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 /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
황지우 시인
1952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본명 황재우)
서울대학교 미학과 및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1980년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83년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1년 제36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4년 제8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1985),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93) 뼈아픈 후회 외 (소월시문학상) 게 눈 속의 연꽃(1994)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1998) 나는 너다(1999), 희곡집 : 오월의 신부(2000)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
[출처] 11월의 나무 / 황지우 |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