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몽골 여행기
박철영
시간은 공간이라는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신이 내린 축복이다. 부산 김해 공항에서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까지 2천 900여 킬로의 거리는 촘촘한 경도와 위도로 매듭된 씨올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겁劫이라고 한다. 4시간을 날아간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구름 아래 실금 같은 선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실금은 대륙의 땅 몽골을 에워싼 산맥이었다. 그 아래로 평평하게 펼쳐진 몽골 초원은 하얗게 눈이 덮여 민낯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초원의 나라 몽골이 바로 코앞에서 시큼한 몸짓을 한다. 한국 시각보다 더딘 오후가 영하 25도의 한파에 덜미를 잡혔다. 몽골에 도착한 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우리의 시간 여행은 15인승 미니버스와 몽골 여성 가이드 ‘해피마’가 마중 나와 지는 해를 거뒀다. 몽골을 다녀온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이 사는 몽골에서 단순하게 초원만을 보았다거나, 말과 양 떼와 소들만 보았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모두 그들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황량한 초원을 섬기며 소와 말 그리고 양 떼와 순한 개를 가축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몽골 사람들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고 자연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산다. 양 한 마리를 죽일 때도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보았다.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도할 때 진정한 삶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는 몽골 사람들. 낙타의 머리토막을 게르를 지키는 개가 뜯어 먹고 있었다. 곡물이 부족하여 주 식량원으로 양이나 소 말을 잡아먹으며 일상화한 풍습이란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죽으면 토막을 내 산기슭에 던져 독수리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장례문화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사람이나 짐승은 죽음을 거쳐 다시 자연의 본래 모습으로 귀환하는 것이며, 이승은 환생을 위한 긴 여정일 뿐이라는 그들이다. 고갯마루 ‘어워’에 꽂힌 깃발들이 염원하는 눈바람에 화답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개를 유독 소중히 여긴다. 이유는 죽어서 개로 태어났다가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내세관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개와 사람의 친연성은 대단하다.
몽골은 말의 나라다. 그들의 유전자는 말 다루는 재주를 타고난다. 말채찍 하나로 12살 먹은 아이가 조랑말을 꼼짝 못 하게 다룬다. 거친 환경보다 더 강해야만 살아남는 몽골 초원은 건조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척박한 땅이다. 어찌 보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운 불모의 땅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불만하지 않고 주어진 계절과 주어진 만큼만 취하며 사는 무욕의 사람들이다. 그 땅에도 군데군데 들어선 자작나무 군락처럼 도시가 들어서고 그 도시들을 연결하는 전선을 떠받치는 나무 전신주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네 시골의 70년대까지도 낯익은 풍경이 여기에 있다. 2차선 도로로 말이 끄는 수레가 시간을 헤아리고 있다.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은 눈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테를지 국립공원 가는 길 멀리 몽골 낙엽송들이 지평선을 수직으로 일으켜 가파른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다. 북방의 찬바람처럼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깊은 밤 울어대는 늑대처럼 초원을 향해 포효를 거듭했을 것이다. 1월 끝자락을 따라 찾아간 몽골은 겨울 왕국인지 모른다. 아름드리 낙엽송 사이로 하얗게 덮인 눈이 칼바람을 견디느라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를 낸다. 잠시라도 주머니에서 맨손을 꺼내면 찬바람이 여지없이 손등을 시리게 하는 이곳은 죄다 얼어붙었다. 그 추운 첫날 알바를 한다는 청년처럼 건장한 16살 바기 보르나와 12살 바기의 어린애 같던 앳된 얼굴이 몽골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테를지 공원 내의 게르에다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며 마시는 보드카는 이국의 정취로 그만이었다. 한 잔의 독한 보드카를 넘기고 술잔을 아예 엎어 버렸다. 마두금의 두 현을 타고 흐느끼는 잔잔한 파동이 일다 진정되기를 거듭했다. 저음으로 발성되는 ‘흐미(Khoomei)’라는 전통음악은 모든 것이 호기심이 되었다. 전통 복장을 한 예인藝人들이 이방인을 위해 불러준 그 노래에는 무슨 의미가 담겼을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랑과 이별의 애수가 깃든 애절함은 같아 핑계 삼아 술잔에 보드카를 채웠다. 어차피 술잔처럼 사랑도 비우고 나면 다시 채워지듯 떠나간 사랑도 다를 바가 없다.
첫날 밤을 유목민처럼 게르에 누워 잠을 청했다. 게르를 핥는 바람 소리가 밤이 깊어가며 거칠어진 늑대의 울음을 닮아갔다. 배고파 우는 늑대가 어둠 속에서 인간의 불빛을 향해 우는 것 같았다. 대륙의 밤은 깊어갈수록 추웠다. 이내 침낭으로 몸을 감쌌다. 장작을 태우는 난로 하나로 감당하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게르에는 다섯 개의 작은 침대가 둥근 원을 따라 놓여있다. 출구 쪽으로 대칭을 이룬 곳이 좌장 격인 어른 침대이고 그 좌측으로는 어머니의 자리란다. 어디든지 위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둥근 원통처럼 천장을 향해 살대를 끼워 맞춘 게르의 구조는 지형을 최적화한 공학적 구조로 되어 있다. 둥근 원형의 게르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저항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다. 땅의 지지력으로 그 기운과 만나는 저점에서 천정으로 뚫린 구멍 안으로 파고든 동토의 별빛은 인간의 외로움을 다독였을 것이다.
몽골의 눈 덮인 새벽은 아침을 재촉하지 않는다. 밤 내내 게르를 지켰을 송아지만 한 시베리안 허스키가 인기척에 반가웠던지 긴 꼬리로 외로움을 털어낸다. 전생에서나 보았음 직한 초원의 땅 몽골 동서의 길이가 2,500킬로나 뻗어 있고 남북으로는 1,800킬로라는 크기를 상상할 수 없는 땅이다. 그것도 러시아와 중국에 일부를 빼앗기고 남은 땅이 그렇다니 과히 상상이 버겁다. 그 땅의 일부인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터를 잡은 게르에 이방인들을 맞아들였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나를 바라보는 개의 눈빛에 이끌려 평평한 숲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 산 능선이 나를 사열하려는 듯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늑대가 되고 싶어졌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개, 그 눈빛의 투혼과 날카로운 이빨을 상상해보았다. 나에게도 그런 눈빛이, 송곳 같은 이빨이 있었던가를, 늑대를 닮고 싶어 평원을 걸어가다 눈 덮인 설원에서 하늘을 향해 누웠다. 자작 나무 숲을 가린 하늘을 향해 늑대의 울음처럼 포효를 거듭했다. 그럴 때 하늘을 찌른 자작나무의 시린 우듬지가 나를 향해 쏟아질 것만 같아 현기증이 일었다. 너무 멀리 물러나 있는 산은 메아리를 내지 못한다고 했던가. 인간이 내는 소리로는 단 수 백 미터도 나아갈 수가 없다. 초원은 그런 이방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머쓱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흔적을 살폈더니 눈 위에 늑대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사람도 때로는 하얀 늑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크게 더 크게 늑대처럼 울어보았다. 동족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저 아래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나의 발자국을 지우려고 그 길을 따라올 것이다. 초원에는 사람 다니는 길이 따로 없다고 한다. 사람이 한곳을 오래 밟고 다니면 땅이 패여 적당한 때에 다른 곳으로 길을 낸다는 몽골 사람들, 풀과 땅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이 우리가 찾는 신神같은 인간이 아닐까. 군데군데 방목한 말들이 눈 덮인 초원을 돌아다니고 있다. 몽골의 말은 조랑말처럼 크지 않았다. 눈빛은 항상 배고픔 같은 그리움이 짙게 배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바라볼 때도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와 한참 서성거린다.
오늘은 말 타는 체험을 하기로 했다.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초원을 향해 나아갔다. 울타리를 벗어나자 말의 근성이 살아났고 채찍에 눈을 박차고 바람을 갈랐다. 갈라진 바람의 틈새로 내쉬는 콧바람이 말발굽 소리와 함께 뒹굴었다. 말 등으로 전해진 말의 체온이 따뜻했다.
12살배기의 어린아이가 세 필의 말고삐를 잡고 우리와 눈 덮인 초원을 걸어가다 말馬이 걸음을 멈추거나 한 눈 팔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말고삐의 강약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말의 목덜미에 몸을 비비며 들릴 듯 말 듯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노래 가사는 왠지 애잔하고 측은한 리듬으로 1월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말의 귓속을 파고들다 이내 바람처럼 사라졌다.
환경은 사람 사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선 몽골의 테를지 국립 공원 주변은 평원에 가깝다. 그 평평한 사이로 툴 강이 흐르며 주변을 적셨다. 그 양 옆으로 넉넉한 초원이 펼쳐졌을 것이다. 추운 겨울 설원을 달리는 시베리안 허스키를 만났다. 썰매 하나에 열 마리의 개가 무리를 지어 5km의 평원과 톨 강을 달려나갔다. 강을 거슬러 올라간 상류까지의 시간은 짧았고 볼이 얼어붙은 몽골 아이들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강폭이 상당한 수심은 푸른 보석처럼 옥빛을 품었다. 겨울 톨 강도 머지않아 봄이 오면 얼었던 얼음이 녹아 흐를 것이다. 내 추억의 사진 몇 장으로 남을 겨울 톨 강과 테를지의 겨울 풍경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홉스콜 호텔에서의 추억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첫댓글 글 좋네요 단숨에 읽었어요
문장이 이 정도는 돼야 하는디
지는 아직 ㅠㅠ
테를지 원래 발음은 테를츠
아내와 다녀왔어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초원과 임야와 강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곳으로 외국인이라면 필수 코스로 다녀오는 곳이기도 한답니다
누구보다 더 감동적이였을거라 생각되네요
텔레비젼에서 한끼줍쇼를 보았지요 몽골여성이였어요
몽골은 옛 우리네 조상님들처럼 오시는 손님을 그냥 보내진 않는다고 했어요 훈훈한 여인을 보았답니다
옛 우리네 조상님들 처럼
아니지요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아하
테를츠~~^^
잘 읽고 감동도하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