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 신미나
부레옥잠 / 신미나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 꿈속에서도 나를 탐하여 물 위에 空房 하나 부풀렸으니 일을 슬어 몸엣것 비우고 나면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 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었으니
참 오랜만에 당신 오실 적에는 불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네 문 밖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다가오는 걸음 소리에 귀를 적셔가매 당신 정수리 위에 뒷물하는 소리로나 참방이는 뭇별들 다 품고서야 저 달의 맨 낯을 보겠네
[당선 소감]
어릴 적 길을 가다 빛나는 돌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 쓴 돌들 사이, 햇빛에 반사되어 이상한 광채를 뿜는 돌이었다. 친구와 나는 그 어떤 표시도 하지 않은 채 보물을 숨기듯 그 돌을 땅에 묻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잊지 말고 돌을 찾으러 가자고.
다음날 친구와 돌을 묻은 곳으로 찾아갔으나 그 돌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대개는 모양이 비슷한 것이거나, 집어 드는 순간 빛이 시들어 버렸다. 나중에는 그 돌의 생김새가 어떠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내려 놓았다가 다시 집어든 돌은 처음것과 이미지와 무게를 닮은 것들일 뿐 모두 가짜 같았다.
시가 그랬다. 돌이 빛나는 한순간의 섬광, 그 칼날같이 번뜩이는 이끌림을 포착했던 시들은 힘이 셌고 정직했다. 매만지거나 흉내내기 이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나에겐 진짜 시였다. 지난 시간 함부로 가져와 빛을 잃은 내 비유들을 제자리로 돌려주고 싶다.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이미 옛일이 되었음을 안다.
이제와 다 지난날의 삽화를 떠올리는 것은 강릉의 대관령 길로, 서울로 떠돌았던 내 생이 결국은 어딘가에 묻혀 있을 그 돌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나는 두렵고 외된 길 위에 떨며 서 있다. 지도도 없는 보물찾기가 싫어 손금을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았으나, 거짓에게 매번 지면서도 종내는 진실하기를. 하여 아프고 가난한 삶의 이마를 짚어주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곡진하다.
마침내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님들, 숭의여대 강형철 선생님, 박세현 선생님, 김사인 선생님과 고루 기쁨을 나누고 싶다. 특히 이홍섭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아울러 강릉대 평생교육원 문우들과 오랜 벗 수영, 태영, 수현, 인숙, 부모님과 함께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이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은 그저 소박하나 달리 그 마음 너머까지 전할 길이 없어 미안할 따름이다
[심사평]
한편의 시의 탄생은 한 생명의 탄생 만큼 눈부신 일이다. 수많은 독자의 기대를 받으며 신춘 정월 초하루에 태어난 시는 분명 축복받은 시임에 틀림없다. 금년도에도 그런 시가 태어났다.
당선작으로 뽑힌 신미나의 ‘부레옥잠’은 부유성 수초인 ‘부레옥잠’이라는 작은 사물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서정성의 깊은 완성을 획득한 시이다.
“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시대와 삶을 투시하는 사상성이나 새로운 언어의 탐색은 없다 하더라도 사물에 대한 정감과 생명에 대한 여성적 상상력으로 넘치고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과 함께 끝까지 선자들의 손에 남았던 작품으로는 유병록의 ‘흰 와이셔츠오리떼’, 김서영의 ‘자벌레’, 박미산의 ‘파티마는 천왕봉에서 나를’, 박성준의 ‘에스컬레이터도 밟으면 꿈틀한다’, 김초영의 ‘스트렌딩 증후군’, 박도준의 ‘젖은 구두’ 등이었다.
볼링장의 레인과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을 절묘한 비유로 풀어낸 ‘흰 와이셔츠오리떼’, 엎드린 당신의 발을 끈질기게 물고 있는 삶의 늪을 묘사한 ‘젖은 구두’, 작은 생명에 대한 놀라운 순간을 환희로 포착해낸 ‘자벌레’ 등은 충분한 수준을 보여주는 가편이었다.
시는 언어 예술의 정점이다. 필연성 없는 산문성의 경향, 언어의 무절제한 낭비, 소통 불가의 시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치열한 시정신과 절제된 언어로서 서정시 본래의 감동을 획득하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 시인 김종해, 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