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08) 화자와 시의 종류 - ① 화자―시적 주체/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화자와 시의 종류
① 화자―시적 주체
시의 언어들을 선택하고 배치하며 조절하는 이는 시인인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인가? 이는 근대시론의 논란거리의 하나이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권능을 절대시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은 지금도 시란 시인의 면모가 고스란히 비치는 거울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근대시학 내지 텍스트이론은 시를 실제 시인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발화(發話, utterance) 정도로 생각한다. 따라서 시는 시인의 몸을 빌려 독자(독백의 경우, 시인 자신일 수 있다.)라는 시 읽기의 주체에게 던져놓은 일정한 언어활동, 언술(discourse)이 된다. 발화의 내용과 태도를 주재하는 시적 주체 즉, 화자는 실제 시인이랄 수 없는 가상적 존재요, 특정의 체험을 전달하는 주체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시는 발화 당시의 의도와 정서와 환경을 재현하는 시적 주체(서정적 자아, 화자)에 의해 일차 좌우되는 것이고 이는 다시 독자에 의해 재생산된다고 보는 것이다.
당연히 우수한 시 쓰기의 관문은 화자의 됨됨이와 화자의 진정성과 수준에 달린 문제가 된다. 시 쓰기 뿐 아니라, 시 읽기의 문도 독자가 시의 어조와 전망(perspective)을 통해 화자의 태도를 파악하는 지점에서 열리게 된다.
심리학적으로는, 시도 개개 현실적 상황에 대응하는 시인의 암시적 가면(persona)에 의한 저작이요, 화자란 실제 시인에 기생하면서 매순간의 상황에 대응하는 심리적 인물이다.
당연히 시의 화자는 무수히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현재적 시공에 적응하거나 대립하거나 초월함으로써 새로운 시공을 꿈꾸는 낱낱의 얼굴들―같은 시인의 시라할지라도 화자는 그가 쓰는 시의 숫자 이상 많은 것이다.
이는 크게 언술의 표면에 드러나는 ‘현상적 화자’와 이면에 감추어진 ‘함축적 화자’로, 남성적-여성적-중성적 화자로 나눌 수 있고 세분하여, 이성적-감성적-심미적 화자, 농어촌민-도시민-우주인 화자, 엘리트층-지식층-서민층-무식층 화자, 남녀노소의 성별 연령에 따른 화자 등등 수많은 분류가 가능하다.
화자의 전언을 듣는 청자의 유형도 다양하다. 화자가 소통을 원하는 청자는 특정 개인-일반대중-특정 계층의 청자 등이 있고, 우호적-대립적-중립적 청자 등도 있을 수 있다.
한편, 청자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어조(tone)는 시의 내용과 말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감각적인 뼈대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의미 해석의 방향이 결정된다. “잘 났다.”고 하는 칭찬의 이 한 마디가 어조에 따라서는 그 반대의 뜻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그만 두고 빨리 집에 가자.’란 의미와 기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조란 화자가 처한 상황과 정서와 욕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이다.
물론 어조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시인의 인생관 내지 세계관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시적 체험의 순간을 전하는 가상의 존재, 시적 주체의 말투, 화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어조 결정의 요소로는 화자의 성별, 연령, 계층 등을 우선 들 수 있다. 그에 못지않게 소극적-적극적-중립적 어조, 현실적-이상적-논리적 어조, 부정적-긍정적-방관적 어조, 도시적-향토적 어조, 직설적-암시적 어조, 비관적-풍자적-냉소적 어조, 반어적-역설적-비유적-상징적 어조, 그리고 대결적-적응적-도피적-파괴적 어조 등등으로 얼마든지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의 결합형까지 따지면 어조의 숫자도 시의 숫자 이상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어조를 가질 뿐 아니라 시를 대하는 방식, 즉 전망도 결정한다. 우선 소설론에서의 시점(point of view)을 빌어 화자가 시의 내용 속에 있는 1인칭 주인공 전망과 1인칭 관찰자 전망, 화자가 시 세계 밖에서 시 세계를 진술하는 3인칭 전지적 전망, 3인칭 관찰자 전망 등으로 발화 시점, 전망을 나눌 수 있다. 1인칭 주인공 전망은 화자가 자신의 말을 하며 세계를 주관하는 대다수 서정시가 취하는 전망이고, 1인칭 관찰자 전망은 화자가 자신의 말을 객관적으로 제시하여 침착하게 드러낼 수 있고, 3인칭 전지적 전망은 대상의 내력과 심리까지 갈파하고 있어 성찰과 탐구력이 돋보일 수 있다. 3인칭 관찰자 전망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의 관찰과 판단을 차분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그 외 화자의 위치에 따라 고정적 전망-이동적 전망-분산적 전망으로 나룰 수 있고, 시적 대상의 위치에 따라 내면적-근거리적-원거리적-근·원거리(가까운 데서 멀리)-원·근거리 전망 등도 시 쓰기와 읽기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어조와 전망의 설정에 실패하면 시는 두서없는 넋두리가 되거나, 듣기 지겨운 뻔한 소리가 되기 쉽다. 어조와 전망은 화자의 유형을 구분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시를 유형적으로 인지하고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쓰거나 읽기의 과정에서 놓쳐서는 안 될 좌표라 하겠다.
< ‘차이 나는 시 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0.11.0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08) 화자와 시의 종류 - ① 화자―시적 주체/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