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선의 대표적인 궁중화가로서 본관은 김해, 호는 단원(檀園)이다. 일반적으로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모든 장르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천재 화가였다.
김홍도가 활동하던 시기, 일본에서는 토슈사이 샤라쿠(東洲齊寫樂), 키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麻呂, 1753?-1805),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 1760-1849) 등 풍속화(우키요에=浮世繪)를 그리는 화가들이 이름을 날렸다. 그 중에서도 샤라쿠(寫樂)는 1794년 5월 어느 날 에도(江戶, 지금의 東京)에 홀연히 나타나 10개월간 140여점의 그림만 남기고 사라졌다. 샤라쿠(寫樂)의 우키요에는 마네, 모네, 드가 등 전기인상파를 비롯해서 고흐의 후기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회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화가다. (일례로 고흐가 파리에서 그린 '탕귀영감의 초상화'의 배경이 우키요에로 꽉 채워져 있다. 그 정도로 일본의 우키요에는 당시 유럽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샤라쿠(寫樂)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01년 독일의 유리우스 쿠루트가 쓴 『Sharaku』」에 의해서이다. 유리우스 쿠루트는 이 책에서 "샤라쿠(寫樂)는 렘블란트, 베라스케스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샤라쿠(寫樂)가 어디에서 출생하여 누구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샤라쿠(寫樂)에 대한 연구서가 100여권이나 나와 있고, 샤라쿠(寫樂)로 추정되는 사람이 30여명이나 된다. 그 중에서 『만요슈(万葉集)』의 재해석으로 잘 알려진 이영희씨(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는 샤라쿠(寫樂)와 김홍도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 말이 옳을 까요??
첫댓글 호쿠사이 그림을 본적이 있는데.. 단지 일본에서 잘그리는 수준이 아니라.그림을 통한 이야기 구성이란 장르를 확실히 잘 표현해서... 만화릐 시작일수도 있다는 점도 있고 아무튼 대단하죠 저도 이거 호기심 천국에서 방영했을때 본적이 있는데.. 해결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