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창(時調唱) / 김병우
이슬비 내리는 사월에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 되었던 경주 금장대(金藏臺)를 찾았다. 무녀도에서 무녀 모화는 망자의 혼백을 건지려고 형산강에 뛰어든다.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곳, 물이 회오리쳤던 예기청소(藝妓靑沼)에서 죽음을 맞는다. 바로 그 옆 높은 절벽 위에 금장대 누각이 있다. 주차장 입구에서 금장대까지 가는 산책길은 온통 노란 유채꽃으로 둘러싸여 비가 오는데도 세상이 환했다. 금장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형산강과 경주 시내가 점점 넓게 펼쳐졌다. 거의 다 올라갔을 무렵 금장대 누각에서 언덕 아래로 시조창이 울려 퍼졌다.
금장대 올라보니 대청마루에 소리꾼이 누각을 등지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누각 한편에 영제 시조‧신라 향가 전곡 발표회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옛 시인 묵객들이 이 정자에 앉아 발아래 형산강을 바라보면서 시를 짓고 시조창을 하였으리라. 가락악기 소리에 맞춰 갓을 쓰고 분홍색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소리꾼이 창을 한다. 긴 숨을 배 안에서 내뿜는 소리꾼의 턱은 북천을 향했다. 한 음 한 음 길게 뻗어내며 휘어지게 읊는 저 소리는 익숙한 소리였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소리꾼의 묵직한 저음이 귀에 감기면서 알 수 없는 처연함이 가득하다.
순간, 그 소리꾼이 시조창을 읊고 있는 살아생전 아버지 모습과 겹쳤다. 아버지는 호국 영웅기장증을 받은 6‧25 참전 유공자였다.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하여 전쟁이 끝나는 해까지 현역 신분이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 문등리 전투에서 머리에 적의 탄피가 박혔다. 신병 치료차 홀어머니가 계시는 대구집으로 왔다가 할머니의 만류로 원대 복귀가 늦어져 탈영병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불명예 제대로 인하여 아버지의 인생은 꼬였다. 머리에 남아있는 파편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쉽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직장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들락였다. 어머니의 경제력으로 가족의 생계를 겨우 이어나갔다. 무능한 가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아버지는 평생을 육체적 장애와 정신적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버지는 전쟁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한 많은 92세의 삶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갑자기 치매가 왔다. 집에서 어머니 혼자서 간병하기가 힘들어 부득이 요양원으로 모셨다. 생의 마지막 3년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치매가 오기 전까지 시조창(時調唱)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한을 시조창으로 풀어 보려는 처절함이었으리라.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각종 대회에서 장원을 휩쓸었다. 대한시조협회 명예회장 직함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소리의 보상인 셈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출전하는 경연장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무능한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창을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내가 지켜본 아버지는 항상 나약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였다. 아버지가 어떤 대회에서 무슨 상을 받았는지는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명절을 쇠러 우리 집에 왔을 때였다. 아버지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운동하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팔순을 넘긴 아버지가 걱정되어 내가 따라나섰다. 인근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 구석에 있는 팔각 정자를 본 아버지는 그리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정자에 올라서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몇 차례 심호흡을 한 후 복식 발성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아버지의 유별스러운 행동이 엄숙해 보였다. 위아래로 휘몰아치며 내지르는 소리파동은 내 귀를 때리다가 어느 순간 심장을 두드렸다.
‘세상공명(世上功名) 부운(浮雲)이라 강호어옹(江湖漁翁) 될지어다’로 시작하여 ‘애내곡(欸乃曲) 부르면서 달을 띄고 돌아오니 세상(世上) 알까 두렵다’로 끝나는 내가 아는 사설시조(辭說時調)였다.
아버지는 점점 새벽안개에 묻혔다. 그 속에서 한 소절 한 소절 휘어지게 읊는 소릿결이 길게 나아갔다.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울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당신이 걸어온 순탄하지 못했던 인생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6‧25전쟁, 학도병, 군사재판, 인생의 낙오자 ……. 그 꼬리표들이 마치 한풀이하듯 창 소리에 녹아들었다. 아버지가 왜 그토록 시조창에 몰입하였는지 알 듯했다.
아버지가 요양원 가기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거 아버지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 애지중지하던 책을 잃어버리고부터 식사도 거르고 …….”
잃어버렸다는 책은 ‘시조창 악보’였다. 아버지께서 손수 기술한 책이었다. 나도 그 책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깨알 같은 연필 글씨로 꾹꾹 눌러서 쓴 책에는 아버지 혼이 담겼다. 얼마나 상심이 컸으면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을까.
평소 아끼던 책을 분실하고부터 아버지에게 치매가 왔다고 어머니는 믿었다. 아버지는 요양원 생활 중에도 잃어버린 책 얘기를 자주 했다. 시조창을 같이 했었던 아무개가 그 책을 훔쳐 갔다며 책에 대한 집착을 끝내 못 버렸다. 죽음 앞에서 그게 뭐라고 그토록 내려놓지 못하였을까.
잃어버린 시조창 책은 아버지에게 부적 같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전쟁 상흔을 치유하는 주술 도구였을 것이다. 책을 찾지 못한다면 또다시 전쟁의 기억 속에 휘말려 들어갈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버지는 요양원에서도 시조창을 흥얼거렸다. 간혹 정신이 맑은 날, 먼 산을 바라보며 창에 푹 빠졌다.
한 음 한 음 길게 뻗어내며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떠는소리는 마치 봄이 와도 잎을 피우지 못했던 아버지의 지난한 삶이었다. 슬프고도 처절한 계면조는 전쟁이 휩쓸고 간 황량한 터에 뿌리내린 고단한 나무 사이를 부는 바람 소리 같았다.
그런 바람 소리가 지금 금장대에서 울린다. 북천을 바라보고 앉은 소리꾼은 눈을 지그시 감고 두루마기 아래로 길게 가락을 토해낸다. 금장대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평온해 보인다. 북천의 물줄기는 고요히 흐르고, 경주 시내는 봄비에 젖어 말갛다. 전쟁 같은 삶을 견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창을 할 때마다 멀리 시선을 던진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이슬비가 가랑비로 변해 금장대를 촉촉이 눅인다.
첫댓글 세상공명(世上功名) 부운(浮雲)이라 강호어옹(江湖漁翁) 될지어다.
아버지의 일생이 이 말 한마디로 요약될 듯.
아픈 우리 역사와 맛물려 있어 울림이 큽니다.
아버지의 한을 멋있게 풀어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김병우 문우님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