 맛, 촉각, 냄새가 나는 게 형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형상적 상상, 혹은 사색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지식인이 관념적 사유를 한다면 시인, 혹은 예술가는 형상적·감각적 표현을 한다.
언어의 범위는 단순 지시성이 한쪽 끝이라면 그 극단의 반대쪽에 기호성이 있다. 지시적인 언어는 일상적 산문 언어로서 어떤 낱말이 하나의 대상을 갖는 말이다. 그에 비해 기호로서의 언어는 의사소통에서 자유로운 창조적인 표현의 매개체이다. 일상적 산문과는 달리 시의 언어는 우리가 의도했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산문에서 어떤 말은 언어 밖의 어떤 사실과 의미가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시에서 언어는 작품 내적 관계에 의해서 그 의미가 결정되는데, 그것도 느낌으로 다가와 기호성이 가깝다. 이것이 시의 언어가 지니는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만일 우리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의 그러한 감정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를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이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에 시에서 비유를 쓰고 상징을 쓴다. 하지만 그렇게 비유나 상징을 쓰고 보면 그 말들은 우리 자신의 의도를 벗어나 그 자체가 시인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한다. 여기에 시인의 갈등이 일어난다. 시의 언어는 늘 시인을 배반하려고 하며, 심지어 그 언어는 자신의 본래 의미까지도 배반하려 한다. 그 때문에 기호로서의 언어인 기표는 다양한 기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하고, 더 나아가 기표는 또 다른 기표를 끌어들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말은 시에서 자신의 의도나 생각을 드러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독자는 시인의 의도대로 읽어주지 않는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는 시에서 의미는 열려 있다고 했다. 보다 엄밀히 말해서 누군가의 말을 진정으로 알아들으려면 우리는 그 말을 번역하거나 통역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많은 말을 알고 싶어 하고, 언어 속에서 상상을 하며, 그 언어의 의미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작업한다. 따라서 시인은 일상적인 진술의 언어를 쓰기도 하고, 또 다른 극단에 있는 기호를 쓰기도 한다. 사인은 그 양극단 사이에서 미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시인은 언어 수집가이며, 언어 마술사이기도 하다. 시인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의 뜻에 얽매이지 않고 말을 창조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절대로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시는 일반 독자 속에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다음 시에서 말이 얼마나 자유롭게 쓰기고 있는지 보자.
㉮ 너는 말끝마다 죽기가 너무 힘들다며 맨소래담한다 맨들맨들 동그랗게 한 시대가 미끄러지면서 맨소래담한다 전깃불 아래서 그림자 지도록 맨소래담하다가 까무룩 졸기도 하고 머릿속 스위치가 꺼질 때도 맨소래담한다
㉯ 유독 높이를 가늠할 수 없던 나의 첫 짐승 같은 건물
건물과 건물 사이로 가볍게 곤두박질치는 햇빛들을 손톱이라 부르자
버려진 손톱을 먹은 쥐는 왜 나를 닮았을까
―박성준, 「육면체로 된 색깔」 부분
시 ㉮에서 “맨소래담”이란 말이 피부에 바르는 약(도포제) 이름이다. 그런데 그 말을 서술어로 쓰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시 ㉯에서는 건물을 “나의 첫 짐승 같”다고 하고, 햇빛을 손톱이라 부른다. 엉뚱하게 쓰인 이런 말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 말들이 시 전체에 미치는 파급적 효과에서 오히려 의미나 미적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10.0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80) 언어의 집 찾기 - ② 언어지능/ 만해학회 회장, 문학박사 전기철|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