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98) 시를 쓰는 마음의 바탕 - ① 감수성을 기르는 방법/ 시인 이형기
시를 쓰는 마음의 바탕
네이버 블로그 - RIAN's 스토리 감성로드/ 시는 어디서 오는가? 감수성 기르는 방법
① 감수성을 기르는 방법
사물에 대한 인간의 감정 반응은 다양하다. 따라서 감정을 주된 표현 대상으로 하는 시도 얼마든지 다양한 내용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시가 될 수 있는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이 처음부터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감정만이 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랑과는 대립적인 성격을 갖는 미움이나 분노의 감정으로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감정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감정이 우러났다고 해서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인 표현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태어난다. 물론 이때의 표현 행위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우리의 그 자발적 의사, 즉 시를 쓰고자 하는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가 우리의 마음속에 먼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충격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한번 시로 표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러니까 자기로서는 결코 범상하게 흘려버릴 수 없는 인상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무수한 느낌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 느낌을 바탕으로 사고가 형성된다. 그러나 그 느낌의 결과가 전부 마음속에 뚜렷한 인상으로 새겨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린다. 아니, 사실은 무언가를 느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부분의 느낌들은 그냥 잊혀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느끼는 능력, 즉 감성이 그만큼 둔화되었음을 뜻하는 현상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매일같이 거의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리도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나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면 거기서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강한 충격이란 마음속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는 느낌이다. 시를 쓰려는 사람에겐 앞에서 말한 대로 그러한 느낌이 표현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시를 쓰려는 사람은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일이나 극적 시건을 자주 경험할수록 좋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특별한 일이나 극적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1년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그런 일을 기다려 시를 쓴다는 것은 사실상 시 쓰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남 보기엔 유별난 경험이 반드시 그 당사자에게 강한 충격을 준다는 보장도 없다.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에도 또 다른 사람은 강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객관적 현상으로서의 경험 대상이 아니라 경험 주체인 우리들 자신의 감수성이라 할 수 있다. 감수성이 잘 발달해서 그것이 남보다 예민하고 또 유연한 사람은 시를 잘 쓸 수 있는 계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이형기 시인의 시 쓰기 강의(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10.2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98) 시를 쓰는 마음의 바탕 - ① 감수성을 기르는 방법/ 시인 이형기|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