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 이만섭
직선의 방식 / 이만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한 정직이다
밤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
지평선이 반듯하게 선을 긋고 열리는 일이나
별빛이 어둠 속을 뻗쳐와
여과 없이 눈빛과 마주치는 것도
직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
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로 인하여 빨래는
마음 놓고 햇볕에 말릴 수 있을
것이다
바지랑대는 빨랫줄로 말미암고
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더욱 올곧아지는
그 기꺼운 방식
[당선소감] 독립군처럼 글 썼죠
“독립군처럼 글을 써왔습니다.”
시 부문 당선자 이만섭씨(55)는 제대로 된 문학 수업 한 번 받은 적 없다. 정읍농고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전북 고창의 ‘벽촌 산골 학교’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고 문학에의 꿈을 품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문학 공부를 지속할 수 없었다. 이씨의 ‘문학 독학’은 그렇게 시작됐다.
건설·주택 관련 일을 하고 리모델링 사무실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고, 김윤식·김현 등의 평론집과 ‘문학사상’ ‘현대문학’ 등 문학잡지를 빼놓지 않고 구독하며 문학의 꿈을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 공부와 소설 쓰기에 매진했다. 이문구와 김주영의 소설 등 1970년대 작가들의 소설을 섭렵했다. 그러다가 5년 전부터 시를 썼다. 장에 천공이 생기면서 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서다.
“수술받고 요양하면서 시간이 많이 생기니까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더군요. 병석에 있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시 쓰기의 끈을 붙잡아 준 것 같아요.”
좋았기 때문에 계속 할 수밖에 없었던 글쓰기다. 김승희 시인의 “목숨 걸고 쓰라”는 말을 되새기며 글을 썼다. “우러나와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터넷에서 문학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썼고, 5년간 1600여편의 시를 써왔다. 지방 문예지 등을 통해 등단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마다하다가, 지난해부터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두 번째, 올해 당선됐다.
집 앞 슈퍼마켓에 포도를 사러 나갔다가 당선 소식을 들은 그는 순간 먹먹해 할 말을 잊었다고 했다. 묵묵히 남편을 지켜봤던 아내와 두 아들은 뜨거운 축하를 보냈다. 자식이 ‘돈 안 되는 문학’을 하는 것을 한사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팔순 어머니도 지인이 당선 축하의 의미로 보내온 꽃바구니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당선작 ‘직선의 방식’은 사물을 바라보는 이씨의 깊은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물이나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이끌어낸 정제된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는 이씨의 말처럼 직선에 대한 이씨의 사유가 정갈한 언어로 담겨 있다. 서정주, 박재삼, 고정희, 김명인, 나희덕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씨는 “사유를 담는 좋은 시, 참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심사평] “닳도록 갈고 닦은 안정감” “다른 세계로의 비상 기대”
본심에 스물세 분의 시가 올라왔다. 풍작이다. 전체적으로 두드러진 경향은 시들이 산문적이라는 것이다. 산문으로 풀더라도 시로서 자기부양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서술에 그치고, 서술하다 보니 설명이 되고, 설명하다 보니 추락했다.
처음 걸러 열두 분의 시가 올랐고 거기서 정창준(‘누이의 방’ 외), 이현미(‘자장가’ 외), 강다솜(‘그림자 위로 내리는 눈’ 외), 이만섭(‘바람의 형용사’ 외) 이렇게 네 분이 남았다. 모두 내려놓기 아쉬운 분들이었지만, 신춘문예 당선작은 한 편만 실리는데 한 편으로 스스로를 지탱할 만한 표면장력이 제일 센 분이 이만섭이었다. 다른 세 분의 시들은 응모한 여러 편 속에서는 유니크한데, 한 편을 세우기에는 좀 약했다.
정창준의 시들은 도드라진 구절도 많지만 ‘자기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시는 고흐를 꿰뚫는 정창준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고흐에게 기댄다. 강다솜은 시를 일순에 성립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의 시구들은 주위의 단어들을 끌어당겨 수렴하는 자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감탄하자마자 바로 이어 무리한 메타포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예컨대 ‘그림자 위로 내리는 눈’에서 “발자국 속에 갇힌 공룡의 그림자가 중생대에서부터 이 저녁을 덮고 있다”는 무슨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말씀인지. 그리고 “고요의 발자국 소리가 생긴다” 같은 구절은 발랄한 상상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붕 떠 있다. 시라는 게 부력이지만, 그 아래 하중을 못 받으면 사라져버린다. 우리 기성시인도 명심할 일인데 단어 하나하나, 이미지 하나하나, 메타포 하나하나, 시인이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이현미의 ‘자장가’는 발랄하고 새롭다. 그 조를 밀고 나가기를 기대한다.
당선작 ‘직선의 방식’의 시인 이만섭에게서는 붓이 닳아지도록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가 느껴진다. 안정감이 있다. 그런데 그의 포에지랄지 시상이 한 지점에서 맴돌고 있다. 말하자면 거듭 부연하고 있다. 만만찮게 여겨지는 그의 역량이 그에 대해 스스로를 어떻게 설득하고 깨뜨려 다른 세계를 열어줄지 궁금하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황지우·황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