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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통치하던 1970년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저자의 자서전적 기록이다. 제주도가 고향이었던 저자는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서울에 도착했지만, 당시 대학의 상황은 엄혹하기 그지 없었다. 자유로운 의사 표시가 불가능했던 것은 물론, 대학 캠퍼스 안에 경찰이 오가면서 감시를 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현실에 대해 조금만 불만을 표하더라도 공권력에 의해 끌려가던, 이른바 ‘막걸리 국보법’으로 회자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고쳐보려던 움직임조차 대통령 한마디로 정해진 ‘긴급조치’에 의해 통제를 하였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온 저자는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던 <영초언니>를 생각하면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지금은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해서, 자신이 처음 시작했던 제주 올레길에 관한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당시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있다. 오히려 사상의 자유가 넘쳐 흘러, 그로 인한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하는 시대이다. 그 시대를 살아오면서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당시의 엄혹한 독재 치하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문득문득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는 이른바 ‘386 세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지만,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한 세대가 앞서지만, 저자와 같은 이들은 오히려 그 시대의 문제 의식을 유지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실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와 ‘영초언니’로 지칭되는 천영초는 나에게는 대학의 선배이다. 그리고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에, 저자와 같은 공간에서 대학신문의 기자를 했던 인연을 가지고 있다. 아마 대학 시절이나 졸업 후에 여러 번 마주쳤을 것이지만, 두 사람과의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의례적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여러 해 전에 저자가 제주 올레길에 대학 선후배들을 초청했었는데, 나는 다른 일정과 겹쳐 그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이 책이 나온 직후, 두 사람을 기억한 동문 누군가가 제안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당시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를 겪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역사의 기록’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 시대를 함께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생생한 ‘현실의 기록’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당시 그들의 행적과 지금의 언행들을 잠시나마 비교해 볼 수도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에는 저자가 느꼈을 당시의 분노와 좌절감 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만큼 저자가 겪었던 ‘현실의 기록’이 생생하게 각인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엄혹한 시기 우여곡절을 겪은 삶을 살면서, 끝내 큰 사고로 인해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간 ‘영초언니’의 삶이 평안하기를 빌어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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