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 김관용
선수들 /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괴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하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전광판이 꺼지더라도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바꿔 입어야 한다
[당선소감] “책으로 만났던 이들이 나를 선택… 눈밑이 뜨거워”
올해는 유독 어머니의 투병이 아름다웠고 건강을 찾은 그녀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감사의 의미와 진폭을 깨달았다. 서랍 어디쯤에 크로키한 태양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점퍼 안쪽 주머니에, 또는 뒷주머니에 꼬깃꼬깃 넣고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까맣게 잊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누구나 잊고 산다. 나는 어느 지층에 숨어 있던 언어였을까. 어떤 문장은 대답할 수 없어서 무거웠고, 어떤 대답은 질문의 근처에서만 맴돌았다. 밤의 유전자가 열목어처럼 자라는 것인지, 열목어에선 왜 자꾸 눈먼 단어들만 떠오르는지. 열차가 지나간다.
우선 영덕 스님께 감사드린다. 막막하던 내게 화엄을 소개해 주셨고 감수성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난 스님이 야단치셨던 그 계절을 잃고 싶지 않다. 이원 선생님, 퇴고를 가르쳐주셨던 그 분을 감격스러운 8주라 부르고 싶다. 12월1일 임택수형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차영일…, 말을 아껴야 할 사람들.
서울에서 이주해 적응하기 힘들던 울산생활이 있었다. 이런 형태의 이주는 언제나 상투적이고 적응의 실패는 늘 언어가 문제다. 세리을이란 고교 문학동아리에 들었고 재미있었다. 오래전이지만 이런 일들은 대체로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책으로만 만나뵈었던 분들. 나를 선택하셨다. 말들이 수증기처럼 끓어오르며 눈 밑이 뜨겁다. 그런데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굳어진 수증기는 이렇게만 고정되는 것이다. 이시영, 황인숙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균열·의외성… 자본의 시대, 시가 필요한 이유 증명”
선자들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편이었다. “벚꽃은 지상에서 초속 5센티미터/ 속도로 떨어지고 있겠지”라는 빛나는 감성을 품은 ‘휠체어 드라이브’는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직관을 형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계를 조용히 응시하는 이 시편은 시인의 상상력이 뜻밖의 시적 전개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간밤 느티나무 찻상이 쩍/ 갈라졌다”는 직핍으로부터 출발한 ‘느티나무 찻상’은 사물의 갑작스러운 붕괴로부터 빛과 향을 흡입하는 착상이 신선하고 발랄했다. 그러나 이 시인 역시 예상 가능한 상상력의 구도에서 비약하지 못한 채 익숙한 은유로 생의 비의를 드러내는 데 안주했다. 어느 병동에서의 남녀의 갈등을 바둑에 빗대어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결심을 가진 백과/ 그것을 초조하게 바라보는 흑 사이”로 묘사하며 사뭇 긴장감을 자아내는 ‘직선을 이탈한 두 남녀가 모이는 점’ 역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아프게 드러냈으나 곳곳의 상투적인 시행들의 병렬로 인해 이른바 언어 자체가 살아있는 ‘물활’(物活)의 경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응모작들 중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선수들’이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그러했지만, 이 시인은 무슨 제재를 다루든지 일거에 대상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리듬으로 시를 운산(運算)하는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다. 특히 표제작인 ‘선수들’은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자기 시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삶의 트랙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이 시는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다른 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이 주밀한 자본의 세계에서 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균열과 의외성이다. 트랙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 과감한 투신의 성과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심사위원 황인숙, 이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