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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상식적인 수준에서 그리스신화와 그리스 사상에 대해서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통해서 그 내용은 물론 사상적인 깊이까지도 어느 정도 채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겠다.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이라는 부제에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 생각해 봤을 질문들을 독자들을 향해 던지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각각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왜 그러한 질문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전공이기도 한 고대 그리스 사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고 있었다. 읽으면서 그리스신화와 그리스 사상에 대한 어렴풋한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학의 요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사고의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철학이 전공인 저자가 던지는 9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와 그들의 문헌을 통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내용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라는 전제로부터, 저자는 우리의 삶에서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이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오이디푸스를 예로 들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철두철미 안다는 것이 과연 유용하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고 있다. 즉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내용들이라 할 수 있는데, 꼭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탐구는 이성 중심의 그리스 사상을 통해 접근하는 저자의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 신화가 아닌 그리스로마신화가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로마가 그리스의 정신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리스를 닮아보려는 로마인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저자는 누차 강조하듯이, 해답 그 자체가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간혹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타인들이 바라보는 나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때가 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의 비판적 시선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장장 10년 동안 집으로 귀환하는 오뒷세우스의 행적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8년은 아름다운 요정과 함께 안락한 삶을 누리지만, 끝내 귀환을 택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던 내용이었다. 만약 요정과 함께 안락하게 살면서 불멸하는 삶을 택했다면, 오뒷세우스는 더 이상 인간의 영웅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주지시키고 있다. 목적이 아닌,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것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예라 하겠다.
저자가 던지는 9개의 질문 중 4번째는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문제이며, 이어지는 질문은 '세상의 한조각으로서 나는 무엇일 수 있을까’이다. 이 두 질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며,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문제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존재에 질문들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을 돌아보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서, 역사를 살아가는 개인의 존재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자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은 것은 그리스신화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사유들이 적절히 활용되고 있다.
이제 스스로의 존재와 역할을 성찰했다면,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질문할 차례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저자는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가는 길’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잘 적응하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신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사유의 본질이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세상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순간,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질문보다 그저 묵묵히 공부만을 강요하는 환경으로 급격하게 바뀌게 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 할 것이다. 나 역시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질문과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순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의 흐름에 마냥 거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질문을 던지고 그 과정의 즐거움을 찾도록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질문이 나의 생각들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라 믿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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