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94) 시 창작법 - ④ 관찰과 상상으로 은유를 구사하라/ 시인, 경희사이버대학 교수 이문재
시 창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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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관찰과 상상으로 은유를 구사하라
지중해가 맑은 이유가 그 청년 때문인 것 같다. 몇 해 전,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 나왔을 때, 주인공 마리오에 대한 기억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말라 터진 바게트를 연상시켰던 마리오는 너무 섬약하고 또 너무 순수했다. 그가 지중해의 청정함을 지키는 정수기처럼 보였다.
마리오가 잠시 섬에 체류하게 된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전속 우체부’가 되면서 시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네루다를 영웅화했다면, 네루다가 떠난 이후,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보낸 별이 반짝이는 소리까지 담은 ‘녹음 편지’는 전통적인 시(활자)의 시대를 마감하는 징후로 보였다. 시위 현장에서 마리오가 쓰러져가는 장면은, 네루다 혹은 시의 시대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래전에 본 영화라 몇몇 장면만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네루다가 거두절미하고 ‘메타포’라고 대답하는 대목이다. 메타포, 은유. 그렇다. 은유가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은유를 빼놓고서는 시를 쓸 수도, 읽어내기도 쉽지가 않다. 은유는 시와 시 쓰기, 시 읽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동력(전달 장치)이다. 작가나 독자가 작품을 통해 직유를 거쳐 은유를 구사·해독할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시인이고 독자일 것이다.
직유는 주종 관계다. ‘그는 바람처럼 달렸다’라고 쓸 때(결코, 좋은 비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바람은 그가 달리는 상태를 구체화하는 보조 역할에 머문다. 하지만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라는 표현에서는 약간 달라진다. ‘그’와 ‘바람’ 사이도 그렇게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비’와 ‘쇠못’ 사이처럼 스파크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비와 쇠못 사이는 매우 먼 거리다. 일상적 차원에서 비와 쇠못은 거의 무관한 관계다.
‘비둘기는 평화다’와 같은 상징은 아예 주종 관계에서 종이 사라진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쓰이는 순간, 비둘기 고유의 정체성은 지워져 버린다. 상징은 상징에 동원되는 수단을 지워 버리는 매우 폭력적인 비유법이다.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울 때, 비둘기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상징이 종교와 신화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징은 권력의 도구다.
직유에서 주종 관계가 희박해질 때 나는 그것이 바로 은유하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직유가 술어(동사)를 거부할 때, 예컨대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가 아니고, ‘비는 쇠못이다’로 변화할 때, 직유는 은유로 한 차원 승격한다. 그래서 나는 비유법을 자주 은유법이라고 이해한다.
‘그대는 꽃이다’라고 쓸 때, 그대는 꽃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그대가 꽃을, 또는 꽃이 그대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다. 은유의 차원에서 그대와 꽃은 그대도 아니고, 꽃도 아닌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은 은유의 위력이다. 내가 지지하는 은유는 다원주의에 바탕을 둔 은유다. 즉, 하나의 절대적 중심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모든 존재와 의미가 각자 하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은유다. 직유가 수직의 상상력이라면, 은유는 수평의 상상력이다. 직유 혹은 상징이 과거의 세계관이라면, 은유는 미래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공존, 상생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직유도 그렇지만 은유의 생명력은 비유되는 두 이미지 사이의 거리에서 나온다. 앞에서 예로 든 문장을 다시 보면 ‘그는 바람처럼 달렸다’ 혹은 ‘그는 바람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이미지가 선명해지지 않는 것은 바람이 갖고 있는 모호성 때문이다. 여기서 바람은 주어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동사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참신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직유는 구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 상투성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비가 쇠못처럼 내렸다’ 혹은 ‘비는 쇠못이었다’라는 표현이 위의 경우보다 조금 산뜻한 까닭은 쇠못이 갖고 있는 구체성 덕분이다. 은유를 ‘A는 B이다’라고 흔히 말하는데, A와 B 사이가 너무 가까울 때 상투성으로 전락하고, A와 B 사이가 너무 멀면 난해함으로 빠지기 쉽다.
네루다와 마리오 사이의 대화를 흉내 낸다면, 시란 A와 B를 결합시키는 비결은 평소의 관찰력과 상상에서 나온다. A와 B를 난데없이 연결시켜 강한 스파크를 일으키는 직관력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관찰과 상상의 누적이 없다면 은유의 직관은 불가능하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을 바늘로 찔러야 풍선은 강렬하게 터진다.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 그것이 관찰과 상상의 상태이다. 그것이 깨어 있는 정신이다. 그렇게 깨어 있다면, 바늘(직관)은 얼마든지 있다. 불지 않는 풍선은 풍선이 아니다. 탄생 이전이거나 죽음 이후다.
< ‘유쾌한 시학 강의, 16명의 현직 시인이 말하는 시의 모든 것(강은교·이승하 외,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10.2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94) 시 창작법 - ④ 관찰과 상상으로 은유를 구사하라/ 시인, 경희사이버대학 교수 이문재|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