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서는 조선이 개항을 하면서 근대화의 길을 걸어야 했던 1876년부터 지금 현재의 시점인 2020년까지 우리의 식문화에 대한 고찰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 온 저자의 새로운 저서라는 점에서, 나 역시 평소에 음식문화와 삶이라는 관점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 내용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서양과 일본을 통해 들여온 식문화를 통해 변화되었던 우리 음식들과 최근 한류를 통해 외국에 전해지는 한국의 음식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6부로 구성된 전체 목차에서, 가장 첫 번째 항목인 1부는 '개항의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서양 음식과의 만남을 주로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외교사절로 서양을 방문한 이들이 접한 서양음식과 대한제국 시기 왕실 주변의 기록들을 통해 서양음식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들을 짚어보고 있다. 우리의 전통 식단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아마도 새롭게 등장한 서양의 음식들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커피 매니아라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으며, 서울의 정동에 있던 손탁호텔은 외국의 음식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다는 점도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이러한 내용에 덧붙여, 저자는 서양음식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몇 가지 흥미로운 기록들을 제시하면서 그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식민지의 식탁'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본격적인 식민지의 길로 접어든 상황에서, 중일전쟁 이전까지 총독부와 일본인들에 의한 우리 식탁의 변화상을 다루고 있다. ‘일본식 두부와 빙수의 유행’으로부터 ‘우동’과 ‘왜간장’ 등이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한반도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당시 경제력이 있는 이들을 위주로 외식문화가 늘어나면서 식당들의 영업이 활발해지고, 화학조미료의 대명사인 '아지노모코'가 음식의 맛을 좌우하던 시대상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조미료를 기피하고 있지만, ‘감칠맛’으로 대표되는 화학조미료가 이후 우리의 음식문화에 끼친 절대적인 영향이 이때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부에서는 일본의 야욕이 본격화되던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해방과 함께 찾아온 혼란기를 지나 한국전쟁 시기까지를 '전쟁의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 후반 전쟁물자로 사용하기 위해 이른바 '대용식'을 권장하고, 이에 부화뇌동하던 자들의 활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용식으로 개발된 호떡과 소면(국수), 그리고 번데기를 비롯한 길거리 음식이 이후 그대로 온존하고 있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기쁨도 잠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노출되어 있었고,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주로 미국의 구호물자에 기대어 살아야 했던 역사적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객관적 사실만을 서술하고 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현대사의 어둡고 힘겨웠던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근대화의 길을 걸었던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밥상에 올랐던 음식들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추적하여 서술하고 있다. 4부에서는 '냉전의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 물품으로 채워지는 우리의 식탁에 대해서 조망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 부분에서 북한에서 이른바 '민족음식'을 구축하려는 노력과 그 품목들도 앞부분에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량의 수급사정이 좋지 못했던 당시, 남쪽에서도 박정희 정권은 쌀의 소비를 줄이기 위한 혼분식 장려와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개량하는 등의 정책을 실시했다. 즉석 조리식품으로 라면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고구마나 타피오카를 원료로 한 지금의 희석식 소주가 탄생한 흥미로운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압축성장의 식탁'이라는 제목의 5부에서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시대와 일치하는 시기이다. 외식문화와 패스트푸드의 등장이 시작되는 시기이며, 다양한 상품들이 수입되고 개발되면서 '전쟁 같은 경쟁'의 식품산업의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서는 강남의 개발과 함께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마치 유원지를 방불케 하는 고급 음식점들이 속속 문을 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던 원인은 1988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음식문화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시기에는 횟집이 대중화되면서 외식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였고, 탄산음료를 비롯한 음료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이른바 '세계화'의 물결이, 우리의 식탁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6부에서는 '세계화의 식탁'이란 제목으로 전세계의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물이 수입되고, 또한 한류의 영향으로 우리의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제 다양한 문화에서 배태된 음식들이 섞여 또 다른 '퓨전요리'로 개발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세계화 과정에서 변하고 있는 입맛'을 요즘 우리의 음식문화에서 실감할 수 있으며, 이 책에서는 그러한 품목들과 식문화에 대해서 상세히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을 통독하면서 지난 한 세기의 음식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