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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에 있지만, 서울이 아닌 곳이 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리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중구 을지로는 서울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유명한 대기업이 들어선 높은 빌딩 뒤에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고 낮은 건물이 대조를 이룬다. 전신주와 전선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투박한 서체로 된 간판과 뱅글뱅글 돌아가는 이발소 삼색등이 곳곳에 보인다. 마치 길 전체가 시간을 멈추는 마법에 걸린 듯하다.
을지로의 낮은 분주하게 돌아간다. 일방통행의 좁은 길거리에는 종이박스를 뒤에 한가득 짊어진 오토바이와 지게차가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바쁘게 오고간다. 그 옆으로는 인쇄소와 철물점에서 기계를 만지며 쉴 새 없이 일하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점심시간이 되자 골목에는 잠시 동료들과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띄기도 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으로 간신히 몸을 껴서 들어가야 갈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미리 검색해 놓지 않으면 까맣게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숨겨져 있는데도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골동품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카페는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과 무색하게도 을지로의 밤은 북적북적했다. 네온사인과 불빛이 가득한 좁은 길목 사이로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밤임에도 끊임없이 오토바이와 지게차가 다니기 때문에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발을 디뎌야 한다.
종이박스가 널브러져 있는 구석의 맞은편에는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이 보인다. 심지어 간판이 따로 없고 건물 1층에 카페라는 것을 나타내는 종이 한 장을 붙여 놓은 카페도 보인다. 2층에 위치한 카페에 가려면 어두컴컴하고 좁은 입구를 거쳐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마치 카페를 상대로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가 된 기분이 잠시 들었다. 파스타와 맥주를 파는 레스토랑의 바로 옆에는 닭도리탕과 삼계탕을 파는 한식집이 있다. 이질적이지만 은근한 조화를 이룬다.
낮과 밤에 직접 가본 을지로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힙지로라고 불리는 힙한 곳, 장년층에게는 옛날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곳. 이렇듯 각자의 목적에 따라 오고가며 섞일 수 있는, 누가 온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다. 을지로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친근하게 맞아준다.
경리단길, 망리단길과 같은 일명 ‘뜨는 거리’라 불리는 곳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큰 화두다. 뜨는 거리에는 방문객과 대형 프랜차이즈가 몰려오고, 그 결과 임대료가 상승해 기존의 상인과 주민이 다른 곳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대형 프랜차이즈가 장악한 거리는 고유한 특색을 잃고 다른 거리와 비슷하게 변해간다. 을지로도 방문객들이 몰려들며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을지로는 특이하게도 새 것이 들어오는 동시에 옛 것도 그대로 보존되어 두 가지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적 구조를 이룬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를 꼭 나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을지로가 변하는 것이 아쉽다면, 『을지로 수집』의 작가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글로 쓰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를 붙잡아 놓는 건 어떨까. 을지로가 앞으로도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고 모두를 포용해주는 거리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