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이코 천황이 백제 왕족의 피를 이은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한 가지씩 차근차근 밝혀보기로 하자. 먼저 스이코 천황의 남편이었던 비다쓰(572~585)천황이 "백제인 왕족"이었다는 사실을 고대 문서를 통해 밝히는 것이 첫 순서가 될 것 같다.
일본 고대 왕실의 족보라고 평가되는 귀중한 고문서가 있다. 815년 일본 왕실에서 편찬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이 바로 그 책이다. 이것은 왜왕실의 만다친왕(萬多親王, 788~830) 등이 엮어낸 것인데, 만다천황은 바로 칸무 천황의 제5왕자이기도 하다.
칸무 천황의 왕자인 만다친황이 편찬한 『신찬성씨록』에는 1182개 성씨의 인물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815년 7월 20일자로 만다친왕의 상표문(上表文)이 맨 앞에 씌어 있다. 이어 서문이 나오고, 당시의 왕도였던 쿄우토 등 케이키(京畿) 지방의 신족, 왕족, 귀족들의 역대 계보를 전 30권으로 편찬했다.
이른바 신족은 신별(神別)로 표시하고 있다. 이는 일본 개국신화에서 등장하는, 인간이 아닌 신의 후손들의 족보다. 또 왕족은 황별(皇別)로 가계를 기록하고 있고, 귀족들은 제번(諸蕃)으로 분류해 놓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령 신족(神族)이라고 하더라도 한반도 사람들이 주축임을 알 수 있다. 황별인 왕족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정복왕들의 계보다. 그리고 제번으로 구별된 귀족 계보에는 한반도 사람들이 대종을 이루는 가운데 소수의 중국인 계보도 함께 실려 있다.
『신찬성씨록』의 내용 및 차후에 상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방대한 내용이 담긴 이 고대 문헌이야말로 한일동족론의 입증은 물론 왜나라의 지배자가 한반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고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스이코 천황의 남편인 비다쓰 천황이 백제인 왕족이었다는 사실도 『신찬성씨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황족 항목에서 백제왕족인 대원진인(大原眞人, 오오하라노 마히토)의 계보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大原眞人, 出自 諡敏達孫 百濟王也).”
오오하라노 마히토의 출신은 비다쓰 천황의 손자이며, 백제 왕족이다.
원문에서 "시 비다쓰"의 시(諡)는 왕의 시호이므로 "비다쓰 천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문의 "백제왕"이란 백제왕족을 가리키는데, 일본 역사서는 "백제왕족"을 "백제왕"으로 일관해서 기술해 왔다. 즉 오오하라노 마히토는 비다쓰 천황의 친손자이며 백제왕족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인 학자들도 동의한다. 문헌사학자인 사에키 아리키요는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신찬성씨록』 연구가인데, 그 역시 "비다쓰 천황은 백제인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를테면 백제인 후손이며 일본천황인 죠메이(舒明천황, 재위 629~641)의 호칭도 "백제천황"이었을 것이라며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죠메이 천황 11년(639) 7월조의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죠메이 천황이 백제강(쿠다라가와) 옆에 백제궁을 짓고, 백제궁으로 이사했으며 그후 13년 10우러 정유(丁酉)조에 "천황이 백제궁에서 붕어하다(죽었다)"라고 되어 있듯이, 백제궁에서 붕어했다. 죠메이 천황은 "백제궁 어우천황(御宇天皇)"이라고 호칭되었을 수도 있다.
또 『만엽집』에서 죠메이 천황을 "오카모토 천황"으로도 기록하고 있어서 이 표기에 따르면 "백제천황"으로도 부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신찬성씨록』에서 백제왕으 후손인 오오하라노 마치토씨가 뒷날의 "백제천황"인 죠메이 천황에게 그의 계보가 이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본다.
비다쓰 천황의 친손자가 백제 왕족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비다쓰 천황이 백제인임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비다쓰 천황의 증손자가 죠메이 천황이기도 하며, 백제 왕족 오오하라노 마히토의 친조카가 죠메이 천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