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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회복적 정의’에 대한 연재를 시작한다. 회복적 정의는 징벌과 응보 위주의 사법제체가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법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이다. 이는 비단 사법체제만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정의를 제대로 세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재영 원장을 비롯한 한국의 회복적 정의 운동의 여러 참여자들이 함께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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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란?
“사법제도 안에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밑으로부터 조용히 그러나 이 혁명운동은 우리 일의 가장 근본적 구조부터 바꾸어놓고 있다.” 이 말은 미국교정협회(National Institute of Corrections)가 발간한 보고서 서문 중에 일부이다.
미국교정협회의 전문운영위원 중 한명이었던 바라자스(Eduardo Barajas, Jr.)는 회복적 정의의 대두를 지금까지 있었던 사법개혁의 역사의 틀을 넘어서는 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사법계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혁신의 개념을 넘어선 진정한 발명이며 패러다임의 전환이다“(1)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회복적 정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살펴보자.
사법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단계이든 사회의 단계이든 바로 정의(正義)이다. 진정한 정의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느낄 때 더욱 그 의미가 있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와 처벌에 대하여 전통적인 관점과는 전혀 다른 이해와 철학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사법제도가 제시하는 관점에서 사법은 ‘어떤 법을 어겼기 때문에 응당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응보적 관점으로 범죄를 규정하고 형벌을 구형한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에서는 범죄는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 사이에 피해와 관계에 훼손을 가져왔고, 따라서 어떻게 그 깨어진 관계와 피해를 회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범죄를 국가가 만들고 지키도록 강제한 룰(법)에 대한 침해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해를 끼치는 피해 행위로 이해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린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회복적 정의는 사법절차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 범죄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의 상처를 최대한 아물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사람들, 더 나아가 지역사회 등 어떤 범죄와 관련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문제해결의 주체로 참여하여 함께 해결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참관이나 참석뿐만 아니라 범죄로 인해 나타난 결과를 올바르게 정정하는 책임을 경험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에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위에서 밝힌 대로 회복적 정의는 정의를 구현하는 초점이 법을 어긴 행위와 그에 합당한 처벌을 찾는 데 있지 않다. 회복적 정의가 강조하는 것은 범죄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있다.
사회가 범죄 행위와 그 처벌 수위에 관심을 쏟는 사이에 범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제3자인 법률전문가에 의해 매우 전문적인 용어와 과정 속에서 단지 참여자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사법기관이 내린 결론이 본인이 요구하는 정도에 만족되지 않더라고 어쩔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발생하게 된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가해자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려는 사법부의 필요와 그를 회피하려는 피의자의 이해가 법적 공방의 핵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요구가 무엇이고 그 요구를 어떻게 채울까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되 관계 회복과 사회공동체로의 회복을 기대하면서 그 목적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회복적 정의는 기존 사법제도에 안에서 좀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단순한 보안 프로그램이 아니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의 구현을 위해 무엇을 초점에 두고, 누가 이뤄갈 것인가라는 전반적인 사법과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2)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은 그 기능적 효율성으로만 평가될 수 밖에 없고, 이는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기본 철학인 분쟁의 당사자들과 사회의 ‘전인적 회복’을 추구하는데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응보적 정의 vs 회복적 정의
범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범죄행위에 의해 생겨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범죄행위를 한 가해자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 행위에 적절하고 공정한 처벌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정의로 이해한다면 이는 잘못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라는 응보적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정의이다.
그렇지만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회복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면 당사자가 원하던 그렇지 않던 주어지는 처벌이 아니라, 피해로 발생한 손실과 깨어진 관계에 대한 책임 있는 변화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회복적 개념에 기초한 정의이다.
이 두 개념 사이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점과 실천이 나타하며, 어느 한 쪽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결과적 차이를 보인다는 면에서 상호보안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래의 도표는 응보적 정의 개념과 회복적 정의 개념 두 관점의 차이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회복적 정의의 뿌리
회복적 정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기여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동체 정의(Community Justice)와 성서적 정의(Biblical Justice)는 가장 큰 배경이 되는 두 축이다.
서구에서 발단한 사법모델을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비록 그 문화와 환경이 다르지만 현대 사법제도가 낳은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그 문제점을 풀어가는 데 있어 좀 더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법의식을 고려한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실 현재 널리 보편화되어 있는 형사사법제도가 인류 역사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불과 몇 세기에 불과하다. 이전의 분쟁해결 수단은 매우 개인적 사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집단)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을 찾아 개인적 복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사법도 실제로는 공동체에서 만들어 진 전통적 방법을 따라 일정한 규칙과 과정을 따라 이뤄졌다. 따라서 개인간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형태의 복수는 자제되었고 공동체의 리더나 종교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분쟁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처리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범죄는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아픔이고 문제였다. 공동체에서 정의를 찾아가던 방법은 구성원 가운데 소위 문제가 있는 사람을 격리함으로써 해결했던 것이 아니라, 범죄 행위가 만들어 낸 해결해야 될 필요에 맞춰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처벌이란 영어 단어 punishment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pune는 ‘피해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돈을 교환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죄를 뜻하는 guilt도 Anglo-Saxon의 geldan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의미는 지불payment이다(4).
공동체적 사법은 처벌에 초점보다는 구성원의 회복과 공동체의 치유에 중점을 두고 있고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들 가운데 이처럼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를 전통적 형사사법에서 찾는 곳이 늘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뉴질랜드의 마오리 전통에서 나온 가족 간 협의회(Family Group Conference)나 북미의 원주민 전통에서 나온 양형 서클(Sentencing Circle)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성서적 정의는 응보적 정의가 강화되는데 많이 인용되기도 했지만 그 본질의 의미는 매우 회복적이다. 서구 사법의 기초가 되는 구약의 율법과 언약법은 마치 신이 만들어 놓은 법을 지키고, 지키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그 본질적 의미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신이 인간과의 사이에서 만들어 지키도록 한 계약의 목적은 고통을 부과함으로써 인간들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장치가 아니라 신이 창조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샬롬의 원칙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샬롬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이기도 했다.
따라서 예수는 기존의 율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율법에 억매여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하려 하였다. 신구약 전체에 흐르는 샬롬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용서한 것처럼 인간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었다.
만약 성서에 나타난 신의 처벌적 모습만 강조한 나머지 중세 신의 대리인으로 자청했던 왕들이 중앙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국가 주도의 형사사법 제도에 당위성을 부여한다면 기독교의 본질적 사랑과 화해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과 자비에 기초한 정의를 이뤄내는 것이 샬롬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여겼던 기독교인(메노나이트 교인)들에 의해 초기 북미의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 나타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초의 시도: 캐나다 엘마이라 사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소년사법에서도 매우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들은 형사적 제재 위주의 사법절차에 새로운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미 1990년대부터 북미, 호주 및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회복적 패러다임을 소년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삼아,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5)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 소수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훗날 첫 번째 회복적 정의의 실천 프로그램으로 기록된 엘미라 사건은 이 후 수많은 피해자-가해자 조정/화해 프로그램(VOMP/VORP)로 발전하게 된다.
1974년 어느 날 캐나다의 작은 도시 엘마이라(Elmira, Ontario)에서 수십 군데의 집을 턴 혐의를 받은 두 명의 십대 용의자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 지역 교정위원을 맡고있던 메노나이트 교도인 마크 얀치(Mark Yantzi)와 동료인 데이브 월트 (Dave Worth)는 담당 재판관을 찾아가 본인들이 이 십대 용의자들을 대리고 피해를 당한 집들을 찾아 합의를 보게 하는 건의안을 담당판사에게 제안하였다.
물론 담당판사의 첫 반응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법을 어기고 남의 재산에 피해를 입힌 소년들을 그냥 가볍게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막상 심리가 열리고 판결이 내려지자 놀랍게도 담당 재판관은 마크와 데이브의 의견을 받아들여 두 소년 용의자들에게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 사건을 해결할 것을 판결하였다. 단, 한 달 동안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시 법정에게 최종판결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 두 소년 용의자들은 마크와 데이브와 함께 자신들이 턴 집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피해자들과 대면해야 했고 그들의 피해와 고통에 대해 들어야 했다. 그 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며,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이 만족할만한 책임을 받을 수 있는지 묻기에 이르렀다.
이사를 간 두 집을 제외하고는 모든 집에서 이들과 합의에 이르렀고, 그 둘은 봉사활동이나 현금배상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에 책임을 지게 되었다. 실제로 몇 집은 이들이 찾아와 사과한 것으로 만도 이 청소년들을 용서해주었고, 그 두 청소년은 다시 마을의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처벌을 내리기 위한 심리보다는 청소년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법적 처벌보다 더 효과적인 선도와 예방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와 같은 소년범에 대한 피해자-가해자 직접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 가장 잘 실천된 곳은 뉴질랜드이다. 뉴질랜드에서는 1989년 청소년과 그 가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될 때 가족 간 협의회(Family Group Conference)이 고안되면서 사법제도 안에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뉴질랜드의 마오리 전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고안된 가족 간 협의회 모델에서는 19세 이하 소년범들이 경찰이나 법원, 심지어 교정시설의 어느 단계에서라도 당사자 간의 대화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족 간 협의회의 핵심은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나누고 범죄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이다.
이 모임의 진행은 전문조정 훈련을 받은 담당 사회사업가가 진행을 하며 경찰 소년지원과의 직원이 참석한다. 또한 지역의 영적지도자나 어른이 함께 참석하여 공동체의 문제로 함께 지혜를 모아간다. 양측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합의는 법원에 의해 최종 추인을 받게 되고 그 실행여부가 의뢰기관 등에 의해 모니터링 되도록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가족 간 협의회(FGC)는 형사사법제도 안에 회복적 정의의 정신이 구현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의 범죄 재범률을 낮추고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하는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법과정에서 소외되어 왔던 피해자와 그 가족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직접적인 문제해결을 통해 당사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물론 지역사회의 안전성에 대한 기대에도 부응하고 있다. (II부에 계속)
<참고 자료>
1)Eduardo Barajas, “Speak Out! Community Justice: Bad Ways of Promoting a Good Idea, Perspectives Volume:20 Issue 3, 1997
2) 하워드 제어 (손진 역)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범죄와 정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KAP, 2010, p.116
3) 하워드 제어, 위의 책 p. 241-242
4) J.W.Mohr, “Criminal Justice and Christian Responsibility: The Secularization of Criminal Law,” unpublished paper presented to the Mennonite Central Committee Canada Annual Meeting, 1981.
5) 김은경 (2004), 각국의 회복적 소년사법 정책동향, 한국형사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