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을 가도 아는 사람만 보인다(원철 스님)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 그리고 디지로그 세대
영남지방에서 ‘고딩(고등학생)’들이 찾아왔다. 이 친구들 덕분에 청와대 앞길 개방 후 처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그 길은 말할 것도 없고 북촌길 삼청동길도 모두 시큰둥한 반응이다. 더위 탓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신구세대간에 느낌이 서로 달랐던 까닭이다. 일단 걷기를 중단하고 빙설가게에 들러 차가운 음료로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을 식히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코스를 바꾸어 인사동 쌈지길 상가건물로 향했다. 그제서야 얼굴에 웃음이 돌아온다. “바로 우리가 찾던 곳이예요!” 층층이 알록달록한 디자인과 함께 정신줄 놓게 만드는 시끄러운 공간이다. 아예 멀찌기 서서 지켜보기만 할 뿐 제멋대로 놀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 시간 남짓 후 소품 몇 점을 구입하고서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그리고 대뜸 도장파는 집으로 가자고 조른다. 인터넷으로 인기있는 가게까지 미리 확인해 두었다고 한다. 1020세대가 즐겨 찾는 도장가게인 모양이다. 컬러풀한 돌을 고르더니 그들의 이름을 새겼다. 약 30분 정도 걸렸다. 인사동 관광기념 선물로 제격이다.
얼마 전에도 도장 때문에 이 거리를 다녀왔다. 그동안 사용하던 한글도장이 너무 닳아버린 까닭에 은행에 비치해 둔 인주를 먹여도 글자가 뭉개져 제대로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저 녀석들과 비슷한 나이일 때 손재주 있는 같은 반 급우가 한글로 새겨준 푸른 프라스틱 도장이다. 그런데 세상에 하나 뿐인 오랜 연륜의 수제도장이 수명을 다한 것이다. 신문에 자주 광고를 내는 세종문화회관 근처의 유명한 도장가게로 갈까? 아니면 주간지 기사에서 봤던 숨어있는 장인이 새긴다는 을지로 가게로 갈까? 이런저런 망설임 속에서 시간만 보냈다.
그 날 인사동 길을 따라서 숙소로 오다가 지인을 만났다. 방문한 가게 안에서 유리창 너머 필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고서 반가움에 뛰어나온 것이다. 종로에서 머문 세월만큼 아는 이가 늘어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졌다. 안내 하는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붓과 벼루만 파는 곳인줄 알았더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스텐드 불빛아래 부지런히 능숙한 칼놀림으로 의전용 낙관을 파고 있는 주인장의 포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외국 유명정치인들의 방문사진과 그들이 새겨간 도장까지 광고삼아 붙여 놓았다. 진짜 실력자라고 지인이 추임새를 넣는다. 그렇칞아도 도장포을 찾고 있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실생활에 어울리는 중후하면서도 진한 갈색 재질의 나무를 골랐다. 둥근 모양과 정사각형을 한 개씩 선택한 후 한글과 한문이름을 동시에 주문했다. 드디어 한달만에 전통에 충실한 묵직한 도장 한 쌍이 내 손에 쥐어졌다. 이후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가게 쪽으로 눈길이 향한다. 그 때마다 안경을 코에 걸고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새김작업을 하는 그 신실한 모습은 여전히 변함없다.
이제 도장 대신 사인으로 대부분의 서류가 해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 벵킹의 대중화로 인하여 도장은 고사하고 은행에 갈 일 조차 없어진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장은 여전히 또다른 권위로써 나름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으로 가벼운 디자인과 부담없는 가격으로 젊은이까지 끌어들이는 변신을 거듭했다. 인사동에도 많은 각수(刻手)들이 골목골목 포진하며 활약 중이다. 전통가게와 현대식 쌈지길 상가가 공존하면서 양 세대를 이어주고 전통형 도장과 새로운 감각의 도장이 또다른 모습으로 구세대와 신세대를 연결하고 있다. 고딩들 덕분에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라는 ‘디지로그’가 어우러지는 인사동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니 경험한 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