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속에 두고 온 노트
―박형준(1966~ )
그녀는 이제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있다
그녀의 머리맡에 두고 왔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베낀 노트 한 권을
달에서 어머니의 빈 젖을 빠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 창가 지나가는 달을 올려다보는 이여
'불탄 집', 천년의시작, 2013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설상가상 65세 이상 노인 중 둘에 하나는 빈곤층이다. 노인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다. '노년은 빈곤, 중년은 부채, 청년은 실업.' 이런 현실에서 노인 케어를 위한 공간과 인력과 비용을 감당하기란 녹록지 않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날로 늘어나는 이유다. 중년층 둘에 하나는 어버이날 노부모를 뵈러 요양 시설로 간다.
요양원에 누워만 계시는, 문자를 읽을 수도 없는 노모에게 시인은 '시를 베낀 노 트 한 권'밖에 드릴 게 없다. 노모에게 바칠 수 있는, 성경이나 불경에 버금가는 최고이자 최선의 공양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노모는 시인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노모를 요양원에 두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시인은 지나가는 달을 보며 어머니 젖무덤을 떠올리고 '빈 젖' 빠는 소리를 듣는다. 젖도 비어가고 달도 비어가고, 가책과 허기가 밀려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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