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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무 방
김유정
줄거리
깊은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응칠은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나왔다. 전과자요 manmubang인 그는 송이 파적이나 할 수밖에 없는 떠돌이 신세다. 응칠은 시장기를 느끼며 송이를 캐어 먹어 본다. 고기 생각이 나서 남의 닭을 잡아먹는다.
숲 속을 빠져 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팔이를 의심해 본다. 응칠도 5년 전에는 처자(妻子)가 있었던 성실한 농꾼이었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야반 도주한 응칠은 동기간이 그리워 응오를 찾아왔다. 진실한 모범 청년인 응오는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지도 않은 논의 벼가 닷 말쯤 도적을 맞은 것이다.
응칠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송이로 값을 치른다. 동생 응오는 병을 앓아 반송장이 된 아내에게 먹일 약을 달이고 있다. 아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 하기에 극구 말렸으나 그는 대꾸도 않고 반발한다. 응칠은 오늘밤에는 도둑을 잡은 후 이곳을 뜨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응오의 논으로 도둑을 잡으러 산고랑 길을 오른다. 바위 굴 속에서 노름판이 벌어졌다. 응칠도 노름판에 끼었다가 서낭당 앞 돌에 앉아 덜덜 떨며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흰 그림자가 눈 속에 다가든다. 복면을 한 도적이 나타나자 응칠은 몽둥이로 허리께를 내리친다. 놈의 복면을 벗기고 나서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눈을 적시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동생을 보고 응칠은 대뜸 몽둥이질을 한다.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등장인물
* 응칠: 평범하게 살던 농민이었으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과 절도로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꾸는 인물
* 응오: 응칠의 동생. 진실하고 모범적인 소작농이었으나, 가난으로 인해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고민에 빠지는 농민.
* 성팔, 기호, 용구, 머슴, 상투쟁이: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며 농촌을 떠나려는 소작농들.
소설읽기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아람드리 로송은 삑삑이 느러박엿다. 무거운 송낙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뼛, 돌배, 갈입들은 울긋불긋. 잔듸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거린다. 산토끼 두놈은 한가로히 마주 안자 그물을 할짝거리고. 잇다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입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구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흙내와 함께 향깃한 땅김이 코를 찌린다. 요놈은 싸리버섯, 요놈은 입 썩은 내 또 요놈은 송이-----아니, 아니 가시넝쿨속에 숨은 박하풀 냄새로군.
응칠이는 뒷짐을 딱지고 어정어정 노닌다. 유유히 다리를 옴겨노흐며 이나무 저나무 사이로 호아든다. 코는 공중에서 버렷다 오므렷다, 연실 이러며 훅, 훅 굽웃한 한 송목미테 이르자 그는 발을 멈춘다. 이번에는 지면에 코를 야티 갓다 대이고 한바쿠 비잉, 나물키고 돌앗다.
'아, 하, 요놈이로군!'
썩은 솔입에 덥히어 흙이 봉곳이 도다올랏다.
그는 손가락을 꾸지즈며 정성스리 살살 헤처본다. 과연 구여운 송이. 망할 녀석, 조꿈만 더나오지. 그걸 뚝 따들곤 뒷짐을 지고 다시 어실렁 어실렁. 가끔 선 하품을 터진다. 그럴 적마다 두팔을 떡 벌기곤 먼 하늘을 바라보고 느러지게도 기지개를 느린다.
때는 한참 바쁠 추수 때이다. 농군치고 송이파적 나올 놈은 생겨나도 안엇스리라. 허나 그는 꼭 해야 만할 일이 업섯다. 십프면 하고 말면 말고 그저 그뿐. 그러합에는 먹을 것이 더럭 잇느냐면 잇기커녕 부처먹을 농토조차 업는 게집도 업고 집도 업고 자식업고. 방은 잇대야 남의 겻방이요 잠은 새우잡이요. 허지만 오늘아침만해도 한 친구가 차자 와서 벼를 털텐데일즘 와 해 달라는걸 마다하엿다. 몇푼 바람에 그까진걸 누가하느냐. 보다는 송이가 조앗다. 왜냐면 이 땅 삼천리 강산에 늘려노힌 곡식이 말정 누거럼. 먼저 먹는 놈어 임자 아니야. 먹다 걸릴 만치 그토록 양식을 싸아두고 일이다 무슨 난장마즐 일이람. 걸리지 안토록 먹을 궁리나 할게지. 하기는 그도 한 세번이나 걸려서 구메밥으로 사관을 틀엇다. 마는 결국 제 밥상우에 올라안즌 제목도 자칫하면 먹다 걸리긴 매일반--
올라갈스록 덤불은 우것다. 머루며 다래, 츩, 게다 이름 모를 잡초. 이것들이 우아래로 이리저리 서리어 좀체 길을 내지 안는다. 그는 잔듸길로만 돌앗다. 넙쩍다리가 벌죽이는 찌저진 고잇자락을 아끼며 조심 조심 사려딧는다. 손에는 츩으로 역겨들은 일곱개 송이. 늙은 소나무마다 가선 두리번 거린다. 사냥개 모양으로 코로 쿡, 쿡, 내를 한다. 이것도 송이갓고 저것도 송이. 어떤게 알짜송인지 분간을 모른다. 토끼똥이 소보록한데 갈입히 한입 뚝 떨어 젓다. 그입흔살몃이 들어보니 송이 대구리가 불쑥 올라왓다. 매우 큰 송인듯. 그는 반색하야 그 압혜 무릅을 털석꿀었다. 그리고 그우에 두손을 내들며 열 손가락을 다 펴 들엇다. 가만가만히 살살 흙을 헤처본다. 주먹만한 송이가 나타난다. 얘 이놈 크구나. 손바닥 우에 따 올려노코 한참 드려다 보며 싱글벙글한다. 오중중한 구석으로 바위는 벽가티 깍아질렸다. 그 중툭을 얽어 나간 츩입헤서는 물이 쪼록쪼록, 흘러나린다. 인삼이 썩어나리는 약수라 한다. 그는 돌 우에 걸타안지며 또 한 번 하품을 하엿다. 간밤 쓸데 업는 노름에 밤을 팬것이 몹씨 나른하엿다. 다사로운 햇발이 숩풀 새여 든다. 다람쥐가 솔방울을 떨어 치며. 어여쁜 할미새는 압헤서 알씬거리고. 동리에서는 타작을 하노라고 와글거린다. 흥겨워 외치는 목성, 그걸 업누르고 공중에 웅, 웅 진동하는 버터는 기계 소리. 마즌 쪽 산 속에서 어린 목동들의 노래는 처량히 울려온다. 산 속에 뭇친 마을의 전경을 멀리 바라보다가 그는 눈을 찌긋하며 다시 한번 하품을 뽑는다. 이 웬놈의 하품일까.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부터 여짓것 창주가 곱림든 것이다. 불현듯 송이 꾸럼에서 그중 크고 먹음직한 놈을 하나 뽑아 들엇다.
응칠이는 그 송이를 물에 써억 써억 부벼서는 떡 버러진 대구리부터 걸삼스리 덥석 물어떼엇다. 그리고 넓죽한 입이 움질 움질 씹는다. 혁 녹을 듯이 만질 만질하고 향기로운 그 맛. 이럿케 훌륭한 놈을 입맛만 다시고 못 먹다니. 문득 추억이 혀끗테 뱅뱅 돈다. 이놈을 맛보는 것도 참 근자의 일이다. 감물생심이지 어디 냄새나 똑똑이 맛타보리. 산 속으로 쏘다니다 백판 못 따기도 하려니와 더러 딴다는놈은 항여상할가바 손도 못대게하고 집에 나려다모고모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오행이한 꾸럼이차면금시로장에가저다 판다. 이틀 사흘식공때린거로되잘하면 사십전 못밧으면 이십오전. 저녁거리를 기다리는 안해를생각하며 좁쌀서너되를 손에 사들고 어두운 고개치를 터덜터덜올라오는건조흐나 이신세를 멋에 쓰나, 하고보면 을프냥굿기가 짝이 업겟고---이까진걸 못먹어 그래 홧김에 또 한놈을 뽑아들고이번엔 물에 흙도 씻을새업시그대로 텁석어린다. 그러나 다른 놈들도 별수업스렷다. 이산골이 송이의 번고향이로되 아마 일년에 한개조차 먹는 놈이 드므리라.
'흥, 썩어진 두상들!'
그는 폭넓은 얼골을 이그리며 남이나 드르란듯디 이러케 비웃는다. 썩엇다, 함은 데생겻다 모멸하는 그의 언투 이엇다. 먹다남아지 송이 꽁댕이를 바루 자랑스러히 입에다 치트리곤 트림을 석거가며 우물거린다.
송이가 두개가 들어가니 인제는 더 먹을 재미가 업다. 뭔가 좀 든든한걸 먹엇스면 조켓는데. 떡, 국수, 말고기, 개고기, 돼지고기, 그러치안흐면 쇠고기냐. 아따 궁한 판이니 아무거나 잇스면 송중으로 여러 가질 먹으며 시름업시 안젓다. 그는 눈골이 슬그머니 돌아간다. 웬놈의 닭인지 암닭 한 마리가 조아래 무덤압에서 뺑뺑 맨다. 골골거리며 감도는걸 보매 아마 알자리를 보는 맥이라. 그는 돌에서 궁뎅이를 들엇다. 나즌 하늘로 외면하야 못 본 척하고 닭을 향하야 저켠으로 넓직이 돌아나린다. 그러나 무덤까지 왓슬때 몸을 돌리며
"후, 후, 후, 이 자식이 어델가 후!"
두팔을 버리고 쪼차간다. 산꼭대기로 치모니 닭은 하둥지둥 갈 길을 모른다. 요리 매낀 조리 매낀, 꼬꼬댁 어리며 속만 태울 뿐. 그러나 바위틈에 끼어 왁살스러운 그 주먹에 목아지가 둘로 나기에는 불과 몃붙 못 걸렸다.
그는 으식한 숩속으로 찻아들엇다. 닭의 껍질을 홀랑 까고서 두다리를 들고 찌즈니 배창이 엽구리로 꾀진다. 그놈을 긁어 뽑아서 껍찔과 한데 뭉치어 흙에 뭇어버린다.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중략합니다>
"나도 한케 떠보세"
응칠이는 우좌스리 굴로 기어든다. 그 콧등에는 자신 잇는 그리고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사실이지 노름 만치 그를 행복하게 하는 건 다시업엇다. 슬프다가도 화토나 투전장을 손에 들면 공연스리 어깨가 으쓱어리고 아무리 일이 바뻐도 노름판은 엽에 못 두고 지난다. 그는 이놈 저놈의 눈치를 스을쩍 한번 훌고
"두패루 너느지?"
응칠이는 재성이와 용구를 데리고 한엽으로 비켜안젓다. 그리고 신바람이 나서 화토를 석다가 손을 따악 집프며
"튀전이래지 이깐 화투는 하튼 뭘할텐가 녹빼낀가, 켤텐가?"
"약단이나 그저 보자---"
사방은 매섭게 조용하엿다. 바위 우에서 혹 바람에 모래 구르는 소리뿐이다.
어쩌다
"엣다 봐라"
하고 화토짝이 쩔꺽, 한다. 그리고 다시 쥐 죽은듯 잠잠하다.
그들은 이욕에 몸이 달아서 이야기구 뭐구 할 여지가 업다. 항여 속지나 안는가, 하야 눈들이 빨개서 서루 독을 올린다. 어떤 놈이 뜻는 놈이고 어떤 놈이 뜻기는 놈인지 영문모른다.
응칠이가 한장을 내 던지고 명월 공산을 보기조케 떡 제처노니
"이거 왜 수짜질이야---"
용구가 골을 벌컥 내이며 치어다 본다.
"뭐가?"
"뭐라니, 아 이 공산 자네 밋테서 빼내지 안헛나?"
"봣스면 고만이지 그럿케 노할건 또 뭔가---"
응칠이는 어설피 입맛을 쩍쩍 다시다
"그럼 이번엔 파토지?"
하고 손의 화토를 땅에 내던지며 껄껄 우서 버린다.
이때 한 엽헤서 별안간
"이자식 죽인다---"
악을 쓰는 것이니 모두들 놀라며 시선을 몬다. 머슴이 마주 안즌 상투의 뺨을 갈겻다. 말인즉 매주 다섯 끗을 업허첫다고---
허나 정말은 돈을 일흔 것이 분한 것이다. 이 돈이 무슨 돈이냐 하면 일년 품을 팔은 피무든 사경이다. 이런 돈을 송두리 먹니다---
"이 자식 너는 야마시꾼이지 돈내라"
멱살을 훔켜잡고 다시 두번을 때린다.
"허, 이눔이 왜 이래누, 어른을 몰라보구"
상투는 책상다리를 잡숫고 허리를 쓰윽 펴드니 점잔히 호령한다. 자식벌 되는 놈에게 뺨을 맛는건 말이 좀 덜된다. 약이 올라서 곳 일을 칠 듯이 응뎅이를 번쩍 들엇스나 그러나 그대루 주저아고 말앗다. 악에 바짝 바친 놈을 근드렷다는 결국 이쪽이 손해다. 더럽다는 듯이 허허, 웃고
"버릇업는 놈 다봣고!"
하고 꾸즈진 것은 잘 됏으나 그 여히 어이쿠, 하고 그 자리에 푹 업프러진다. 이마가 터저서 피는 흘럿다. 어느 틈엔가 돌맹이가 나라와 이마의 가죽을 터친 것이다.
응칠이는 싱글러 기며 굴을 나섯다. 공연스리 쑥스럽게 일이나 버러지면 성가신 노릇이다. 그리고 돈백이나 될줄 알앗더니 다 봐야 한 사십원 될가 말가. 그걸 바라고 어느 놈이 안 젓는가---
그가 딴것은 본밋을알라 구원하구 팔십 전이다. 기호에게 오원을 내주고
"자, 반이 넘네, 자네 게집일코 돈일코 호강이겟네"
농담으로 비우서 던지고는 숩으로 설렁설렁 나려온다.
"여보게 자네에게 청이 잇네"
재성이 목이 말라서 바득바득 따라온다. 그청이란 뭇지안허도 알수잇서다. 저에게 돈을 다빼앗기곤 구문이겟지. 시치미를 딱 떼고 나갈길만 것는다.
"여보게 응칠이, 아 내 말을 들어---"
그제서는 팔을 잡아 낙그며 살려 달라 한다. 돈을 좀 느릴까, 하고 벼 열말을 팔아 해보앗다드니 다일엇다고. 당장 먹을게 업서 죽을 지경이니 노름 미천이나 하게 몃푼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벼를 털엇으면 거저 먹을 게지 어쭙지안케 노름은---
"그런걸 왜 너보고 하랏서?"
하고 돌아스며 소리를 뻑 지르다가 가만이 보니 눈에 눈물이 글성하다. 잠잣고 돈 이원을 끄내주엇다.
응칠이는 돌에 안저서 팔장을 끼고 덜덜 떨고잇다.
사방은 뺑---돌리어 나무에 둘러싸엿다. 거무투툭한 그 형상이 헐업시 무슨 독깨비갓다. 바람이 불적마다 쏴--, 하고 쏴--하고 음충맛게 건들거린다. 어느 때에는 짹, 짹, 하고 목을 따는지 비명도 올린다.
그는 가끔 뒤를 돌아보앗다. 별일은 업슬 줄 아나 호욕 뭐가 덤벼들지도 모른다. 소낭당은 바루등뒤다. 쪽제빈지 뭔지, 요동통에 돌이 문허지며 바시락, 바시락, 한다. 그 소리가 묘--하게도 등줄기를 쪼옥 근는다. 어두운 꿈속이다. 하눌에서 이슬은 나리어 옷깃을 추긴다. 공포도 공포려니와 냉기로 하야 좀체로 견딀 수가 업섯다.
산골은 산신까지도 주럿스렷다. 아들 나 달라구 떡 갓다 밧칠이 업슬테니까. 이놈의 영감님 홧김에 덥석 달겨들면. 압뒤를 다시 한번 휘돌아 본 다음 설대를 뽑는다. 그리고 오곰팽이로 불을 가리고는 한대 뻑뻑 피어물엇다. 논은 열아문칸 떨어저 고알에 누엇다. 일심정기를 다하야 나무틈으로 뚤허보고 안젓다. 그러나 땅에 대를 털랴니깐 풀숩히 이상스러히 흔들린다. 뱀, 뱀이 아닌가. 구시월 뱀이라니 물리면 고만이다. 자리를 옴겨안즈며 손으로 입을 마고 하품을 터친다.
아마 두어 시간은 더 넘엇스리라. 이놈이 필연코 올텐데 안 오니 이 또 무슨 조활가. 이즛이란 소문이 나기 전에 한번더 와 보는 것이 원측이다. 잠을 못자서 눈이 뻑뻑한것이 제물에 슬금슬금 감긴다. 이를 악물고 눈을 뒵쓰면 이번에는 허리가 노글 거린다. 속은 쓰리고 골치는 때리고. 불꼿가튼 노기가 불끈 일어서 몸을 옥죄인다. 이놈의 다리를 못꺽꺼놔도 애비업는 홀의 자식이겟다.
닭들이 세홰를 운다. 멀--리 산을 넘어오는 그 음향이 퍽은 서글프다. 큰비를 몰아 드는지 검은 구름이 잔뜩 끼인다. 하긴 지금도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그때 논둑에서 흐끄무레한 해까비 가튼것이, 얼씬거린다. 정신을 빤짝 채렷다. 영낙업시 성팔이, 재성이, 그둘중의 한놈이리라. 이 고생을 시키는 그놈! 이가 북북 갈리고 어깨가 다 식식어린다. 몸둥이를 잔뜩 우려쥐엇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나무줄기를 끼고 조심조심 돌아나린다. 허나 도랑쯤 나려오다가 그는 멈씰하야 몸을 뒤로 물렷다. 넉대 두놈이 짝을 짓고 이편 산에서 저편 산으로 설렁설렁 건너가는 길이엇다. 비럴멋을 넉대, 이것까지 말성이람. 이마의 식은땀을 씨스며 도루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번 이놈도 재작년 강도 짝이나 안될는지. 급시로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탁 치고 지나간다.
그는 옷깃을 여미며 한대를 더 부첫다. 돌연히 풍세는 심하야진다. 산골작이로 몰아 드는 억센 놈이 가끔 발광이다. 다시금 더르르 몸을 떨엇다. 가을은 왜 이지경인지. 여기에서 밤새울 생각을 하니 기가찻다.
얼마나 되엇는지 몸을 좀녹이고자 일어나서 성서성할 때이엇다. 논으로 다가오는 흐미한 그림자를 분명히 두눈으로 보앗다. 그리고 보니피로구, 한고이구다 딴소리다. 고개를 내대고 딱 버틔고서서 눈에 쌍심지를 올린다.
힌 그림자는 어느틈엔가 어둠 속에 사라저 보이지 안는다. 그리고 다시 나올 줄을 모른다. 바람소리만 왱, 왱, 칠뿐이다. 다시 암흑 속이 된다. 확실히 벼를 훔치러 논 속으로 들어갓슬 것이다. 역갱이가튼 놈이 구즌 날새를 기화삼아 맘껏 하겟지 의리업는 썩은 자식, 격장에서 가치 굶는터이에---오냐 대거리만 잇서라 이를 한번 부윽갈아 붓치고 차츰차츰 논께로 나리온다.
응칠이는 논께로 바특이 나려서서 소나무에 몸을 착 붓첫다. 서뿔리 서둘라 간 낫의 횡액을 입을지도 모른다. 다 훔처가지고 나올 때만 기다린다. 몸둥이는 잔뜩 힘을 올린다.
한 식경쯤 지낫을까, 도적은 다시 나타난다. 논뚝에 머리만 내노코 사면을 두리번 거리 드니 그제서 기여 나온다. 얼골에는 눈만 내노코 수건인지 뭔지 흔겁이 가리엇다. 봇짐을 등에 질머 메고는 허리를 구붓이 뺑손을 놋는다. 그러자 응칠이가 날쌔게 달겨들며
"이 자식, 남우 벼를 훔처 가니---"
하고 대포처럼 고함을 지르니 논둑이로 고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얼결에 호되히 놀란 모양이엇다.
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나려조겻다. 어이쿠쿠, 쿠--,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뻔쩍 띄이어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보앗다. 그러나 너머나 어이가 업엇음인지 시선을 치거드며 그 자리에 우두망철한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엇다. 살뚱마즌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한참을 신음하다 도적은 일어나드니
"성님까지 이러케 못살게 굴기유?"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늣기며 울음이 복바친다. 봇짐도 내버린 채
"내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하고 데퉁스러히 내뱃고는 비틀비틀 논 저쪽으로 업서 진다.
형은 너머 꿈속 가태서 멍허니 섯을뿐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서 한 손으로 그 봇짐을 들어본다. 가쁜 하니 끽 밀 가웃이나 될는지. 이까진걸 요러케까지 해 갈라는 그 심정은 실로 알수업다. 벼를 논에다 도루 털어버렷다. 그리고 안해의 치마이겟지, 검은 보자기를 척척 개서 들엇다. 내걸 내가 먹는다---그야 이를 말이랴, 허나 내걸 내가 훔처야할 그 운명도 얄굿거니와 형을 배반하고 이즛을 버린 아우도 아우이렷다. 에--이 고현놈, 할제 보를 적시는 것은 눈물이다. 그는 주먹으로 눈을 쓱 부비고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잇스니 두레두레한 황소의 눈깔. 시오리를 남쪽 산속으로 들어가면 어느집 벽갓뜰에 밤마다 늘 매여 잇는 투실투실한 그 황소. 아무러케 따지던 칠십 원은 갈데 업스리라. 그는 부리나케 아우의 뒤를 밟앗다.
공동묘지까지 거반 왓슬 때에야 가까스루 만낫다. 아우의 등을 탁치며
"얘, 존수잇다, 네 원대로 돈을 해줄게 나구 잠간 다녀오지."
씩씩한 어조로 기쁘도록 달랫다. 그러나 아우는 입하나 열라지 안코 그대루 실쭉하엿다. 뿐만 아니라 어깨 우에 올려노은 형의 손을 부질업단듯이 몸으로 털어 버린다. 그리고 삐익다라난다. 이걸 보니 하엄청이나고 기가 콱막히엿다.
"이눔아!"
하고 악에 밧치어
"명색이 성이라며?"
대뜸 몽둥이는 들어가 그 볼기짝을 후려갈겻다. 아우는 모루 몸을 꺽드니 시납으로 그러진다. 매미처 압 정갱이를 때렷다. 등을 팻다. 일지 못할만치 매는 나리엇다. 체면을 불구하고 땅에 업드리어 엉엉 울도록 매는 나리엇다.
홧김에 하긴햇으되 그 팔을보니 또한 마음이 편할수 업다. 침을 퇴, 배타 던지곤 팔짜드신 놈이 그저 그러지 별수잇냐. 쓰러진 아우를 일으키어 등에 업고 일어섯다. 언제나 철이 날는지 딱한 일이엇다. 속썩는 한 숨을 후---하고 내뿜는다. 그리고 어청어청 고개를 묵묵히 나려 온다.
핵심정리
* 갈래: 단편소설
* 배경: 1930년대 가을, 강원도 산골 마을
* 성격: 반어적(자기가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상황)
* 표현: 토속적 어휘 구사. 반어적인 수법.
* 시점: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 문체: 간결체
* 주제: 식민지 농촌의 피폐상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눈물겨움.
구성
* 발단: 응칠이는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하며 송이로 요기를 하고 닭을 잡아 먹음.
* 전개: 응오네 벼가 도둑 맞은 사실을 듣고 응오집에 들렀다가 살벌해진 현실에 개탄함.
* 위기: 그믐 칠야에 산꼭대기 바위굴에서 노름을 하고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함.
* 절정: 도둑을 잡고 보니 동생임을 알고 어이가 없어 우두망찰함.
* 결말: 황소 훔칠 것을 거절하는 동생을 몽둥이질하여 등에 업고 산을 내려옴.
김유정(金裕貞, 1908 - 1937)
강원도 춘천 출생. 휘문고보 졸업. 1927년 연희전문에 입학했으나 맏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으로 집안이 기울자, 학교를 중퇴하고 한동안 객지를 방황하다가 1931년경에는 강원도 춘성에서 야학을 열고 문맹 퇴치 운동을 벌였다. 1935년 단편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순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표작에는 [소나기](1935), [노다지](1935), [금 따는 콩밭](1935) 등이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은 토속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농촌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농촌의 문제성을 노출시키면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웃음으로 치환시켰다. 그러나 그는 세계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 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인간의 모습을 희화화함으로써 투철한 현실 인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설
'만무방'은 응칠과 응오 형제가 궁핍한 삶 가운데 상반된 길을 걸어온 이야기이다. 전과 4범의 건달인 형 응칠은 절도에도 능한 노름꾼이며 사회적 윤리의 기준에 위배되는 만무방이다. 이와는 달리, 동생 응오는 모범적인 농군임에도 벼를 수확해 봤자 남는 것은 빚뿐이라는 절망감으로 벼 수확을 포기한다.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의외로 동생인 응오였다는 아이러니, 일 년 농사를 짓고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뿐이라는 인식은 당시의 소작농들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응오가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에 놓이는 데 반하여 형 응칠은 반사회적인 인물이며 적극적 행동형이다. 모범적인 농군을 반사회적인 인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같은 응칠의 행위가 오히려 농민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왜곡된 사회에 대한 냉소주의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인물들의 현실 개선의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반사회적인 수단-도박, 절도 등에 의해 현실의 극복을 시도하지만 빈번이 좌절되고 만다. 작가가 제시한 인물들의 행위가 타락한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음은 타락한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작가는 1930년대의 현실 상황을 반어적으로 파악했으며, 그것은 김유정에게 있어 수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구조를 인식하고 왜곡된 사회 현실의 모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당시 소작인들의 궁핍상을 반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소설 미학의 측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준다. 주인공의 대범하고 적극적인 행동이 반사회적인 것일수록, 그것이 농민 계층의 꿈이 되고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아이러니이다. 이는 30년대와 같은 모순된 사회에서 응칠과 같은 반사회적인 행동 양식이야말로 당대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씁쓰레한 메시지를 환기하고 있다.
참고 1
[만무방]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란 의미인데, 이 작품은 살아가기 힘든 응칠, 응오 두 형제의 부랑(浮浪)하는 삶을 중심으로 하되, 노동보다는 도박판에 뛰어드는 농촌 청년들의 사행적(射倖的) 행태도 제시되어 있다. 특히, 추수를 해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소작농(동생 응오)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건은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 준다.
참고 2
김유정의 문체
민중이나 현실에 대한 김유정의 인식은 그의 해학적 문체와도 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 자신의 독특한 민중 사랑과 현실 인식은 그의 작품에 나타난 반어적 표현이나 해학적 문제, 혹은 민중 언어의 구사 같은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로 형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민중 인식 내지 현실 인식이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 일정한 수준을 지니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그의 해학적 반어적 문체를 비롯한 여러 표현상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가령 [봄 봄]과 같은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이 작품은 마름의 횡포가 자행되는 당시 농촌 사회의 모순과 그 모순에 희생되는 농민(민중)의 고통을 반영한 점에서 작자의 현실과 민중에 대한 인식을 제시한 것이다. 마름이 젊은 농부를 데릴사위라고 하는 정략적 약혼의 희생물로 삼아 그 노동력을 수년간 무보수로 착취함으로 해서 빚어지는, 데릴사위인 <나>와 <나>의 장인인 마름과의 갈등이 [봄 봄]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위선적 성격의 장인과 그의 속임에 나와의 갈등이 뛰어난 해학적 기교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학적 표현은 그 갈 등의 진정한 원인으로서의, 당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제대로 추구하는 데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 소설이 현실의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동시에 흥미로워야 한다면 그는 해학적 문체로 그 중요한것의 일부분을 희생시킨 대신 흥미로움을 살리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동백꽃]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은 동백꽃 피는 농촌을 배경으로 계층이 다른 사춘기 남녀간의 갈등과 화해를 밀도 있게 다룸으로 해서 향토적인 사랑의 미학을 보여준다. 눈치 없고 모자라는 <내>가 점순이의 은근한 사랑의 표현과 구애의 동작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점순이 사이에는 반어적 상황 내지 해학적 싸움이 벌어진다. 점순이가 <나>에게 구운 감자를 준 것이나, <우리>닭을 여러 차례 곯린 것은 점순이의 <나>에대한 일종의 애정 표시이고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해서 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또 그 갈 등의 양상은 해학적이 된다. 그러나 그 갈 등의 원인은 <나>의 눈치 없는 우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요인은 마름의 딸인 점순이와 소작인의 아들인 <내>가 서로 계층이 다르다는 데도 있다. <나>는 점순이보다 계층이 낮기 때문에 점순이가 구운 감자를 나에게 주면서 <느 집엔 이거 없지>하고 생색을 내는 것이 마땅치 못했고, 따라서 , <나>는 그 감자 받기를 거절했던 것이다. 점순이의 뜻이야 어떻든지 그녀가 <나>에게 계층적인 열등감 내지 불안감을 자극하므로 <나>는 그런 점순이에게 일종의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또 점순이에 대한 <나>의 그러한 감정은 이미 <어머니>가 <나>에게 주의시켜 준 말로 그 동기가 부여된 바도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은 그러한 계층 차이가 <나>와 점순이와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애정을 나눈 이 두 사람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헤어지는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거듭 생각해야 할 것은 [동백꽃]이 주로 상대의 애정 표시를 깨닫지 못하는 주인공의 딱하고 우스꽝스러운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유정의 그런 능청스러운 익살은 그의 창작이 지닌 특이한 흥미요 매력임이 분명하다. 또 그런 해학적 표현이 한국 농민의 전통적 언어 감각과 향토적인 정서를 생생하게 제시하는데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계층 문제를 비롯한 당시 농촌 사회의 당면 과제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데 일종의 역작용을 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의 현실 인식이 지닌 일정한 한계가 반어나 해학의 문체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체로 인해서 그의 현실 인식이 약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 3 -김유정 소설의 민중적 성격-
김유정의 소설은 주로 사상이나 내용의 무게보다 형식적인 면, 즉 기교나 구성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고 평가된다. 기교 가운데는 특히 반어와 해학이 돋보이며, 구성은 반복적이고 회귀적은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또 전통 계승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도 김유정 소설의 문체와 구성 같은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중시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이런 연구들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경구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접근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김유정의 작품들은 문학의 기교나 형식만 거론할 가치가 있고 사상이나 이념 같은 것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그의 작품들에는 사상과 유리된 기교나 형식미만 살아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문학 작품이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대상 작품의 정체가 과연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것인가. 한편 수적으로 약세이긴 하지만 김유정 소설의 사상성, 특히 당시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안식을 주목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중에는 김유정 문학의 현실 인식은 높이 평가한 경우와 그 한계성을 주로 비판한 경우도 있긴 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그런 현실 인식에 대한 평가의 적절성 문제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논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시하는 것은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양자가 모두 내용을 형식과의 관계 아래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작품의 이념이나 사상을 기교나 구조와 같은 형식미와는 상관없이 다루고 있다는데 이런 글들이 가진 문제로도 지적된다는 말이다. 작가에게 현실 인식이나 세계관은 형식이나 미학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들 역시 형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도외시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김유정 자신은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정작 어떤 입장을 보여 왔을까. 그동안 논자들의 관심과 견해의 대세를 중심으로 본다면 그는 의당 문학의 기교나 형식을 강조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병상의 생각」이라는 서간체 수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의 생명을 잃은 그들(신심리주의 문학가-인용자)에게 가정 중요한 간판(看板)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형식(形式), 즉 기교(技巧)입니다.(ㆍㆍㆍ)그들은 괴망히도 치밀한 묘사법(猫寫法)으로 인간 심리를 내공(內攻)하야, 이내 산 사람으로 하여금 유령(幽靈)을 만들어 놓은 걸로 그들의 자랑을 삼습니다." 이것은 물론 심리주의 작가의 기교 위주의 태도를 비판한 말이지만, 김유정이 문학에서 기교나 묘사보다 이념이나 사상을 더 강조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그가 연애를 위한 연애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형식주의/기교주의 예술 등을 부정하는 대신, 연애는 인류 상호 결합의 근본 윤리며, 사랑은 많은 대중(문맥으로 보아 '민중' 이라는 편이 더 어울림)을 한 끈에 꿸 수 있을 때 위대한 생명을 갖게 되며, 예술은 그런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의 진술로도 알 수 있다. 떠 그런 견지에서 개인주의를 비롯하여 니체의 초인설(超人說)과 맬서스의 인구론보다는 "크로포트킨의 상호 부조론이나 맑스의 자본론이 훨씬 새로운 운명을 띠고 있는 것"이러고도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김유정의 진술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남녀 간 애정의 사회적 역할을 과대 평가한다든가,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개념이 어떤 맥락과 범주를 가지고 있는지가 모호하다든가, 크로포트킨과 맑스를 함께 수용하는 태도가 이념이나 세계관의 면에서 석연치 않다는 점들을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뒤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하고, 여기서 우선 명백히 해 둘 것은 김유정의 핵심적인 문학 예술관이 민중에 대한 폭넓은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예술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맥락에서 김유정 작품의 뛰어난 기교와 형식 문제도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특히 그가 예술의 목적이 전달에 있는가, 표현에 있는가에 대하여 "표현이란 원래 전달을 전제로 하고야 비로소 그 생명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진술은 문학에서 사상, 즉 메시지를 중시하는 그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시각과 주장은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 부분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며, 또 그것은 적어도 그의 창작의 기본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점들을 고려하여 김유정의 언어적 실천(작품)이 당대 현실과 어떤 연결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의 서사나 문체가 당시의 현실, 즉 '정치사적 지평과 사회사적 지평 그리고 생간 양식사적 지평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를 고찰해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사상중시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전달'을 전제한 '표현'에 강조를 두기도 한 김유정 소설의 본질 구명에 더욱 접근할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이선영, <선청 어문> 23집-
김유정의 삶과 운명
김유정의 집안은 천석지기의 지주였고, 고향인 강원도 산골(춘천에서 한 이십여 리 가량)이었지만 서울에도 백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러나,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로 집안을 관리하던 큰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 때 그는 마을의 주막집을 드나들며 집시와 같은 생활을 하고 들병이들과 어울린다. 이러한 경험은 김유정의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들병이는 남편 있는 여인이 시골 주막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몸을 파는 것을 말한다. 들병이의 남편은 아내를 매음시켜 생계를 꾸릴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조차 한다. 이러한 남편의 의식, 즉 '들병이 사상'이 김유정 문학의 출발점에 놓여 있는데, 그것이 드러난 작품으로 <봄 봄> <동백꽃> <두꺼비> <안해> 등을 들 수 있다.
고향에 있을 당시 김유정은 충청도 광업소(금광)에서 몇 달 동안 현장 감독을 한 적이 있었다. 또 고향 실레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물골'에서는 사금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곳 개울 바닥은 온통 파헤쳐져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김유정은 금을 찾아 횡재를 노리는 인간 군상을 그려 낼 수 있었다. 작품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등이 바로 그러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1933년 서울로 올라온 김유정은 폐결핵을 앓는다. 그는 주야로 원고를 쓰면서 병마와 싸웠다. 1937년 3월 29일 김유정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삼십여 편의 작품을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떴다. 경기도 광주의 누님 집에서 누님과 매형이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하게 임종을 맞았다. 그의 시선은 유언대로 화장되었고, 유골은 한강에 뿌려졌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삶과 여자, 그리고 성격을 덧붙인다면, 그가 생전에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에 대한 김유정의 그리움은 남달랐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말하는 '그리움'은 모두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었다고 훗날 고백할 정도였다. 세상의 그늘을 모르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어린 김유정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연이은 아버지의 죽음과 가세의 급속한 쇠락은 어린 김유정을 자신만의 내성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후 폐결핵에 시달리며 김유정은 깊은 우울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좀더 적절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주위의 인물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없는 우울을 낳습니다."(김유정, "어떤 부인을 맞이할까"에서)
어머니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과 숙명적 우울, 이러한 상태에서 김유정은 두 여인(박녹주, 박봉자)을 향해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무한정 조르듯이..... 하지만 그의 우울과 그리움은 여인과의 사랑에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김유정이 박녹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26년 휘문고보 4학년을 휴학할 즈음이었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박녹주의 모습을 보고 반하여 김유정은 연정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박녹주에게 연정을 호소하는 편지를 띄웠으나 번번이 무시되자 그녀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호소하였다. 혈서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유정보다 연상이고 기생 생활을 하던 박녹주는 끝끝내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박녹주는 다음과 같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편지질이오? 학생이 기생과 무슨 연애를 하자는 말이오?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박녹주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에서)
또 다른 사랑은 1936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김유정은 박봉자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 이전 박녹주의 경우처럼 편지에 대한 회신은 없었다. 수개월에 걸쳐 서른 통의 편지를 보냈을 때 박봉자는 다른 사람과 약혼한다. 김유정은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박봉자는 그 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김유정의 편지는 서른 통 정도 받았다. 먼저 오빠의 손에 겉봉이 뜯긴 다음 내가 편지를 읽었다. 지금 여성들은 다르겠지만, 당시는 아무리 신여성이라 해도 김유정 같은 뜨거운 구애에는 침묵을 지킬 도리밖에 더 있었겠는가?"
2007년 수능언어영역
[15~1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주재소는 그를 노려보았다. 툭하면 오라, 가라, 하는데 학질이었다. 어느 동리고 가 있다가 불행히 일만 나면 누구보다도 그부터 붙들려 간다. 왜냐면 그는 전과 사범이었다. 처음에는 도박으로, 다음엔 절도로, 또 고 담에는 절도로, 절도로. 그러나 이번 멀리 아우를 방문함은 생활이 궁하여 근대러 왔다거나 혹은 일을 해 보러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혈족이라곤 단 하나의 동생이요, 또한 오래 못 본지라 때 없이 그리웠다. 그래 모처럼 찾아온 것이 뜻밖에 덜컥 일을 만났다. 지금까지 논의 벼가 서 있다면 그것은 성한 사람의 짓이라 안 할 것이다. 응오는 응고개 논의 벼를 여태 베지 않았다. 물론 응오가 베어야 할 것이나, 누가 듣든지 그 형 응칠이를 먼저 의심하리라. 그럼 여기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응칠이가 혼자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응오는 진실한 농군이었다. 나이 서른하나로 무던히 철났다 하고 동리에서 ⓐ쳐주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런데 벼를 베지 않는다. 남은 다들 거둬들였고 털기까지 하련만 그는 ㉠벨 생각조차 않는 것이다. 지주라든 혹은 그에게 장리*를 놓은 김 참판이든 뻔찔 찾아와 벼를 베라 독촉하였다. “얼른 털어서 낼 건 내야지.” 하면 그 대답은, “계집이 죽게 됐는데 벼는 다 뭐지유―” 하고 한결같이 내뱉는 소리뿐이었다. 하기는 응오의 아내가 지금 기지사경이매 틈은 없었다 하더라도 돈이 놀아서 약을 못 쓰는 이 판이니 진시 벼라도 털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왜 안 털었던가. 그것은 작년 응오와 같이 지주 문전에서 타작을 하던 친구라면 묻지는 않으리라. 한 해 동안 애를 ⓑ졸이며 홑자식 모양으로 알뜰히 가꾸던 그 벼를 거둬들임은 기쁨에 틀림없었다. 꼭두새벽부터 엣, 엣, 하며 괴로움을 모른다. 그러나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초*를 제하고 보니 남은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기보다 끝없이 부끄러웠다. 같이 털어 주던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섰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진정 열적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참다 못해 응오는 눈에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A] 가뜩한데 엎치고 덮치더라고 올해는 고나마 흉작이었다. 샛바람과 비에 벼는 깨깨 비틀렸다. 이놈을 가을하다간 먹을 게 남지 않음은 물론이요 빚도 다 못 ⓒ가릴 모양. 에라, 빌어먹을 거 너들끼리 캐다 먹든 말든 멋대로 하여라, 하고 내던져 두지 않을 수 없다. 벼를 거뒀다고 말만 나면 빚쟁이들은 우― 몰려들 거니깐. 응칠이의 죄목은 여기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국으로 가만만 있었다면 좋은 걸 이 사품에 뛰어들어 지주의 뺨을 제법 갈긴 것이 응칠이었다. 처음에야 그럴 작정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곳 물을 마신 이만치 어지간히 속이 틘 건달이었다. 지주를 만나 까놓고 썩 좋은 소리로 의논하였다. 올 농사는 반실이니 도지도 좀 감해 주는 게 어떠냐고. 그러나 지주는 암말 없이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정 이러면 하여튼 일 년 품은 빼야 할 테니 나는 그 논에다 불을 지르겠수, 하여도 잠자코 응치 않는다. 지주로 보면 자기로도 그 벼는 넉넉히 거둬들일 수는 있다마는, 한번 버릇을 잘못 해 놓으면 여느 작인까지 행실을 버릴까 염려하여 겉으로 독촉만 하고 있는 터이었다. 실상이야 고까짓 벼쯤 있어도 고만 없어도 고만, 그 심보를 눈치 채고 응칠이는 화를 벌컥 낸 것만은 좋으나 저도 모르게 대뜸 주먹뺨이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문제 중에 있는 벼인데 ㉢귀신의 놀음 같은 변괴가 생겼다. 다시 말하면 벼가 없어졌다. 그것도 병들어 쓰러진 쭉정이는 제쳐 놓고 무얼로 그랬는지 알장 이삭만 따 갔다. 그 면적으로 어림하면 아마 못 돼도 한 댓 말 가량은 될는지! 응칠이가 아침 일찍이 그 논께로 노닐자 이걸 발견하고 기가 막혔다. 누굴 성가시게 굴려고 그러는지. 산속에 파묻힌 논이라 아직은 본 사람이 없는 모양 같다. 하나 동리에 이 소문이 퍼지기만 하면 저는 어느 모로든 혐의를 받아 폐는 좋이 입어야 될 것이다. (중략) 한 식경쯤 지났을까, 도적은 다시 나타난다. 논둑에 머리만 내놓고 사면을 두리번거리더니 그제야 기어 나온다. 얼굴에는 눈만 내놓고 수건인지 뭔지 헝겊이 가리었다. 봇짐을 등에 짊어 메고는 허리를 구붓이 뺑소니를 ⓔ놓는다. 그러자 응칠이가 날쌔게 달려들며, “이 자식, 남의 벼를 훔쳐 가니!” 하고 대포처럼 고함을 지르니 논둑으로 고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얼결에 호되게 놀란 모양이다. 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내려조겼다. 어이쿠쿠, 쿠―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서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걷으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한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었다. 살뚱맞은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B] 한참을 신음하다 도적은 일어나더니, “성님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기유?”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느끼며 울음이 복받친다. 봇짐도 내버린 채,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하고 데퉁스러이 내뱉고는 비틀비틀 논 저쪽으로 없어진다. 형은 너무 ㉤꿈속 같아서 멍하니 섰을 뿐이다. - 김유정, <만무방> - *장리: 돈이나 곡식을 꾸어 주고, 받을 때는 한 해 이자로 본디 곡식의 절반 이상을 받는 변리. *도지: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는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 *색초: 잡초를 제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
15.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1점] ▶ ①
①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며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
② 다양한 인물들의 경험을 삽화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다.
③ 장황한 해설을 통해 작가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④ 인물의 외양 묘사를 통해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⑤ 회상을 통해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6.[A]와 [B]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을 <보기>에서 골라 바르게 묶은 것은? ▶ ②
보 기 ㄱ.[A]는 [B]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 상황적 배경이 된다. ㄴ.[A]에 드러나 있는 갈등은 [B]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ㄷ.[A]와 [B]가 묶여 당시의 궁핍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ㄹ.[A]에서는 불만의 대상이 개인이었다가 [B]에서는 사회로 확대된다. |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17. ‘응칠’의 행동을 <보기>와 같이 정리하였다. <보기>를 토대로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 ②
보 기 ㄱ. 응칠이는 먼 곳에서 동생을 찾아온다. ㄴ. 응칠이는 담판을 지으려고 지주를 만난다. ㄷ. 응칠이는 지주의 뺨을 때린다. ㄹ. 응칠이는 논에 가서 도적을 기다린다. ㅁ. 응칠이는 도적을 잡기 위해 다짜고짜로 달려든다. |
①ㄱ, ㄴ을 통해 동생을 생각하는 응칠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②ㄱ, ㄹ에서 응칠이가 동생을 찾아온 일이 도적과 관계됨을 알 수 있어.
③ㄴ, ㄷ, ㅁ을 통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응칠이의 성격을 알 수 있어.
④ㄴ, ㄹ을 통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응칠이의 의지를 볼 수 있어.
⑤ㄹ, ㅁ은 응칠이가 자신에게 미칠지 모를 혐의를 벗기 위해 한 행위일 수 있어.
18.㉠~㉤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④
①㉠: ‘진실한 농군’의 행위인 점에 비추어, 의도가 단순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②㉡: 노동의 결과가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③㉢: 새로운 문제의 발생으로 사건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예상된다.
④㉣: 싸움 중에 잠시 찾아온 침묵으로,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이 표현되어 있다.
⑤㉤: 뜻밖의 상황을 당해 당혹스러워 하는 인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9. ⓐ~ⓔ를 바꿔 쓴 말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 ④
① ⓐ: 알아주는 ② ⓑ: 태우며
③ ⓒ: 갚을 ④ ⓓ: 거칠게
⑤ ⓔ: 친다