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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반달리즘 타일러더든이 찾아왔었어 돌로 나를 찍어 으깨고는 동글동글 말더니 내 손에 너를 심었지 반달모양의 너는 내 똥구멍 너는 언제나 날름날름 으아, 비명 지르는 내 얼굴에 붙어 비명들을 날름날름 핥아먹는 너는 내 고름딱지 두 눈 시퍼렇게 세워 더욱 붉어지는 너는 내 운명 눈알에 핏줄이 선 타일러더든이 내 손에 너를 심으며 손톱에 백일동안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그렇지만 난 소원이 없는데도 예의 없는 너를 맞이해 * 타일러더든 : 영화 ‘파이트클럽’에서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 타일러더든이 주인공에게 자신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손등에 염산을 뿌리는 장면을 형상화 했다 초록색 역사 어릴 적 나는 푸르딩딩한 애송이. 내가 맞는 동안에는 파리가 맴을 돌았지. 철저하게 방음이 된 구타실에선 파리가 윙윙. 길고 가는 초록색 쇠막대기, 단단하게 문틈에 붙여진 청테이프, 초록색 안티푸라민 냄새 냄새! 냄새! 저 냄새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 나는 기둥에 묶여서 꼼짝을 못하는데 ‘아빠, 저 약들 좀 치워줘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맴돌던 파리가 툭! ‘봐, 파리도 죽었잖아. 나도 곧 죽을 거야, 당신도 죽겠지’ 당신도 죽겠지, 당신도 죽겠지를 발음하며 난 이죽이죽 웃었어. ‘아빠, 사랑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도 죽겠지.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도 죽겠지. 아빠……. 나의 엄마와 아빠는 나와는 다른 종족이었지. 두더지 같은 그들은 지상에 사는 내게 가끔 들렀지. ‘켁 얘야, 켁켁 엄마, 지렁이 좀 먹고 올 테니, 켁 집에 있으렴. 켁 위험하니까, 켁켁 집안에 불 꼭 켜놓고’ 컴컴한 땅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들을 기다리며 ‘엄마 방이 넓어서 혼자 있기 무서워요. 티브이를 켜면 티브이 속사람들이 날 잡아갈 것만 같아’ 뛰쳐나가 푸르딩딩 멍든 나무들 우거진 공터에 앉아서 오줌을 누는데 ‘예쁘게 생겼구나. 여기서 오줌 누면 안 되지’ ‘아줌마 누구세요?’ ‘난 네 엄마란다.’ 웃음이 포근한 엄마, 초록색 스웨터 입은 등을 내민다. 날 업은 엄마가 달린다. 초록색 엄마, 얼굴이 순식간에 말로 변한다. 신나게 말을 타는데 말의 등에 올라탄 나는 채찍을 맞는다. 굴러 떨어져 옆구리를 밟힌다. ‘잘못했어요. 모르는 사람 안 따라갈게요.’ 옆구리에 멍이 들며 경계심을 배운 멍청이는 이젠 알맞게 단풍이 든 얼굴로 ‘내게 말 걸지 마세요. 나를 때리지 말아요.’ 나를 때리지 말아요. |
첫댓글 오랫만이구나. 근데 시가 너무 슬프다. '초록색 역사'에서 보이는 유년의 체험은, 그리고 현재까지 살아 남아있는 그 기억은 지금까지 너의 현실적 자아(경험적 자아)를 이끌기도 했겠지만 그건 얽매일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다. 이미 여러번 껍질을 벗고 있는 너는 지금의 너도 네가 아니라고 해야할 것이다. 나도 내가 아니라는구나..이건 요즘 공부하는 '바가바드키타'의 이야기다.
아... 지금의 저도 제가 아니다라.... 지금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지나가고 있는 나에 불과할테니.. 아 근데 선생님... 저 시... 유년시절 친구 중에 어릴적에 학대를 심하게 받아서 공황장애에 걸린 친구가 있어요. 그 얘기랑 잠깐 유괴 당할뻔 한 제 유년시절 기억이랑 섞어서 그냥 제 얘기인척 하려고 했는데... 혹시나 주워온 딸이라고 오해하실까봐... 아.. 원래는 정말 제 얘기인척 하려고 했어요...
소설이든 시든 문학은 본질적으로는 '허구'다. 그래서 시 속에서 말하는 '나'는 시 밖에 있는 '나'가 아니라 그저 시 속의 화자일 뿐이다. 그러나 독자도 시를 쓴 자신도 그것에 엄격하지 않지. 왜냐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게 누구냐보다는 시의 내용 그 자체가 가지는 울림이 중요하니까..
ㅎㅎ기왕 사기치려면 확실하게 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사실 정말 제 얘기인척 하려고 했는데... 아는 사람에게 하는 거짓말 치곤 위험하다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