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쉴만한 물가인가 - 안유환
같은 지역에서 나란히 문을 열고 있는 같은 업종의 두 상점에 한쪽은 사람이 많이 몰리고 다른 한쪽은 한산한 광경을 볼 때가 있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럴만한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한쪽은 물건 값이 싸고 한쪽은 비싼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값싸고 질이 좋다는 것은 고객을 붙들어 놓는다. 즐비하게 늘어선 주유소들 가운데 단돈 10원이라도 싼 쪽으로 차들이 몰려온다. 값에서 차이가 없으면 종업원의 친절에 따라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양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친절한 말 한마디는 다소 비싼 물건 값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다시금 그 집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친절해도 그 판매하는 물건의 질이 좋지 않으면 고객은 격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값을 조금 더 주어도 질이 좋으면 별로 문제 삼지 않지만 속았다는 것은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IMF시대를 지내면서 여기저기서 가격파괴를 외치지만 질적으로 부실하면 손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음식 값이 싸고 주인이 친절해도 음식 맛과 질이 부실하면 외면하는 것이 소비자의 심리이다. 어떻든 줄을 잇던 고객의 발길이 줄어들게 되는 데는 어딘지 모르게 그 업자 쪽에 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교회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얘기는 90년대 중반에 들면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6.25전쟁이후 어려운 시대를 거쳐 오면서 한동안 교회는 예배드릴 공간만으로 교회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문턱을 넘고 있는 오늘에 와서는 사정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그것은 이미 80년대의 풍요를 누리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문제이다. 옛날에는 음식을 먹을 때 배부른 것을 으뜸으로 꼽았지만 오늘에는 아늑한 분위기에 배부르지 않고 맛이 있는 것, 살이 찌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는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삶의 질과 품위가 요구되는 곳이다. 지난 날 어려운 시대와 같은 시설로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온지 120년이 가까워오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아직까지 예배당만 있으며 소그룹을 활성화하거나 교회학교 교육을 위한 시설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교회학교의 공과공부는 그 성격상 예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지만 교회 어린이들은 오늘도 마치 피난살이 시절의 학생들처럼 교회마당 구석이나 계단 또는 승합차 안에서 말씀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교육의 효과는 환경과 시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데서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조용히 생각하며 휴식하거나 대화 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다. 성도들이 “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찬송은 부르면서도 잠시라도 마음 놓고 대화하며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기쁘게 교회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쉼이란 오로지 일하지 않는데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교인들이 한 주간동안 직장과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교회에서는 예배만 드리고 끝나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쉬는 것만으로 기쁨을 찾을 수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성도들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보람과 안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기쁨이란 가만히 놀고 있을 때보다 교회공동체를 위해 부지런히 봉사하다 잠시 차 한 잔을 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휴게실이나 의자가 놓인 로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가 끝나면 마치 옛날 가설극장에서 영화상영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쁘던 모습처럼 되어버린다. 교회마다 교인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며 전도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교회가 ‘쉴만한 물가’가 되기 전에는 교회와 멀어지는 발걸음을 붙들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교인수가 줄어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가운데 또 하나는 오늘의 교회로부터 본받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과거는 깨끗이 흘러 보내고 새로운 마음을 갖고 새 삶을 살기 위한 다짐을 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본연의 자세는 잊어버리고 이기적이며 자기를 나타내려고 서로 다투기라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신앙생활을 잘해보려고 다짐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말없이 교회를 떠나든지 남아있는 사람들도 자기방어를 위해 마음의 담을 쌓아가게 된다.
오랜 신앙선배들의 말을 들으면 교회는 싸우지 않으면 성장한다고 한다. 주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고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목회자의 설교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아도, 성도들이 그렇게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마음속에서부터 서로 화목하며 칭찬 받을 일들을 한다면 교회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새 천년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교회는 구습을 벗어버리고 삶의 질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설과 함께 교양 있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